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8일~아름여행사에서 이해경언니와 함께 해남으로 여행을 갔다.조식으로 떡이 나왔다. 정성껏 빚은 떡으로 달지않아 너무 좋았다.떡1개로 채워지지 않아 휴게소에서 떡코치를 이해경언니와 나누어 먹었다.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떡코치로 조미료맛과 기름맛으로 후회하였다.목포에 이르니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다.점심을 목포항 부근 신해안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호박,무우,팽이버섯,파가 들어간 갈치조림으로 깔깔한 맛으로 짜지않아 너무 좋았다.청어구이,게장,새끼갈치조림,오뎅볶음, 연근조림,숙주나물무침,도라지무침, 호박볶음,멸치볶음,김무침,부추무침, 열무김치,김치로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반찬들이 감칠맛이 없어 너무 아쉬웠다.그중 싱싱한 청어구이는 짜지 않아 너무 좋았다.우리 밥상에서 국이 없다고 요청을 해 황태국을 서비스로 주셨다.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퍼지는 황태국으로 감칠맛 있었다.점심을 먹고 목포에서 해남으로 향했다. 차창가로 유달산이 보이는 목포케이블카와 목포대교,신이교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아름다웠다. 차창가로 목포의 바다를 감상할 수가 있어 너무 좋았다.해남시에 도착하여 산이정원에 갔다.해남 솔라시도 산이정원은 산이 정원이 되고 바다는 호수가 되는 16만평 간척지의 기적을 이룬 정원이였다. 산이정원은 미래세대 살아갈 미래환경을 꿈꾸는 친환경 정원도시버젼으로 만든 정원이였다.출입문부터 철 조형물 장식으로 예술적이였다.핑크물리등 가을색채를 이룬 꽃밭 언덕으로 바람개비가 수놓은 언덕으로 약속의 정원과 유려한 자태의 산이뮤지엄이 비추며 매우 아름다웠다.저! 멀리 언덕으로 유영호의 작품인 "인간의 다리"가 응시하며 매우 낭만적이였다.꽃밭길을 따라 언덕의 하늘마루로 향나무가로수와 드넓은 잔디언덕으로 이국적이였다.하늘마루는 나즈막한 숲사이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잔디 언덕으로 유영호의 "인간의 다리"가 설치된 곳이였다.유영호는 그링팅맨 설치미술가로 겸손과 화해,평화를 상징하는 그링팅맨을 창출하였다.관계의 시작은 인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하여 고개숙인 겸손한 거인의 어깨 위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며 서로 만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매우 환상적인 조형물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하늘마루로 저! 멀리 산봉우리들이 비추며 광활한 대양과 우주로 향하는 평화의 숨결 같았다.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통유리창양식의 산이 뮤지엄으로 물의 정원과 갖가지 조형물들이 비추며 낭만적이였다.산이뮤지엄내부는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었다.수잔송의 "Spark","Seam"는 입체감과 율동감있는 추상회화로 우주로 약동치는 물결 같았다.그밖에 드로잉,이주현의 홍가시나무와 멀구술나무 수예작품,수련의 동양화작품들로 섬세함과 정교함에 매우 놀라웠다. 2층 카페에서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었다. 거대한 화면으로 아름다운 4계의 경치를 담은 영상으로 마치 그 광경으로 여행을 온 기분 같았다. 환상적인 빛의 예술로 앞으로 빛의 예술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갈지 놀라울 따름이였다. 서약의 정원은 화려한 꽃과 풍성한 덩쿨식물로 가득한 채플과 가제보 사이 사랑의 서약을 맺고 만남을 축복하는 웨딩가든이였다. 약속의 장소인 채플과 신부대기실인 가제보의 조형물이 거룩으로 빛났다.서약의 정원으로 저! 멀리 산봉우리들과 함께 산이가든의 물의정원이 비추며 매우 싱그러웠다.물의 정원으로 조형물들이 진열 되었다. 이재효의 "코르텐강"은 이 세상 모든 작은 것들 속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작은 하나 하나가 모여 행성을 이룬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다.이영섭의 "어린왕자"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원한 아이를 상징하고 있었다.어린왕자는 우리가 잊고 살아온 순수한 마음을 돌이켜보게 하는 작품이였다.거친 화강석을 깍아 오랜 세월 풍화된 전통조각과 같은 한국적 미를 담고 있고 작품에 박혀 있는 원석과 유리는 긍정으로 빛나는 마음,환환 미래,건강과 희망을 상징하였다.그밖의 노리정원에 있는 이일호의 "변형된 큐브",산과 구릉, 꽃과 나무,물과 예술을 접목한 이명호의 "비밀의 정원",어호선의 "상상의 숲",문민의 "현대주의자" 조형물로 지붕없는 미술관을 방불케 하였다.산이갤러리에서는 책읽는 산이정원 주제로 전시되었다.산이정원을 스케치하는 화가의 방부터 여러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카타르시스가 넘쳤다. 산이정원은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는 예술생태계,생기와 회복의 씨앗인 생명, 건강한 마음과 미래를 지켜나간다는 미래의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산이는 해남의 면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지명이 현재까지 바뀌지 않고 남아 있는 기억의 정원이였다.두륜산으로 가는 차창가로 고구마를 캐는 밭이 생명력이 넘쳤다. 끝없이 펼쳐지는 논밭으로 이국적이였다.밭농사를 지은 고장임을 알수 있었다.배추밭의 배추가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맑은 색채로 매우 청청하게 빛났다.두륜산 케이블카에서 내려 언덕테크길 입구부터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함께 기암괴석 경치들이 펼쳐졌다.케이블카 전망대에 이르니 한라산,청산도,생일도등 섬들고 함께 매우 신비로운 경치들이 펼쳐지며 매우 환상적이였다.회색.흰빛으로 구름이 수놓은 하늘이 바로 눈앞에 있는것 처럼 매우 신비로웠다.지금까지 본 산의 전망대 경치 중 제일 환상적이였다.전망대 옆길로 고계봉 정상을 이루며 대흥사로 가는 숲길로 새소리와 물소리가 청량감으로 가득찼다.석교다리의 계곡,백화암을지나 해남문학회 시들이 전시되며 대흥사를 노래하고 있었다.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을 하고 있었다.해탈문을 지나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의 산세가 사찰을 드리우며 매우 아름다웠다. 고혹적인 자태의 은행나무와 함께 가허루앞 연못이 여러개의 소나무섬을 이루며 매우 아름다웠다.돌담장위로 52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의 연리지로 운치가 있었다. 하늘빛의 목재문의 대웅보전이 매우 청정하게 비추었다. 대웅전 주변 각 전각마다 글씨체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저녁으로 먹으로 식당으로 가는 차창가로 일몰이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해남 닭코스 요리집인 돌고개가든에서 토종닭 코스요리를 먹었다.식당 내부에 걸려있는 동양화가 눈에 들어왔다.유련한 산세와 몽환적인 정감으로 무릉도원 같았다.팽이버섯이 들어간 닭갈비,닭탕,닭장조림,닭찜,검은깨닭죽이 차례로 나왔다.비린내나지 않은 닭갈비와 닭탕으로 매우 감칠맛 있었다.닭장조림은 소고기 장조림과 같은 맛이였다. 닭찜의 찹쌀밥이 입안에서 쫀득거리는 식감과 함께 닭육수에 베어 힐링되는 맛이였다.잡곡류가 들어간 검은깨 닭죽은 매우 고소한 맛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이 솟구쳤다.오직 닭요리에 심혈을 기울여 탄생된 코스들로 주인장의 비법들이 담겨져 있었다.반찬으로 생두부,삶은계란,상추,김치, 양파김치,열무물김치,마늘쫑,떡,생고추,생마늘,된장이 나왔다. 특히 김치,양파김치,열무물김치는 환상적인 맛이였다.저녁을 SOUTHERN HEAL 호텔에서 묶었다. 호텔1층 복도의 쌍드리에가 아름다웠다.숙실내부는 대리석 질감의 화장실로 오성급 호텔을 자랑하였다.
























산이뮤지엄)
































































10월9일)










10월9일~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먹었다. 흰색벽체와 함께 대리석 질감의 식탁,가정집 주방정감의 인테리어로 매우 아늑했다. 창가로 해남의 아침정기가 타올랐다.빵종류 세트,호박샐러드,삶은 달걀,삶은 고구마,씨리얼,쥬스세트,김치,달걀조림,어묵고추볶음,샐러드, 허니유자드레싱,흑임자드레싱,소고기죽, 녹두죽으로 조식에 안성맞춤인 메뉴들이였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으로 심신을 안정되게 해 주었다.녹두죽은 환상적인 맛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이 솟구쳤다.아주 맑은 하늘햇살로 지금까지 본 하늘 색채 중 제일 청정하게 빛났다. 땅끝가는 차창가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아름다웠다.끝없는 노랑논밭과 송호해수욕장이 펼쳐졌다.모노레일을 타고 땅끝전망대에 갔다.해남 갈두산은 한반도 육지의 가장 끝, 땅끝이라고 부른다. 땅끝 전망대는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였다.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역사 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였다.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땅끝전망대는 우리 국토의 땅끝에 위치해 한반도의 기를 받는 희망봉이 되고 있었다. 타오르는 햇불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해 통일의 염원과 소망을 담고 있으며 새 희망과 새 출발의 상징성을 담고 있었다. 조선시대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음을 알수 있는 갈두산 봉수대가 있었다. 바로 이곳은 멀리 서남해로부터 쳐들어오는 왜구의 반란을 가장 먼저 알리던 곳이였다.당초 원형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괴되어 있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막돌로 쌓았다.전망대에서 진도에서 완도까지 서남해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땅끝전망대에서 모노레일로 내려와 땅끝마을 스카이워크길을 산책했다.땅끝마을과 남해를 조망할 수 있는 길이였다. 땅끝탑은 극남 북위 34도 17분 38초 동경 126도6분 01초 여기에 조국땅 무궁함을 알리는 토말비가 있었다.희망과 평화의 종이 온겨레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광활한 바다가 펼쳐지는 고갯길을 지나 해남의 항구가 펼쳐지는 곳에 해양자연사박물관이 있었다.땅끝 해양자연사 박물관은 원양어선 선장님이 40년간 수집한 오만여점의 다양한 해양생물이 전시된 곳이였다.고래가 입을 벌리는 형상으로 장식된 출입문과 문어장식의 옥상으로 해양생물의 진귀한 보고로 빛났다.제1전시실에서부터 제4전시실까지 이어지는 바다 해양생물들의 전시들이 매우 경이로웠다. 2층 복도로 어해도가 걸려 있었다. 어해도는 강과 바다에 사는 수산생물을 그린 그림이다. 물고기가 논다고하여 어낙도라고도 한다. 그림의 소재가 되는 수산 생물은 길상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각각 상징성을 지닌다. 어해도의 의미는 크게 다산과 풍요,입신출세의 2가지를 갖고 있다. 18세기 전반까지 잉어나 쏘가리를 대표 소재로 그려졌으며 이후에 바다 어종까지 그려지며 다채로운 표현과 넓은 의미를 가진다. 물고기 그림의 역사는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신석기 시대부터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등장한다. 실제 그림으로는 신사임당의 그림 속 물고기의 등장이 있으며 18,19세기 다양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있다. 영.정조시대 이 후에 민화가 그려지고 있으며 다양한 생물이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정약전의 유배시절 한국의 물고기 백과사전인 자산어보가 나오면서 여러 생물의 묘사가 풍성해졌다. 2층 특별실에는 멸종위기 극피동물 특별전이 전시되었다.전시실입구 조형물이 예술작품 같았다.윤선도가는 길의 차창가로 땅끝해안도로의 바다가 펼쳐졌다.윤선도유적지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국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적지이다. 이곳 유적지에는 운선도가 효종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녹우당(사적 제167호)과 그의 조상 어초은 윤효정의 묘와 사당외에 고산사당 및 추원당이 있었다. 고산윤선도박물관 전시관에는 600년이상 해남 백련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해남 윤씨 어초은파의 역사와 유물이 전시된 공간이였다. 특히 위대한 시인이자 강직한 정치가의 삶을 살았던 고산 윤선도와 자화상으로 대표되는 예술 작품을 남기고 실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윤두서, 이 두 인물의 생애를 느낄수 있는 곳이였다.
고산윤선도박물관
한옥 마루로 꾸민 쉼터의 지하 중앙 계단 통유리창으로 맑은 햇살이 비추며 매우 산뜻했다.한옥과 양옥의 절충을 이룬 건축대가의 작품 같았다. 녹우당은 조선시대 회화미학의 절정을 이루었다. 녹우당은 고산 윤서도부터 공재 윤두서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 600여 년의 세월 동안 국보와 보물과 처연기념물 등 2만여 점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였다. 왜란과 호란, 6.25마져도 피해 간 이곳은 가사문학,음악,춤,회화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 문학의 보물 창고였다.녹우당으로 인해 신라시대의 반가사유상과 토기,고려시대 의 불화와 청자,조선시대의 수묵화와 백자로 이어지는 한국 문화의 원형과 계보가 완성될 수 있었다. 대흥사의 불교 철학과 초의선사의 차문화,다산 정약용과 추사에 이르기까지 녹우당의 영향력은 넓고 깊었다.윤선도의 증손자인 19세 윤두서의 손녀가 다산 정약용의 어머니 해남 윤씨로 이로 인해 다산 선생이 18년간 강진에 유배생활 중 외가인 해남 윤씨 집안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특히 공재 윤두서,낙서 윤덕희,청고 윤용 등 3대에 걸쳐 걸출한 문인 화가를 배출한 녹우당은 조선 회화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1)1전시실~전시실내부 대리석 질감과 원목 인테리어로 전시공간이 고품격으로 다가왔다. 창가로 돌로쌓은 벽체와 잔디밭이 비추었다. 해남 녹우당에 터를 잡고 조선시대 이후로 600여년 이상을 대대로 이어온 해남 윤씨 어초은파의 역사와 전통,사대부가의 삶이 전시되었다. 어초은 윤효정은 해남 윤씨를 부흥시킨 해남 지역의 향리층이였던 해남 정씨 귀영의 딸과 결혼하면서 막대한 경제력을 확보하였고 강진 덕정동에서 해남 백련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최부에게 학문을 배웠고 1501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이후에는 과거보다는 교육에 힘써 최부와 함께 해남 지역을 학문과 예의 고장으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많은 후손들이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해남 윤씨 가문은 어초은 윤효정 이후로 해남에 뿌리를 내리고 중앙에 진출하여 정치,학문,예술,경제 등의 각 분야에서 조선 문화를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다.해남 윤씨가는 윤효정 이후로 백성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여 실천했다. 근검과 적선의 삶을 강조하여 이것이 곧 집안을 융성하게 하는 최고의 덕목임을 후손들에게 전달하였다.종가에 전해지는 종가음식은 어만두,비자강정,감단자,육만두로 각색 다식과 같은 큭유의 음식들이 전해오고 있다. 가문을 지킨 종부의 역할과 고산의 8세손 종부인 광주 이씨부인의 규한록이 전해지고 있었다. 1834년 순조(34년)때 조선후기 부녀자가 한글로 쓴 내방가사문학이다.
(2)2전시실~우리나라 국문학의 대표적인 시인 고산 윤선도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선구자가 되었던 공제 윤두서의 생애를 알아보고 윤선도와 윤두서의 학문,문학,그림,글씨 등에 대하여 알아보는 전시실이였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시조문학의 최고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문인들이 한문학의 틀에 갇혀 있을때 그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작품을 이루어 냈다. 그의 시조에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사람.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우가는 물.바위.소나무.대나무.달 등의 오우를 차례로 읊은 6수의 연시조이다.만물을 조성하는 기본 요소인 목.화.토.금. 오행 상생의 이치를 전제한 개념이였다.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등은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과 서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시조의 최고봉이자 산수 미학의 절정이다. 윤선도는 음악을 사랑하여 거문고를 다루었고 연주자들과 어울려 같이 노래하고 작곡하였다.그는 시조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천문,지리,음악,성리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한 이로 그의 실사구사적인 학풍은 해남윤씨가의 가풍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 최고의 원림문화를 남겼다.윤두서의 학문은 윤선도로부터 이어지는 실득으로 학문을 크게 성취하였다.공제 윤두서(1668~1715)의 300여 년만에 공개되는 1704년에 제작된 세마도는 공재 윤두서의 작품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바위 표현은 조선 중기 절파화풍을 계승하면서 인물의 정밀한 묘사와 말의 근골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등 독창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소재와 필치는 중국풍의 세마도의 유형이다.1710년 숙종(36년)때 직접 그린 자화상은 세밀한 묘사와 표현력 등 조선시대 내려온 자화상 중 최고의 수작이다. 얼굴 수염 실오라기,눈빛 등이 마치 사진처럼 섬세하게 그린 실력이 입신의 경지에 이른다. 석류매지도에는 서양식 정물화와 유사한 음영법과 외국산 그릇들이 새로운 요소로 사용하였다.원근과 명암,시점에 따라 입체적인 형태감과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은 서양화의 기본원리였으나 우리나라에서 윤두서가 활동하던 시기까지는 그림의 기법으로 시도된 적이 없었다.서양의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윤두서는 서양회화의 수법과 원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시도하였고 그의 자화상이나 사생화는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윤두서는 고전적인 남종 문인화의 정수를 모색하는 것 뿐 아니라 진취적인 실험정신을 가지고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 것을 알 수 있다.윤두서는 현실을 중시하는 실학을 가미하여 18세기 현실에 맞는 학문과 예술을 구축하는데 전력을 하였다. 이를 위하여 17세기까지 선비들이 중시한 관념과 의고를 중시하는 풍조에서 벗어나 현실과 실제를 반영한 풍속화와 진경산수화,사생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특히 사실적인 표현을 중시하여 그 방법으로서 관찰과 사생을 강조하였다. 과찰과 사생은 대상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필수적인 방법이었다.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하되 그 본래의 규모와 척도에 따라 그린다면 사실적인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서양화 기하학의 원리를 토대로 형성된 사실을 감안한 것이다.연웅 윤덕희(1685~1766)는 윤두서(1668~1715)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의 화업을 이어받아 다시 둘째 아들인 윤용(1708~1740)에게로 전해주어 3대에 걸친 문인화가 일가를 이루는데 가교 역할을 했다.어서(1662~1723)에게 힉문을 배웠으며 부친의 영향으로 서화에 입문하였다. 1694년 갑술환국을 끝으로 남인이 정치알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일찍부터 과거를 포기하고 선대부터 내려온 넉넉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평생동안 학문과 시.서.화에 몰두하였다. 부친의 뒤를 이어 남종문인화.진경산수화.풍수화.도석인물화.말 그림 등 다양한 화묵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신선그림과 말 그림으로 유명하다.산수화는 주로 이상경이나 탈속을 소재로 한 정형산수화 많이 그렸다. 조선초.중기 화풍 및 남종화법을 추구하면서 점차 음영법을 사용하여 대상의 입체감을 살리는데 비중을 둔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진수산수화도 남겼는데 1763년에 그린 도남절경도가 유일한 예이다. 인물화에서는 도석인물화와 풍속화를 잘 그렸다. 도석인물화의 경우 삼재도회등을 통해 다양한 신선 도상의 소재를 활용하였으며 풍속화는 현실적인 풍속을 그린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윤두서의 그림이나 화보에서 일부 혹은 전체를 차용하여 조선풍으로 변안을 시도하였다. 동물화에서는 말과 용 그림이 뛰어났다.말그림에서는 부친으로부터 가전된 양식으로 계승하면서도 음영법을 구사하는 등 나름대로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켰다. 용 그림에는 운룡도의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청고 윤용(1708~1740)은 윤두서의 손자이자 윤덕희의 둘째 아들이다. 윤두서와 윤덕희로부터 그림의 재능을 이어받아 문인화가로 활동하여 3대에 걸쳐 화업을 이룩하였다. 요절할때까지 시.서.화에 전념하였다. 산수화.풍속화,도석인물화.초충.화조화 등에 두루 재능을 보였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산수화가 가장 비중이 크다. 점경인물을 산수 속에 배치하는 산수인물도 형식을 따르고 화보를 통해 익힌 수지법을 다양하게 구사한 등이 가전된 화풍을 계승한 것이다.그러나 집안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절파화풍에서 탈피하여 사의성이 강한 남종화풍을 추구한 면이 뚜렸하다.윤용의 작품들은 시화합벽첩으로 시중유화화중유시의 경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조부와 부친에 이어 풍속화와 도석인물화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기록에 의하면 화훼.초충.화조.미인도 등도 잘 그렸다고 하는데 전하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윤두서 일가의 3대에 걸쳐 이룩한 화업은 조선시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였다. 윤두서 일가의 화화는 당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애호되었고 다양한 화목에 걸쳐 시도한 새로운 변화와 성과들은 당대 및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남종화,진경산수화,도석인물화,초상화,풍속화, 말과 용 그림 등의 동물화 등 회화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거를 궁구하여 새로움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윤두 일가가 이룩한 선구적인 업적들은 조선 후기의 찬란한 회화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정선 (1676~1759),조영석,심사정,강세황,강희언,김익주,김두량,김홍도,이인문,김득신등 조선후기 대표적인 화가들은 대부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후기의 화가들은 윤두서가 연 새로운 지평에서 자신들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였다. 특히 정선,조영석,심사정,강세황 등이 사대부 출신으로 여기 이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문인화가의 표상으로서 윤두서의 삶과 예술에 공감하고 본받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덕음산이 비추는 고산 윤선도박물관을 지나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를 본뜬 협문을 이룬 오우가 정원으로 토석담장에 둘러싸여 오우정과 굽이치는 연못,대나무숲길을 이루고 있었다. 드넓은 잔디로 학처럼 뻗어나간 소나무가 녹우당으로 가는 길을 운치있게 드리웠다.언덕으로 녹우당 담장으로 드리운 520년된 은행나무 보호수가 매우 운치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윤효정의 아들 진사시 합격을 기념하기 위해 식재한 기념수이였다.사적 제167호인 해남 윤씨 녹우당은 효종임금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수원에 지어준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와 사랑채를 만들고 녹우당 이름을 붙였다.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해남 윤씨의 종가 고택이였다.윤선도의 4대 조부인 윤효정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 건물이다. 집터 뒤로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이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이 있다.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 자화상,산중신곡집, 어부사시사집 등 지정유산과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주택 형시을 잘 나타내고 있다.현재는 윤선도의 14대손인 윤형식 증손이 살고 있어 묻이 잠겨져 있었다.녹우당으로 중심으로 왼쪽길은 추원당과 산책로 숲길로 이어졌고 녹우당 옆은 충현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종가의 상 주제로 전시되었다. 사대부 문화 정수를 지켜온 명문 가문 일상의 모든 순간이 예의 실천에 담겨져 있었다.조상을 향한 깊은 공경과 함께 평상시 식사까지 격식과 정성을 다하고 손님을 품위 있게 접대하는 엄격한 예법을 지켰다. 자녀교육에서 언행과 몸가짐의 올바름으로 인격을 수양하는 종가정신으로 가문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장대한 초목이 드리운 충현각과 녹우당의 토석담을 지나 고산서당으로 윤선도를 배향하고 있는 불천지위 사당이였다.사당 앞을 드리운 340년된 곰솔나무는 밑둥치 하나가 하늘로 치솟는 우람한 수형을 이루고 있어 고산사당 옆에 풍치목으로서 불천지의 윤선도 기품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고산사당옆으로 덕음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토석담장으로 거대한 대나무숲이 드리우고 있어 매우 고즈녁했다. 고산사당 뒤편 덕음산 아래 윤효정의 사당인 어초은 사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초은 사당 뒤로는 그의 묘가 자리하며 부변으로 소나무,상수리나무를 이루는 곳이였다.어초은사당 토석담옆으로 비자나무숲길로 가는 길로 이어졌다.덕음산 서쪽 산기슭에 위치한 숲이였다.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은 500년 된 수령으로 숲의 면적은 9만 9000m2 이다. 윤효정의 아들 4명이 각각한 그루씩 심은 은행나무도 자라고 있는 숲이였다. 윤씨의 시조가 뒷산의 비자나무 숲이 없어져 바위가 노출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고 하여 숲을 잘 보호하였다. 비자나무숲길 왼쪽으로 산책로 숲길과 추원당으로 이어졌다. 산의 물줄기가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숲길 다리를 지나 추원당이 자리 잡고 잇었다. 추원당은 어초은 윤효정의 제각으로 1935년 윤정현(1882~1950)의 발의에 의하여 지어졌다. 추원은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고 숭배함을 뜻하는 것이였다. 웅장한 대문사이로 마당의 고상한 자태의 나무가 기품이 있었다. 추원당 담장으로 하늘로 우뚝솟은 초목들이 드리우며 매우 청정했다. 즉 덕음산 아래 은행나무 보호수를 드리운 녹우당의 토석담장길로 이어지는 고산서당,어초은서당으로 덕음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며 비자나무 숲길로 이어졌다.계곡이 흐르는 산책로 숲길의 다리를 지나 추원당으로 녹우당과 함께 그 주변 일대가 무릉도원 같았다.녹우당과 어우러진 원림숲을 자랑하고 있는 매우 환상적인 곳이였다.추원당을 지나 고산 윤선도 박물관의 정원의 정자글씨가 매우 기품이 있었다. 잔디정원으로 윤선도박물관 건축이 건축대가의 걸작 같았다.내리막 언덕으로 지하의 서양식 양식과 2층의 한옥양식을 절충하여 매우 고풍스러웠다. 자연 지형에 따라 건축된 박물관이였다.덕음산이 비추는 드넓은 초록물결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회상되느 문학의 길 같았다. 윤선도 박물관 입구 왼쪽으로 땅끝 순례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못과 섬이 연결된 정자양식의 ㄱ억자형 한옥과 덩쿨잎이 두른 벽체양식으로 건축 대가 작품 같았다. 땅끝 순례 문학관은 해남출신 문인들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이 남긴 작품들 만나볼수 있는 곳이였다. 문학관 전시실로 굽이치는 복도가 운치가 있었다. 영혼을 울리는 숨결 같았다. 해남 문학의 역사와 흐름,대표 문인들의 작품과 사진 일대기를 알수 있게 전시되었다.자유와 해방의 혁명시인 김남주는 민주화 통일의 길에서 조국의 별이된 시인이였다. 기독교,민중,여성을 외친 여성문학 선구자 고정희,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한 시인 박성룡,토속적 서정과 한의 시인 이동주시인에 대해 전시되었다.2층은 문명의 이웃들 주제로 그림들이 전시되었다. 다산 정약용과 수화 김환기를 비롯하여 로랑그라소(프랑스),린타로 하시구치(일본),구성연,이헌정,홍푸르메 등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7인 작가들로 전시되었다.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현대 추상화 단색화 작품들로 심금을 울렸다.점심을 한양한우집에서 해남별미인 한우익힘비빕밥을 먹었다. 둥그레차로 고소했다. 호박볶음,당근볶,콩나물무침,상추,달걀지단,김가루가 들어간 비빕밥으로 소고기가 매우 듬뿍 담겨져 있었다.참기름,깨소금,고추장으로 비벼 먹을수 있도록 고추장양념이 따로 세팅되었다.고급 한정식 맛을 품고 있었다. 묵은지김치찌게는 묵은지의 효소맛이 가득한 환상적인 맛이였다.전,게장무침,옥수수샐러드,고구마탕,도라지무침,열무김치,김치,갓김치등 반찬으로 고급 한정식 차림이였다.특히 열무김치,갓김치,김치는 환상적인 맛이였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해남로컬푸드에 갔다. 매우 신선한 농산물으로 가득했다.이해경님이 모시떡을 사서 같이 먹었다. 기름기도 없는 매우 찰진 모시떡으로 매우 고급진 비건맛이였다.정읍휴게소로 화색과 흰색빛이 어우러진 구름이 하늘을 메우며 안식의 종이 울려 퍼졌다.















































































































전시실 1)























전시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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