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고모산성,주암정,문경중앙시장(2024년7월13일)

백재은 2024. 8. 9. 17:15

문경새재
고모산성
주암정
주암정
문경 중앙시장

7월14일~여행스케치에서 경북 문경시로 여행을 갔다.문경새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단체사진을 찍고 문경새재를 산책했다.
문경새재도립공원가는 길에서 금이버섯,뽕나무버섯,표고버섯,오리궁뎅이버섯 시식하였다. 문경새재도립공원부터 울창한 가로수길을 이루어 피톤치드 향기로 가득했다.문경새재로 가는 길을 설래임으로 다가가는 싱그러움을 발산하는 길이였다.익공의 팔작지붕과 함께  흰색 겹처마와 흰색기둥을 이룬 옛길박물관이 산에 드리우며 싱그러운 정원을 이루고 계곡길 따라 가로수가 펼쳐지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생명력이 넘쳤다.
 
옛길박물관
주흘산에 드리운 옛길박물관이 익공의 팔작지붕과 함께  흰색 겹처마와 흰색기둥을 이루며 조경과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다웠다.고고한 자태의 대나무가 청정한 향기 뿜어내는 정원길 따라 양성학의 휴식 조각으로 조선시대 보부상의 옛길의 삶을 표상하고 있었다. 옛길박물관은 문경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잘 나타내기 위해 건립한 박물관이였다.문경은 우리나라 문화지리 보고이자 길 박물관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서 고갯길의 문경새재가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 옛길의 백미이자 한국의 차마고도로 일컫는 토끼비리,영남대로 허브역할을 담당했던 유곡역이 있다.땅은 천하의 형세로 산천에서 볼수있다.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다.물은 각기 다른 근원에서 하나로 합쳐진다.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요 물을 만나면 나루이다.제1전시실에서는 괴나리 봇집,옛지도와 조선시대의 도로체계를 해설한 지리서인 도리표,출토복식이 전시되었다.조선왕조 역참에 소속된 역리,역노비등의 역인을 관리하기 위하여 일반 군현의 호적과는 별도로 작성한 인명장부인  사근도형지안으로  당시 사회현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였다.제2전시실에는 한눈에 보는 옛길 ,토끼비리,과거길, 영남대로,역참제도,보부상, 풍속화의 옛길등 우리나라 모든 옛길에 대해 전시되었다.백두대간은 백두산의 병사봉에서 시작되어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줄기를 말한다.여암 신경준(1712년~1781년)이 쓴 산경표에 의해 백두대간이 완성되었다.전시실 복도에 그림이 장식되었다.덕스러운 미소의 금부처,사색적인 산과 강의 수묵화,독특한 색채로 신비로운 정감인 달밤의 소나무,입체감 있는 산이 드리운 공원경치 그림들로 명작가들의 솜씨 같았다.옛길에 대한 자세한 조사와 과학적인 정리,분석,자료들을 보면서 훌륭한 학자들의 보고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문경새재
백두대간 조령산 마루를 넘는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서 사회,문화,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한양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의 청운의 꿈과  백성들의 삶과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명승 제32호인 문경새재는 조선의 옛길을 대표하는 관도로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의 초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새들도 쉬어 넘는 힘든 고개라는 뜻의 조령으로 기록되어 있다.태종때 영남대로가 개척되면서 이 고갯길이 열렸다.임진왜란 후 1594년 선조때 제2관문 조곡관을 설치하였고 1708년 숙종때 제1관문 주흘관과 제3관문 조령관을 설치하여 군사적 요새로서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 태종(14년)1414년에 문경새재 계곡 따라 제3관문 조령관까지 650m에 이르는 고갯마루를 닦았다.이로써 문경에서 괴산,연풍을 잇는 대로가 개통되었다.조선시대 영남대로에서 충청도 한강유역권과 경상도 낙동강유역권을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 기능을 했다.성을 쌓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제1관문 주흘관,제2관문 조곡관,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사적 제147호)과 국립 여관에 해당하는 원터 등 주요 관방시설이 자리하고 있다.이 밖에도 정자,주막터,성황당,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남아 있다.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 수많은 설화 내려오고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높은 조선 최고 옛길이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 새재계곡이 약6.5km 의 영남대로(옛길)와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이루고 다양하고 귀중한 동식물 서식하며 낙동강의 3대 발원지 중 하나인 초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돌벽의 숲을 이룬 신길원현감 충렬비가 소나무에 드리우며 넋을 기리며 입구부터 옛 선인들의 발자취로  드리우고 있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의 계곡길 따라 가니  가로수길 계곡으로 신비한 기암괴석과  아치형 성벽장식으로 매우 수려했다.돌제방을 이룬 계곡이 하천길을 이루어 제1관문인 주흘관으로 굽이치고 계단씩 돌담장을 이룬 성벽따라 기암괴석을 드리운 아치형 성벽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제1관문 주흘관의 드넓은 잔디로 주흘산과 조령산이 드리우며 대망의 꿈길 같았다.문경새재 첫 관문인 제1관문길 부터 매우 환상적으로 압도되었다.즉 주흘관을 중심으로 매우 고풍스러운 경치들이 펼쳐졌다.주흘관을 지나니 관찰사 김재호등 비석들이 진열되며 매우 귀중한 전나무가 우뚝솟아 있었다.600여년의 높은 전나무 한그루가 1978년9월 수명을 다하여 그루터기만 남았는데 그 씨앗에서 자생한 40년생 전나무였다. 계곡의 다리를 건너 문경새재오픈세트장으로 조령산이 신비한 자태로 드리우며 고즈녁했다.드라마세트장을 지나니 매우 울창한 숲길과 함께  평탄한 길이 펼쳐졌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 새재계곡이 옛길과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이루고 계곡 석교다리로 드라마 세트장 기와가 고개를 내밀며 정겨웠다.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로 청량감이 가득했다.주흘산  거대한 암벽이 드러내고 이윽고 현감구명규의 선정비 푯말이 붙어 있었다. 지구조선을 따라 발달한 옛길인  문경새재는 가장 유명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옛길로 초입부터 역사 문화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이 일대 지질은 시대미상의 변성퇴적암류와 약 9천만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월악산 화강암이 분포한다. 월악산 화강암은 흑운모화강암 또는 각섬석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립에서 조립질 조직을 보인다 이 옛길은 북서-남동방향의 구조선에 수반되는 남-북방향의 부수적인 구조선을 따라 차별풍화와 침식작용으로 형성된것으로 판단되는 문경지질공원을 형성하고 있었다.화강암의 침식작용으로 신비한 지질을 이루고 있는 옛길이였다.상주목사 이익저의 불망비를 지나 용추폭포수가 흘러 내리고 지름틀바위가 계곡의 정취를 아름답게 드리웠다.조흘산 아래 숲길의 정자로 아주 작은 연못길 따라 맑은 시내가 흐르며   삼국시대 포석정 같았다.등룡정터를 지나 조령원터의 돌담이 남아 있었다.조령원터는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  위치하며 고려와 조선초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였다.대칭변 길이가 모두 남북으로 길게 쌓여진 장방형 성벽 돌기둥과 장대석을 올린  문이다.그밖에 문경새재는 역과 원이 발달하여 새재내에  동화원,신혜원,조령원,원터가 전해진다.조령산의 무주암과 마당바위를 지나 주막이 있었다. 돌담장의 초가집으로 정겨운 역사 그림자로 드리우고 있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길에 오르던 선비들과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여러계층 우리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 몸을 여독을 풀고 정분을 나누며 쉬어 가던 곳이였다. 산수경관이 수려한 곳에 자리잡은 주막으로 인정어린 인심과 쉼의 안식을 누린 곳이였다.거대한 암석이 드리운 새재길 지나 돌담위에 겹처마와 팔작지붕을 이룬 교귀정 정자가 버티고 있었다.이익공의  정면3칸, 측면1칸으로 이루어진 목재양식이였다. 교귀정 정자 돌담장으로 덩쿨이 늘어지며 고즈녁했다.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 .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하던 교인처로 1470년경 성종초에 건립되어 1896년 3월 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어  페허된 것을 1999년 6월 복원되었다. 교귀정 건너편 용추각자가 신비롭게 펼쳐졌다. 제1관문과 2관문 중간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소를 이루었는데 이를 용추라고 한다.이곳은 새재 옛길의 백미로 용추 글씨를 새긴 사람은 1666년 헌종(7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황주목사를 지낸 사람인 구지정(1647년~1713년)이였다.용추각자 앞으로 안동부사 김수근의 타루비와  철종(5년)1855년 타루비를 감싸는 돌기둥으로 이끼가 서리며 역사 그림자로 녹아내리고 있었다.용추각자를 지나 새재기도굴이 비추었다.새재기도굴은 자연동굴로 새재입구에서 순교한 최양업신부가 경상도와 충청도지방 순회 선교활동을 위해 문경새재를 넘나들던 곳으로 교우들과 함께 기도하고 숨어지냈던 곳으로 추정된다.꾸구리바위를 지나 영남대로 옛 과거길(동화원)으로 가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다닐수 있는 길은 조령(문경새재)과 죽령,추풍령을 경유하는 세갈래가 있는데 영남대로인 문경새재는 수많은 선비길손이 왕래했다.바로 이 길이 유일하게 남아있는옛 길이였다.소원성취탑을 지나 주흘산 아래 작은 개울이 흐르고 조곡폭포로 이어졌다. 주흘산에서 내려오는 폭포수로 매우 상쾌했다.폭포를 지나  아치형 다리로 카페가 비추며 새재길로 이어졌다.이윽고 제2관문인 조곡관으로 사자상조각의 돌다리와 함께 위엄으로 압도 되었다. 돌다리 아래로 깊은 계곡과 숲을 이루며 매우 싱그러웠다. 왜적을 수비하는 요새의 성같은 조곡관을 지나  우뚝솟은 소나무숲으로  옛 새재길의 운치로 가득했다.  65종 새들이 서식하는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 부터 제2관문인 조곡관까지 새재길을 통해 버들치와 갈겨니 이야기,계곡의 식물사회,수질을 알려주는 지표생물들,소나무와 그 형제들,문경새제의 새들,문경새재  반딧불이 이야기,조령 산불조심 표석,문경새재 봄 전령사들,독특한 삶의 방식 조릿대,문경새재 보호 야생 동식물들,문경새재에 사는 참나무들,수질을 알려주는 지표생물등 푯말이 붙어 있었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는데 전력투구하는 모습으로 민속유산의 길을 드높이고 있었다. 소나무숲에서 휴식을 한 후 문경도립공원으로 향했다.이와같이 문경새재는 주흘산과  조령산사이 새재계곡따라 울창한 숲길을 이룬 평탄한 길로 신비한 괴석의 지질공원 경관과 함께 옛길을 따라 남아 있는 정자,주막터,성황당,각종 비석,원터등 역사유적으로 매우 환상적인 길이였다.상처난 소나무조차 고결한 자태로 빛나는 매혹적인 숲길이였다. 왕복 1시간 40분정도 걸리는 새재길의 계곡으로 끓임없이 쏟아지는 물소리로 청량감이 흘러 넘쳤다.즉 산,계곡,신비한 괴석,울창한 숲이 매우 조화를 이룬 지상낙원과 같은 카타르시스가 넘친 길이였다. 
 
다같이 모이는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라 점심을 흑미떡을 먹었다. 흑미떡을 먹으면서 너무 달다고 하니 옆에 앉으신 김길순님이 호박즙 원액을 주어 견과류를 주었다.처음 보는 사람에게 비싼 호박즙 원액으로 그 친절에 너무 감동했다.서로 담소를 나누면서 고모산성으로 향했다.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신라가 계립령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고모산에 위치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내외협축의 수법으로 석축하였고 동서남북의 안부에 성문을 만들고 2곳에 곡성을 가장 낮은 서쪽 계곡 중앙에 2개의 배수구를 만들었다. 신라가 5세기경 문경에 진출한 이후 축조한 성곽이다.삼국시대 5세기경 신라에서 계립령로(문경-충북 미륵사지)를 개설하던시기에 북으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 된 것으로 추정된다.이곳은 신라가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고 한강유력으로 진출하기 위해 소백산맥 이남에 설치한 전진 기지였다.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눈에 보인다. 남쪽으로는 불정지역 외에는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임진왜란,동학농민,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 항쟁 등 여러 차례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었다.성은 장방형 직사각형 구조로 총 둘레는 1,270m이다. 성의 높이가 성벽이 낮은 곳은 1m,높은곳은 11m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폭은 2~3m이다. 동쪽에 암문 1개가 남아 있고 남쪽  1km위치에 옛길인 토끼비리가 있다. 이 성은 할미성이라고도 불리며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마고산성,고부산성,희양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고모산성은 한말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여 의병항쟁에 나선 운강 이강년 선생의 전적지이다.고모산성은 오정산이 비추는 경북팔경 중 하나인 진남교반을 휘감고 있는 산성이였다.고모산성으로 가는 옆 문경 오미자터널  언덕위로 고모산의 박석이 깔린 등산길로 산성의 고즈녁함으로 인도 되었다.진남문을 통과하여 성벽길을 등지고 편한길로 가기 위해  주막과 성황당으로 가는 길로 갔다. 숲속길의 왼쪽으로 마을들이 펼쳐져 앞서가신 남자분을 뒤따라 다시 성황당부근으로 갔다. 김길순님도 함께 같이 올라갔다.고모산  숲길따라 성벽이 용처럼 굽이치며  고모산과 오정산이 드리우며 매우 고풍스러웠다.남문지에 이르니 성벽과 남문지 투석이 잔재하고 산봉우리가 드리운 들꽃향연의 드넓은 평지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 남문지투석은 신라가 낙동강 상류지역으로 진출하였던 5세기 후반 경에 축성되었으며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에 있어 소백산맥 이남의 전진기지로서 거점성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지에서 발견된 투석더미는 삼국시대 산성 전투에서 흔히 볼수 있는 전투용 무기로서  조선시대까지 유용하게 사용된 무기이자 전투방법이였다.전망대에서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진남교반을 둥글게 에워싸며 매우 환상적이였다.돌들이 깔린  내리막길로 초록빛 강줄기를 에워싼 산봉우리들로  웅장했다.대망을 향해 달려가는 말굽소리로 우렁찼다.진남교반은 경북 8경 중 제1경으로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으로 일궈진 구비진 물길과 교량이 어우러진 매우 수려한 곳이였다.진남교반 일원은 고모산성,석현성 고분군 옛길등 소중한 전통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교통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지형상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5세기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면서 쌓은 고모산성과 고부산성, 조선시대의 관성인 석현성 등의 성곽유적이 남아있는 곳이였다.진남문에서 내려와 지남문으로 가는 성벽길에서 진남교반일원 경치가 비추어 매우 고풍스러웠다.성벽길 아래로  굽이치는 성곽길로 웅장하게 압도되었다.즉 성곽길과 남문지에서 매우 수려한 진남교반의 경치로 매우 환상적이였다.진남문을 지나 명승 제31호인 문경 토끼비리로 가는 숲길이 비추었다. 토끼비리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만들어진 잔도이다. 벼랑의 석화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파 내어 안부를 만든곳으로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다. 잔도는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안부는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을 말한다. 토끼비리 길 문화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주막,길손의 안녕을 빌었던 성황당이 남아있었다. 소나무숲을 이룬 입구 기차길 장식으로 정겨웠다.  
 
고모산성에서 주암정으로 향했다.차창가로 진남교반의 산봉우리가 펼쳐졌다. 신비한 기암괴석이 강을 에워싸며 너무 아름다웠다.주암정으로 가는 금천으로 바위의 수풀림에 에워싼  황토기와담장의 팔작지붕인 경제청이 비추며 싱그러웠다.


주암정
문경 서문구곡중 제2경에 속하는 주암정은 채익하가 수양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유학자 주암 채익하(1633년~1676년) 선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에 의해 1944년 지어진 정자이다.이곳 정자 앞에 흐르는 금천은 강가에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그 중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자 바로 밑으로 강물이 흘렀으나 홍수로 인하여 물길이 바뀌고 제방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고 능소화,연꽃을 심어 운치를 더한다. 정면3칸 측면1칸 반규모에 팔작지붕  앞쪽 4기둥에는 멋들어진 글씨로 만들어진 주련내용이 담겨있다. 주암은 금천가에 만고토록 떠 있고 절벽의 소나무는 넘어질 듯 매달렸네 선조께서 달에 취해 노닐던 자리에 후손이 사모하여 정자를 지었네 버들 언덕에 깃든 꽃은 봄빛에 어여쁘고 안개 노을은 변함없이 깍은 벼랑을 안고 있네라는 내용이다. 채익하는 21세 예종(1년) 1469년 문과인 관시,회시,전시에 모두 장원급제로 명성을 떨친 인물로  자는 비언 호는 주암이라 하는데  주암정을 풀이하면 배 바위 정자 자를 사용하였기에 배 바위에 자리한 정자 라는 뜻이였다.주암정으로 가는 길로 사과나무가 즐비하며 싱그러웠다.기암절벽에 둘러싸인 정자로 배모양의 신비한 바위와 함께 연꽃연못을 이루어 매우 수려한 무릉도원 같았다.돌담장의 대문으로 웅장한 바위가 에워싸고 팔작지붕이 고개를 내밀며 운치가 있었다. 능소화 덩쿨이 드리운 이끼낀 바위가 뒷마당을 에워싸며  방2칸의 정자 마루로  족자와 편액으로 조상의 얼을 빛내주고 있었다.정자 앞으로 나오니 배모양 바위로 징검다리를 이루며 산 중턱에 온 기분 같았다.바위아래 연못으로 생명이 샘솟는 싱그러움으로 가득찼다.연못가에 베롱나무와 참나리가 드리우며  주암정에서 나오니 바위가 서로 징검다리로 연결된 연못의 경치가 비추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사방 어디서나 봐도 매우 수려한 경치를 뽐내는 주암정이였다. 배바위위 추암정이 절벽을 병풍으로 하고 작은 연못의 정원으로  구곡문화와 깊은 관련을 갖는 곳이였다.정자를 병풍처럼 두른 기암,배형상의 기암괴석,바위와 바위를 이은 돌다리,커다란 암반에 둘러싸인 정자 뒷마당이 조화를 이룬 신비한 자연형세를 지닌 무릉도원 같았다.김길순님과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주암정 경치와 합일할 수 있었다.서로 사진을 찍기 좋아하고 사진을 잘 찍어 주어 호흡이 잘 맞았다.

주암정을 지나 현리교로 경제청이 금천의 섬안의 별장처럼 비추고 아로니아 열매가 송글송글 맺히며 평안한 마을길이였다.주암정에서 문경 중앙시장에 갔다.시장 활성화를 위해 만원 상품권을 받았다. 단체사진을 찍고 안내원 인솔하에 따라갔다.점촌점빵길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따라 가다가 옆에 앉으신 분과 처음 본 여행객과 같이 시장행사장로 갔다. 더위와 갈증을 식히고자 커피숍을 찾다가 옥이커피  간판이 보여 들어갔다.70년대 시장 다방처럼 허름했다.매실청 쥬스로 효소가 톡쏘는 맛으로 매실청의 진귀한 맛을 음미할수 있었다.옥이커피에서 김길순님과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시장 골목으로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행사장 이루며 빈대떡 튀김,맥주,술등 팔고 있었다.김길순님이 주문한 옥수수,국수와  네가 주문한 빈대떡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바싹한 식감과 함께 녹두의 매우 고소한 맛의 빈대떡,찰지않은 옥수수,집밥과 같은 국수국물로 맛있게 먹었다.지자체 지원으로 값싸게 여행와서 상품권 만원을 받고 저녁을 챙길수 있었던 매우 알찬 여행이였다.서울로 향하는 맨 뒷좌석의 차창가로 산봉우리 경치가 더욱 장엄하고 웅장하게 다가왔다.김길순님과 신앙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에 들었다.용인시 버스 창가로 아침 해가 노랗게  비추던 아침과는 달리 해가 붉으스레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옛길박물관
용추폭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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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폭포
조곡관

 

문경새재

옛길박물관)

제1전시실

 

제2전시실

문경새재~옛길박물관
고모산성
주암정으로 가는 차창가 진남교반
경체청
주암정으로 가기 전
주암정
현리교
아로니아
옥이커피
문경중앙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