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주시 영릉,황학산수목원,강천섬 (2025년3월26일)

백재은 2025. 3. 27. 11:26

영릉
황학산수목원

 

3월26일~둘도모밴드모임에서 중수대장님 리딩으로 여주시로 여행을 갔다. 우리함께 걸어요 밴드모임에서  봤던 유채현님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유채현님과 담소를 나누면서 유인선님,김수연님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이들수록 골절과 무릎을 생각하여 여행을 절제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한글을 모형화한 조각정원을 중심으로 "ㄱ억자형" 이룬 세종대왕역사문화관으로 대가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 같았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제1실은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재위32년 동안 정치,경제,사회등에서 눈부신 업적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백성들을 위해 한글창제의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애민정신을 지닌 성군이였다.

(1)세종대왕 업적~ 훈민정음 창제하여 쉬운 문자로 백성과 소통하였다.인쇄술 발전과 함께 역사서 발간,집현전 설치,도서 발간 보급으로 교육으로 인재를 기르고 나라를 이롭게 하였다.아악정비,향악창작,악보 창안,악기제작으로 백성과 더불어 우리의 음악을 즐겼다.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여민락을 작곡하였다. 향악집성방,의방유취 간행,기아 고아보호시설 확립,노비출산 휴가제도시행,의녀제도 확립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로하였다. 대마도 정벌,4군6진 개척,신무기개발,사민정책,토관제도 시행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여 백성을 평안하게 하였다. 최초로 모내기 시행, 조선식 농업 기술서 농사직설 간행과 보급,도량형제도 확립,경작지 개간 사업 시행하여 농업을 일으켜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하였다. 천문 과학 기구인 앙부일구,측우기,혼천의,간의 등 제작하여 하늘을 열어 백성에게 전하였다. 과학적 업적의 바탕으로 백성을 편안히 하고자 하는 세종의 애민정신이 담겨 있다.이 당시 조선의 과학 기술이 세계적 최고 수준을 증명하고 있다.  

(2)집현전~세종때 학자양성과 학문연구를 위한 기관인 집현전은 최고의  인재집단으로 역사,지리,의례,농사,문화,역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편찬하였다. 학문연구의 산실 집현전은 1456년 페쇄되고 1776년 정조대왕이 설립한 규장각은 인재등용과 개혁정치 핵심으로 부활하였다.   

 

김학수의 즉위도, 박노수의 육진 개척도,권영우의 측우기도,정완섭의 주자소도,이종상의 서운관도,이유태의 지음도,서세옥의 대마도 정벌도,장운상의 왕자시절 독서도 그림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그린 채색화풍 한국화 걸작 이였다. 조선후기 홍 대리석으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와  1901년 상아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가 매우 고귀하게 빛났다.홍대리석과 상아로 만든 해시계로 조각기술이 매우 놀라웠다.

 

제2실은 북벌의 기상 효종대왕

 효종은  1649년 왕위에 올라 10년간 재위하면서 군제를 개편하고 군사 훈련 강화에 힘썼으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계획을 세웠다. 대동법을 확대하고 화폐를 보급함으로써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켰다.현재 동구릉 내 원릉에 조성되었다가 능 안에 빗물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효종의 북벌~독대설화에서 효종은 정예화된 포병 10만명을 길러 10년을 기한으로 추진하고자 하였다. 

(2)효종의 웅숭한 대우~산림을 등용하고 원로를 대하는데 지극한 정성을 보였다. 서인 산림의 영수 김집을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였다.척화파의 수장 김상헌을 예우하였다.이 둘은 효종 사후 종묘의 공신당에 배향되었다.송시열과 송준길에 대한 신임도 두터웠다. 효종은  심곡서원,자운서원등 여러 사원에 사액을 내려 선유를 높이고 사림을 격려하였다. 왜란과 호란때 절의를 지킨 송상현, 이순신 등 충신 열사와 절의를 지킨 선비에게 추증하고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게 하였으며 그들의 자손을 등용하였다. 

(3)효종의 효제와 자애~계모인 장렬대비에게도 성심 성의를 다하였다. 소현세자의 자녀들 모두 복작하여 잘 돌보왔다. 인평대군 어린 딸을 궁궐에 데려다가 양육하면서 공주와 똑같이  보살폈다. 

(4)효종의 애민~효종때는 자연재해와 천재지변이 극심했다. 왕실의 잔치나 행사를 대폭 줄이고 사치를 억제하였다. 흉년에 세금을 면제하고  곡식을 베풀고 부역도 크게 줄였다.신속이 농사를 편찬하였는데 인쇄하여 널리 유포하게 하였다. 청나라에서 본 수차를 장인을 불러 만들게 하고 지방에도 만들어 보내게 하였다.효종2년때  충청도,효종 9년때  전라도의 해읍으로 대동법을 확대하였다.전염병이 유행했을때는 내약을 가지고 가서 구제하게 하였으며  백성들이 구하기 쉬운 약재로 치료할수 있는 전염병에 대한 의서를  편찬하게 하였다. 농사와 밀접한 천문에도 관심이 많아 선기옥형을 제작하게 하였고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을 처음 사용하였다. 

 

효종에 대한 애민정신과 성품,업적등을 알수 있었던 매우 뜻깊은 시간이였다.

영릉

여주 영릉과 영릉은 조선 4대 왕 세종(1397~1450)과 소현왕후(1395~1446)능이고  조선17대 왕 효종(1619~1659)과 인선왕후(1618~1674)의 능이다. 현재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지만 풍수지리상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146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은 현재 동구릉 내 원릉에 조성되었다가 능 안에 빗물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지나 세종대왕 동상을 중심으로 세종때 발명한 과학기구들과 함께 조선시대 과학기구들이 복원되었다.풍기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잴때 쓰는 바람 깃발을 세워 놓던 받침대이다.18세기 만든 창경궁 풍기대를 복원하여 전시되었다.수표는 세종 23년(1441년~1442년)에 걸쳐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해 하천의 물높이를 재던 기기이다. 측우기는 세종 23년(1441년)에 비의 양을 재고자 만든 기기이다. 쇠로 된 원통형 측우기로 비의 양을 정확히 잴수 있게 했다. 지금가지 남아있는 측우기 중 가장 오래된 금영측우기를 본떠 복원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4년(1395년)에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의 좌표에 따라 별 1467개의 위치를 커다란 원 안에 표시하여  만든 천문도 별과 별자리 그림이다. 윗 부분은 해와 달의 운행 기록과 별자리 그림 ,아랫부분은 우주관,제작배경,과정,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때가 적혀 있다. 일구대는 세종 때에 만들어진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올려놓는 받침대이다.세종대왕은 서울의 혜정교와 종묘 앞에 일구대를 만들고 앙부일구를 설치했다.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년)에 처음 만들어져 조선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이다.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시계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자격루는 세종 16년(1434년)에 만든 물시계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사용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였다. 천평일구는 세종 19년(1437년)에 만든 휴대용 해시계이다. 정남일구는 세종 19년(1437년)에 만들어졌으며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려주는 해시계이다. 현주일구는 세종 19년(1437년)에 만든 휴대용 해시계이다. 소간의는 세종14년(1432년)에 만들어진 간의를 옮길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개량한 천문 관측 기기이다. 소간의는 해,달,행성과 별의 위치,고도와 방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우리 선조들의 독창적인 기구이다.간의는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세종 14년(1432년)에 만든 천문관측 기기이다.혼천의는 세종 15년(1433년)에 만든 해와 달,별과 오행성(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채 관측 기기이다.현종 10년(1669년)에 송이영이 만든 혼천의 및  혼천시계 중 혼천 부분을 복원하였다.다.혼상은 하늘의 별자리를 둥근 공 모양 위에 표시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세종 19년 (1437년)에 만든 천문 관측 기기이다.세종 때 만든 혼상은 현재 남아있지 않아 문헌자료 바탕으로 복원하였다.규표는 세종 19년(1437년)에 만든 것으로 해의 그림자를 제어 24절기를 알 수 있게 만든 천문 관측 기기이다.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짧은 날이 하지이다. 관천대는 천문관측기기를 올려놓던 곳이다.조선 초기 세종대왕은 경복궁 안에 천문관측기기를 설치하여 관리들에게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도록 했다.창경궁 관천대를 본떠 복원하였다. 적도의는 조선 후기 천문 관측 기구로 해와 달,별의 움직임을 쉽고 편리하게 관측할 수 있도록 연구하며 만든 기기이다.현재 남아 있는 유물이 없어 남병길의 저서 성경에 남아 있는 기림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매우 섬세한 조각의 과학적인 기구로 세계적인 과학기구 같았다. 숲이 매우 우거져  6.25전쟁도 피해갔다는 영릉으로 매우 넓은 면적을 자랑하였다.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재실은 발굴조사 결과와 조선후기의 문헌인  "춘관통고"와 "영릉보토소등록"의 기록을 근거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다른 왕릉의 재실보다  제사를 지내기 편리한 넓은 면적을 지니고 있었다.복원한 재실로 역사적인 그림자와 여운이 사라진것 같았다.재실을 지나 작은책방이 있었다. 책방은 조선시대 책을 찍어내는 일을 맡아 보던 곳으로 세종 때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하여 두었던 특별관청인 정음청에도 임시로 두었다. 삼문으로 이루어진 일자형 책방을 재현한 곳으로 조선시대 도서관에 온 기분 같았다.낮은 언덕에 위치한 세종대왕과 소현왕후 영릉으로  다른 왕릉보다 좀 초라해 보였다.언덕자락으로 세종대왕의 릉을 가까이 다가가  볼수 있었다. 삼국시대 높은 품계를 위시하는 릉과는 다른  대왕의 검소함과 자애가 느껴졌다.영릉에서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으로 가는 길로 굽이치는 언덕길이 펼쳐졌다.  따쓰한 햇살과 함께 굽이치는 언덕길로 하천이 흐르고 수령이 수백년 된 소나무숲길을 이룬 천혜의 명당이였다.효종의 릉은 동원 상하릉의 형태로  금실좋은 부부의 릉 같았다.조선시대 왕중 첩이 없었던 모법적인 자애로운 왕의 모습으로 비추었다.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금천교가 홍살문 안에 배치된 특이한 릉이였다.영릉에서 재실로 가는 숲길이 오르막과 내리막길로 이어지며 펼쳐졌다.재실  중앙으로  보호수가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효종의 애민정신과 북벌의 상징하듯 나무가지가 웅장하게 뻗어 매우 매혹적이였다.천연기념물인 회양목으로 잎이 두껍고 타원형이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6~7월에 갈색으로 열리는 사철 푸른나무였다. 영릉 재실에서 300여 년 동안  자라온 나무로 유래와 역사가 깊은 나무였다.회양목이 하늘 높이 우뚝솟은 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재실을 지키듯  효종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황학산 자락에  위치한 황학산수목원으로 시골정취 같았다.잔디에서 간식시간을 가졌다.예사랑 부부의  당근과 방울토마토,명숙님의 샤인머스켓,오이, 오렌지,김진희님의 쌀과자와 딸기,잠수함대장님의 군밤,회원님의  대추견과로  너무 맛있게 먹었다. 매우 풍성한 간식거리로 저절로 힐링되었다.간식을 먹고 대장님 인솔하에 회원님들이 황학산수목원을 산책하는 동안 산림박물관과 난대식물원에 갔다.산림박물관은 아이들이 쉽게 숲에 대해 알수 있도록 정리되었다. 고생대부터 신생대의 화석,식물의 기원,산림 생태계,씨앗,꽃을 피우는 힘겨운 여정, 숲의 주인으로 성장,숲을 지켜라,숲이 전하는 메세지,숲의 사계, 숲을 지키기 위한 실천으로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을 제시하고 있었다. 숲은 산사태로 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고 있었다. 나무뿌리는 숲 토양에서 말뚝효과와 그물효과라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 말뚝효과는 굵은 뿌리를 말툭처럼 땅속에 박아 산사태를 줄이고 그물효과는 가는 뿌리들이 서로 얽혀 그물망을  형성하여 흙이 쉽게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였다.식물화석으로 고생대는 고사리류가 번성,중생대는 침엽수가 번성,신생대는 활엽수가 번성하였던 사실을 볼수 있었다.여러가지 나비의 종류와 압각화 전시로 매우 신비로웠다. 특히 꽃을 말린 압화로 매우 매혹적이였다.압화의 아름다움을 난생 처음으로 느낀 시간이였다.기획전시실에 사진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꽃사진 작품들로 힐링되었다.둥그런 양식과 유려한 통유리창 양식의 난대 식물원으로 매우 산뜻했다.매우 탐스럽게 피어난 붉은 동백 ,연분홍동백,흰동백과 고상한 자태의 삼지닥나무의 봄꽃 마중으로 싱그러웠다. 난대식물원을 지나 미선나무가 매우 향긋한 향기를 발하며 힐링되었다.남한강변이 바라보는 강천섬으로 갈대,메타세콰이어,단풍나무가로수를 이루어 가을에 휴식하기 좋은 섬이였다.입구 그네에 앉아 휴식하였다.강춘희와 이해경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하며 시간을 보냈다.점심먹으러 가는 차창가로  흰벽체와 함께 반원형 창문양식의 카페로 매우 인상적으로 비추었다.남한강이 내다 보이는 여주 쌀밥집에서 여주쌀밥정식을 먹었다. 매우 찰진 압력솥밥과 함께  누룽지로 고소했다.된장찌게,제육볶음,돼지수육과 김치,코다리조림,잡채,메밀전,김치,묵,무우 볶음,나물볶음, 젖갈무침,고사리볶음,멸치볶음,감자조림,무우생채무침,미역줄기볶음,얼갈이무침,김부각의  18첩 반상이 나왔다. 임금님 수라상과 같은 밥상으로  눈으로 만 봐도 힐링되었다.매우 진한 집된장으로 매우 구수했다.돼지수육과 먹는 김치와 김치가 서로 맛이 달랐다.돼지수육과 함께 먹는 김치는 정겨운 김치맛과 달리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 감도는 맛이였다. 서로 다른 젖갈맛이 관건인것 같았다.비법 양념으로 조린 코다리조림으로 매우 감칠맛 있었다.간장과 조청이 맛이 관건인것 같았다.잘 조려진 무우와 코다리로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을  자극했다.잡채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급진 풍미의 잡채처럼 고소했다.입안에서 매우 부드럽게 감기는 메밀전으로 힐링되는 맛이였다.무우볶음,나물볶음,고사리볶음,얼갈이무침으로 기름의 고소한 맛과 나물향기가 조화를 이루어 매우 감칠맛 있었다.묵,젖갈무침,멸치볶음,감자조림,김부각,미역줄기볶음,무우생채무침으로 정겨운 맛을 담고 있었다.차창가로 해가 한강을  물들이며 아름다웠다. 줄지은 고층빌딩이 한강으로 반사되며 안식의 종이 울려 퍼졌다.

영릉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세종대왕릉
영릉~효종재실
황학산수목원~산림박물관
동백나무
백동백
난대식물원~삼지닥나무
여주쌀밥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