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충남여고 재경 동창회 청와대(2024년5월25일)

백재은 2024. 6. 5. 10:39

 

청와대
청와대 춘추관 앞 카페

5월25일~충남여고 재경동창회 모임을 청와대에서 가졌다.경복궁역에서 내리니  버스 차창가로 인왕산이 비추며 수도 서울의 정기가 생명력으로 약동쳤다.청와대를 관람하기 전 점심을 들풀식당에서 향취 자연송이솥밥을 먹었다.견과류,송이버섯,야채 들어간 자연송이솥밥으로  버섯향기가 가득했다.저절로 힐링이 솟구쳤다.구수한 된장국,취나물 향기가 진한 취나물무침,고사리향이 진한 고사리볶음, 버섯향과 기름의 고소한 맛이 조화를 이룬 송이버섯볶음,추억의 맛의 오뎅복음으로 본연의 재료의 향기와 맛을 살린 반찬들로 일류 요리사의 내공이 담겨져 있었다. 당면과 야채가 들어간 갈비전골은 비법 간장소스로  입맛을 돋구었다.매우 정성들여 담은 달큰한 깍두기로 궁중요리 풍미를 지녔다.오이무침과 견과콩자반은 지금까지 먹었던 일반적인 맛과는 다른 맛을 지녀 매우 인상적이였다.다른 식당에서 맛보지 못하는 특별한 비법 소스로 버무린 오이무침과 간장맛이 색다른 콩자반 이였다.고소하고 부드러운 야채전,새우마늘쫑복음,고소한 들깨소스의 야채샐러드로고급스러운  한식의 풍미를 담은 일류 맛집이였다.종로구 자하문로인 들풀식당에서 청와대로 가는 마을길로 회색시멘트벽체로 덩쿨이 드리우고 무궁화동산으로 이어지며 정겨움을 담고 있었다.영빈문으로 가는 삼거리로 저! 멀리 인왕산이 비추고 평화를 염원하는 듯한 조각상이 도로 중앙에 버티며 자주통일과 자유의 외침같은 울림으로 가득찼다.경복궁 돌담길과 신무문을 마주보는 울창한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매우 낭만적이였다.즉 자하문로에서 청와대까지 산책하기 좋은 매우 아름다운 명소길이였다. 백악산 아래에 드리운 육상궁옆 영빈문으로 사각지붕과 함께  건물 중앙 한옥양식을 이룬 영빈관금색 용과 무궁화 장식의 위용으로 감싸고 있었다.1978년에 신축한 영빈관은 손님을 맞이한다 뜻을 가진 건물로 대규모 회의나 국빈 방문 시공식 행사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다.영빈관은 서양의 석조건축 양식에 전통건축 요소와 전통문양을 활용하여 한국적 분위기를 구현한 건물이였다.청와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정운영 중심 역할를 하였던 곳이다.대통령 집무실인 본관,국빈을 맞이하는 영빈관,대통령과 가족 관저,언론 취재 본부인 춘추관 등 여러 건물과 대정원,소정원 ,녹지원등 녹지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 있었던 자리로 과거시험,군사훈련,임금이 직접 농사짓는 친경등의 행사가 치러졌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관련시설이 철거되었다. 청와대는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장소일뿐 아니라 청와대 노거수 군 천연기념물,서울 백악산 일원, 서울 육상궁,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보물,침류각 및 오운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등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복합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였다.청와대 문을 마주보며 정면으로 대정원을 이룬 본관이 펼쳐졌다.1991년 지어진 본관은 노태우대통령부터 문재인대통령까지 7명 대통령이 집무와 외빈 접견 시에 사용한 곳이다. 전통건축양식의  팔작지붕에 청기와로 내부는 현대적인 건축양식을 이룬다. 본관 중앙부에는 2층 한옥양식의 본채를 두고 그 좌우에는 단층 한옥옥양식의 별체를 배치하였다. 본채 1층은 간담회나 소규모 만찬장으로 사용한 인왕실,영부인 공간인 집무실,무궁화실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접견실 및 회의 장소로 사용한 집현실이 있다.서쪽 별채에는 국무회의가 열렸던 세종실,동쪽의 별채는 임명장 수여식 등에 사용된 충무실이 있다.본관 내부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카페 퍼레이드로 위용으로 압도 되었다.전시실에서 "정상의 약속 자유의 약속 정상으로 모십니다." 표어로  청와대 개방 2주년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세계와 만난 대한민국의 이야기였다.

전시실)

지난 2년간 성사된 151차례 정상회담에서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앞당기는 기회를 만들었다.정상이 맞잡은 손은 냉철한 판단과 뜨거운 결단을 품은 우아한 교류이다.정상이 남긴 서명은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한 약속이며 그들이 주고 받은 물건은 그 약속에 대한 증표이다.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국가의 정상들이 만나서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때론 탐험이고 도전이며 과학이자 예술이다.세종실과 인왕실에서 만나는 정상의 활동은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총무실에서 경험하는 각 정상의 만남은 우리 모두가 자유의 주인공임을 밝히고 있었다. 

(1)동맹의 이름으로~1953년 10월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미동맹이 탄생했다. 이 선택의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

(2)수평선을 넘어~대한민국 외교의 지평은 글로벌사우스로도 뻗어 나갔다.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의 130여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이다.이들 국가는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변수를 떠오르고 있다.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은 인도- 태평양 전략의 연장선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추구한다.2023년5월  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열고 쿡제도 팔라우 투발루 등 18개 국가 정상 고위급 대표단을 서울로 초청해  미답의 영역을 개척했다. 2024년 2월 쿠바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6월에는 한 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와같은 연대확장은 우리의 시야와 세계관을 전방위로 팽창시킨다.기후변화,자연재해,식량위기,보건 위협,에너지,안보같은 인류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한민국은 수평선 너머로 전진하고 있다. 

(3)창조적 동반자~외교적 우호 관계 중에 전략적 동반자라는 말이 있다.전략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관계의 깊이는 한층 짙어진다.단순한 경제교류를 넘어 국제무대 공조를 포함한 포괄적인 협력에 나설 만큼 상대를 신뢰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련과 위기 앞에서 우리는 상대의 민낯을 마주 한다.파도를 함께 맞으며 우정은 무르익고 파트너 십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지난 2년간 대한민국은 영국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캐나다,베트남,카타르와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게로 외교관게를 발전 시켰다.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고 처칠은 말했다.국제사회의 자유,평화,번영에 책임있게 기여하기 위해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사명은 전략적 동반자와 함께 할 때 비로소 달성할  수 있다.

(4)신뢰로운 만남을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의 힘~ 신뢰로운 만남을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의 힘은 소프트파워,케이 팝이다. 

모든 외교 행사에는 문학,음악,음식,패션,공예,스포츠,건축 등으로 소통하는 문명의 대화가 녹아든다.익숙치 않은 세계와의 만남은 창조적 발상을 자극한다.코발트 블루 안료로 섬세한 무늬를 그려 넣은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자기는 청화 백자에서 영감을 받았다.동방의 문화를 고유의 도예 기법으로 발전시킨 델프트 도자기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 수출 품목이 됐다. 문화적 다양성,역사와 관점이 달라도 정상들이 주고 받은 문화 이면에는 자유,인권,평화,번영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로 나누는 대화는 보편의 가치를 마주하고 공유하게 한다.문화는 갈등을 초월하고 창조적 저항을 이끈다.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기업의 관계는 마치 한미동맹 같다.대한민국 공공외교의 일등 공신은 세계시민이다.그 중에서도 디지털 생태계의 역동성과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잘 이해하는 청년 세대가 K-컬처의 글로벌 홍보대사로서 활약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성낙윤의 1991년 "흉배-문","흉배-무"(1991년) 작품이 걸려 있었다. 비단에 자수를 한 작품으로 전통수예의 장인 같았다.전통 수공예가  성낙윤(1938년~)은 1970년대 중반부터 매듭과 길쌈을 배우고 80년대부터 매듭연구실을 운영하며 전시회를 개최하였다.이후 성낙윤이 만든 혼수를 운영하며 매듭,바느질 등 전통 수공예 문화의 전수에 기여했다. 국무회의장인 세종전실에서 세종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각각 문무관을 상징하는 흉배를 배치하고 세종실 북쪽 면에 일월도를 배치함으로써 이 공간이 조선시대 조정을 상징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소정원옆 구본관터로  1948년부터 43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이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한 구 본관이 있었던 자리였다. 노태우 대통령 때 현재의 본관과 관저를 신축하였고 1993년11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구 본관을 철거하였다.청와대 본관에서 관저로 가는 숲길이 매우 환상적이였다. 나루 한그루 한그루 마다 매우 유려한 자태로 고혹적인 향기르 뽐내고 있었다.대통령 관저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했던 곳이다.대통령이 구 본관에서 집무하던 시기에는 구 본관 2층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다.노태우대통령 때 새로운 본관을 짓기로 하면서 1990년10월 관저를 신축하였고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공간이 구분되었다. 관저를 지을때 전통 목조건축 양식을 도입하였으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청기와를 얹었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공간인 별채가 "ㄱ억자" 모양으로 배치돼 있으며 앞마당에는 뜰과 사랑채가 있다. 관저 대문은 전통 한옥 삼문 구조로 현판에는 어질고 장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수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매우 높은 목재기둥으로 대통령의 품격을 나타내고 있었다.뒷마당의 처마로 나무가 드리우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사색적인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관저옆으로 오운정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오르막 산책길이 펼쳐졌다.오운정은 19세기 말 20세기초에 지어진 정자이다.오색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신선이 노는 곳과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운정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199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중앙에 방을 두고 마루가 있는 매우 화사한 겹처마의 정자였다.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통일 신라 불상의 특징을 가진 석불좌상으로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 경주에서 서울로 옮겨졌다. 당당하고 균형잡힌 신체 비례는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뛰어난 조형감각을 보여 준다.관저에서 내려오는 내리막길로 침류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 뜻을 가진 침류각은 1900년대 전후 전통가옥의 특징을 보여준다. 본래 대통령 관저 자리에 있었던 것을 1989년 관저 신축 당시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199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초목에 드리운 "ㄱ억자형" 목재한옥이 이국적 자태로 산속의 별장처럼 낭만적인 정감을 지녔다.침류각에서 내려오니 상춘재와 녹지원이 펼쳐졌다.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의 상춘재는 1983년 지어진 전통 목조건축물이다. 청와대를 방문하는 내외빈에게 우리나라 전통가옥을 소개하고 소규모 행사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녹지원은 1968년 조성된 잔디정원으로 어린이날 행사 등 야외행사를 진행했던 공간이다.녹지원에는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으며 중앙에는 170여 년 된 반송 (소나무의 한 품종)이 있다. 반송이 상춘재를 비추며 고즈녁했다.녹지원과 마주보며 언론 취재 본부인 춘추관과 춘추문,헬기장으로 가는 문이 있었다. 춘추관옆 돌담길로 북악산 등산로가 펼쳐지는 사색적인 공간이였다.즉 청와대는 북악산 자락 아래 정원과 산책길이 매우 환상적인 조경예술로 고혹적인 향기로 가득찬 곳이였다.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춘추관  마주 보는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흰벽체의 하늘색 천정과 함께 흰하이샷시와 흰타일을 장식한 매우 산뜻한 카페로 야외테라스를 이루며 청와대를 비추는 카페 명당이였다.같이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서 나의 글을 읽어다면서 대화하며 친숙해진 임경애님과 마주 보며 사과쥬스를 먹었다. 모델반 수업을 받으면서  합창단과 고양시니어신문 기자활동을 하시는 임영애님의 선배이야기를 들으면서 노인들이 할수 있는 정보와 복지관회원 가입하면 문화센터 수업 받는데 헤택을 받을수 있다는 정보를 공유하였다. 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배우며 무대에서 음악을 즐기시는 선배님으로 서로 공감하며 너무 재미있는 대화시간이였다.티타임을 갖고 버스 정류장에서 임경애,이인자,김명수,상숙자언니와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보니 버스가 중단된것을 알게 되었다.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 모르고 기다렸던 것이였다.버스정류장에서 같이 기다렸던 선배언니들과 함께 걸었다.덕수궁 돌담길 따라 미색벽체의 목재출입문의 서양식건축 ,주황색 벽체,회색벽체미술관,2층 한옥 식당등이 마주하며 고풍스러웠다.민속박물관 정원으로 효자각과 효자문이 버티고 있었다.허권 후손의 살림집 안에 있었던 것을 허권후손이 기증하여  2008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조선시대 국가에서 태인 허씨 허권(1847년~1895년)에게 내린 효자정려를 기념한 효자비와 그 보호 건물로 효자각과 효자문을 통해 효를 중시했던 당시 사회상과 건축기술 공예문화를 엿 볼수 있는 것이였다. 효자각은 화려한 단청과 함께 연꽃 봉우리 용 봉황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효자문이라고 쓴 현판과 호랑이의 매화,난초,국화,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우리 고유의 유산이 존재하는 정원으로 매우 고즈녁했다.민속박물관에서 잠시 추억의 사진을 남기는 동안 이인자선배님이 사라져 연락을 해 보니 집으로 가는 중이라 하셔서 임경애,김명수,상숙자언니와 같이 걸었다. 법련사 부근 4거리의 조선시대 남문이 유려한 곡선미의 통유리창 양식의 현대건축과 조화를 이루며 세계로 도약된 한국위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드넓은 경복궁 정문에서 세종대왕상이 버티고 있는 광화문 광장이 펼쳐졌다. 먹거리와 쇼핑의 천막가게가 줄지은 드넓은 잔디광장으로 알록달록한 쿠션의자에서 가족들과 쉼을 즐기며 매우 활기찼다. 미색벽체의 서양풍 장식을 이룬 1,2층과 함께  통유리창 양식을 이룬 빌딩이 광화문 광장으로 드리우며  이국적인 정감으로 가득찼다.광화문 광장을 지나 시청으로가는 길로 식당을 찾아 헤메다가 광화문 광장길 골목 식당가로 갔다. 양가에서 해물순두부찌게를 임경애 선배님이 대접 해 주었다.맵고 짜지않고 담백한 해물순두부로 해물향기가 입안 가득하며 고소했다.지금까지 먹었던 해물순두부중 제일 맛있었다.콩밥 솥밥과 함께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는 김구이,콩나물무침,어묵볶음,양배추무침으로 매우 맛깔스러웠다.특히 묵은지찌게는 매우 감칠맛을 자랑하는 환상적인 맛이였다. 반찬 하나 하나 비법 소스로 입맛 돋구는 맛을 창출하는 일류 맛집이였다.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고 시청역에서 선배 언니들과 헤어졌다. 즉 청와대 정문에서 시청까지 역사의 길을  함께 걸어던 매우 뜻 깊은 시간이였다. 데모로 인해 버스가 안다녀 시청역으로 되 돌아 갔다.지하철에서 김명수,상숙자언니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어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면서 김명수언니와 같이 동생,여행등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들풀식당
자하문로
청와대로 가는 길
관저로 가는 숲길
관저
숲길
침류각
상춘재와 녹지원
숲길

본관 전시실)

성낙윤~흉배-문 1991년
성낙윤~흉배-무 1991년
청와대
카페
경복궁 돌담길
민속박물관
경복궁
광화문광장
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