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영주국립산림치유원(2024년7월20일)

백재은 2024. 8. 12. 16:42

영주소수서원
영주국립산림치유원

7월20일~우리함께 걸어요 밴드모임에서 영주국립산림치유원으로 숲체험을 갔다.아침에 휴게소에서 리더님이 준비하신 
더 올래김밥을 먹었다.손소연님을 비롯해 여러 회원님들과 같이 앉아  김밥을 먹었다.기계로 싼  비닐루와 종이포장으로 고급진 김밥 같았다.밥간과 속재료간이 서로 조화되는 맛으로 너무 맛있었다.김밥을 먹은 후 같은 자리에 앉은 임미향님이 옥수수를 주어 감사했다.영주시에 도착하여 점심을  순흥 소문난 암소갈비집에서 먹었다.식당 마당으로 각색들의 백일홍이  청초하게 피어나고 이름모를 나무의 나뭇잎사이로 여러갈래의 줄기처럼 뻗은 새순으로 신비로웠다. 갈비탕을 먹었는데 된장과 들깨,우거지,고사리가 들어간 갈비탕으로 우리전통맛이 깃든 아주 구수한 맛과 감칠맛을 자랑하고 었었다.일반적인 고추기름과 소고기육수의 갈비탕과는 차별화된 전통 국밥 맛을 살린 갈비탕 같았다.토종음식처럼 갈비탕을 만들고자 하는 요리사의 열정이 담겨져 있었다.아주 쫀득한 좁쌀밥으로 예술 같았다.김치는 김장독 김치처럼 잘익은 효소맛으로 이색적인 맛이였다.들깨의 향기가 가득한 고구마순볶음,고추가루와 고소한 기름의 조화로 맛깔스러운 고추찜,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강한 취나물무침,달큰하고 시원한 맛의 깍두기로 반찬하나 하나 아주 감칠맛이 있었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소수서원에 갔다.
소수서원
서원은 조선 사회 성리학이 정착하면서 사림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서원은 중국 송나라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인 성리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강학공간,존경하는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올리는 제향공간,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하며 휴식하는 유식공간으로 구성된다.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인격을 갈고 닦는 인성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조선시대 서원 중 소수서원,남계서원,옥산서원,도산서원,필암서원,도동서원,병산서원,무성서원,돈암서원 9개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중종(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순흥 출신의 고려시대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집인 사묘를 세웠고 다음 해 백운동서원을 건립 한것이 서원의 시초이다. 서원 자리는 원래 통일 신라시대 사찰인 숙수사가 있었던 자리로 안향이 젊은 시절 공부하던 곳이다.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명종(4년) 1549년 왕에게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과 서적을 하사받는 등 국가의 공인과 지원을 받음으로써 서원 제도 정착에 이바지 하였다.소수뜻은 학문을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자연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유식공간으로 나누어져있다. 유식공간에는 소나무숲과 죽계,경렴정,탁청지,취한대가 있다. 일반적인 서원은 강학공간이 앞에 제향공간은 뒤애 두고 중심축을 설정하는데  동쪽에 강학공간 서쪽에 제향공간 두었고 개개 건물의 배치도가 자유롭다. 소수서원은 중종(38년)1543년 3명 원생을 시작으로 고종(25년)1888년까지 모두 4000여 명 학자를 배출한 인재의 요람이다.입구부터 숙수사지학자수림으로 장대하게 굽이치는 소나무가 절개 충절로 발하였다. 학자수림은  겉과 속이 모두 붉다하여 적송이라 부르며 300~천년 가까운 적송 수백그루가 서원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소수서원의 소나무 숲은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지고 키가 커서 낙락장송으로 불리는 소나무 군락으로 수백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운치있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서원에 가까운 것일수록 서원 쪽으로 숙이고 있어서 마치 서원에 공경을 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소나무 숲은 소수서원 경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인생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소나무를 학자수라 부르고 있었다. 송림이 장대하게 지도문과 경렴전을 드리우며 매우 환상적이였다.숙수사지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를 지나 연화산이 드리우는 성황숲에 둘러친 죽계천 징검다리로 초목들이 장대하게 드리우며 매우 싱그러웠다.시원한 물줄기로 꽐꽐 쏟아지는 죽계천길따라 소나무가지 사이로  팔작지붕의 취한대가 고즈녁하게 비추었다.정면3칸 측면2칸 팔작지붕의  홑처마를 이룬 취한대는 연화산의 푸른 기운과 죽계의 맑고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 뜻에서 옛 송취한계의 비취 취자와 차가울 한자에서 가져와 이황이 지었다.서원 왼편 봉긋하게 솟아있는  둔덕은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처럼 보여 영귀봉이라 하고 영귀봉 주변으로 수백년된 적소가 장관이였다. 소나무에서 선비의 충절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자수라 부르고 있었다.바라 보기만 해도 매혹적인 소나무 숲으로 장대한 은행나무가 수비하듯 버티고 있어 서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었다.영귀봉 위에는 작별의 정을 나누던 소혼대가 있었고 서원 정문인 지도문앞 잔디 제단은 성생단으로 안향선생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가축의 흠결을 살피고 잡던 제단터였다.지도문 오른쪽 경렴정은 1543년 주세붕이 세운것으로 죽계수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학문을 이야기하고  호연지기를 키우던 곳이였다. 스승  이황의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썼다고 전해지는  초서의 대가 고산 황기로의 현판이 있었다.팔작지붕과 함께 앞면3칸 측면1칸의 홑처마를 이룬 경렴정으로 장대한 보호수 같은 초목이 드리우며 고즈녁했다. 지도문을 중심으로 죽계천을 바라보는 경렴정과 함께 성생단영귀봉 주변으로  매우 아름답고 고풍스러웠다.서원 정문주변부터 품격이 느껴지는 진입영역이였다.지도문을 지나 문성공묘로  태극문양문과 돌담기와담장으로 높이 추앙받는 공간 같았다.문성공묘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 위패와 함께 안보,안축,주세붕을 모신 곳이였다. 서쪽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전통사상에 따라 강학당을 서쪽에 둔 동학서묘를 이루었다.제향을 올릴때 주세붕이 직접 지은 도동곡이라는 고려 중기에서 발생하여 조선 초기까지 유행하였던 시가 장르인 경기체가를 불렀는데 이는 안향이 중국 공자의 도를 우리나라로 옮긴 것을 찬양하는 내용이였다. 소수서원이 우리나라 도학의 연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문성공묘 뒤에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는 전사청,영정각으로 제향영역이였다.영정각은 안향,주세붕,주희,이덕형,이원익,허목의 보물급 영정을 많이 소장한 곳으로 1975년  특별히 지어진 건물이였다.영정각에 진열된 초상화들로 국보급을 이루고 있었다. 문성공묘 오른쪽으로 강학공간이 펼쳐졌다.강학공간 중심이 되는 강학당은 사방으로 툇마루를 이루며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곳이였다. 강학당 오른편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지락재학구재,일신재직방재가 있고 강학당 왼쪽으로 장서각이 배치되었다. 건물배치는 하학상달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하였다.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연구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 있어 마음을 곱게 한다는 직방재로 직방재에 이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는 뜻을 지녔다. 직방재와 일신재은 원생,교수와 서원의 임원인 원임들이 생활하던 숙소로 하나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였다. 일신재의 일신은 대학의 인격도야가 나날이 새로워져라라는 문장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였고 직방재의 직방은 주역의 깨어 있음으로써 마음을 곱게하고 바른 도리로써 행동을 가지런하게 한다는 문장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였다. 중앙에 2칸 크기의 마루와 양쪽에 각각 2칸 크기의 방으로 질서적이고 규율적인 공간처럼 빛났다.장서각은 나라에서 내려준 책과 서원의 책,서원에서 출판된 목판을 보관햇던 곳이였다.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마루를 깔았다.  현대의 도서관 장서같은 곳으로 주세붕이 중종(38년)1543년에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장서각영정각,일신재직방재사이 중앙으로 초목이 드리우며  매우 정겨움이 묻어나는 강학공간 같았다.영정각부근 해시계인 일영대가 있었다.맑은 날 윗부분 돌에 꽂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아랫돌에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문지도리석을 올려 놓은 것으로 숙수사의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을 지나 고직사사료관이 있었다.사료관에 소수서원에 대한 관련자료들이 전시되었다.
사료관
(1)소수서원의 건축~유식,강학,제향공간으로 사람들이 장수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서원 주위 산수경관과 건축이 합일 할 수 있도록 서원 공간을 조성하였다.우리나라 성리학 비조이신 안향선생이 어린 시절 수학하신 곳으로 서원 뒤로는 영귀봉이 있고 앞으로는 죽계수가 흐르며 서원 어디에서든 바라볼수 있는 연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2)소수서원의 역사,한국 서원이 시작되다~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서원은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로 중국 송마라 주자가 백운동서원을 열고 서원을 보급한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 중종(38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곳 순흥에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조선왕조는 유학을 근본이념으로 유교적 소양 갖춘 관료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여 한양에 성균관,지방에 향교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인 교육방식 만으로는 지방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운영과정에서 관리양성 기능이 강조되면서 백성을 교화하는 것에 소홀해졌다.이러한 가운데 관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가 사림들이 주도한 서원 건립이었다.
(3)소수서원이 되다,퇴계 이황이 조정에 사액을 요청하다~1548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백운동서원을 공인화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1549년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과 국가지원을 요청하였다.사액이후에 서원이 사림의 향촌기구로 발전되어 서원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향촌 체제가 시작 되었다. 
(4)도학의 실천도장을 꿈꾸다,퇴계 이후 소수서원의 위상~퇴계는 도학의 실천도장을 운영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마련해 나갔다. 소수서원이 배출한 퇴계의 문인들이 서원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서원문화를 꽃피웠다.서원의 급격한 증가는 곧 정치 사회적 페단을 드러나게 되었고 국가는 서원의 남설과 첩설을 적극적으로 통제 하였다. 드디어 1871년 고종(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페령을 통해 47개소(서원27곳 ,사우20곳)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원.사를 훼철하였다. 소수서원은 당시의 서원철페령에도 훼철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페철되는 사원을 복설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1888년 고종(25년)서원의 문을 닫을때 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소수서원을 나오니  잔디정원의 소나무가 돌담장을 드리우며 조상의 얼을 빛내주었다.잔디마당으로 맑고 청아하게 뻗은 소나무숲으로 신선도 같았다. 오른쪽  잔디아래로 탁청치가 펼쳐졌다. 탁청지는 소수서원과 죽계사이 있는 연못으로  물에 씻어 스스로 깨끗해 진다는 뜻이였다.광해군(6년)1614년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준의 명에 따라 당시 소수서원 원장이었던 곽진 자신이 주관하여 조성하였다.곽진이 쓴 단곡문집의 일신재기에  탁청지는 서원 동쪽 뜰 모퉁이에 작은 서재를 짓고 서재 아래에 대를 쌓고 대 아래에 연못을 팠다.탁청지대의 앙고대 서재를 지락재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현재는 기록대로 복원한 것이였다.서원의 연못은 일반적으로 사각형이며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관조의 대상이라는 상징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또한 풍수적으로 경관을 보완하는 의미도 있고 우기때에는 물이 모이는 공간이 되어 서원 내부의 배수를 원활하게 하는 기능도 있었다. 매우  청아한 샘으로 생명력이  약동쳤다.소나무가 드리운 죽계천 따라 연화산 아래 화사한 광풍정이 비추고 죽계교와  옥계교를 건너니 죽계천 주변의 경치들이 매우 수려한 환상적인  경치로 압도되었다.시와 풍류가 저절로 나오는 경치였다. 저! 멀리 산봉우리가 비추는 아치형 옥계교다리로 열부각과 충북각이  조화를 이루며 운치가 있었다.옥계교를 건너 영주 선비촌과 소박물관으로 가는  두갈래 길을 이루고 있었다.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를 숭상했던 선비문화 중심지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중국 주자학을 소개하여 성리학 기틀을 마련 한 회헌 안향선생의 출신지이며 조선 개국과 유학을 근본으로 조선의 제도 새롭게 정비하는데 큰 공헌을 한 정도전 출신지이다.역사 전반에 걸쳐 훌륭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하여 명성이 높았으며 관직에 진출하는 한편 향리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그 결과 주세붕이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창설하는 등 영주의 선비문화는 우리나라 서원문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선비들은 서원을 중심으로 권력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정신을 구현했으며 집권층을 견제하고 지역사회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영주의 선비문화를 드러내고 있었다.고택과 종택등 선비촌으로 정겨웠다.전통한옥양식의 소수박물관은 굳게 닫힌 채 정원으로 안향선생 제학궁 시비,주세붕의 시,공덕성의 찬문비가 나란히  함께 있었다.안향선생 제학궁 시비인 안향의 시는 부처에게 빌고 잡신을 섬기는데 공자사당에는 인기척 조차 없다고 한탄한 시였다.소수박물관에서 선비촌을  울창한 가지로 드리우고 박물관으로 가는 정원사이로 옥계교의 아치형 다리로 산봉우리가 드리우며 곳곳마다 피톤치드 향기로 가득한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담고 있었다.야외 유물전시장으로  여러지역에 흩어져 있던 각종 비와 건축물 부재를 전시하고 있었다. 

소수박물관 기획전시실
연화산에 둘러싸인  소수박물관 기획전시실로 매우 싱그러웠다.전시실은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화양연화"주제로 전시되었다.혼인하여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유물로  즐길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1부는 "혼인 새로운 인연을 맺다" 주제로 혼례에 관한 이야기로 혼인의 절차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었고  2부는 "성장 어른이 되다"  주제로 새생명 아이가 태어나고 또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관례까지 구성되었다.관례 처음으로 어른다운 예절을 알게 하다 주제로 예법에 관한 책들이 전시되었고 관례의 절차가 전시되었다.관례는 성장한 자녀를 어른으로 인정하면서 책임을 부여하는 상징으로 갓을 씌우고 그와 함께 성인에 맞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 어른으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의례였다. 예의 본질적인 내적 의미로 내재할수 있는 예의 내적이였다. 화조도와 병풍의 국보급 예술을 볼수 있었다. 화조도는 첫 폭과 끝 폭에 송학과 봉황이 그려지는 것이 특징으로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었다.안방을 재현한 보루를 둘러싼 병풍으로 색채가 매우 화려했다. 궁궐도처럼 체계적인 질서구도로  매우 환상적이였다.


기획전시실옆 홍경루로 한지 창호가 인상적인 현대적인 정자양식을 이루고 있었다. 홍경루를 지나 뒷마당의 돌장식의 벽체로 연못이 소나무에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소수박물관 뒤뜰의 산책길 따라 가니  죽계천 제방위의 숲과 박물관언덕의 초목들이 우거지며  매우 싱그러웠다.산길로 가는 등산길과 옥계교로 가는 길로 나뉘어 졌다. 기와 돌담의 덩쿨길을 지나 광풍대광풍정이 있었다. 광풍대는 송사 주돈이 전에 나오는 제월광풍에서 따온 말로 이황이 명명한 것으로 정자 인근에 있었고 광풍정은 4각정자로 2002년에 세웠다. 앞에는 죽계가 감아 돌고 뒤에는 연화산이 에워싸고 있어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였다.백운교의 죽계천이 소나무에 드리우고 옥계천의 죽계천 제방위로 수풀림과 잔디 언덕을 이루며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백운동경자바위는 취한대를 지나 계곡 옆 주세붕이 직접 백운동과 경이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로 경자바위라고 한다. 주세붕의 죽계지에서 안향이 주자와 부합되는 것이니 더욱 새기지 않을수 없다고 하였다.옥계교에서 연화싼에 둘러싸인  죽계천이 굽이치고 돌 제방위로 초목들이  향기를 뿜어내며 광풍정을 비추어 신선도의 길 같았다. 죽계교를 건너 학구재 지락재 담장아래의 탁청지로 고즈녁했다.탁청지를 드리우는 장대한 초목으로 매우 싱그러운 빛을 발산하였다.탁청지에서 수비하듯 장대한 초목이 드리운 계단을 올라 지락재의 기와담장길따라 경렴정으로 가는 산책길로 운치가 있었다. 백운교  다리 아래 하천의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내며 너무 상쾌했다.소수서원 지락재 담장과 지락재가 고개를 내민  언덕 아래로 탁청지를 에워싸는 초목들로 죽계천의 산책길이  매우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환상적인 길이였다.죽계천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니 경렴정으로 경렴정에서 연화산에 둘러싸인 죽계천과  초목에 드리운 탁청지가  평화로운 안식처 같았다. 소나무에 드리운 죽계천의 취한대가 비추며 고즈녁했다.1482년생의 은행나무 보호수로  소수서원이 세워질 무렵 심어진 나무였다. 이 나무는 학지수라 불리는데 은행열매처럼 많은 인재를 배출한다는 뜻이였다.서원의 은행나무는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였다.서원과 향교에 있는 은행나무는 유교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간직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경렴정에서  취한대가 비추는 죽계천으로 소나무가 춤을 추듯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소수서원에서 영주국립산림치유원에 갔다.
 
영주국립산림치유원 

영주국립산림치유원은 세계 최대규모의 국가시설로  소백산 옥녀봉 일대에 조성된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 운영하는 산림복지 전문기관으로 백두대간 풍부한 산림자원을 활용하여 면연력과 건강증진,삶의 질을 향상하기위해 조성된 산림복지단지였다. 입구로 가는길 부터 산이 장대하게 드리우며 치유의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입구부터 계곡의 물소리로 매우 청정했다.치유정원,치유숲길,마실치유숲길등을 이룬 언덕길 사이 사이 수련센터,식당,명상센터,방문자안내센터,주치소통방,수치유센터,주치마을을 두며 소백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바라만 봐도 심신이 안정되는 숲이였다.식당옆 수국꽃밭을 이룬 벽돌벽체의 주치마을로 아늑한 별장같았다.도착하자 마자 오리엔테이션으로 규칙과 안내도를 알려 주셨고 조를 나누어 주었다. A,B조로 나누어 강의를 듣게되어 먼저 수치유센터에서 수치유를 받게 되었다.제일 꼭대기 언덕의 주치마을에 방이 배정되어 버스를 타고 갔다.차창가로 산언덕을 올라가며 펼쳐지는 경치들이 매우 아름다웠다.별장같은 주치마을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에 둘러싸인 경치들이 매우 청정한 숲향기로 힐링되었다.방에서 짐을 내려놓고 수치료 준비물을 갖고 버스를 타고 수치료센터에 갔다.수치료센터는 다양한 수압과 수류를 만드는 각종 장비를 갖춘 곳으로 스파와 사우나, 5단계 수압 마사지로  부위별  근육피로와  통증치료를 하는 곳이였다.수영장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수압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저절로 힐링이 솟구쳤다.만성통증을 해결하는 수압으로 전신건강에 활력을 주는 지상낙원 같았다.벽으로 감싼 반신욕장으로 매우 아늑했다. 창가로 맑은 햇살이 비추며 특급 호텔에 온 기분 같았다.산의 경치를 보며 수영할수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햇빛과 교감하며 건강을 증진할수 있는 곳이였다.한증막과 수압마사지,수영장에서 걷기,반신욕장,야외수영장을 번갈아 오가며 최고의 호캉스를 누리는 기분 같았다.힐링을 만끽할수 있는 최고의 수테라피시간으로 카타르시스가 넘쳤다.산중턱 수치료센타 베란다로 구름이 물들인 맑은 하늘햇살아래  산봉우리들이 펼쳐지며 아름다웠다. 수치유센터에서  같은방 멤버인 손소연,정소임과 같이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식당으로 가는 길로 저! 멀리 산봉우리가 비추며 숲과 산책길을 이루고 계곡의 힘찬 물소리로 피톤치드 향기로 가득했다.저녁메뉴로 가지덮밥이 나왔다. 양배추,당근,피망,고기가 들어간 가지덮밥으로 새콤한 서양소스와 고추기름의 조화로  싱거우면서 감칠맛 있었다.김치 속재료맛이 깊이 벤 시원한 맛의 김치,오미자청이 들어간 샐러드,짙은 새우향과 시원한 무우가 조화를 이룬 새우무우국,겨자가 들어간 야채양장피,탕수육,오이피클로 감칠맛 있었다.특히 오이피클은 처음 먹어보는 감칠맛으로 이색적이였다. 즉 서양소스와 한국소스의 간단한 소스로  맛을 창출하는 요리사의 묘미를 담고 있었다.단순한 양념으로 맛깔스러운 맛을 내는 시고 달고 맵고 짜지 않는 건강식이였다.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고 손소연,정소임,도기훈과 함께 산책길 따라 올라갔다.바위길로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계곡을 마주하고 산의 숲길을 가다가 바위 절벽의 연못으로 계곡의 물줄기가 뿜어 내려 웅장한 자연을 마주하는 기분 같았다.계곡길 따라 폭포수가  내뿜고 굽이치는 산길 따라 산봉우리들이 휘감으며 비추어 제주도 올레길 같았다.음이온이 발생하는 산림치유의 행복을 느낄수 있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산봉우리가 주치마을 비추고  맞배지붕의 목재벽체로 불을 밝히며 별장마을 같았다.언덕길 사이로 계단씩으로  배치된 주치마을로  숲속마을의 정감을 자아냈다.저녁 7시30분쯤 도기훈님의 초대로 손소연과  정소임과 함께  술방모임에 갔다. 윗 언덕  마을길을 오르며 동네 마실길처럼 정겨웠다.안주로 나온 동태전,부추전,배추전,깻잎전을 먹으면서 휴식하였다. 흥에 취한 술게임을 지켜보다가 손소연님과 방으로 돌아왔다.잠자리에 누우면서 손소연님이 결혼생활의 불행했던 삶을 털어 놓았다. 남편의 다혈질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는데 성령으로 치유받았고  남편의 잘못을 기도로 모두 용서해서 자유해졌다는 간증으로 은혜를 받았다.남편의 바람으로 별거하게 됬지만 재결합은 지옥으로 다시는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서... 지금은 남편과 술을 마시면서 친구로 지낸다고 털어 놓았다.나의 삶의 이야기도 나누며 친숙해 질수 있었다. 

올래김밥
소문난 암소갈비집~백일홍
학자수
은행나무 보호수
취한대로 가는 길
취한대
경렴정
문서공묘
장서각 ,영정각,일신재,직방재
직방재
영정각
일영대

소수서원 사료관)

탁청지
죽계천
열부각
소수박물관 가는 길
소수박물관 앞

소수박물관 기획전시실)

화조도 8폭 병풍
에법에 관하여 쓴 책들
소수박물관 기획전시실
광풍정
죽계천
선비마을
영주국립산림치유원
영주국립산림치유원~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