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군산 근대화거리 근대미술관,장미갤러리,군산근대박물관,구 군산세관 본관,근대건축관,공감선유,익산블랜드미카페(2025년8월2일)

백재은 2025. 8. 19. 13:04

미즈커피 골목
장미갤러리
군산 근대박물관
공감선유
옹고집쌀밥집
익산 블랜드미 카페

8월2일~여행 스케치에서 군산,익산으로 여행을 갔다.윤혜경님이 파이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휴게소에서 정호대장님이 12사도길 1박2일에 대해 권유하셨다.사업적인 수단이 아닌 진실한 태도로 다시 한번 섬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앞으로 전국 곳곳 아름다운 곳을 모두 갈것이니 천천히 여행을 준비하라하셔서 더욱 믿음이 갔다.  식당에서 나온 박준작가님의 깍두기,콩나물무침과 함께 윤헤경님이 준 파이로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다. 군산에 이르니 차창가로 바다가 아름답게 비추었다. 군산항을 중심으로 일제시대 근대건축들이 줄지으며 식민지 강탈의 역사현장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옛 건축양식을 이룬 근대건축들이 매우 고풍스러웠다. 흰벽체와 함께 회색 장식을 한  군산근대미술관의 창문양식이 인상적이였다.군산근대미술관은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으로 1911년 준공되었다.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은 순종 원년 1907년에 처음 개설되었으며 식민지 금융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은행의 자본으로 조선의 토지를 사들였고 그 토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에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건물은 1936년 조선식산은행에 매각되었으며 1938년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훗날 대한통운)로 주인이 바뀌었다. 이 건물은 영업장의 본관과 금고를 사용했던 부속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본관은 목조건물이고 금고는 별개의 벽돌건물로 지어서 본관 후문을 통해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현재 군산근대미술관으로 민병헌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민병헌은 빛과 어둠 사이 그 섬세한 회색의 온도로   한국 사진을 빚어낸 작가였다.그는 촬영부터 인화까지 전 과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하는 아날로그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를 실천해왔다. 흑백 사이 무수한 단계의 회색조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 시적인 흑백세게를 구축했다. 본관에서 금고로가는 마당으로 캐노피와  목재문이 정겨웠다. 금고관은 아주 자그마한 2층 양식으로 일제 강점기 금고전시와  안중근의사  여순 감옥 재현이 전시되었다.  전시된 글 중 특히 안중근의사의 조마리아여사 편지가 감동을 울렸다.미즈카페  골목으로 장미갤러리와 마주보며 매우 아담한 일본풍 정원으로 운치가 있었다. 회색빛 벽체와 함께 목재창문틀을 한 미즈카페와 장미갤러가 마주보고 군산근대미술관이 드리우며 레트로감성으로 가득찼다.미즈카페는 1930년대 건립된 무역회사롤 사용되었던 건축물이였다.이 일대는 1910년부터 1945년 까지 쌀 구탈의 거점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무역회사와 상업시설이 독점하는 거리가 되었다.장미갤러리는 일제강점기때 어떤 용도와 기능으로 상용햤는지 확인할 수 없는 건축물이나 1945년 해방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예술창작은 문학과 신파극이 두드러졌다.문학은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있으며 신파극은 군산좌(구 군산극장),희소관(구 국도극장)에서 주로 공연되었다.장미갤러리 1층에는 군산 출신 하반영(1918~2015)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었다.하반영은 서양화,도예,서예,수묵화 등의 장르에 얽매이지않고 가장 한국적인 미,민족의 혼을 탐구하는 작품세계를 지향했다. 초년에는 자연의 풍경이나 정물을,40대 이후 중년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초현실주의를,50대 중반에는 더욱 추상화되고 변화된 미래의 염원과 기원이  담긴 절대적인 추상회화를,60대 후반부터는 한국적인 미를 쉬지않고 탐구했다. 주제,구성력,기법,형식 등에 안주하지 않고 변신하는 작가로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환자와 불상한 이웃을 위해 기증한 영혼이 따쓰한 작가이셨다.그의 작품 하나 하나가 되어 환희의 빛으로 비추었다. 환희의 빛은 추상주의 작품으로  우주를 떠도는 율동감이 넘친  생명체 같았다. 2층은  "마음 풍경"주제로 정윤희의 개인전이 있었다.자연을 보고 작가의 마음을 담아낸 작품들이였다. 낭만적인 자연을 환희의 결정체로 담아냈다. 누구나 쉽게 감동하고 다가올 수 있는 작품들로 감동적이였다.장미갤러리를 지나 군산근대박물관이 군산세관과 마주보고 있었다. 정문 광장으로 고려시대 양식의 3층 석탑이 유려한 곡선미로 매우 단아했다.시간이 모자라 나혼자 근대미술관부터 장미갤러리까지 관람했는데 근대박물관입구에서 대장님과 회원들을 모두 만났다.가인대장님과 작가님들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박물관 1층 복도로 어청도 등대 모형이 장식되며 운치가 있었다.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이였다.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의 뗀석기에 비하여 돌을 정교하게 갈아 만든 간석기가 사용된 시기로 군산의 신석기문화는 바다와 밀접한 관련으로 해안가와 섬에 형성된 조개무지가 특징적이다.삼한시대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전환하는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300년경까지의 과도기적 시기이다. 이 시기 군산지역은 삼한중 한곳인 마한의 54개 소국 중에서 두세곳의 소국이 자리 잡고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군산은 서해중부지역 물류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 우왕 6년 군산의 세곡을 노린 왜구의 대규모 침입으로 최무선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하여 왜선을 무찌르는 진포대첩 승리를 거두었다.금강과 만경강,동진강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군산은 해상교통의 중심역할로 백제시대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중국왕조들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여 국제외교의 관문으로 큰 번영을 누렸다. 당시 군산의 망주봉 주변에는 숭산행궁,사신을 맞이하는 군산정,불교사원인 자복사,관아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객주는 전국 각지의 상품이 모이는 거점에서 상품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하고 창고업,화물수송업,금융업 등의 기능을 겸하는 중간상인을 말한다. 군산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라도의 조세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고 객주도 많았었다. 1899년 군산의 객주들은 일제의 세력을 막아내고자 영흥사를 설립하였고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육사업을 지원하며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였다.2층은 독립영웅관,3층은 근대생활관,기획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다.근대생활관으로 1930년대 시간여행이였다. 레트로 감성으로 모든 곳곳이 포토존이 되며 운치가 있었다.윤혜경님이 같이 사진을 찍자면서 친절하게 다가와 기분이 좋았다.사진을 찍은 후 같이 찍게되어 감사하다고 해 감동했다. 나를 진실로 대하는 마음이 전해져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느꼈다.기획전시실에서는 "천리따라 구비 구비"주제로 점점 잊혀져 가는 구비민요를 조명하고 있었다.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인생의 구비마다 민요를 불렀다.모든 민요는 나와 민중의 애환이 담겨있다.탄생,혼인,일할때,황혼너머까지 구비민요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2층 복도로 이희완의 "해망동의 추억",이철규의 "군산산수",태건석의 "작품83-을"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군산의 애환과 추억을 사색적으로 노래하고 군산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우리나라 대가들의 걸작품 같았다.구 군산세관 본관은  1908년 단층으로 지은 건물이였다.이 건물은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의 관세를 거두었던 곳이였다.구 군산세관 본관은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의 곡물을 수탈하는 역사적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후대에게 교훈을 주는 곳이였다. 구 군산세관 본관은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 적벽돌을 수입하여 1908년 유럽식으로 건축하였다.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건물의 외관을 꾸미고 목조를 사용하여 내부를 장식하였다. 또한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지붕을 만들고 그 위에  세개의 뾰족한 탑을 세웠다.한국은행 본점과 더불어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현재는 본관과 창고 건물만 남아있다.본관 건축이 매우 환상적으로 비추었다. 내부는 흰벽체와 함께 목재마루로 일본풍 정감을 지니고 있었다.양쪽 좌우 방들이 연결되고 창과 문사이는 아치형으로 근대 초기 양식을 볼수 있었다.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담고 있는 곳이였다.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시간이 모자라 모두 관람하지 못하고 근대 건축관으로 향했다.군산 근대건축관은 1922년 준공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이였다. 조선은행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중앙은행 격으로 일본제국주의 식민 통치와 아시아 침략을 지원하였다.당시 이곳의 주요 업무는 군산항을 통해서 반출되는 쌀 수익금을 예치하고 농지 매입을 위한 자금을 융자해 주는 일이였다.1953년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민간에 매각된  이후 화재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여 근대건축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건물 전면에는 화강석으로 장식한 기단과 중앙 현관,경사가 급한 지붕등을 배치하여 은행 건축의 장중한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군산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였다. 벽돌로 지어진 2층 높이의 건물로 그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높게 지어져 건물의 분위기가 매우 웅장했다.1층의 중앙홀이 2층까지 높게 뚫려진 복층으로 귀빈장 같았다.1층에는 강용면의 "민족의 함성"작품이 장식 되었다. 우리 민족을 위해 도움 주신 여러나라의 인물 및 캐릭터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공헌한 독립유공자의 인물을 표현한 작품으로 매우 놀라웠다.근대 군산의 공공기관,의료,금융기관,일반 건축물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현재 남아있지 않은 건축들이 너무 많아 매우 아쉬웠다.조선은행의 역할,아시아의 조선은행,금고속 조선은행 이야기로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 주제로 폭력과 저항의 경술국치(1910년),일제강점 36년,조선은 병참기지,조선어 말살정책,광기의 종말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되었다.특히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광기의 종말로 치닫게 되었다. 1942년부터 수많은 한국인을 징용병으로 탄광,광산,군수공장,비햐행장 등 군사기지 공사에 강제로 연행하고 1945년에는 생활필수품 등을 수탈하여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이용하였다. 2층에는 조선은행 군산지점 설계자 나카무라 요시헤이와 오스트리아인 안톤 펠러,군산 최고의 농장주 구마모토,군산지역과 일본의 매매가격 순이익 토지이윤을 비교, 군산저항의 역사, 군산항의 쌀 반출추이등이 전시되었다.일제의 우리민족 탄압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현장이였다.군산근대건축관옆 광장으로 임영경의 "길 111의 수근"이 장식되었다. 일제시대 쌀 수탈의 이동경로가 된 군산항의 뱃길과 그 주변에서 회환한의 삶을 살았던 부두 노동자의 삶의 길을 표현하고 그  중 항구 노역자 생활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박수근 화백을 통해 길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었다.군산항으로 저! 멀리 이름 모르는 근대건축이 비추며 일제 강점기 그림자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군산 근대거리를 갔다와서 윤혜경님이 샤인 머스켓을 주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공감선유로 가는 차창가로 베롱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마을과 드넓은 논밭이 조화를 이루며 생명력으로 약동쳤다.논밭 사이로 황토담장 목재문이 운치있게 비추었다. 싱그러운 논밭이 펼쳐지는 마을로 공감선유가 버티고 있었다.회색벽체를 이루어진 갤러리 공간들 마다  연못,잔디마당,언덕길,언덕정원을 이룬 전시,갤러리카페로 복합문화공간이였다.카페 메인 건물인 라운지1은  20세기 프랑스 현대미술풍 그림들이 전시되며 예술공간처럼 인도되었다.카페 창가로 카페와 바로 연결된 연못과 대나무에 드리운 초가집 전시실이 비추며 청초했다.초가집 전시실은 고구가와 함께 우리나라 자연과 인물들을 정겹게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연못을 지나 은행나무 가로수와 잔디를 이룬 홍가시 정원으로  별장 같았다.잔디정원과 연결되며 라운지2로 이어졌다. 야외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라운지2 내부는 야외 테리스와 함께  최고급 오디오 세트로 장식하며 한국의 여성,외국여성의 그림들로 가득찼다.누워있는,서있는,앉아있는,춤추는 여성들의 모습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하였다.틀래식 음악으로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였다. 초가집전시실 옆으로 갤러리1의 계단이 드리운 언덕정원으로 운치가 있었다. "ㄱ억자형" 양식의 통유리창을 이룬 갤러리1로 짙푸른 대나무가 정원을 에워싼 대나무 정원으로 재벌의 저택 같았다.통유리창으로 후정이 비추며 매우 아늑했다.통유리창으로 정원의 대나무들이 비추며 사색적이였다. 추상주의 작품과 현대 실험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었다.생명의 대지가 꿈틀거리는  자연의 신비를 노래한것 같았다. 반복된 숨결 작품은 인물들을 여러가지 형태로 재조합 실험작품 같았다.갤러리1 후문으로 연못 다리가 연결되며 낭만적이였다.연못 다리를 지나 계단과 2층을 이룬 갤러리2 공간이 펼쳐졌다.그랜드피아노가 놓여진 연주 공연장같은 실내 분위기와 함께 2층 쉼터로 야외 정원이 비추며 별장 같았다. 출입구로 나오니 갤러리1을 드리운 후정으로 이국적이였다. 바로 그 길 따라 대나무와 긴 가지로 늘어진 초목이 드리우며 싱그러웠다. 조형물들이 장식된 소나무정원과 마주하는며  갤러리3으로   운치가 있었다. 갤러리3은  이은정의 언어의 존재 주제로 전시되었다.이 순간 어떤 언어로 존재하고 있는가?...말이 아닌 방식으로 타인과 나를 연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다.조형물들이 전시된 소나무정원을 지나 계단 숲길을 내려오니 카페 홍가시 정원으로 연결되었다.라운지와 갤러리를 모두 관람하고 라운지1 카페에서 사과쥬스를 마시며 휴식하였다. 즉 공감선유는 건축,자연,예술이 조화된 매우 환상적인 문화갤러리 공간이였다.공감선유에서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차창가로 논이 아름답게 비추었다.군산폐교식당인 옹고집 쌈밥집에서 제육볶음 한상을 먹었다. 도시락통에 차려진 밥으로 정겨움이 뭄어났다.제육볶음의 비법 소스로 구수했다. 된장청국장찌게는  환상적인 전라도음식 맛을 자랑하였다.산나물의 진한 향기가 가득한 당귀절임은 환상적인 맛이였다.먹으면 먹을수록 그 향기에 취해 힐링이 솟구쳤다.열무김치는 시원하고 효소가 살아있는 감칠맛으로 입맛을 돋구었다.가지볶음은 매우 감칠맛을 자랑하고 있었다.가지요리는 감칠맛을 내기 어려운 요리인데 비법 간장이 맛의 관건인것 같았다.오뎅볶음,고추멸치조림,소세지볶음,콩나물무침, 무우의 씁쓸한 맛이 살아있는 무우생채무침,취나물무침은 추억의 도시락 반찬들로 매우 감칠맛이 있었다. 특히 오뎅볶음은 비법소스를 담은 환상적인 맛으로 지금까지 먹었던 오뎅볶음 중 제일 맛있었다.우렁이쌈장,생고추와 함께 저근대,치커리,상추,깻잎,배추 쌈채소는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처럼  채소향기가 진했다.각종 반찬들과 함께 비빕밥으로도 먹을수 있게 보리밥,우렁이쌈장,각종 쌈장,고추장,된장,참기름들이 진열되며 한식부페상 같았다.후식으로  누룽지와 매실차가 나왔다. 최고의 품질의 채소와 식재료,비법 양념을 담은 일류식당이였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교련복과 고등학교 교복,가방이 진열된 포토존에서 회원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추억을 소환하기에 바빴다. 회원님이 까망 콩국시과자를 주어 먹었다.콩과 기름의 고소한 맛이 조화되어 입맛을 자극하였다.윤혜경님이 다가와 교련복을 주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해 포토존에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유럽 목수국과  핫핑크 베롱나무 정원이 펼쳐지는 익산블랜드미카페에 갔다. 정호대장님이 들깨팥빙수를 대접해 주었다. 들깨의 고소함이 가득한 팥빙수로 지금까지 먹었던 팥빙수 중 제일 맛있었다.아침 휴게소에서 정호대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12사도길을 신청하였다.분수와 함께 드넓은 잔디마당을 이룬 카페로 싱그러웠다.잔디마당을 지나 스카이폴 수국정원으로 베롱나무와 목수국이 매우 탐스럽게  펼쳐지며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냈다.서울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푸른진주님의 수박과 스테비아,윤혜경님의 커피사탕,땅콩강정,카라멜,물망초님의 과자,가인대장님의 앵두콘스넥으로 너무 감사했다.붉으스레 수채화를 그리는 노랑해가  천안삼거리 휴게소에 이르러 붉으스레 비추며 안식의 종이 울려 퍼졌다. 

군산 근대화거리
군산근대미술관

 

장미갤러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해양역사물류관)

독립영웅관)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구 세관본관
근대건축관
군산근대거리
아이리스
프라하
고유정 "경계너머"
고유정 '머무는 속도"
고유정 "반복된 숨결"
고유정 "마주보다"
공감선유
옹고집 씸밥집
익산 블랜드미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