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4일~우리함께 밴드모임에서 공주로 여행을 갔다.차창가로 밤나무 꽃 물결을 이룬 산봉우리들로 매우 아름다웠다.공주시에 이르니 금강이 흐르는 광활한 평야로 구석기시대부터 조상들의 삶과 문화,지혜가 축척된 생명의 젓줄 같았다.강을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된 도시로 금강의 아름다움에 처음으로 매료된 순간이였다.공주시구천 주변에 3.1 돋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피로 얼룩진 애국충절의 넋을 위로하는 추상적인 작품으로 인상적인 조각작품이였다.유구천 주변으로 유국색동수국정원을 이루며 수국축제로 매우 활기찼다.황량한 시골 하천에 수국을 심어 지방도시를 활성화 시킨 발상이 매우 놀라웠다.유구천을 중심으로 하천 수국길 사이 작은 연못길을 이루고 제방위로 수국들이 물결치며 정겨운 시골 농원에 온 기분 같았다.두루미가 안식하는 유구천을 바라보며 시들이 전시되었다.서재원의 "첫사랑 베틀 아가씨"는 타향에서 직물공장 일 하는 배틀 아가씨에 대한 첫사랑을 추억 한 시로 베틀 아가씨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애달픈 삶을 보여주는 정겨운 시였다. 양희철의 "첫눈"은 첫눈에 반한 남녀 모습을 아주 짤막하게 표현한 시였다. 누구나 쉽게 다가오는 집약적인 표현기법으로 감동적이였다.나태주의 "먼길"은 먼길도 함께 동행하며 힘이되고 의지가 된다는 삶의 이야기였다.집약적인 감정이 응축된 간단한 내용의 시였다.동반자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가슴에 와 닿았다.김혜식의 "민들레꽃"은 꽃씨 하나로 번식하는 자연의 창조질서에 대한 신비로움을 감탄조로 표현하였다.이성찬의 "물집"은 물집을 보며 갑자기 외로움에 빠져드는 상흔으로 나이든 자기 모습에 자아 상실감을 빠진 자신을 위로하며 용기를 갖는 시였다.이정희의 "창문에 날개 달다"는 창문에 비추는 사계절 자연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시였다. 창문은 우주의 품을 만큼 넓은 창이라는 명언을 지닌 매우 감동적인 시였다.이종범의 "6월"은 6월 유구천에 핀 윤슬 빛이 된 수국을 보며 웃음꽃 피우자는 시였다.장운자의 "준비없는 이별"은 당신과 사별했던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시로 가슴막힌 극도의 슬픈 감정을 담고 있었다.이부용의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를 끝없는 사랑의 손짓으로 비유한 시였다.코스모스가 행복의 무늬와 웃음꽃이라는 작가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박근수의 "삼천배"는 삼천배 올려 얻은 산나물을 어머니 제사상에 올린다는 시였다. 산나물을 캐는 모습을 삼천배에 비유하는 시상이 매우 놀라웠다.김병촌의 "부부"는 짝을 맞추는 젓가락을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모습으로 비유하였다.젓가락 논리를 부부의 모습으로 비유한 시상이 놀라웠다.수국정원에서 옥수수를 시식하였는데 입안에서 매우 부드럽게 씹힌 매우 찰진 옥수수로 맛있었다.행사장 입구 안내소에서 여행에 필요한 부채와 마스크,물티슈를 선물로 주어 감사했다.공주시 온누리 시민 가입하니 쌀10kg을 선물로 주었다. 집에서 밥을 해서 먹어 보니 입안에서 매우 부드럽게 씹히는 매우 찰진 쌀로 명품 쌀이였다. 유국색동수국정원을 지나니 국내에서 자카드를 생산하던 대표 섬유도시로 수십개 직물공장이 자리한 유구읍 벽화거리가 펼쳐졌다.1950년대 공장 판자집 흰벽체에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매우 섬세한 사실주의 표현으로 매우 감동적이였다.여인의 주름진 얼굴로 베틀짜는 할머니의 벽화와 안방에서 벼를 엮는 아저씨 벽화로 공주의 섬유산업 마을의 긍지를 드높이고 있었다.실향민이 되어 우리 근대산업에 이바지 했던 베틀 소리가 들리는 유구한 역사마을인 공주시 미래유산 길이였다.유구읍 중앙2길 109로 황금직물마을은 공주 근대산업 핵심이라 할수 있는 곳이다.섬유산업은 광복 이 후 6.25를 겪으면서 이북에서 피난 온 직물업 종사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1953년 황금직물이 설립되어 1960년대 이후 유구에서 생산된 인조견은 전국 생산량의 70프로를 웃돌 정도로 번창하였다. 1990년대 중국과의 수교 이후 값싼 중국산 직물의 대량수입과 IMF사태가 겹치면서 섬유산업은 쇠락하였다.2003년 이후 유구공주 섬유산업의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근대도시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산업의 생성과 쇠퇴 재도약의 전 과정을 실증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집물협회와 유구자카드센터 설립을 계기로 고급화와 다양한 전략으로 혁신을 꾀하고 있다. 공주의 섬유산업 볼수 있는 현장이였다.유구읍 황금직물마을에 유구섬유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유구섬유역사관에서는 섬유산업과 함께 걸어온 유구의 역사적 탄생과 섬유산업의 메카로 성장했던 유구의 80년을 조명하고 있었다.
유구섬유역사관
(1)1940년대~ 8.15해방과 6.25 겪으면서 유구가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정감록의 십승지지 영향으로 이북의 함경도,평안도,황해도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후 이북에서 직물업을 했던 사람이 수족기를 직접 제작하여 직조를 한 것이 유구직물의 시발점이다. 직조업은 인조견 생산부터 시작되었다.
(2)1950년대 제1기는 족닥기 (수직기) 의 제작과 공장 설립기시기~1기는 수직기의 도입으로 소규모였다.그러던 것이 1950년대 초반 베틀을 개량한 수직기로 천을 짜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가족들의 가내수공업에서 공장으로 격식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3)1960~70년대 제2기 동력북직기 직조시기~ 유구직조의 2차 변화는 1950년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현대화된 직조기계의 도입시기이다. 실을 보급하여 기계에 설치하면 기계가 짜는 것을 살펴보는 형태이다. 가내 수공업 수준위 직조산업을 공업화로 변모시켰다. 직조관련 상업도 변하여 1977년경부터 나일론을 짜기 시작하여 시장성이 좋아 급속도로 파급되었다.
(4)1980~90년대 제3기 무북직기의 도입과 섬유산업의 불황 ~3기는 무북직기 도입이다. 무북지기와 동력북직기의 가장 큰 차이는 북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만 여성 인력의 감축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부터 중국의 값싼 직물류가 대량 수입되어 경기 떨어지고 결정적 타격은 1997년 국제구제금융의 한파가 불어왔다.
(5)2000년대 제4기 현대 직조기 도입 직물조합설립 및 자카드 센터 출범의 부흥기 ~정부지원으로 2006년 본격적으로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고 기업이 대형화되는 변화를 시작하여 미국 동남아등지에 커텐,쇼파,벽지,시트커버,헤드타이등을 수출하였다. 내수시장에는 와셔츠,시트커버,테이블시트,넥타이,퍼플러,양말, 방석등 수익을 창출하였다.국내 여성 고급 한복지 최대생산지(전국80프로 차지)와 국내 유일의 원조 색동옷감 생산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공주 유구읍에서 생산된 직물인 인조견은 전국에서 제일 좋은 인조견이라고 한다.유구는 자카드 직물 집적지역이다.직물산업의 꽃을 피운 자카드 직물이란 프랑스 조셉 마리 자카드에 의해 직물이나 카펫을 직조할 때 복잡한 무늬가 입체적으로 나도록 펀치카드가 있는 자카드 직기로 제작된 일종의 문양직물이다.직물은 경사와 위사가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여 만들어지며 교차시키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직물조직을 형성한다. 경사와 위사가 서로 교차되는 점을 조직점이라 하며 조직점이 많을수록 단단한 제직이 된다. 자카드 직물은 원사의 종류,무늬의 배치,바탕조직의 종,무늬용 씨실의 사용방식 등에 따라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즉 유구는 해방후 1950년도부터 피난민들의 가내수공업 으로 시작하여 초창기 주로 한복 직물을 제작하였고 이후 인테리어 직물을 제작하여 50프로 이상 수출하고 있으며 유구는 자카드 직물 집적지역이다.
유구전통시장에서 휴식을 가진 후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차창가 광활하게 펼쳐진 금강으로 생명의 강으로 비추었다. 최고의 짬뽕 맛집인 동해원에서 짭뽕밥을 먹었다. 시원한 해물향기가 진한 매우 담백한 맛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 돋구는 맛이였다.또 생각나게 하는 질리지 않는 맛을 창출한 짬뽕 맛이였다. 달고 시지 않은 탕수육으로 매우 부드러운 식감을 담고 있었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마곡사에 갔다.마곡사는 서기 640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이중환 택리지에 임진왜란등 전란을 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쟁당시 병화를 입지 않은 마곡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되었다. 주변 약5Km 구간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자연상태로 이루어져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십승지로 꼽힐만큼 절경을 자랑한다.마곡사는 태화산 산골짜기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마곡천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있어 마치 두개의 사찰이 자리한듯 보인다. 마곡사 가는 길 부터 울창한 숲길과 함께 드넓은 계곡이 펼쳐지는 천혜의 여름 피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속세를 벗어나를 담고 있는 마곡사 대문인 해탈문이 목재벽체로 정겨웠다. 천왕문은 마곡사 두번째 대문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 사천왕상이 안치되었다.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활하는 신적 존재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였다. 해탈문과 천왕문 지나 계곡의 극락교 중심으로 가람이 배치 되었다.극락교를 지나 마곡사 북원은 대광보전과 오층 석탑이 있는 교화의 공간이였다. 대광보전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정조(9년)1785년 다시 지었다.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 무늬가 조각되고 유구한 역사를 담은 고풍스러운 목재양식이 안팎으로 구성되었다. 장식이 풍부한 건축 수법의 독특한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었다. 기와담장으로 목재벽체가 비추며 매우 정겨웠다.마곡사 입구에서 둥글레차를 시식하였는데 매우 고소함으로 더위에 지친 피로를 달래 주었다.마곡사에서 공산성으로 향했다.차창가로 마곡사부근 마을의 밤나무 산지로 청량감이 넘쳤다. 드넓은 평야와 금강으로 강을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된 공주도시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기적의 물줄기처럼 금강이 매우 아름답게 비추었다. 하천의 목재 정자가 있는 길을 지나 무령왕릉 벽체를 본뜬 아치형 장식의 거리로 금상의 무왕 동상이 늠름한 백제기상으로 비추었다.고구려를 여러번 깨뜨려 다시 강국이 된 늠름한 외침 같았다.공산성은 웅진도읍사적 제12호로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11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새로 성벽 전체 길이는 2660m 에 이른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 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폭곡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는데 백제시대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쌓은 석성이 함께 있었으나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는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현재는 동쪽의 735m 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석성이다.백제 무왕(31년) 사비 부여의 궁궐을 수리할때 5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660년 백제멸망기에 의자왕이 일시적으로 머물렀다. 이후 웅진도독부,통일신라시대 웅천주의 치소가 있었으며 조선후기 충청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고 이괄의 난 1624년때에는 인조가 이 성으로 피난하였다.웅진백제시기(475년~538년)대표하는 왕성으로 공주를 방어하기 위한 왕성이다.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문주왕(원년) 475년에 한성(한강유역)에서 웅진 공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공산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동상왕,무령왕을 거쳐 성왕(16년)538년에 사비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5대 64년간 왕도를 지켰다. 64년간 백제의 왕성이다. 산성은 백제시대 웅진성, 고려시대 공주산성,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다.현재 성내에는 추정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임류각지,연지와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조선시대 유적인 쌍수정,영은사,쌍수정사적비,만하루,명국삼장비 등 많은 유적이 남아있다. 2011년 백제의 옻칠가죽찰갑옷 등 철제 무기류등 출토되어 갑옷에 645년 글씨가 남아있어 갑옷의 제작 및 사용시기를 구체적으로 알수 있게 되었다. 공산성 입구는 세계 유산 유네스코 백제역사유적지구 푯말로 백제역사의 찬란한 깃발로 외치고 있었다. 금서루로 가기 전 비석군 47기가 진열되었다. 목사 김효성비 와 제민천교 영세비등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들이였다. 늠름한 기상이 울려 퍼지는 금서루와 함께 성벽으로 매우 고즈녁 했다. 서쪽에 위치한 문루의 중층으로 정면3칸과 측면1칸을 이루고 있는 금서문은 조선시대 성문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이였다.금서루 아래 두갈래 길이 펼쳐졌다.처음 가 본 성으로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는 중 황지연님이 같이 가자고 해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황지연님이 여러갈래의 길 중 성벽아래 숲길을 안내해 주어 걸었다. 숲길사이로 드넓은 잔디와 언덕이 비추었다. 신천지 같은 환상적으로 압도되었다.성벽길과 성벽아래 숲길, 숲길아래 드넓은 평지의 공산성이 모두 찬란한 역사의 숨결로 빛났다.가로수 숲길사이로 드넓은 언덕과 함께 금강이 비추며 너무 아름다웠다.백제왕성 창고유적 푯말이 붙어 있었다.백제 중앙의 왕실에 부속된 창고로 판단되는 것으로 웅진 도읍기 백제 왕실 창고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동성왕(21년)여름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신하들이 창고를 털어 백성을 구제할 것을 청한 기록이 있다. 원형의 구멍이 형태를 이루고 크기는 다양하다. 창고의 단면은 복주머니 형태로 조세와 공물을 거두어들인 곡물과 왕실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보관하였을 것이다. 창고를 만들기 위해 구릉을 계단식으로 평탄하게 만들었으며 주변에는 울타리를 세워서 구분하였다. 유적의 위와 아래쪽에 관리사를 추정되는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추정 왕궁지와 공북루 남쪽의 왕궁 관련 유적에서 잘 조망되는 곳에 위치한다고 적혀 있었다. 숲길을 가다 석교다리로 평화로운 백제의 숨결 같았다.이윽고 산 언덕을 올라 가니 산에 둘러싸인 금강의 경치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매우 환상적이였다. 강을 통해 물자를 교역하고 적의 침입을 방어한 경제,문화,정치,군사의 요충지로 역사에 길이 빛나는 기적의 생명 젖줄로 빛났다. 바로 이곳부터 굽이치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성곽길이 펼쳐지며 운치가 있었다. 금강을 바라 보는 만한루와 연지가 성곽길 아래로 매우 웅장하고 찬란하게 비추었다.연지는 삼족토기와 그릇받침 기와등 백제왕실의 생활문화 알수 있는 문화재가 발굴됬던 곳이였다. 영은사 아래의 연지는 연못으로 돌로 정연하게 이루며 삼국시대 정감을 자아냈다. 단의 형태로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것이 특징이고 깊이는 약 9m인 연못이였다.연지연못과 금강 사이에 만하루라는 정자로 연지와 함께 매우 조화를 이루며 매우 신비롭게 빛났다. 공주 잠종냉장고 푯말이 붙어 있었다. 공주 잠종냉장고는 충청남도에 있는 잠업 농가에 누에 씨를 보급하기 위해 만든 지하 저장 시설이다. 공산성 내의 잠종 냉장고가 있는 지역을 빙고재라고 하는데 공산지에는 공산성 안에 빙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조선시대 빙고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었다.빙고터를 지나 성곽길로 내려가니 만하루와 연지가 기적의 젓줄인 금강과 함께 매우 환상적으로 비추었다.만하루에서 드넓은 금강 건물터가 들어오며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되었다.만한루와 연지를 바라보며 도지정유형문화유산인 영은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영은사는 세조(4년)1458년에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때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하였고 광해군8년 1616년 승장을 두어 전국 사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영은사에서 약수물을 마시며 갈증을 달래었다.드넓은 평지로 건물지 유적지가 펼쳐졌다.백제 왕궁 관련 건물지는 백제시대 왕궁과 관련이 있는 건물 터이다.가장 넓은 곳으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을이 있어서 성안마을로 불렀다. 건물은 도로와 배수로로 구역을 나누었으며 기와를 올린 벽주건물(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채운 벽이 지붕의 무게를 지탱힐수 있도록 만든 건물)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터 외에도 물을 저장하던 저수시설과 각종 공예품을 만들던 공방지,도로,배수 등이 매우 계획적으로 조성되어 있고 다수의 기와,토기,모기,문서행정을 살필수 있는 벼루가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정관19년( 태종의 정관 19년 즉 645년)이라는 붉은 글자가 찍힌 옻칠갑옷을 비롯해 철제갑옷,말갑옷,철제화살촉,큰칼등 무기류가 출토되었던 곳이였다.왕궁중심 건물지는 동향사면의 자연구릉을 4단으로 구획하여 축대를 쌓고 건물을 배치하였다. 중심건물지는 가장 입지가 좋은 동향의 대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당지를 중심으로 규모가 큰 건물이 배치되어 외부와 경계를 이루는 등 다른 건물지에 비하여 위계가 높은 왕궁관련 건물지가 자리했던 곳으로 판단된다. 백제시대 건물지 가운데 중앙에 조정과 같은 마당지가 자리 하는 것이 매우 특징적인 곳이였다.마을이 있었던 건물지를 지나 금서루로 가는 길이 매우 운치가 있었다.즉 공산성은 금강변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아 천혜의 요새와 같았다. 비달결처럼 금강이 감싸 흐르는 고풍스러운 성곽을 따라 1500년전 고대왕국 대백제 찬란했던 향취가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백제의 고대 성곽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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