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집에서~수원행궁(야경)까지(2020년10월11일)

백재은 2020. 10. 17. 11:38

 

분꽃

 

수원화성 행궁은 정조가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조선시대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로 지은 어머니 혜경궁 회갑잔치와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며 잠시 머물렀던 행궁이다. 달빛정담 주제로 펼쳐진 화성행궁 야간 개장으로 행궁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향했다. 30분쯤 걷다 보니 화려한 문양의 2층 누각을 지닌 "팔달문"이 남문시장을 바라보며  수비하는 거리로 매우 활기찼다. 수원천의 시원한 물줄기 소리와 함께 "동남각루"를 향하여 "남수문"으로 이어지는 성곽들이 고풍스럽게 시장거리 도로 위로 장식하고 있어 옛 선조들의 풍류소리로 가득했다. 40분쯤 걷다보니 정조가 수원을 제2도시임을 밝혔던 은은한 종소리의 "여민각"을 마주보는 행궁광장이였다. 정조가 수원화성 행차시 화성부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자들에게 죽을 주어 진휼을 베풀었던 곳으로 저! 멀리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빛줄기가 비추며 사랑의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것 같았다. "홍살문"을 건너 세속과의 정화인 돌다리를 건너니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 뜻인 행궁 정문의 "신풍루"로 삼문과 함께 돌기둥이 초석을 이룬 나무기둥위에 화려한 누각이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신풍루 좌우는 기마병인 친군위가 머물렀던  "남군영"과 "북군영"으로 기와 담장사이로 팔작지붕 아래 빛줄기가 궁을 지키는 초석으로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곁에서 돌본다는 뜻을 지닌 "좌익문"과 "중앙문"을 거쳐 화성행궁의 정당인 "봉수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봉수당"은 1795년 정조 어머니이신 혜경궁 장수를 비는 회갑년 잔치로 70종음식과 42개 상화를 올렸던 곳으로 정조효심이 깃든 곳이였다. 봉수당 왼편은 혜경궁 만수무강을 비는 "장락당"인 혜경궁이 머물렀던 행궁으로 현판 가장자리를 장식한 화려한 문양과 기와 천정의 장식이 독특했고 안에서 복이 생긴다 뜻을 지닌 "복내당'은 정조 행차시 머물렀던 곳으로 검소하고 안락해 보였다. 즉 어머니를 존대하는 정조의 효심과 검소한 그의 성품을 엿볼수 있었다. "복내당" 앞은 "유여택"으로 정조왕이 신하 접견했던 곳으로 창살무늬가 있는 문과 난간이 장식된 정자같은 마루가 왕의 위엄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전통 악기들이 배치 되어 화성행차의 풍악이 울려 퍼지는것 같았다. "유여택"앞은 비장들이 대기를 하고 사무를 봤던 "비장청"과 문서기록을 담당하는 관리인 건물인 "서리청"으로 기와지붕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된 건물로 고단한 하루에 휴식하는 삶의 노고가 느껴지는 엄숙과 고요가 흘렀다. 그리고 돌기둥 초석에 나무기둥으로 받치고 있는 누각 2층 나무계단 양식과 마당에 들어 설때마다 건물과 건물사이 마주보며 매우 고상한 날개짓의 유려한 곡선미를 이룬 기와 지붕들이 텅빈 곳간에 비추는 환한 등불과 함께 불쌍한 백성들에게 베푸는 애민의 곡조가 흐르는것 같았다. 그리고 잔치나 행사를 가질수 있는 큰 마당과 연결된 행궁은 "노래당"과 '낙남헌","득중정"이였다. "노래당"은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편안히 노후를 지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과거시험과 양로연의 행사를 열었던 "낙남헌"과 북쪽으로 연결되고 정조가 활을 쏘았던 "득중정"이 남쪽으로 연결된 곳으로 정조가 여러 행사를 하다가 휴식할수 있도록 배치한 실용적인 곳이였다. 매우 고상한 아치형 벽돌로 감싼 나무대문으로 연결된 기와담장의 아주 작은 나무문짝과 팔작지붕의 기억자형 건축양식이 왕의 거처로는 매우 놀라울 정도로 검소해 보였다. "낙남헌" 마당과 "득중정"을 바라 보며 높은 언덕 팔달산자락 위 위급한 상황시 위험을 알리는 군사 시설인 "내포사"와 함께 기품있는 소나무 숲속이 펼쳐진 행궁 후원인 "미로한정"이 있었다. 늙기전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행복이라는 정조가 쉬고 자 했던 정각으로 "신풍루"가 보이는 정문과 "득중정","낙남헌",주변 수원시내 정경들이 반짝이는 불빛으로 펼쳐졌다. 즉 아들 순조에게 왕위 물려주고 수원 행궁에서 여생 보내려고 했던 정조 마음이 담겨진 곳으로 그 꿈을 펼치지 못한 진혼곡 빛줄기만 흐르고 있었다. 그 빛줄기를 따라 행궁을 묘사한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며 "낙남헌"에서는 3명의 무용수가 인형처럼 우리 전통 춤을 추고 있었다. 즉 정조의 업적을 기리며 그의 한을 달래 주는것 같았다. 불빛은 절정으로 달하여 순조가 아버지 정조 어진을 모시고 그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유덕을 받들기 위해 세운 건물인 사적 115호 "화령전"이 600년 넘은 느티나무 향기와 함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담장위 싱그러운 향기로 가득한 느티나무들이 기와 담장과 솟을 대문들을 감싸는 매우 고즈녁한 분위기로 압도 되었다. 입구부터 금빛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빛줄기 따라 싱그러운 나무향기가 외삼문을 감싸고 있는 진주처럼 빛난 담장에 나뭇잎들이 그림자로 새겨지고 위풍당당한 복도각이 있는 정조어진이 모셔진 "운한각"의 목재건축이 화려하고 웅장했다. 청렴어린 소나무가 뒷마당을 병풍처럼 둘러싸인 "화령전" 중앙에  소나무가 학이 날개치듯 뻗어 목재 양식이 귀풍스러운 자태로 빛났다. 그리고 팔작기와 지붕의 곡선미와 위용한 자태로 떠 받치는 돌위에 목재기둥,천정장식,문짝장식들이 사방으로 봐도 매우 화려한 멋스러움으로 매우 사색적인 정감 분위기를 자아냈다. 즉 "화령전"은 정조어진을 모시고 추모를 지내는 궁궐양식으로 지어진 그의 아들 순조의 어진 효심을 볼수 있는 조선 최고의 영전건축 이였다. 그리고 야간개장 축제로 "노래당"에서 수원화성에 대한 개요가 화면을 통해 울려 퍼졌다. 수원화성은 정조 아버지인 사도세자 현륭원을 당시 수원도읍부였던 현재 화성으로 옮기면서 그곳에 살았던 백성들을 수원화성으로 이주 하도록 국가에서 넉넉히 베풀면서 아버지곁인 수원 신도시를 구상한 효심과 애민사상이 깃든 곳이였다. 그리고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 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건설하게 된 정약용의 실학사상 바탕위에 몇층의 누각에 앉아 대포를 쏘고 여러개의 벽돌 구멍을 통해 적을 방어하는 서양과 동양 성곽 집약체였다. 그중 "방화수류정"은 정조가 직접 활을 쏘았던 곳으로 도심 전체를 방어하고 공격할수 있는 최고의 지역이였다. 당시 당쟁이 극심했던 정세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론과 연결된 시장경제인 한양에서 수원을 경제 발전의 제2도시로 건설하고자 팔달문을 통한 시장상권을 이루고 국가가 토지를 주어 농업발전을 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신도시 건설인 화성을 건설하면서 가뭄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정조의 경제개혁 추진력으로 저수지를 개발하여 가뭄을 해소하고 농업연구와 농업경제 발전을 하였고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는 인권보호로 1794년~1796년사이 짧은 기간안에 화성이 완공 될수 있었다. 이와같이 효심과 애민사상,노동권 보호,군사,정치,행정,경제발전에 바탕을 둔 수원화성이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면서 90프로 이상이 훼손되었다. 정조때 "화성의궤"의 정확한 돌 갯수와 명칭,그림등 축성의 전과정을 모두 상세히 서술된 역사기록으로 다시 복원되어 1996년 유네스코 셰계문화유산에 등재 될수 있었다. 즉 수원화성의 역사적인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매우 값지고 귀중한 시간이였다.이와같이 수원화성 행궁은 자신을 검소함으로 단장한 채 불쌍한 백성들을 베풀고 백성을 행복하고 편하게 살기 위해 왕도정치를 구현한 정조의 뜻이 담겨진 곳이였고 어머니 혜경궁 회갑을 수원행궁까지 능차하여 온 백성과 베풀며 행했던 지극한 효심과 애민정신이 깃든 곳이였다. 그리고  아버지곁인 제2고향인 수원 행궁에서 어머니 만수무강을 빌며 안락하게 보내고자 했던 곳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 유덕을 받들기 위해 아들 순조가 효심으로 행궁안에 정조어진을 모시고 추모를 지내는 영전을 건축했다. 즉 지극한 효심을 바탕으로 왕도정치 실현을 낳은 조선시대 최고의 화성과 행궁,영전이였다. 

 

분꽃

 

남문시장거리 팔달문

 

 

수원천위 남수문

 

여민각

 

화성행궁 광장

 

 

신풍루
담장에서 바라 본 남군영

 

좌익문

 

봉수당

 

 

 

 

 

 

 

 

장락당
복내당

 

 

유여택
비장청
서리청

 

 

 

 

기타등...
노래당
득중정
낙남헌
낙남헌에서 무용공연
행궁후원

 

후원에서 바라 본 경치

 

내포사

 

미로한정
화령전앞

 

 

 

 

 

 

화령전

 

 

 

 

 

 

 

 

 

악기들

 

 

행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