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밀양 위양지,영남루,향교,밀양시립박물관(2025년5월10일)

백재은 2025. 5. 12. 10:22

위양지
영남루
향교

5월10일~ 로망스토어여행사에서 밀양으로 여행을 갔다. 대구시에 이르니 금호강이  펼쳐지며  구름이 장관을 이루어 아름다웠다.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산세와 자연을 담고 있었다.밀양시에 이르기 전 가이드님이 밀양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밀양은  미리내동굴의 작은 부족국가로 자리를 잡아 발전된 도시로 부산과 대구부근에 위치하여 낙동강과 밀양강을 끼고 옥토가 많은 도시로 영남교통요지이다. 밀양8경은 표충사,제약산 억새,만호사 운해,쇠소리가 나는 돌바위의 만호사 경석, 얼음골, 나라가 어려울때 비석에 물이 내린다는 사명대사비석이 포함되는 아름다운 자연을 지니고 있는 도시라고 설명해 주셨다.밀양 도방천을 지나 시골정취를 지닌 마을로 밀양 위양지가 자리잡고 있었다.밀양 위양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신라시대에 만든 저수지이다. 위양은 양민 곧 백성을 위한다는 뜻으로 백성을 위한 저수지이다. 매년 5월이면 정자와 눈이 내리는 듯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이 어우러지면서 절경을 이룬 곳이였다. 저수지 물로 아래쪽 들판에 농사를 짓고 제방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아릅답게 가꿨다. 못 가운데 다섯개의 섬이 있고 둘레가 큰 규모였으나 점점 줄어 들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훼손된 이후 1634년 밀양 부사 이유달이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로 선비와 문인 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였다. 못 가운데 있는 완재정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안동 권씨   위양 종중의 입향조인 학산 권삼변(1577~1645)을 추모하기 위해 1900년 후손들이 위양못에 세운 정자이다. 신라때 만들어진 위양못은 저수지 가운데 다섯  개 섬이 조성돼 있는데 경관이 빼어났다고 한다.권삼변은 위양못 가운데 있는 섬에 정자를 세우고 싶어 완재라는 이름을 지어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뜻을 받들어 후손들이 정자를 세웠다. 처음에는 배로 출입했으나 후대에 다리를 놓아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완재정은 정면3칸,측면2칸 크기에 팔작지붕 건물로 온돌방과 대청을 두었는데 방은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아 공간을 다양하게 연출할수 있게 하였다. 5월에는 눈처럼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이 위양못에 잔잔하게 내려앉아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면서 완재정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곳이였다. 불두화가 청초한 내음을 뿜는 시골정취의 마을로 위양지가 버티고 있었다. 위양지 섬을 이룬 석교다리를 지나 돌계단과 석교다리의 섬으로 완재정이 버티고 있었다. 완재정으로 가는 길 부터 연못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초목들이 매혹적인 향기로 가득했다. 기와 황토돌담장의 문과 함께 안락한 휴식처 같은 방과 마루를 이룬 정자로 고풍스러웠다.옆문으로 위양지의 연못의 경치가 펼쳐지며 낭만적이였다. 완재뜻은 완연하게있다는 뜻으로 군자의 완연한 기품이 드리우고 있었다.고혹적인 향기를 발하는 초목들이 연못으로 드리우며 매우 환상적이였다. 테크길 언덕아래 연못으로 드리운 왕버들,이팝나무,팽나무등 초목들로 사색적인 정감을 자아냈다. 진귀한 나무들이 즐비한  위양지로  맑은 날에 못에 비친  청초한 하늘과 초목들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한 걸음 씩 옮길때마다 매우 환상적인 경치로 저절로 탄성을 자아냈다.위양지 입구로 먹거리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딸기,반건시,보리콩,서리때볶음,건대추를 시식하며 힐링되었다.위양지에서 밀양아리랑시장으로 향했다. 입체감있는 산세들이 매우 운치있게 비추었다. 밀양아리랑시장에서 점심을 김밥천국에서 달걀말이 김밥을 먹었다. 후라이팬에 달걀을 부쳐 말은 당근,계란,부추,우엉이들어간 김밥으로 고급진 김밥처럼 느껴졌다.배추맛향기의 김치,우동국물과 함께 한잎만 먹어도 배부르게 다가와 매우 든든했다.밀양아리랑시장과 마주보며 아동산에 영남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영남루는 조선후기 객사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누각 중 하나였다.밀양 남천강옆 아동산에 위치한 영남루의 누각에는  당대 명필들의 편액들이 즐비하여 웅장한 기풍으로 인해 당당하면서도 회화적인 아름다운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밀양강에 임한 절벽위에 위치하여 웅장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1931년 전국 16경의 하나로  선정되었고 조선후기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곳이였다.맑고 깨끗한 밀양강과 강물에 비친 영남루의 아름다운 야경은 최고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밀양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 후기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 전통 누각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면5칸, 측면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기둥 사이를 넓게 잡고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영남제일루라는 이름에 걸 맞다. 영남루라는 이름은 고려 말인 1365년 지밀성군사 김주가 영남사가 있던 절터에 새 누각을 지으면서 붙였다. 조선시대에는  객사 부속건물로 쓰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밀양 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었다.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한때 300개나 걸려 시문 현판 전시장으로 불렸다.북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있는  천진궁은 1665년 객사 부속 건물로 건립되었으나 곧 객사로 활용됐다. 영남루와 천진궁 입구 땅바닥에는 마치 장미나 국화 꽃송이가  촘촘하게 박혀 있는 듯한 돌꽃(석화)이 깔려 있다.밀양은 한양에서 부산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와 밀양강 수로를 통한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예부터 명승지로 널리 알려졌다. 영남루를 중심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인 천진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호인 아랑각, 경상남도 기념물 제167호인 밀양읍성이 연결되었다.단아한 자태의 일주문을 지나 밀양강을 바라보며 절벽위 영남루가 "ㄱ억자"형으로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되었다.침류각과 영남루를 이어주는 팔작지붕의 목재계단과 함께 능파각이 "ㄱ억자"형을 이루며 지금까지 봤던 누각중 제일 웅장했다. 영남루와 부속건물인 침류각은 월랑으로 연결되었다. 층을 구분하여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월랑은 그 위에 지붕을 얹어 화려했다.초목들이 운치있게 드리운 능파각  마루로 저! 멀리 천진궁과 영남루가 비추며   영남루로 연결되었다. 영남루의 편액과 함께 높은 천정,조각,기둥들이 매우 기품있게 빛났다. 영남루에서 밀양강변과 주변의 경치들이  펼쳐지며 매우 아름다웠다.영남루 앞 마당에 바위를 장식하는 꽃무늬는 자연이 남긴 석화였다.영남루와 마주보며 천진궁으로 단군과 역대 왕조를 세운 시조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이였다. 만덕문을 정문으로 정면 3칸,측면2칸에 팔작지붕이 얹힌 구조로 중앙 맨 윗자리에는 단군의 영정과 위패가 있고 동쪽 벽에는 부여 .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 위패가,서쪽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의 시조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였다.천진궁은 조선 현종 때인 1665년에 객사인 공진관의 부속 건물로 세워졌으나 경종 때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객사로 활용하였다. 만덕문과 천진궁을 수비하듯 드리우는 장대한 초목으로 운치가 있었다.마당으로 밀양읍성으로 가는 돌게단과 함께 박시춘의 옛집이 비추며 매우 싱그러웠다.영남루와 천진궁을 지나 밀양아리랑  노래비가 버티며  밀양읍성으로 가는 돌계단 옆으로 박시춘의 옛집이 자리잡고 있었다.한국가요계 거목 박시춘(1913~1996)은  유년시절부터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며 여러 악기를 연주하다가 "어둠에 피는 꽃"으로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1935년 희망의 노래,물방아사랑을 발표하며 인기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후까지 서민생활의 애환을 달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 전쟁때  전우여 잘자라등 수많은 국민애창으로 한국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곡가이였다. 우리나라 가요 1세대,기타연주자로  1982년 대중가요 작곡가로 처음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을 받았다.영남루를 중심으로 주변에 다양한 유적지가 산재하고 있었다.사명대사 동상과 밀양읍성으로 가는 돌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관아로 가는 길과 오른쪽으로 무봉사로 가는 길이 펼쳐졌다.무봉사로 가는 대나무 숲길이 언덕으로 펼쳐지며 매우 싱그러웠다. 영남루 아래 밀양강변으로 아랑각이 이어졌다.아랑각으로 가는 길로 성벽으로 영남루가 고개를 내밀고 언덕자락의 대나무군락으로 매우 청초했다.아랑각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조선 명종때 정절을 지키다가 억울하게 죽은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모신 사당이였다. 아랑각의 내삼문으로 굵은 나무가지의 초목이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내삼문을 지나 대나무 숲에 드리운 아랑각의 돌계단으로 철쭉과 초목들이 드리우며 강직한 정절로 비추었다. 협문의  돌계단으로  대나무가 드리운 아랑유지비로 가는 길이 운치가 있었다.아랑사에서 내려와 밀양강 수변 테크길을 걸었다. 밀양의 유적인 밀양관아,밀양읍성,태극나비,무봉사,천진궁,아랑사,석화,남천강 주교 배다리를 사진과 함께 글이 비석처럼 장식되었다.경남의 교통요지로 옛 선조들의 역사를 간직한 밀양임을 보여주고 있었다.아랑각을 따라 성벽같은 성으로 바위와 초목, 봄꽃들이 수를 놓고 밀양강의  맑고 장대한 물결로 저절로 심신이 정화되는 기분 같았다.밀양강을 비추는 산세가 매우  신비롭게 비추며 힐링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강변길 중 제일 아름다운 낭만적인 길이였다.밀양강변 테크길에서 제방위로 올라가니 장대한 가지로 드리운 가로수 숲길로 매우 청정했다.매우 울창한 가로수 물결로 도시문화를 잘 정비한 밀양시의 열정에 감동했다.가로수 물결사이로 시들과 사진작품들이 전시되었다.일상의 삶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들로 삶의 아름다운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사진작품들은 밀양시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었다.선예도와 색감이 매우 좋은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들로 매우 환상적이였다. 지금까지 걸었던 강변길 중 제일 아름다운 낭만적인 길이였다.밀양강 다리로  절벽위 영남루가 위풍당당한 자태로 뽐내며 매우 아름다웠다.즉 밀양강을 중심으로 영남루,천진궁,박시춘 옛집,밀양 아리랑 노래비,밀양읍성,무봉사,아랑각으로 매우 환상적인 밀양시 문화유적 명소로 손꼽히는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향교가는 길로  밀양강 제방 가로수가 매우 울창하게 펼쳐졌다. 도로옆  장대한 가지들로 뻗은 나무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모란화단을 이룬 도로옆 가로수길로 매우 인상적이였다.즉 문화와 자연을 잘 관리하는 밀양시의 모습을 엿 볼수 있었다.밀양향교는 공익 교육기관으로 밀양손씨 집성마을인 전통가옥이 밀집해 있는 교동마을 뒤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기와 황토담장의 밀양손씨 고가로 장대한 초목과 대나무군락이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 향교앞  밀양손씨 집성마을 전통가옥들이 유구한 역사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인 밀양교동 손병순 고가는 1900년 전후에 중수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손성중이 처음 지은 것으로 밀양 손씨 고택 가운데 가장 큰 만석꾼 집으로 불렀다. 좁은 주택지에 지은 도시형 한옥의 배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고택이였다.경상남도 문화자료인 밀양교동 손대식 고가는 교동마을 남쪽 평지에 자리 잡은 밀양손씨 가문의 옛 집이다. 조선 고종 광무 5년(1901)에 지었다.두 고가는 전통적인 한옥양식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잘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 고택이였다.국가등록  문화재 제151호인 밀양 교동 근대한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계 지방 은행인 구포은행 주주였던 손영돈 (1887~1954)이 차남 손정식을 분가시키기 위해 지은 주택으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한 집약적인 건물 배치와 안채 위주의 생활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남녀 거주 공간 구분이  약화되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며 목재,석재,붉은 벽돌,콘크리트,창유리,도배지 등근대적인 건축재료를 많이 사용하여  공간 구성,건축 구조,건축 재료 ,주거 의식 등에서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향교는 유교의 성현을 받들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풍화루 앞 삼문의 황토 기와담장으로 대나무가 드리우며 선비의 절개로 빛났다.향교에서 산봉우리들이 비추었다.비록 높은산은 아니였지만 빛의 차이로 음과 양이 구분되며 신비롭게 비추었다.초석위에 2층 누각 풍화루가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되었다. 풍화루와 함께 중앙 잔디마당을 중심으로 명륜당,동재,서재가 "ㅁ자형" 양식을 이루며 기품이 있었다.돌계단위 명륜당이 위풍당당한 자태로 매우 아름답게 비추었다.명륜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1618년 다시 지었다.새 날개 모양을 하고 기둥위에서 보를 받쳐주고 있는 익공은 17세기 모습 그대로이며 조선 중기 명륜당의 건축 특성을 이해하기에 좋은 자료였다. 마루 좌우에 방을 넣은 중당협실형 구조의 큰규모로 위용있게 비추었다. 유려한 가지로 뻗은 초목이 명륜당,동재,서재로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명륜당 뒷마당의 황토기와담장위로 뻗은 숲이 화사한 처마로 드리우며 매우 고즈녁했다.매우 청정한 향기로 샘솟았다. 향교옆 관리실 마당 황토기와담장을 이룬 쪽문으로 숲길이 이어졌다.대나무를 이룬 숲길로 매우 싱그러웠다.향교를 드리우는 대나무숲으로 천혜의 명당이였다.명륜당옆 대성전 마당으로 장대한 나무가지와 함께 하늘높이 우뚝솟은 초목이 선비의 충절로 드리며 고혹적이였다. 돌계단과 함께 성과같은 돌담장에 에워싼 대성전이 매우 고풍스렀다.지금까지 봤던 서원의 대성전 중 제일  운치가 있었다.성현의 혼이 하늘높이 추앙되는 공간처럼 위용으로 빛났다. 명륜당 잔디마당에서 선비풍류공연이 펼쳐졌다.선비풍류는 밀양의 국가 무형유산을 활용한 특화된 공연이였다.공연을 대기하는 한복의상과 향교의 분위기와 조화되며 옛 선비의 풍류 그림자로 비추었다. 응천교방무 공연을 하기위해 대기하고 있는 인간문화재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매우 귀중한 추억을 남겼다. 첫순서인 새터가을굿놀이는 밀양지역에 새터라는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민숙놀이로 가을마당이 끝나고 추수감사 행사로 행해진 민속놀이였다.공상타작,뿍대기타작,목메놀이,오헤야등 토속소리와 농악이 어우러져 벼타작을 하는 협동작업 과정을 엮어 풍년을 구가하면서 노는 놀이였다.생명의 평화의 날개짓은 평화의 상징성을 담고 있는 학춤으로 역동적인 배김사위를 통해 액운을 몰아내고 흰도포의 우아한 날개 짓을 통해 해원상생의 평화를 나타내는 천상의 학춤이였다. 남자독무의 공연이였다.날렵한 학같은 춤선과 아주 가볍게 뛰는 고난도 기법을 보여주었다. 밀양검무는18세기 응천교방에서 전승된 밀양의 대표적인 전통 춤으로 밀양 출신 기생 운심에 의해서 전해진 검무이다. 밀양검무는 두 명의 여성 무용수가 양손에 장검을 들고 날렵한 춤사위로 공격과 방어를 하고 마지막에 칼을 던지고 마무리 되는 무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88년 김은희가 복원하여 전승하고 있다.온화하고 날렵한 선으로 강렬하지 않은 검무였다.밀양의 전통민요인 노들강변, 매화타령 독창을 마치고 밀양아리랑은 다같이  춤추며 즐기도록 공연을 하였다.밀양아리랑은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아리랑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환조의 세마치장단이 주는 경쾌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우리 민족과 함께 굴곡을 헤쳐 왔던 노래이다.밀양의 전통음악은  한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가 보다 내적으로 감정을 되새기는 표현 같았다.전체적으로 날렵한 선을 지닌 온화한 미를 담고 있었다.선비풍류를 통해 각 지방별로 특색있는 우리민족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우리나라 국악과 민속음악에 대해 진귀함을 깨닫게 되었다.무형예술과 인간문화재 전통이 역사 길이 전수되길을 간절히 기원했다.선비풍류공연을 감상하고 밀양시립박물관으로 향했다.시립박물관가는  차창가로  나무가 매우 장대한 가로수와 함께  모란화단을 이룬 잘 정비된 도로길로 매우 인상적이였다. 유려한 창문장식의 밀양진로교육원으로 매우 산뜻했다. 아트센터가 마주보는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정원으로 잘 정비되었다.박물관  입구로 적벽돌양식의  밀양성당이 비추었다.밀양시립박물관은 밀양의 오랜역사를 잔직한 문화교육의 산 터전으로  역사실 민속실, 유학실 서화실,화석전시관,밀양독립운동기념관,어린이박물관으로 조성되었다. 선사시대 석시류,삼국시대 토기류,고려시대 청자류,조선시대 백자류 서화류 영남유림학자들의 문집류와  이를 간행한 문집책판 등 총 1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역사실 민속실은  약 2만 7000년 전의 구석기 유적인 밀양 고례리 유적과 금천리 신석기시대의 농경유적,변진 24국 중 하나로 세력을 형성했던 미리미동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밀양의 변천사가 전시되었다.삼한시대 밀양은 미리미동국의 주요권역을 포괄하는 중심지였고 주변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며 발달하였다. 3세기 후반 중국 진나라의 학자 진수(233~297)가 편찬한 삼국지에는 변진한의 24국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미리미동국은 오늘날의 밀양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 시기 삼한시대 문화상을 잘 보여주는 목관묘가 발굴되어 와질토기,철제무기,농기구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들여온  청동거울과 한국식 동검 등의 유물이 많이 나왔다. 이것으로 밀양지역이  주변 지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밀양지역의 토기는 사야계 토기와 신라계 토기로 나눈다. 삼국사기와 지리지는 미리미동국이 신라에 편입된 뒤 새로운 행정구역인 추회군으로 편제되었으며 경덕왕(16년) 757년에 밀성군으로 변경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밀성군은 신라 9주 가운데 양주 오늘날의 경남 양산 소속으로 현을 5개 거느렸다. 오늘날의 밀양 지역뿐만 아니라 경북 청도군과 경남 창녕군의 일부 지역이 밀성군의 관할 범위였다.고려청자는 고려시대 대표하는 도자기로 그 종류와 기법이 다양하다.제작기법에 따라 무문청자,음각무늬청자,양각무늬청자,투조청자,상감청자,진사청자,철화청자 등으로 분류된다. 12세기 중엽~13세기부터는 상감기법이 유행하였다.고려시대말에는 철화청자와 인화문청자가 제작되어 조선초기의 분청사기로 그 기법이 이어졌다.밀양에는 밀양강과 낙동강이라는 커다란 두 강이 굽이치며 흐른다. 예로부터 이 두 강 주변에 터전을 잡고 삶을 일구었다. 큰 강을 따라 형성돤 수로와 육로는 밀양을  교통의 결절지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밀양을 오가게 되었으며 영남대로와 낙동강 수로를 통해 물류와 문화의 거점이 되었다.조선시대 밀양은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 밀양읍성은 국방의 방어 요충지이면서 마을 주민을 수용한 조선의 성시형태를 갖추었다. 김종직을 필두로 많은 유생들과 명현을 배출했다.민속실은 밀양의 전통민속놀이와 3대 신비,우리나라 3대 아리랑 중의 하나인 밀양아리랑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되었다.오랫동안 농경사회를 이어온 밀양지역은 공동체 문화가 발달하였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공동체 놀이가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다. 인류무형유산으로 밀양  아리랑,감내게줄당기기가 있다.화석전시관은 고생대,중생대 등 전 세계 분포하는 주요화석 공룡 어류 244점 전시되었다.유학실.서화실에는  충절과 학문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밀양의 유학과 선비들의 삶을 만날수 있는 공간이였다. 밀양은 박익(13332~1398),변계량(1369~1430),김종직(1431~1492) 등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와 수많은 선비들이 활동한 곳으로 공자와 맹자의 고향을 뜻하는 추로지향으로 불렀다.많은 학자를 배출한 학문의 고장으로 조선중기부터 밀양은 각종 서책 간행이 성행했다.유교책판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새긴 인쇄목판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조선의 지식인 집단은 문중 학맥-서원-지역사회로 연결되는 각 지역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록물을 생산했다. 제작과정부터 비용까지 자체적으로 분담하는 공동체 출판의 형식이었다. 단순히 인쇄물의 생성을 넘어서 후학이 선학의 학문을 탐구하고 소통하며 전승한다는 점에서 텍스트커뮤니케이션의 원형이었다. 주제도 문학을 비롯하여 정치,경제,철학,대인관계 등 다양하며 궁극적으로 도덕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지향하는 점이 특징이다. 책판은 후대를 위해 파손되지 않게 엄격히 관리되어 지금도 바로 인쇄가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목판수장고와 유교책판으로 매우 놀라웠다.전시실에는 서화들이 전시되었다. 서예,병풍,민화,산수화등..으로 매우 경이로웠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에는  독립의열단 단장이였던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 열사 등 밀양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 조명해 볼수 있는 곳으로  1919년3월13일부터 일어난 밀양지역의 주요 만세운동과 파리장서운동,밀양경찰서 폭탄투척사건 등 밀양의 근현대사를 조명해 볼 수있는 곳이였다. 임진왜란 당시 승려 신분으로 평양성 탈환에 앞장쓰고 전쟁이 끝나자 포로들을 쇄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토쿠가와 이에야스와담판을 벌였던 유정대사의 충의정신이 살아있는 밀양은 선비정신의 점필재,김종직의 정신을 이어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거듭났다.이와같이 밀양은 신라시대 위양지,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밀양향교,밀양시립박물관,밀양의 문화,민속문화재,국가무형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는 문화의 도시라는 것을 깨달았다.거리 곳곳에 잘 정비된 자연으로 밀양을 다시 한번 오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다.서울로 가는 창가로 남천터널,대구로 가기전까지 산세가 매우 환상적으로 비추었다. 강을 휘감은 산이 매우 아름다웠다. 이팝나무물결의 산으로 율동감이 있었다. 연두와 초록빛의 배합으로 굽이치는 산세가 율동감있게 비추었다.생명력으로 약동친 산 가까이에 있는 기분 같았다.산에 둘러싸인 마을이 서구적인 정감으로 낭만적이였다.자연의 낙원같은 산세로 매혹적이였다.

위양지
김밥천국
영남루
천진궁
밀양읍성으로 가는 길
박시춘옛집
아랑사가는 길
아랑사
아랑사
밀양강
밀양향교
밀양손씨 고가
대성전
선비풍류공연

역사 민속실)

 



화석전시관)

밀양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