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약현성당(2025년8월12일)

백재은 2025. 8. 23. 14:12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철역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약현성당
식당가는 길
솔솥서울역점

8월12일~ 재미로밴드모임에서 홍두깨대장님 리딩으로 천사걷기를 하러 가기전 점심을 우리집 근처 큰집멸치국수집에서 김밥을 먹었다. 고소한 맛의 김밥과 함께 비법육수와 싱싱한 맛의 김치로 한끼가 든든했다. 서소문성지는 조선시대 국가 공식 처형지였던 서소문 밖 역사 유적지에 조성된 성지였다.서소문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출입 성문이던 네 개의 도성 대문과 네 개의 소문 가운데 하나로 왕래가 잦았던 곳이였다.삼남지방의 물류가 집결되어 도성으로 반입되는 통로였으며 도성 내외를 잇는 육로가 교차되어 성저십리 내  번화한 지역 중 하나였다. 이러한 위치적 특성으로 서소문밖 네거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칠패시장과 서소문 밖 시장이 서로 이어지며 번성해 종루가상,아현과 함께 한양의 대표적 시장으로 상업적 농업,수공업이 성행하였다. 아울러 중국으로 향하는 조선시대의 1번 국도인 의주로와 접해있어 한양도성 밖의 대표적인 외교와 상업활동의 중심공간으로 발전했다. 서소문 밖의 네거리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지로 조선 초기부터 한양의 공식 처형지로 지정되었다. 당고개,새남터, 절두산과 더불어 서소문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다.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년 넘는 세월동안 이곳 서소문 밖 4거리는 1801년 신유박해,1839년 기해박해,1866~1873까지 병인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다.서소문역사박물관은 한국 최대 순교성지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 박물관이면서 미술관, 서소문역사공원으로 "ㅅㅅㅁ"를 형상화 하였다.첫번째 "ㅅ"은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두번째 "ㅅ"은 대지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 "ㅁ"은 순교 정신을 간직한 성지를 상징한다.  한글을 모티브로 하여 하늘과 사람 ,그리고 땅의 조화를 나타낸 디자인이다.지상 서소문 역사공원에는  망나니우물 현장과 함께 순교자 현양탑,노숙자 예수, 서소문 밖 연대기 조형물이 있다.순교자 현양탑은  한국천주교화 성인의 탄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노숙자 예수는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으로 노숙인 모습으로 예수를 표현했다. 작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사랑을 실천했던 예수에 대한 상념을 일깨우고 있다. 망나니우물은 고통을 주지말고 죽여달라고 망나니에게 돈을 던져주던 곳으로 망나니가 사람을 죽이고 칼을 씻었던  우물이다.서소문 밖 연대기는 조완희  작품으로 앞은 사람 인자와 서소문의 ㅅ자를 벽을 딛고 서있는 사람들의 군상으로 형상화했다.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음영의 흐름은 마치 오랜 자연의 변화를 보는 듯하다. 과거 서소문 밖 모든 사람과 현재 사람들과의 만남을 표현하고자 했다. 뒤는 조선후기 1801 신유박해,1839기해박해,1866 병인박해를 거쳐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작은 십자가들로 이루어진 칼 형상으로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지하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이루어졌다.벽체로 조준재월락재천수상지진 작품이  새겨 있었다. 1801년 순교한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가 남긴말을 한글,한자,영자를 돌출구조로 표현하였다. 적벽돌 벽체의 지하  광장은  맑은 하늘햇살이 비추는 공간으로  우주를 좌정하시는 하늘과 관통하고 있었다.광장으로 이경순순교자의 칼이 의로운 이들의 기개가 하늘로 관통하듯 했다. 조선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하여 중첩되게 배열함으로써 이 땅에서 목숨을 잃은 의로운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자 하였다. 최의순수난자는 식민의 유산을 떠안은 채 다가온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통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였다. 절제된 형태와 재료의 물성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에는 길고 긴 어둠의 세월을 견뎌 낸 우리의 처연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지하 1층 전시실로 가는 복도로 이경순의  순교자의 길이  부조 조형물로 박해와 수난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단순한 입체 형태를 실제 크기 그대로 표현하였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도구와 순교할 때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의 메세지를 힘차고 강한 느낌의 덩어리로 표현하여 입체감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의미 전달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내부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도구 전시  뒤쪽 공간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모든 장면에 희망의 빛이 담기도록 표현했다. 조광호스테인글라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메세지를 빛과 색채로 표현하였다. 황색을 중심으로 순교의 영광을 표현하여 순교자들의 수많은 사영이 역사 안에 녹아 있다. 선과 면의 기하학적인 형태에 운동감을 부여하여 동적인 느낌이 들도록 한 작품이였다. 최종태 기증 전시실은 영원을 담는 그릇 주제로 전시되었다.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평생 창작해온 작품가운데 157점을 기증하여  2024년 기증전시실을 열었다. 작가는 삶과 종교 예술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인간이라는 소재를 통해 탐구해 온 한국 현대 조각계의 거장이다. 또한 한국 현대조각내 또 하나의 흐름으로서 카톨릭교회 조각이 현대화,토착화될 수 있도록 앞장서 온 선구자이기도 하다. 사상과 종교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세계 만나는 전시였다.응축되고 집약적인 내용을 담아 단순,간결한  추상주의 작품들이였다.작품들이 매우 친근감있게 다가왔다.특별전시회로 세상의 영혼들 주제로 전시되었다.우리나라는 조선후기 1893년 미국 시카코만국박람회 1900년 프랑스파리만국박람회 1902년 베트남 하노이박람회 3번의 세계박람회 참가하였다.지하2층 상설전시관 제1전시실은 조선 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을 담았다.18세기를 전후한 조선후기 사회에서는 성리학,양명학,실학,사학으로 지목되었던 천주교 사상을 포함한 서학,동학 그리고 각종 종교 신앙 등 다양한 사상이 성행했다.그리고 이들 사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정신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유학적 성리학적 사유에서 벗어난 모든 사유체제를 사학 즉 그릇된 학문으로 단정했다. 18세기 이래 천주교 사상을 포함학 서학이 그릇된 학문의 대표사례로 지목되었다면 19세기 중엽에는 동학 또한 사학의 한 갈래로 등장했다. 18세기 말엽 이후 조선의 사상계에서 드러난 특이한 경향의 하나는 천주교 사상을 포함한 서학사상을 들 수 있다. 한역서학서를 통해 전파된 보유론적 천주교 신앙은 서학이 유학에 대립된 사상이 아니라 유학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준다는 이론이었다. 그리고 한역서학서를 통해 접하게 된 과학기술과 역법에 대한 호기심은 점차 그 배경사유의 관심으로 확장되어 갔다.조선후기에는 척불숭유론에 대한 인식과 배척은 게속되었다. 하지만 이에 맞서 불교의 종교적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노력은 지속되었다.조선의 송시열 등은 명나라가 망한 후 조선에서 유학의 명맥을 보존하고 훗날 유교 문명의 부활을 꿈꾸었다.성리학 내에서 허학과 공담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또 다른 유학의 일파였던 양명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실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1800년 천주교에 대한 온건한 정책과 탕평책을 써 오던 정조가 승하했다. 어린 순조가 11살 나이로 왕위에 올랐고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여  노록 벽파가 정권을 잡았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는데 천주교 탄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상설전시관 제2전시실은 서소문 밖 네거리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았다.전시실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순교의 빛으로 우주를 요동쳤다.지하2층은 흰색의 연속적인 반원형의 장식 벽체로 격조가 있었다. 통창으로 조각 작품들과 함께 사윤음, 여러가지 조가작품들이 십자가 사랑의 순교로 침묵해 있었다.한국 십자생도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 당부 말씀을 한국천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 세부분으로 나눠 나전칠화기법으로 조형화한 작품이였다.손승희척사윤음은 신앙 선조들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빛으로 부활하는 영원한 신앙의 기둥 빛으로 상징화한 작품이였다.김기희103위 성인을 위무함,최지만순교자의 무덤,배형경하늘과 대지 사이에 사람이 있다  작품으로 순교빛이 하늘을 요동쳤다.상설전시실을 지나 콘솔레이션 홀 양식이 거룩의 빛으로 빛났다. 조선시대 이땅에서 목숨을 다한 과거 모든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인들에게 평화를 주는 공간이였다.  금민정의 레퀴엠을 위한 영상,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전도, 스테인드글라스,러시아이콘전,고구려 고분벽화 널길의 안과 밖, 미디어아트가 상영되는 곳이였다.지하3층 박물관의 하늘광장은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을 넘어 하늘까지 열려있어 땅과 하늘이 소통하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이다. 낮에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밤에는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즐길수 있는 문화공간이였다.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잘 나타내주는 장소인 하늘광장으로 주요지점이 지상과 연결되어 존재하였다.하늘광장에는 현장에서 박해받다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한 작품인 정현서 있는 사람들침목으로 만들어졌다.거룩한 숨결로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이한권영웅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시선을 반영하듯  왜상기법을 이용하여 한 사람을 수직으로 길게 늘여 놓았다.십자가를 바라보듯 하늘을 향해 우뚝서 있는 모습 같았다.하늘광장 옆 내부로 미디어 아트 좁은 문은 하늘길이 순례자의 길임을 뜻하고 있었다. 권선만발아는 비움을 통한 생성을 표현하고자 원초적 물질인 자연석을 소재로 한다. 돌이 가진 본연과 인공의 물성을 대비시켰다.콘솔레이션 홀에서 지상으로 가는 복도로 천장의 조형물이 거룩의 광채로 빛났다.중림동 약현성당은  최초 서양식 성당이였다.1892년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가 내려다 보이는 약현 언덕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식 성당을 지었다.1886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천주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명동 성당 아래 공소로 설립되었다. 1891년 당시 명동 성당 주임신부였던 두세 신부가 합동에 대지를 마련하고 부주교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와 시공감독을 맡아 1892년 탄생한 약현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 절충해서 지었다.고딕적인 요소가 부분적 반원형의 둔중한 아치형태 지붕과 창의 면적을 좁게 나타내는 등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양식을 갖는 벽돌조 건물이다.옆면 창은 처막 높이가 낮아 뾰족 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며 앞면의 출입구와 옆면 좌우로 돌출한 출입구 창 부분이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 모양을 하고 있다.내부는 간결한 기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이루고 있었다.솔솥서울역점에서 저녁을  꼬막솥밥을 먹었다.샐러드,김치,젓갈무침,무우절임, 육수,구운김,요구르트가 한세트로 나왔다.체인점 풍미를 지닌 맛이였다.저녁을 먹고 맞은편에 앉으신 해피맘이 오렌지와 참외를 주어 너무 감사했다. 투섬플레이스에서 한 회원님이 과일팥빙수를 주었는데 너무 달았다.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도중 서울역이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되었다.역사 길이 길이 문화유산으로 빛날만한 근대건축의 금자탑이였다.수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길로 일몰이 진핑크빛 물결로 매우 환상적이였다.

큰집멸치국수
성모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약현성당
솔솥서울역점
투섬플레이스
서울역
일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