나의 이야기

루이비통 명동 신세계 더 리저브,크리스챤 디올관 더 헤리 테이지,롯데호텔 (2025년12월14일)

백재은 2025. 12. 17. 10:12

루이비통 명동 신세계 더 리저브

12월14일~루이비통 명동 신세계 더 리저브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명동성당부근에서 내렸다. 명동역으로 각기위해 가는 중 을지스타몰의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조형물이 있었다. 러브는 문자와 그림으로 표현된 사랑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작품이였다. 기업은행 파이낸스타워로 한신섭의 하나되어 조형물이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인체의 형태를 단순화하여 평화롭고 평온한 감성이 스며들었다.기업은행을 지나 김정희의 숲이 있었다. 나무가 모여있는 형상으로 잎맥의 구조를 조각적 형태로 재해석하였으며 구조물 사이에  생명의 근원인 물을 상징하는 구를 넣어 생명이 생성되는 이미지를 표현하였다.빌딩안으로 들어가니 임근웅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백두산천지가 걸려 있었다.하늘 생명수를 담고 있는 백두산 천지에   무릉동원을 꿈꾸는 그림이였다. 명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회현역에 내리니 신세계백화점과 연결되었다.신세계백회점 옆 건물로  루이 비통 명동 신세계 더 리저브가 1층부터 6층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루이 비통은 장인정신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해지며 이어져왔다.1821년에 출생한 루이 비통은  1854년 발명과 디자인 장인정신으로 여행의 예술에 혁신을 일으켰다. 17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정신은 세계 곳곳에 살아 숨 쉬며 유산과 창조가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비저너리 저니는 루이 비통 여행의 예술을 펼쳐 보여줬다. 최초의 플랫 트렁크부터 현대적인 아이콘,워치,패션,음악에 이르기까지 루이 비통이 걸어온 여정을 한눈에 보여 주었다.5층은 기원,워치,피크닉,맞춤제작,공방,테스,아이콘,모노그램 4층은 음악,협업,패션,랜턴,매장, 르 쇼콜라와 르 카페 루이 비통으로 이루어졌다.세계적인 벽,천장,바닥재료,인테리어,실내장식,디자인,디스 플레이,가구,소품,명화,조각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어메이징한 세계적인 예술작품 같았다. 특히 루이비통 전시관은 세계적인 현대예술박물관에 온것처럼 인테리어,조명,실내장식,디스플레이등이 세계 최고의 걸작품이였다.발걸음 옮길때 마다 환상의 도가니로 불탔다.

 

3층부터는 판매장으로 복도에 여러가지 그림작품들이 진열되며 카타르시스가 넘쳤다.3층  판매장부터 한명의 직원이 손님 한명을  대동하였다.김현욱님이 배정되었는데 네가 요구하는 것에 친절하게 잘 응대해 주어 너무 감사했다.손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직원 같았다.진열대의 카페트,가구,소품,그림작품,조각작품,인테리어,디스 플레어가 잘 어우러진 고 품격 세계적인 호텔급 같았다.거대한 조각작품이 있는  복도 중앙 계단으로  각 층 마다 그림이 진열되어 호텔에 온 기분 같았다.르이 비통 매장만 아니라 다른 매장도 입점해 있었다.건축재료,인테리어,디스플레어,소품,가구등 모든것이 한데 어우러진 예술가 장인의 손길이 담겨져 있었다.

 

루이 비통 명동 신세계 더 리저브를 나오니 크리스챤 디올관이 있었다. 1935년대 지어진 유형문화유산인 옛 제일은행 본점 건축이였다. 일제 강점기 조선저축은행으로 세워졌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근대 건축에 적용한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하여  정면의 기둥머리는 서양 고전건축의 오더 중 도리식 오더로 장식되었다. 내부 영업장 천장에 있는 꽃 모양 석고 부조는 국내에서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 장식 중 가장 수려한 형태로 평가 받고 있었다.크리스챤 디올관 4층 더 헤리 테이지의 원더랜드로 갔다.천정의 쌍드리에와 함께 석고 꽃모양 부조로 매우 고풍스러웠다. 붉은 커텐과 붉은 인테리어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가게들이 산타선물로 빛났다.복도 엘리베이터의 대리석 질감과 타일로 정교하게 감싸고 있는 장식이 운치가 있었다. 크리스챤 디올관앞으로 남대문로 한국은행 사거리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노래한 조각등이 분수대를 위시하며 대칭적인 구조를 이룬 우체국, 바로크풍의 화폐박물관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었다. 현대와 고전풍의 건축이 조화를 이루며 거리를  위시하였다. 남대문시장 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을지로 롯데호텔에 갔다.서양 궁전을 모방한 벽체와 천장의 금장식과 함께 온갖 종류들의 쌍드리에로 유럽 박물관에 온 기분 같았다.엘리베이터를 장식한 무늬부터 문의 문양까지 장인의 손이 깃들여 있었다. 호텔 1층 복도로 김창열 물방울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캔버스에 담김 문자가 텍스트화되었고 채도가 높은 색채와 형태가 다채로워진 작품들이였다.천자문의 대자연의 순리와 인간 삶의 이치를 담아내고  한자 위에 영롱한 물방울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문명은 결국 생명의 근원인 자연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는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한 것을 의미하였다.서양 궁전을 모방한 벽체와 천장의 금장식과 함께 온갖 종류들의 쌍드리에로 유럽 박물관에 온 기분 같았다.단색화의 선구자 하종현, 놀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이영미 작품,벽화 부조,금으로 새긴 백자, 레스토랑의  중국 예술품과 서양화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장식되었다. 레스토랑을 지나 호텔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숙박시설의 역사,세계 호텔의 발전사,근대호텔의 태동,근대호텔의 발전,현대호텔의 발전사 주제로 전시되어 매우 흥미로웠다.서양은 간이숙소의 시대부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근대호텔이 출현되고 19세기 사교장으로 등장한 호화호텔시대를 맞이하고  20세기 대중의 숙박시설  상용호텔시대로 발전했다.우리나라 숙박 시설에 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볼 수 있는데 신라 소지왕 9년(487년)에 관영인 우역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역은 국가 문서의 송달과  관물의 운송,출장 관리들의 숙박  편의를 위하여 설치된 기관이다. 역관은 주로 지방을 순찰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 당나라와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당나라 내에 신라인이 머물수 있도록 신라방을 설치하였다. 또한 당나라 장인으로 가는 길목에 신라관이나 신라원을 두어 숙식을 제공하였다.이러한 숙박 시설 중에는 징보고가 적신촌에 설치한 신라 승원도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참역제가 발달함에 따라 역마가 세워졌다.그곳에는 역장,역리 등의 관리가 있어 공문서의 전달,공물의 수송, 그리고 공무로 왕래하는 관리들에게 교통 및 숙박의 편의를 제공하였다.고려 말에는 중국 송나라와 경제 교류를 하면서 두 나라에 숙박 시설을  만들어 사신과 상인을 위해 숙식을 재공하였다. 조선시대는 지방 관아에 새로운 숙박시설인 관을 설치하여 공무 여행지나 고관의 숙소로 사용했다. 일반 여행자가 묵을 수 있는 하급 숙박 시설로는 원이 있었지만 점차 폐지되고 점(주막)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는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서구 열강들이 앞 다투어 들어와 근대적 숙박 시설인 여관과 호텔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호텔은 인천의 대불호텔(1866~1918)이다.박물관에 전시된 금 거북선과  흰색 도자기에 금색무늬로 테두리한 명품 그릇세트가  매우 정교했다. 롯데호텔에서 나와 을지로역 지하에 갔다. 호두 붐집에서 저당 팥앙금호두과자를 사 먹었다.  달지 않는 팥소와 함께 살살 녹는듯한 바싹한 식감으로 너무 맛있었다. 

명동성당부근
루이비통 명동 신세계 더 리저브
명동 신세계 루이비통관 복도
1
신세계백화점 크리스티안 디올관 더 헤리 테이지
한국은행사거리
롯데호텔앞
롯데호텔
롯데호텔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