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칠곡 가실성당,대구 하목정,신숭겸유적지,옻골마을 돌담길(2025년8월6일)

백재은 2025. 8. 21. 10:27

칠곡 가실성당

 

대구 하목정
신숭겸 유적지
옻골마을 돌담길~회낭카페

8월6일~둘도모밴드모임에서 필립대장님 리딩으로 대구 베롱나무  특선여행을 갔다. 아침 휴게소에서 물망초님의 찰보리빵,봄희님의 방울토마토,떡으로 너무 감사했다.칠곡군에 위치한 가실성당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1895년  초대 주임 신부인 가밀로 파이아스 (하경조)신부가 다섯 칸 규모의 기와집을 본당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였다. 수로를 이용하여 내륙으로 천주교를 전파하고자 낙동강 선착장 가까이에 위치하였으며 이후 신자가 늘자 1923년  당시 주임 신부였던 투르뇌 (여동선)신부가 현재의 자리에 성당을 새로 지었다.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빅토르 루이 푸아넬(박도행)신부가  맡았다.가실성당은 지하1층,지상1층 신로마네스크양식  건축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다.언덕의 돌게단으로 십자가탑과 함께 성당이 비추며 고풍스러웠다.성당과 마주보며 잔디로 하나님,예수,성모마리아의 조각이  베롱나무에 드리우며 거룩으로 빛났다.베롱나무에 드리운 저! 조각상이 성당과 함께 비추며 매우 환상적이였다. 성당 뒷편 구 사제관이 이국적 정감을 자아냈다. 성당 아래로  초목이 드리우며  정겨웠다.잔디마당으로 동굴기도처와  성모마리아 상으로 평화로웠다. 언덕아래 하늘 높이 우뚝솟은 장대한 초목과 함께 성당이 비추며 전원적이였다.가실성당과 함께 주변 경치들이 마음의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순교사랑으로 얼룩진 성당이였다.하목정가는 차창가로  낙동강이 펼쳐졌다. 보물 제2053호인 하목정은 조선시대 정자건물로  대구에서 성주로 가는 도로의 낙동강 성주대교 입구에서 오른쪽  바로 달성군에 위치한다. 임란때 의병활동을 한  전의인 낙포 이종문이 선조(37년) 1604년경에 본채 바로 서편 낙동강변에 창건하였다. 원래는 주택의 사랑채였으나 안채가 없어진  후 정자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 백성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앞면3칸,옆면2칸의 넓은 대청에 방4칸을 세로로 덧붙여 평면이 정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조선 중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지붕의 양쪽 추녀를 조금씩 잘라 처마끝을 둥그스름하게 만든 방구매기 수법이 특징적이다. 건물 내부에는 김명석,남용익 등 유명인사들이 쓴 시가 걸려 있다. 인조가  왕손 능양군이었을때 이곳을 지나시다 몇날 머무르시고 가신 곳이다.그후  그의 아들 수월당 이지영이 인조임금께서 하사한 내탕금으로 부연을 새로 달아 1624년 중건한 유서깊은 문화유산이다.불천위  사당 양무사는 이종문이 하목정을 창건한지 11년 후 광해(7년) 1615년 본채 뒤에 가묘를 건립하여 선조의 위패를 봉안 후 대대로 주손으로 이어 오며 사당을 모셔왔다. 본채와 사랑채(하목정)를 에워싸는 대문의 돌담장이 "ㄱ억자"형으로  유교적 위계질서 처럼 질서  정연하게 비추었다."ㄱ억자형" 하목정이 비추는 대문과 "일자형" 본채가 비추는 대문의 잔디마당으로 박석과 돌계단이 펼쳐져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되었다.안채의 대문을 지나 잔디마당을 이룬 본채의 장독대로 정겨웠다. 본채 옆문을 지나 석류가 미소짓는  "ㄱ억자형" 하목정  누정으로 조선시대 매우 환상적인 조경건축을 보여 주고 있었다. 대청마루 문으로  베롱나무가 드리운 정원이 비추며 고즈녁한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하목정 마루에 난 창이 베롱나무 사진액자로 연출하여 황홀한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였다.직사각형 연못과 뒷문을 이룬 정자와 정원으로 베롱나무가 매우 화사하게 드리우며 고혹적인 향기로 가득했다.연못에서 언덕으로 주변의 산봉우리들과 마을의 경치가 비추며  하목정이 더욱 웅장하게 비추었다. 하목정을 바라보며 돌계단의 언덕위로 사당 양무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양무사로 가는 계단과 언덕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베롱나무의 화사함과 자연지형과 조화된 하목정으로 고혹적인 향기로 가득한 곳이였다.사방 어느곳을 봐도 무릉도원같은 하목정으로 매우 환상적이였다.하목정을 나와 동네길의 자두나무에 탐스러운 자두가 열려있어 따먹었다.꿀맛같은 자두맛으로 힐링이 솟구쳤다.식당가는 차창가로 강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 아름답게 비추었다.대구에 이르니  베롱나무 가로수 물결로 화사했다.초목이 즐비한  강의 섬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어바웃샤브에서 점심을 소고기 샤브샤브세트를 먹었다. 배추,청경채,숙주,버섯이 들어간  비법 육수의 샤브샤브로 갈깔한 맛과 담백한 맛의 육수 두가지로 나왔다.간장소스,들깨 소스등.. 3종류 소스로 찍어 먹는 샤브샤브로 소스맛이 매우 인상적인 맛이였다.매우 고급진 풍미를 담은 서양소스 맛 같았다.볶음밥은 다른 식당에서 맛 볼수 없는 환상적인 맛이였다.반찬으로 들깨 샐러드, 김치,게살마요네즈무침,어묵볶음이 나왔다.게살을 아주 잘게 찢어 마요네즈에 무친 게살무침은 매우 고소한 맛으로 입맛을 돋구었다.고추기름으로 볶아낸 어묵볶음은 매우 감칠맛이 있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어묵볶음 중 제일 맛있었다. 어묵의 고급진 풍미를 담고 있었다.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로 향했다.차창가로 매우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대구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동화천옆 신숭겸유적지 담장으로 드리운 베롱나무 물결이 매우 환상적으로 비추었다.고려태사 개국공신이며 평산신씨의 시조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은 신라 말기  전라도 곡성현에서 출생하였다. 태어나면서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용맹하였다. 활쏘는 재주와 무예가 뛰어나 장수다운 자질을 보였다. 장군은 서기 918년 홍유,배현경,복지겸 등과 논의하여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기927년 장군은 왕건과 함께 신라를 치고 돌아가던 후백제 견훤을 팔공산에 맞아 싸웠으나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다. 이때  장군은 절대위기에 처한 왕건을 숨기고 자신이 왕을 가장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여 후세에 충의와 절개의  사표가 되었다. 후삼국의 격전장 충절의 표상이 되었다.말달리는 신숭겸장군의 동상이 용맹하고 의기양야한 충절로 빛났다.홍살문으로 부터 언덕의 표충서원까지 베롱나무숲을 이루며 매우 화사했다.언덕의 정원길 마다 베롱나무가 드리우며 매우 낭만적이였다.순절단의 담장으로 베롱나무가 드리우며 고즈녁했다.기세 등등한 충절의 상징 금상 말달리는 신숭겸장군의 동상이 홍살문으로 부터 언덕의 표충서원까지 베롱나무숲을 이루며 매우 화사했다.언덕의 정원길 마다 베롱나무가 드리우며 매우 낭만적이였다.순절단의 담장으로 베롱나무가 드리우며 고즈녁했다.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개를 추모하여 건립된 상절단과 표충사가 굳게 문이 잠긴채 질서 정연하게 왕산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표충사는 선조(40년)1607년  외후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옛 지묘사 터에 세웠으나  고종(8년)1871년 훼철되었다. 그후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중건하여 1993년 장군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 표충사 언덕 아래로 순절단,연화대,순절지지비가 담장에 에워싸며 고즈녁했다.순절단으로 들어가는 문부터 담장,연화대,순절지지비까지 베롱나무가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순절단은 사당이 없을 때 신숭겸 장군의 뜻을 기리기 제사를 지낸 단소이다. 연화대는 하대석이 방형으로 그위에 연화문이 조각 되었다.고즈녁한 유적지와 베롱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사방 곳곳이 매우 운치가 있었다.신숭겸장군 유적지를 갔다와서 비올라님이 스테비아를 주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옻골마을로 가는 차창가로 왕산아래 신숭겸유적지와 함께 보호수같은 초목이 장대하게 드리운 동화천이  비추며 매우 아름다웠다. 옻골마을로 가는 입구부터 울창한 가로수와 기세 높은 산세가 드리우며 자연휴양림 같았다.박석이 깔린 화장실 건축이 눈에 들어왔다. 통나무벽체와  함께 슬래트지붕을 이루며  전원의 별장 관리소 같았다. 대구시 둔산동에 있는 옻골마을은 남쪽을 제외하고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주변 산과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라 불리었다.1616년 광해(8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경주 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 400여년 수령의 느티나무 보호수로 운치가 있었다. 비보숲과 연못으로 매우 싱그러웠다. 마을터가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 지류가 훤히보이므로 나쁜 기운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앞에 숲을 조성한 것이였다.400년된 아름드리나무들로 이룬 비보숲과 둥그런 섬이있는 직사각형의 연못이 조화를 이루며 매혹적이였다.쉼터를 지나 마을의 시작으로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400여년 수령의 거대한 회화나무  두그루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있었다. 옻골마을은 약 2.5km에 이르는 토담길과 돌담이 남아있는 마을로 3면이 웅장한 산에 둘러싸며 하천이 흐르는 천혜의 지형을 갖춘 전통마을이였다.산에서 흘러 내리는 하천으로 작은 석교다리를 이루며 운치가 있었다.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66호로 마을형성시기에 건립되었다. 옻골마을 옛 담장은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인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며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 정연했다. 전통가옥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들어 내는 돌담길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계절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고즈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힌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였다. 산 중턱에 정자가 비추는 마을길로 매우 싱그러웠다. 하천 다리를 지나 싱그러운 수풀과 초목이 토담으로 드리운 화전고택이 웅장한 산에 드리우며 정겨웠다.화전고택은 최인영 선생의 생가로 6.25이후 사랑채는 소실되었다. 2014년 정침과 아래채를 현재의 모습으로 개보수하여 장손 최윤돈이 관리하고 있다. 2014년 최인영 선생(1896~1951)은 최동집 선생의 12대손으로 국채보상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하신 칠호 최시교 선생의 손자로 태어났다.천성이 순후하며 희생정신이 강하여 항상 구휼에 앞장서신 도덕군자이셨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길흉대사에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도와주었고 매년 물이 부족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민들을 위하여 사비를 들여 거대한 농업용수지인 가산못 공사를 완성시켜  이 지역의 주민들이 걱정없이 농사를 짓게 하였다. 최흥원의 효심을 기려 정조의 명으로 세워진 최흥원의 정려각이 마을을 대대로 빛내주고 있었다.토담길로 팔작지붕이 드러내고 산이 비추며 고즈녁했다. 꽃밭을 이룬 담장길과 함께 담장을 드리운 석류,열매나무들로 정겨웠다.경주최씨 종가인 백불암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61호로 마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동집이 1630년에 지은 고택으로 대구 지역 가옥 중 가장 오래된 주택 건물이였다.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가  튼 "ㅁ"자로 세워져 있다. 고택의 오른쪽으로 보본당이 서있다. 백불암고택의 보본당은 백불암 선생이 반계수록을 최초로 교정한 장소이다. 승모각에는 정조가 백불암 업적을 칭송해 하사한 문서를 비롯해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고서와 호패,퇴계 선생의 성학십도를 만든 성학십도 병풍,제기 등 다양한 유물이 보존 되어 있다.토담길로 백불암고택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하고 슈가대장님한 고택에서 회원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어 같이 합류하였다.사진을 찍고 슈가대장님,회원들과 함께 카페회낭에서 휴식하였다. 카페 내부는 사색적인 가을 단풍 수채화 그림으로 아늑했다.  봄희님이 망고스무디를 사주어 먹었다. 망고의 청량감으로 더위와 땀을 식혀 주었다.즉 옻골마을은 문화재와 효와 궁휼정신이 살아 숨쉬는 우리나라 전통마을로 천혜의 자연지형을 갖춘 매우 환상적인 곳이였다. 지금까지 본 전통마을 중 제일 아름다운  마을이였다.옻골마을갔다와서 루체님의 방울토마토와 샤인 머스켓,꽃님의 방울토마토로 너무 감사했다.칠곡 가실성당부터 대구의 베롱명소인 하목정,신숭겸장군유적지,옻골마을까지 베롱나무와 조화된 매우 환상적인 길로 카타르시스가 넘쳤다.필립대장님을 비롯하여 슈가대장님,늘보작가님이 사진을 찍어 주셨다. 필립대장님은 낭만적인 감성으로 담아주셨고 늘보작가님은 재빠르게 아름다운 배경을 포착해 담아주셨다.슈가대장님은 말없이 침착하게  사진을 찍어주셨다.항상 밝은 이미지를 간직하고 계신 대장님으로 원만한 성품을 지니신 분 같았다.

가실성당
하목정
어바웃 샤브
동화천에서 신숭겸유적지
신숭겸유적지
옻골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