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원시 신작로거리 근.현대 아름다운 건축들..(2020년12월8일)

백재은 2020. 12. 12. 09:03

1923년 일제 식민지 농업 수탈 역사를 간직한 종자와 종묘회사인 등록문화재 제698호 "수원 구 부국원"인 근대문화공간 전시관에 갔다. 부국원  중심으로 신작로 100년 영상과 신작로 근 현대 건축물 자료 전시를 관람했다. 개항이후 고종때 1896년 행궁옆에 "수원군 공립 소학교(현재 신풍초등학교)"가 개교하여 신교육이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지시대  1905년 "수원역" 개통으로 등록문화재 제780호인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던 시설인 시멘트로 만든 급수탑과 붉은 벽돌로 이룬 소형 급수탑이 설치되었고 일본 자본들이 흘러 들어 오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 식민지시대 농업경제 수탈의 표상인 1906년 통감부 권업 모범장(1962년이후 현재 농촌진흥청) 설치로  수원 농업 중심지를 만든 토대가 되었던 부국원과 조선중앙무진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식산은행,동산농사주식회사등이 들어 서면서 한국으로 이주했던 일본인들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일본 아이들을 위해 1906년 향교옆에 "수원 거류민소학교(현재 매산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일제에게 억압과  핍박을 받은 조선을 향해 외국 선교사들의 기독교 사랑과 교육을 위한  교회와 학교등이 세워졌다. 수원 최초 일본인이자 최초 해외 선교사인 노리마츠 목사가 1897년 설립한 "동신교회"와  1901년 미국 감리회 스크랜턴 선교사에 의해 수원 최초 개신교회 감리교인 "수원종로교회"가 설립되었다."수원종로교회"는 1902년 기독교 신앙과 교육을 통해 민권과 국권을 회복하려는 목적을 갖고 수원 최초 사립학교인 "삼일학교(현재 삼일중학교)"와 "삼일여학교(현재 매향중학교,매향정보고등학교)"와 1903년 "삼일남학교(현재 삼일공업고등학교)"를 세워 근대적인 기독교 교육에 앞장서며 3.1 독립운동과 애국계몽 운동을 이끌어 한국 최초 여류화가 나혜석,독립운동가 김세환,이하영,이선경을 배출했다.즉 종로교회와 삼일학교를 중심으로 수원소년단원과 독립운동단체들이 교류하며 수원면 산루리였던 팔달문 밖의 출신들의  김노적,박선태,이현경등..독립운동 영웅들을 이루었다.그리고 삼일학교(현재 삼일중학교) 교정안에 경기 기념물 제175호인 "아담스기념관"으로 미국 아담스교회 선교부가 설계하고 중국인 왕영덕이 공사하여 1923년 건립되었다. 그후 1904년"대한 성공회 수원교회"와 1928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인 "수원성결교회",1946년 수원 최초 장로교회인 "한국 기독교 장로회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팔달사(1934년?)"가 불교 중심을 이루었고 시민들의 문화의 장으로 수원 최초(1922년~1999년)"수원극장"(현재 한복집)이 설립되었다. 일본인 가토 미키오가 설계한 적벽돌 조직조 건물로 근대양식의 잔재가 남아있다.그후 일제로 부터 1945년8월15일 해방과 더불어 6.25사변을 겪은 후 신작로 주변에 여러 관공서들이 건축되었다. 1956년에 건립된 등록문화재 제598호인 "구 수원시청사,권선구청사"(1956년~2007년)로 현재는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문화관"으로 이용하고 있고 바로 옆은 일제시대 금융대부업을 위한 "조선중앙무진회사"로 1953년 수원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1956년~1958년까지 "수원시청"으로 이용하다가 1960년~1999년까지 "수원문화원"으로 사용했던 등록문화재 제597호인 "구 수원문화원"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팔달산 중턱에 1962년"수원시민회관"과 1967년 "경기도청"이 신축되었는데 문화 예술 공연등이 열리는 "수원시민회관"으로 외벽 양쪽에 있는 부조와 모자이크 작품은 김영중과 조성묵 작가의 공동작품으로 세련된 1층 현관에 짝을 이루는 부조가 있어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경기도청사 구관"은 등록문화재 제688호로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인 고 김희춘과 나상진이 공동 설계 작품으로  ㅁ자형 평면구조와 테라스,중앙에 정원을 둔 옥상측면에 돛단배 모양의 구조물 장식성을 더한 1960년 모더니즘 디자인 정수를 이룬 역사성과 상징성,지역성을 지닌 건물이다. 1967년부터 49년간 경기도 도지사가 머물렀던 등록문화재 제689호인 "굿모닝 하우스"로 2016년부터 시민 열린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나의 공간에서 바닥을 높게 꾸미는 구성인 스킵 플로어 타입의 공간 활용과 장식을 배제한 창과 문의 배치,테라스 활용등이 돋보이는 1960년대 간결하고 단순한 모더니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종교적인 건축은 1955년 목조구조로 된 둥근지붕과 적벽돌로 쌓아 꾸민 아치형 중국풍의 정문이 이채로운 화교사회 대표적 종교인 "수원중화기독교회"가 설립되었다. 이와같이 "신작로 거리"는 개항이후 고종때 1896년 "신풍초등학교" 신교육으로 출발하여 1905년 수원역 개통과 함께 일본 농업과 경제 식민지 착취 표상인 건물들이 들어서고 이에 맞써 조선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미국과 일본인의 선교사 헌신의 기독교 교육 산파로 교육기관과 기독교가 세워져 독립운동의 물줄기가 폭발했던 길이였다. 그후 8.15해방과 6.25사변을 지나 관공서와 문화의 장이 세워진 길로 등록문화재로써 근대건축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수원 중심의 선교지 햇불과 교육,관공서,문화장인 감동적인 옛 거리 향기로 가득한 역사길이였다. 신작로 100년 영상과 신작로 근현대 건출물 자료를 관람한 후 "구 부국원"을 나왔다. 그길 따라 1956년에 건립된 등록문화재 제598호인 "구 수원시청사(현재 수원시 가족여성회관)로 가니 빨간열매들이 송글송글 싱그럽고 탐스럽게 맺힌 나무들이 즐비한 정원 옆으로 일제시대 금융대부업을 위한 "조선중앙무진회사"였던 등록문화재 제597호인 "구 수원문화원"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상 2층 시멘트 기와의 모임지붕을 이루며 거의 정방형 형태의 적벽돌 양식이였다. 출입문을 흰색으로 감싸며 정면 중앙 현관 상부에 캐노피와 1층 정면 창호에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과 2층 창호 상.하면에 수평 돌림띠를 돌려 장식하여 우수한 건축기법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향교로 길 따라 계속 가니 팔달산 남쪽 기슭에 조선시대 정조때 "수원향교"로 그 옆은 1906년 시작된 "매산초등학교"가 팔달산 언덕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와지붕을 이룬 역사의 학교로 위풍당당하게 빛났다. 조선시대 양반교육 중심지에 일제시대 신교육이 등장했던 역사의 학교로 동시에 공존하는 이 길이 매우 귀중해 보였다. "매산초등학교"를 지나 도청5거리에서 등록문화재 제688호인 "경기도청구관"의 건축을 감상하기 위해 팔달산 자락에 위치한 "경기도청"으로 향했다. 높은 언덕의 주택가를 바라 보며 올라가니 "경기도청"으로 질서정연한 창문들과 옥상과 외관의 장식들이 21세기초 건축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옆은 소나무 향기로 가득한 팔달산을 바라 보며 잔디와 함께 짙은 하늘색으로 장식된 "제3별관"으로 깨끗하고 정직한 공직의 임무를 수행하는 공간 같았다. "경기도청"사를 바라 보며 팔달산 중턱에 녹음이 짙은 벚꽃나무와 정원들이 펼쳐진다. 가로수 사이로 주변 도심 경치를 바라 볼수 있도록 정자들이 조성 되었는데 장식이 새겨진 화강석 위에 나무기둥으로 익공과 함께 육각기와지붕을 이룬 정자와 나무기둥 사이와 사각기와 처마 아래 장식 문양으로 2층 기와 사각지붕을 이룬 정자가 중국풍 분위기를 자아냈다. 팔달산 가로수길을 따라 빨간열매들이 맺힌 단풍들을 바라 보며 교동 주택가로 갔다. 1928년에 세워진 "수원성결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하여 팔달산 중턱의 주택가에 위풍당당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즉 수원 신작로 거리의 근현대 건축의 역사와 자료를 알고 감상하며 건축양식들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매우 뜻 깊은 길이였다.

등록문화재 제698호 구 수원 부국원
등록문화재 제780호 급수탑
경기 기념물 제175호 아담스기념관
수원극장
등록문화재 제598호 구 수원시청사
등록문화재 제597호 구 수원문화원
등록문화재 제688호 경기도청 구관

 

경기도청 제3별관
등록문화재 제689호 굿모닝하우스
경기도청을 바라 보며 팔달산중턱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