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무계원,목인박물관(2024년11월14일)

백재은 2024. 12. 8. 20:23

 

무계원
목인박물관
목인박물관~이경주 "아우라"전시회

11월14일~돌두모 소야대장 주관으로 서울 목이박물관 천사걷기를 했다.안국역에서 모이는 시간이 되도 보이지 않아  소야대장에게 전화를 했다.경복궁역3번 출구 위로 올라와  버스를 타고 부암동주민센타로 오라고 하는데 버스노선이 보이지 않아 여러번 전화를 하면서 위치 찾느냐 한참동안 실랑이를 했다. 성격이 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따졌다. 결국 버스 정류장에서 아주머니에게 물어 부암동주민센터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원래 경복궁역에서 만나는 것인데 착각하고 안국역에서 길을 헤맸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안국역 3번출구로 창덕궁과 신한옥 카페로 고즈녁했다. 버스 창가로 거리마다 노랑 단풍나무물결을 이루고  갈대가 휘날리는 열린송현녹지가 펼쳐져 매우 아름다운 서울도심을 자랑하고 있었다. 북악산 창의문과  윤동주문학관으로 가는 언덕길의 가을단풍색채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 자하문터널을 지나 부암동주민센터에서 내렸다. 옛 선비들의 별장처럼 매우 고풍스러운 거리 같았다. 차도를 건너 길을 물으며 언덕길의 무계원에 도착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조상의 삶이 깃든 정겹고  평화로운 동네 같았다.

 

무계원의 탄생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었던 오진암은 시대를  풍미했던 요정으로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이자 1910년에 지어진 집이였다. 1910년 상업용 한옥으로 그 희소성과 보조가치가 뛰어나고 익선동에 위치했으며 남북 냉전체제를 대화 국면으로 이끈  7.4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해 낸 역사적인 장소였다. 1970년대 삼청각,대원각과 더불어 제3공화국 정치사 단면을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종로구는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오진암 자재를 안평대군 흔적이 남겨져 있는 무계정사지로 옮겨와 무계원으로 새롭게 탄생 시켰다. 5백년 이상된 종로 청진동 지하 4m속  발굴석으로 석축을 쌓아 오진암과 함께 묻어 있던 역사를 되살려 내었으며 둘레의 고풍스러운 전통 담장은 건물과 주변을 조화롭게 이어주고 있다. 무계정사지는 안평대군이 화가 안견에게 3일만에 그리게 했던 몽유도원도의 꿈속 공간과 흡사해 정자를 지어 시를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는 유서깊은 장소이다. 지상1층은 앞마당으로 초석위에  2층 사랑채와 행랑채의 기둥 사이 돌계단을 이루며 입구부터 매우 고풍스러웠다.사랑채와 안채,행랑채로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사랑채뒤로 뒷마당을 이루며  정겨웠다.지상2층은 현대적인 주차장과 함께 2층에 한옥인 별채로 구성되었다.전시,교육체험 공간으로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문화공간이였다.

행랑채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시화권   상설전시회가 있었다. 

(1)무계정사~1418년 세종 셋째아들 안평대군은 문예 특출한 재능으로 당대의 명필글씨로 뽑힌다.1447년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도원을 거닐고 이를 안견에게 전해 그림으로 생생하게 그리게 하였다. 이 작품이 몽유도원도이다. 3년뒤 1450년 인왕산 기슭을 유람하던 안평대군은 이곳 창의문 밖에 이르러 꿈에서 본 도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터를 닦고 집을 지어 무계정사라 이름을 붙였다.지금은 그 자리에 무계동이 새겨진 바위만 남아있어 종로구는  그 아래 무계원을 지어 이를 기념하였다. 

(2)몽유도원도~ 21명이 몽유도원도를 보고 각기 다른 의견으로 칭송하였다.신선의 세계라고 칭송하며 조선전기 회화작 안견의 유일한 진작이다. 안견은 세종때 왕실최고 화원작가로 특히 산수화 실력이 뛰어났다.그림은 왼쪽에서부터 안평대군의 꿈이 시작되고 커다란 산 아래 끊어질 듯 이어지는 험준한 산길과 깊은 계곡 그리고 동굴을 거쳐 도원에 이르는 구도를 취한다.이는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의 시각으로 오른쪽의 도원세계는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법을 구사하여 도원은 기암절벽속에 숨겨졌지만 탁 트인 신비한 곳이라는 점을 잘 표현하였다. 몽유도원도는 시,서, 화 3가지 예술이 종합적으로 구현되었다. 시축에는 조선회화 극치라며  각 인물들의 친필이 전해져  그 내용 문학적 특징은 물론 각 인물의 서풍까지도 파악할수 있어 서예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3)몽유도원도 시화권 상설전시회 옆에는 "변화의 시작  종로모던을 기록하다" 전시가 있었다.

서대문안 종로는 대한민국 근현대 변혁의 중심이였다.조선왕조 기겅고가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고 근대 문화 기틀을 다진곳이다. 자동차,전차, 새로운 교통수단이 들어오고  파마가 등장하였다. 화신백화점의 새로운 상권형성과 한복이 변화되었다.재봉은 여성노동을 해방시킨 대발명이였다.  20세기 전반 전국에 모여든 국악인들이 종로 돈화문부근에 모여 있었다. 돈화문 바로 맞은편애 조선시대 조정 궁중행사와 음악 담당하던 장악원과 장례원이 있었다. 1910년 이후 장례원 후신인 이왕직아악부가 역할을 이어나갔지만  일제시대  궁이 열리면서 궐밖으로 나왔다.축음기,회사,방송국이 생기고 전문공연장이 생겨 국악이 활성화 되었다. 1899년 고종은  제국의 격에 맞는 근대도시 전환을 모색하는 광무도시계획 일환으로 전차를 개설하였다. 즉 전차노선과 은행은 근대국가로 출범을 선언한 고종 황제 최초 정부주도 기간산업 국책사업이였다. 

안채

무계원 개관10주년 기념 기획전시 오진암이 있었다.

(1)오진암의 역사와 예술인들 발자취~고급 한정식 오진암은 마당에 큰 오동나무가 보물처럼 우뚝한지라는 의미의 상호를 붙였다. 집터에 있던 오동나무를 보고 지은 것이다.본래 건축물과 오동나무는 조선시대   마지막 내시이자 수집가였던  송은 이병직이 살던 곳에 있었다. 근현대 풍상을 지나며 지금의 무계정사 터로 이전하게 되었다.익선동의 오진암은 예술가가 머물렀던 곳으로 오진암 이름을 가지기 전부터 서화가 김용진과 그 이후 1930년대에 송은 이병직이 살던 집이었다. 1953년 조씨가 가정집으로 사용되던 집을 인수하면서 서울시 등록 음식점 1호인 오진암이 되었다.그후 2010년 관광호텔 신축사업으로 철거하면사 오진암의 대들보,서까래,기와등을 가져와 무계정사지로 옮겨와 복원하고 현재 무계원이 되었다. 

(2)난죽~근대기에 난죽은 사군자를 대체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였다.사군자 그림은 묵란과 묵죽 두 화목에 집중되었다. 근대 묵죽화는 당대의 대가 해강  김규진,석재 서병오,일주 김진우를 중심으로 해강풍,석재풍, 일주풍 묵죽화 양식이 형성되었다. 대나무줄기를 괴석과 배치한 작품은 이병직의 묵죽의 영향을 받았다. 김규진의 신죽표현은 이병직의 경우 좀 더 정형화되었다.

(3)사군자~도덕적 인격의 완성자다운 군자로 구현된 군자상장인 사군자는 고려후기와 조선시대 크게 유행하였다. 대나무가 대각선으로 놓여 있는 상하 절단식 대각선으로 대나무를 배치하는 구도는 김규진이 풍죽을 그릴때 사용하던 방식이다.  여러요소를 저절히 조화시켜 화면 전반에 단정한 품격으로 그의 성품을 반영되고 있었다. 

(4)매석도~조선말기 난초뿐만 아니라 매화도 많이 그렸다. 홍매가 유행하였는데  조희룡에 의해 주도된 화려하고 고운 담채등을 주조로 한 조선말기 홍매는 일제 강점기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병직 매화그림은 조선말기 매화그림 전통과 스승 김규진의 중국 유학시 접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풍 영향을 받았다.김규진은 강렬하고 힘이 넘친다면 이병직은 단정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이병직 홍매는 절제되고 괴석도  매화와 보조를 맞춘 듯 정리된 모습이다. 

(4)이병직은(1896~197)서화가,미술품 수장가로  호는 송은이다. 고경당  당대 손꼽히는 부자이자 자선가이다. 수기자오의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 즐기는데 목표를 두고 강한 사군자에 매진하였다.김은호,허백련과 함께 동양화 지도교사 역할을 하였다.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그는  1931년까지 12회 입상을 하였고 경매회진행을 하였다. 교육에 적극적 투자로 효촌초등학교와 의정부고등학교설립에 절대적 공헌을 하였다.삼국유사,제왕운기,추사 김정희 글씨와 난초그림,김홍도,겸재 정선의 산수화등 많은 민족 유산들이 그의 손에 있었다. 

(5)김용진(1878~1968)은 근현대기 서화가로 1905년부터 서예와 문인화에 전념하였다. 1926년 중국인 화가 방락에게 오창석 풍의 서법과 문인화를 직접적 전수받았다.1921년 서화협회 정회원으로 들어가 서회협회전에 서예와 문인화를 제1회~9회까지 작품을 출품하였고 1930년 10회에는 과수를 출품하였다. 1922년 조선미전 1회 묵란으로 4등입선하였고  글씨는 안진경체의 해서와 예서,행서를 주로 썼다.그림은 선명한 담채를 가미한 모란,수련,목련,석류.장미와 같은 과수화훼등을 주로 그려 해상파와 관련된 신문인화풍 작품성향을 보였다.사군자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민영익을 사숙하고 그의 운미란을 국내 화단에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무계원을 나오니 일지 영혼의 그림 공작소 갤러리 B.O.S가 있었다.무계원옆  흰색벽체 건물의 전시관으로  마음의 정화 공간이였다. 힐링 에너지 힐링그림 특별 전시회로  화면 중앙을 응시하면 자연스럽게 힐링되는 그림 같았다. 명상요법의 과학적인 기초에 그린것 같은 그림으로 명상을 유도하고 있었다.목인박물관으로 가는 언덕길로 가을수채화 물결로 매우 아름다웠다.양반의 삶의 향수가 느껴지는 골목 같았다.목인박물관으로 가기위해 땀을 펄펄 흐르며 질주했다. 골목길 사이로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1865~1945)의 아버지 윤웅렬1840~1911)이 창의문밖 경승지에 지은 별장이 버티고 있었다.1906년 건립당시 벽돌로 지은 서양식2층 건물만 있었으나 윤웅렬이 죽은 후 3째 아들 윤치창이 한옥건물을 추가로 지었다. 인왕산 북쪽 계곡에 세워진 별장으로 외국으로 도입된 근대 건축양식이 주택에 적용된 사례이다. 안채는 근대 서울 한옥의 변화상을 살필수 있는 자료로 귀중한 문화유산 이였다. 열려진 대문을 어떤 중년 남자분이 닫고 있었다.대대손 종가의 위력을 보여주는 듯 했다.목재대문 기와담장 너머로 바위가 있는 마당과  한옥이 비추며 근대 양반의 정취가 담겨져 있었다. 돌담을 이룬 골목길로 빨강 단풍이 드리우며 매혹적이였다. 목재대문의 언덕으로  수비하듯 드리우는 단풍나무를 따라 언덕으로 인왕산이 병풍을 치듯 비추며 별장지 같았다.땀을 흠뻑 젖으며 정신없이 찾아간 목인박물관에서 소야대장님에게 전화를 했다.성격이 급하다 보니 나온 말들이니 모두 잊어 달라면서 용서를 구했다.소야대장님을 처음 본 순간 카리스마스가 넘치며 모델 같으셨다.

목인박물관

목인박물관은 인왕산과 북학산의 수려함과 함께 한양도성의 웅장함으로 우리문화유산이 있는 곳이였다. 6개 실내전시장에서 세계 각국의 목인이 전시되고   야외전시장에는 한국의 문인석,무인석,동자석 등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다채로운 석인을 만날수 있는 곳이였다.하얀집인 1층 매표소에서 소야대장님이 표를 끓어주셨다. 표를 끓으면 음료한장이 무료로 나와 페퍼민트 차를 마셨다.1층내부에 현판과 나전칠기 공예인 자개작품이 장식된 화장실문으로  고즈녁했다.차를 마시는 동안 회원님이 송편을 주어 맛있게 먹었다.휴식을 한 후  하얀집 2층 옥상으로 올라가니  연예인 사진 전문가인 레드작가에게 사진을 찍느냐 줄울 서고 있었다.레드작가님의 지시에 따라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고 회원님이 귤을 주어 먹었다. 전통 항아리들이 장식된 옥상에서 목인박물관 정원과 인왕산과 북악산이 매우 수려하게 펼쳐져 매우 아름다웠다.사진을 찍고 매우 곱게 정열적으로 물든 단풍나무가 드리우는 기획전시실 언덕길을 지나니  한양도성 아래 신비한 기암괴석이 드리우는 세미나룸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세미나룸에서  목인박물관 소장품 특별전 해주항아리가 전시되었다.해주항아리는 조선후기 일제감점기  19세기말~20세기 초까지 황해도 해주지역을 비롯해 봉산군,수안군,송화군,평안남도 등 북한 각지에서 제작된 민간 소비용 자기를 말한다. 1990년 후반으로 남한으로 유입되어 해주백자,해주요등 이름으로 불린다. 문양과 장식기법은 옹기의 영향을 받았고 태토 유약 성형기법은 백자 영향을 받아 백색 유약에 청색 안료를 사용하였다. 옹기와 백자의 영향을 모두 받아 독특한 매력을 가진다.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문양으로 청화,철화,녹화등  다양한 안료를 갖고 기물이 가득 차도록 시문하였다. 어문,노송누각문,모란문,국화문 등 문양들이 채화,음각,인화 스탬프기법등의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천화백자어문호,풀꽃문,수복강녕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투박하면서 힘찬 선들의 그림이 특징을 이룬 항아리였다. 골동품과 중국풍 카페트, 서양식 식탁장식과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로 고풍스러웠다.마당 중앙으로 한양도성이 병풍처럼 드리운 언덕으로 정원을 이루며  곳곳에 석인들이 전시되어 매우 고즈녁했다.즉 한양도성과 기암괴석,세미나룸,조각 작품,목인,예술품들이 조화를 이루며 매혹적으로 다가왔다.석인들은 각  지방마다 특색을 이루고 있었다.전라도는 경상도의 응회암(화산재가 퇴적되어 생성된 암석)을 재료로한 석인들이 많았고  경기도 지역 석인들에 비해 격식에 메이지 않아 표현이 자유로웠다.제주도 동자석은 현무암(마그마가 지표로 분출되어 빠르게 굳어진 암석)과 조면암(점성이 강해 유동성이 작고 돌에 구멍이 거의 없는)으로 만들어진 제주도 고유 석상이였다.동자석은 무덤앞에 망자의 시중을 들고 있고 경기도지방에 있는 사대부나 양반의 무덤에는 있고 왕릉에는 문인석,무인석,석수등만 있다. 남쪽지방 무덤에 있는 작은 석상을 동자석이라 부른다.대리암( 석회질암이 압력과 열을 받아 재결정되어 생성된 암석)으로 만들어진 석인,문인석,무인석,동자석 등 다양한 석인이 경기도에 많이 있다.부처님 동산이 있는 목인창고 전시장이 있었다.한국의 목인은 선조들이 주술,종교 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였다.무덤과 마을을 수호하는 목인, 불교 목조각상,신상,상여,장식용,목안,혼례사용된 목인,망르 입구 잡귀를 막아주는 솟대 등 쓰임과 종류가 다양하였다.전통적인 미와 선조들의 지혜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상을 엿볼수 있는 것이였다.목인창고를 감상하고 하얀집으로 갔다. 이경주작가 초대전  "아우라"제목으로 전시되었다.아우라는 그리스어로 숨,생명을 의미한다.사람이나 물체가 발산하는 기운 영적인 분위기를 뜻한다.예술작품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나타낸다. 나무로 만든 꼭두의 (아우라)는 작가의 근심을 덜어주는 동반자였다. 종이와 나무,흙을 소재로 민화풍그림과 나무조각이 매우 화려하고 생동감 넘쳤다.전통문양처럼 고전미가 넘쳤다.탈을 쓴 꼭두와  새가 있는 창 작품이 석인이 버타고 있는 정원의 창가로 비추며 운치가 있었다.목인박물관에서 내려오는 골목길로  은행나무 단풍낙엽조차 낭만적이였다. 대문사이로 작은 정원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이 비추고 은행나무가 우뚝솟은 1960년대 담장양식의 양옥집으로 매우 정겨웠다.골목길 사이로 담장없는 양옥집이 베이지빛 벽체와 적벽돌 벽체를 이루며 별장 같았다. 1960년대 양식을 흰색 페인트칠로 리모델링한  이태리가정식 "CON TE"로 20대 추억의 감성을 담고 있었다.한양도성이 있는 목인박물관에서부터 무계사까지의 골목길 경치로 사색적인 정취를 담고 있었다.  부암동주민센터 버스정류장에 갔다. 무계사부근은 무계정사길로 부암동주민센터에서 인왕산까지 구간길이였다.가을 단풍이 물든 무계정사길의 운치가 그려지는 동네 주변이였다.버스 창가로 우뚝솟은 은행나무가로수가 도로로 펼쳐져 매우 아름다웠다. 거리와 골목의 단풍색채가 매우 아름다운 수도 서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경복궁역 부근에 내려 전주콩나물국밥집에서  순두부와 비빕밥 세트를 먹었다. 유채꽃들녁을 이룬 강변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식당으로 1970년대 시장골목 식당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었다.무우짠지,콩나물무침,계란,김가로,깨소금, 새싹채소가 들어간 비빕밥으로  새싹채소로 인해 더욱  상큼하고 고소했다.양파와 새송이버섯 들어간 조개육수의 순부두짜게로 얼큰했다.고소한 달걀과 두부의 매우 부드러운 식감으로 힐링되었다.익은 맛의  깍두기,달큰한 콩자반,버섯향기나는  새송이버섯 볶음으로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 육수와 비빕밥의 정성이 가득한  가성비 착한 8000원 밥상이였다. 손님에게 정성껏 풍성하게 대접하려는 주인의 정성이 담겨진 식당이였다.경복궁역 상감행차도 부조가  입체감있게 장식되었다. 우리나라 조상 얼이 담겨진 중심거리임을 시사해 주고 있었다.

무계원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시화권 전시회
"변화의 시작" 종로모던 전시회
무계원~오진암 전시회
B.O.S 갤러리
반계 윤웅렬 별장
목인박물관으로 가는 길

 

목인박물관
목인박물관 매표소 내부
부부
꽃피고 새가울면 2
복숭아 유람기
축제2
새가 있는 창
탈을 쓴 꼭두
Life goes on
I am done 1,I am done2
축제5
축제3
밤의 점령들
이경주 "아우라" 전시회~ Life goes on

 

목단
청화백자호문호
청화백자노송문호
어변성룡
수복강녕
풀꽃문
청화백자포도문호
청화백자어문호
해주항아리전시회
목인창고
전주 콩나물국밥집
경복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