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27일~ 이해경언니가 굿모닝여행사 영암추가지원 특가상품을 안내해 주어 같이 여행을 갔다.아침 조식으로 찹쌀팥떡이 나왔다. 입안에서 매우 부드럽게 씹히는 찰떡으로 너무 맛있었다.점심때까지 배불렀다.영암에 도착하여 동락집에서 짱퉁어탕을 먹었다. 세상의 아침과 고향은 지금의 TV에 방영된 일류 맛집이였다. 깻잎,들깨,된장의 구수함이 담겨진 짱퉁어탕이 환상적인 맛이였다. 비법육수의 감칠맛과 함께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이 솟구쳤다. 무우의 시원한 맛이 베어있는 석밖이 무우김치와 오이의 시원한 맛이 베어있는오이무침은 매우 감칠맛 있었다.멸치볶음은 부추와 당근이 들어가 입맛을 돋구었다.도라지향이 담긴 도라지무침은 시지 않아 좋았다.배추볶음은 기름의 고소한 풍미가 담겨지며 담백했다.젓갈이 벤 김치는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전라도식 김치 맛이였다.젓갈무침,콩나물무침은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같은 밥상에서 먹었던 여행객이 묵은지찌게와 시금치나물무침을 집에서 해왔다. 시금치향이 진한 시금치무침과 짜지않고 담백한 묵은지찌게로 너무 감사했다.도갑사 가는 길 벚꽃길 가로수의 나무가지들이 고혹적으로 비추었다. 월출산의 수려한 산세와 함께 펼쳐진 저수지가 환상적이였다.지금까지 본 저수지 경치 중 제일 아름다웠다.
도갑사 버스정류장부터 월출산의 산세와 기암괴석이 매우 수려하게 펼쳐졌다.480년된 팽나무가 고사된 채 웅장한 기세로 버티고 있었다. 팽나무와 마주하며 초목이 꿈틀거리듯 솟아오른 나무가지로 공작새가 펼쳐지듯 뻗어있어 운치가 있었다.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뒷편 건물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학의 날개치듯 뻗은 초목이 드리운 일주문을 지나 몇개의 아치형을 이룬 석교다리 아래로 하천을 이루었다.하천 옆 돌계단에 오르니 해탈문을 받치고 있는 석조기단과 함께 고풍스러웠다.해탈문은 조선 성종4년에 다시 세운것으로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둥근기둥이 사용되었다.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중심부가 상하부에 비헤 더 굵어 중심부에서 위 아래로 갈수록 점점 굵기가 얇아지는 형태의 기둥이다.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과 다포식양식이 섞인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국보를 자랑하고 있었다. 구정봉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잡은 사찰로 월출산의 빼어난 산세와 절묘한 기암절벽이 사찰을 드리우며 아름다웠다.대웅전과 단아한 자태의 석탑이 수려한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고즈녁했다.대웅전의 연화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정교하고 단아한 자태로 해탈을 표상하였다. 대웅전을 지나 미륵전으로 가는 길로 숲길이 펼쳐졌다. 매우 화사한 사각정자아래로 미륵전을 끼고 도는 용수폭포가 흘러 산속에 온 기분같았다. 고풍스러운 석교다리를 지나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돌계단 언덕의 미륵전과 부도전으로 가는 숲길이 펼쳐졌다. 매우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사찰의 전경으로 무릉도원 같았다.성보박물관에는 극락을 표현한 서화와 소박하고 단아한 목조공예품,사진이 전시되었다. 특히 매우 정교한 석가여래상사진이 인상적이였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 20호인 왕인박사유적지는 왕인박사를 기리는 유적지였다.왕인박사는 백제 14대 근구수왕 시기의 대학자로 천자문을 비롯한 선진 학문과 우수한 민족문화를 일본에 전파하여 일본 아스카문화를 꽃피우는데 기여하였다. 이에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그 학덕을 기려 성인으로 추존하고 있다. 매우 정교한 천안천자문은 왕인박사의 소통과 상생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돌에 새긴 조형물이였다.영월관은 왕인박사의 도일기와 영암의 관련 유적을 소개한 제1전시관과 백제문화가 일본 아스카문화에 미친 영향을 담은 한일문화교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제2전시관이 있었다.
영월관
백제시대 금동관,옹관,백제시대 복식에 새겨진 수예,백제관음상이 매우 경이로웠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알 수 있었다.백제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였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집권 시기(346~375)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유교정치이념 강조하며 왕실 중심의 역사서 편찬,지방에 대한 통제와 조세 수취를 강화,활발한 정복활동을 통해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여 이후 근구수왕 대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와의 세력 균형을 이루어 나갔다.백제의 근초고왕때 국가정세는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한 가야를 부용국으로 삼았고 전라도 지역 마한 잔여세력을 정복하였다.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후 요동으로 진출한 고구려를 견재하여 요서와 산둥반도를 경략하였다. 동진에 사신을 보내어 우호적인 교섭관계를 유지하고 왜왕에게는 칠지도를 하사하였다.왕인박사가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되던 무렵 백제는 고구려의 계속적인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사이였다. 17대 아신왕은 왜와 수교를 맺고 태자 전지를 일본으로 보냈다. 왜와 응신은 백제의 태자 전기가 도왜한지 7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내면서 훌륭한 학자를 청하였다. 왕인박사는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 당시 왕인 32세로 상대포는 국제 무역항이었다.왕인은 논어10권과 천자문1권을 가지고 도공,농경,재철,직조,양조,와공 등 기술자들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 아스카문화의 원조가 되었다. 왕인은 당시 일본 황실의 스승으로 두 태자와 황실 인사들에게 천자문과 논어뿐 아니라 모든 경적을 가르쳤다. 왕인의 교육 덕분에 일본은 학문의 필용성을 깨닫고 유교 덕목을 배우며 한학의 발흥을 맞이했다. 한묵과 유교사상이 널리 퍼졌으며 학교 교육의 기초가 마련되었다.왕인박사는 일본 화가 창시자로 문학과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도일할때 45명의 기술자와 함께 일본의 산업기술 발전에도 기여했다.즉 4세기말에는 아직기와 왕인을 통해 한학과 유교를 성왕대에는 일본고대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하였다. 538년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져 일본 문화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고대 일본의 아스카문화는 불교적,대륙적,국제적인 색채로 호류지의 금당과 오중탑은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로서 불상과 공예품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 백제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아스카문화의 극치인 회화는 백제의 문화가 서려 있는 유산들이다. 스이고 조정에서 불상의 조영에 착수하자 고구려 영양왕이 황금 500냥을 보냈고 미술 방면에 뛰어난 고승 담징은 일본에 필묵을 전해 주었으며 법륭사 금당의 벽화를 그렸다.고대 백제의 학문 수준과 동아시아의 문화교류를 느낄수 있는 역사 현장으로 감회가 뜻 깊었다.
2층에는 정명자 궁중자수회화전이 있었다.자수품은 가장 고도의 자수기법과 아낌없이 고가의 비단 ,금은사,진주 등을 함께 써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이였다.매우 수준높은 궁중문화를 엿 볼수 있었다. 궁중에 온 기분으로 카타르시스가 넘쳤다.
왕인박사상을 지나 부조는 왕인박사 일대기를 조각한 조형물로 매우 경이로웠다. 잔디에는 아트 브릿지조형물이 영암의 숨결로 빛났다. 월출산의 이미지를 걷고 보고 놀수 있는 아치형 다리 형태로 설계 및 디자인한것으로 영암 이야기를 부조로 조각하고 청자 도자타일을 바닥에 깔았다. 가까이 다가가 사방으로 보니 신비한 물결처럼 굽이치며 요동쳤다.수석전시관에는 춘당 문상호의 서예전이 있었다. 문상호는 양호필을 최초로 제작한 박순과 최유일에게 제작기법을 전수 받아 기본기가 탄탄한 작가였다.각기 다른 서예체와 함께 붓의 종류 총론이 전시되었다.붓은 닭털,꿩털등 동물털,볏집,대나무,칡,신생아의 머리카락,죽필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붓이였다. 까래 한옥천정양식의 실내와 조화를 이루며 옛 선비 숨결로 빛났다.준홍수석전시관에서는 고 박찬대 선생님(1917~2005)의 미망인 김귀동의 1남1녀가 고인의 뜻에 다라 소장하셨던 수석을 영암군에 기증하였다.수석의 3대요소는 질감,형태,색상이다. 단단하고 유리에 긁히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석질의 질감을 가져야 한다. 어떤 형상을 상징해주어 그 본래의 실상을 느낄 수 있는 형태를 지녀야 한다.일반적으로 검정색 계통을 좋은 색으로 보고 있으며 깨끗하고 깊은 느낌을 주는 색감을 좋은 색상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수석(축경)의 유래는 기원전 인도에서 부터 시작되어 이 흐름이 중궁에 들어와 당대의 문인들이 동양풍류의 극치를 남겼다. 이 물결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흘러와 선조들이 영향을 주었다.퇴계 이황은 문양석을 좋아했으며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귀양가서 직접 탐석하며 수석을 아꼈던 기록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열렬히 애석 하셨던 분이였다.수석의 종류는 산수경석으로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을 연상시키는 돌이고 문양석은 돌 표면에 사물의 그림이나 꽃무늬,글자 등의 무늬가 천연적으로 나타나 있는 돌을 말한다. 추상석은 직감적으로 영감을 느껴 상상 속의 꿈을 만족시키는 돌이고 형상석은 천연적으로 온갖 모양을 나타내는 돌을 말한다.색채석은 돌이 지니고 있는 색채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감상하는 돌로 다른 돌에 비해 희귀성이 있어야 한다. 괴석은 주로 석회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석회질은 유구한 세월 동안 풍우에 시달려 소멸되기 때문에 경질이 강한 석질만 앙상히 남아 괴이한 형태를 지닌다.수석에 대한 상식을 알수 있었다.소정.애향수석전시관 사이 정자쉼터의 일자형 건축을 이루어 인상적이였다.수석전시관 앞으로 작가 조의현의 상생2006 조형물이 있었다. 서로 유기적인 소통과 상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였다. 사당 전시관을 마주보며 조형물이 왕인박사 업적을 기리고 있었다.백제의 선진문화 숨결이 우주로 요동치는 것 같았다.전시관에는 왕인박사의 탄생,수학,도일, 학문전수도 등이 기록화로 전시되었다. 대형 그림들로 매우 환상적이였다.그밖의 일본풍의 왕인문과 왕인박사묘비,왕인박사유허비,왕인박사 탄생지,왕인박사가 마셨던 우물인 성천,왕인석상,왕인박사가 공부할때 석굴로 전해진 석굴,왕인박사가 공부했던 옛 서당인 문산재,왕인박사가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었던 양사재등으로 그를 기념하고 있었다.이와같이 왕인박사유적지는 백제시대 국제정세와 왕인박사를 통한 일본 아스카문화형성을 알수 있는 역사적인 현장이였다.천안천자문,궁중자수전,조형물,수석,왕인박사기록화등으로 매우 경이로운 예술작품들이 산재한 곳이였다.구림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유 도기 생산지이자 최대 도기 생산지였다.삼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역사와 함께 도선국사의 탄생 설화와 왕인박사, 최지몽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호남 3대 명촌이였다.월출산 주지봉 아래 자리 잡은 구림마을은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선사시대 청동기.철기문화 유입은 물론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역로 상대포가 있어 예부터 한.중.일 문화교류의 관문이었다. 구림마을은 A.D 5세기경에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왕인박사와 통일신라시대의 선승 도선국사,고려 개국공신 최지몽이 탄생한 마을이며 국내 첫 고온 유약그릇 생산지 영암 구림도기 가마터 한국 시유도기 발원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향비 정원명석비가 있으며 호남 향촌사회의 전통문화유산 대동계가 1565년 창설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림마을 주변 상대포역사공원은 고대 국제 무역항으로 왕인박사가 이곳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고 전해지는 곳이였다. 매우 운치있는 화강석 다리를 지나 조종수가옥과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가 자리 잡으며 선비의 그림자로 가득했다.소나무숲이 고혹적으로 드리운 회사정은 구림 대동계의 모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진 정자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된것을 1986년에 복원된 것이였다.회사정을 지나 돌담장 뚝방을 이룬 하천길로 창작교육관이 있었다. 김서울 초대전 영0의 정원 주제로 전시회가 있었다. 판화와 식물에 대한 사유를 토대로 빛과 색,기억이 어우러진 정원의 풍경을 평면을 넘어 입체와 설치로 작업을 넓혀간 화가였다. 실크스크린기법을 기반으로 종이나 캔버스 대신 투명한 매체를 사용하여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겹쳐지는 색의 층을 통해 공간의 깊이를 더했다. 관람자위치나 빛에 따라 끓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며 다채로운 형태를 띤다.작업 중심에는 식물이 존재하며 가장 평화로운 낙원을 창출했다. 영0의 정원이란 시간과 생명이 순환하는 영원의 정원이였다.즉 빛과 시간,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변화하는 무한한 새로운 이미지를 피워내고 있었다.창작교육관의 하천길을 중심으로 매우 낮은 황토담장을 이룬 마을길이 펼쳐졌다.죽림정으로 가는 길로 264년된 보호수인 두그루 팽나무가 거대하게 드리우고 하천길로 거대한 초목이 드리운 죽정서원이 비추며 전통 양반마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마을 담장길로 고려의 정신적 지주 도선국사 탄생설화 국사암과 구림마을에서 태어난 고려초기 왕실의 수호자 최지몽을 모신 낭주 최씨 사당 국암사가 비추었다.거대한 초목이 황토담장을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구림마을안에는 군립하정웅미술관과 도기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통창양식과 한옥이 조화로운 미술관 주위로 여러가지 조각작품들이 장식되었다. 지방 전통마을의 예술공간으로 전통과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명품마을이였다. 동강 하정웅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하여 영암군에 기증한 약 3천여점의 예술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였다.하정웅 컬렉션은 기록의 유산,기도의 미술,행복과 기쁨의 공유였다. 하정웅 컬렉션은 우리나라 현대화가의 대가 이우환,곽인식을 비롯하여 일본작가,초현실주의 달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명작들을 이루고 있어 매우 놀라웠다.월출미술인회 기획전으로 보이는 것과 볼수 있는것 주제로 전시 되었다. 보이는것 너머의 영암이 품어온 역사,문화,예술을 채색하여 영암의 문화의 얼을 보는것 처럼 환상적이였다. 2층 복도로 조덕현의 수집,혹은 기억 현대미술이 설치되었다. 하정웅 선생 생애를 압축한 현대미술 설치작업으로 하정웅의 생애,인연, 철학을 집대성한 거대한 서사시였다.우주로 확장되는 조형적인 작품이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으로 미디 아트가 영암의 자연을 신비롭게 표현하여 매우 환상적이였다.하정웅의 호남사계 작품들이 조국의 고향향수를 노래하고 있었다.
도기박물관
상설전시관:영암구림도기
영암 구림도기는 국내 첫 고온유약그릇 생산지로 인류 최초 그릇은 노천에서 구운 토기로 유약의 발명은 흙그릇을 제작한 인류의 창의적인 발명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통일신라시대 영암 구림도기에 이르러 도기의 표면에 유약을 발라 1200도씨 이상의 고온에서 구어냄으로써 매끈한 질감으로 바꾸고 음식물 찌꺼기가 끼지 않는 위생적이면서도 방수기능이 있는 단단한 그릇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삼국시대의 옹관은 바닷길을 통한 영산강 유역의 문화유산으로 이 지역에 상당히 발전된 토기제작기술을 보유한 전문 생산 집단이 있었을 입증해 주고 있다.구림도기가마터는 사적338호로 8~9세기 대규모 산업단지였다.저온, 고운 소성의 생활용기와 녹갈색,황갈색,흑갈색 사유도기들은 도기에서 자기로의 기술발전 과정을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기로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구림도기는 고대부터 지속되어 온 유약을 바르지 않은 무유도기 중심의 문화에서 1200도씨 이상의 고온 유약 바른 시유도기문화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국내 도자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이러한 시유도기의 기술은 청자와 같은 자기의 발생을 예고하였고 음식의 발효와 저장을 위한 유약 바른 시유도기의 전개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황토는 인체에 무해한 미생물이 풍부하게 살아있어 생명의 흙이다.현재 구림도기박물관에서는 영암의 붉은 황토를 이용하여 구림도기를 재현하며 영암도기를 생산하고 있다. 영암도기는 인체에 이로운 원적외선을방출하며 찻물의 온도에서 방사에너지가 배가 된다. 대장균과 포도상구균에 높은 항균성을 갖고 있어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데 우수한 장점을 갖고 있다.
기증전시실:김대환 기증유물전
청동기시대에 홍도나 흑도와 같은 특수한 가공과정을 거친 그릇의 제작으로 이어졌으며 마한의 거대한 장례용 큰 옹기의 제작을 하였다.특히 삼국시대에는 고온에서 도기를 굽는 기술의 진전으로 더욱 단단한 회색경질토기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삼국의 도기문화는 원삼국시대의 도기문화 바탕으로 한다. 원삼국시대(1~3세기)의 도기문화는 가마 구조와 무레사용에 따른 제작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삼국에 이르러서는 연질에서 고화도의 회청색 경질도기로 발전하게 되며 종교적 의식과 관련된 상형도기 등 독특한 조형세계를 형성하였다. 통일신라시대는 고화도의 시유도기인 구림도기의 출현으로 도기문화는 한단계 더 높은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도기는 자기의 출현으로 그 영역이 줄어들기도 하였지만 고려시대 황갈유, 녹갈유,흑갈유 등 유약도기와 조선의 옹기와 같은 시유도자기의 맥을 이어왔다.고려시대 자기생산은 국가기관이 관여하는 소수공업에 편제되어 제작되었다. 음식을 오래 저장하고 발효시키는 기능은 자기와 차별화된 특별한 장점을 지닌다.
기획전시실:차도구와 차문화 이야기 음다
차도구와 차문화 이야기인 음다 주제로 전시되었다. 분청사기의 질박한 미감,상감으로 새긴 문양의 세련된 멋, 굽을 작고 유약에 덤벙 담가 만든 자유로운 형태,세밀한 양각이 돋보이는 경질백자까지 시대와 기법이 다른 다체로운 다완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전해진 차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청자의 맑고 푸른 빛속에서 발전했다. 조선시대에 차는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를 그리는 일과 함께 선비들이 마을을 닦는 수양의 한 방법이였다. 차를 마시는 일은 절제와 겸손을 실천하는 방식이였다.
차도구는 시대의 기술과 미적 감각이 응축된 기물이다. 삼국시대 무유도기는 실용을 중심으로 한 초기 도자의 성격을 지닌다. 고려시대 이르러 청자는 상감 기법과 비색을 토대로 정제된 조형성을 확립하며 귀족 문화 속에서 차도구이 유형을 확장하였다. 조선시대 분청사기는 흙의 질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일상의 미감과 개성을 반영하였고 백자는 절제된 형태와 백색을 통해 문인층의 정신적 가치를 상징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차문화가 도자 발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차도구는 전통의 조형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재료와 기술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제시한다. 도자 외에도 유리.금속.목공예 등 다양한 매체가 차의 향과 온도,빛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전통기법을 기반으로 빚어낸 각각 작가들의 차도구가 환상적으로 비추었다.
2차 기증 전시실:김대환기증실2
청동기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유물로 구성되었다.도기는 다른 재질에 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흙으로 빚어 구운 그릇으로서 인류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유용한 도구의 하나로 활용되었다. 청동기시대는 농경이 본격화되어 농산물의 수확이 늘어나 지배자가 등장하는 사회구조가 변화되는 시기이다. 다양한 모습의 무늬 없는 도기가 널리 사용된 시기로 색상은 주로 적갈색을 띤다. 특수한 목적의 붉은 간도기와 검은간도기,가지문도기,옹관등이 주목된다. 원삼국시대는 강한 철기가 등장한 시기로 도기제작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단단한 도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중국의 도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 시기이다. 양질의 점토사용,물레질과 타날기법을 응용한 성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으며 밀페가마(등요)의 도입으로 소성온도를 높여 이전의 도기와 다른 회청색 및 회흑색의 경질도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낙랑(BC108~)의 기술은 한반도 남부까지 전달되면서 새로운 기술의 유입이 확대되었다.백제도기는 적갈색 연질도기 회색 연질도기 회청색 경질도기로 구분되며 격자문,승문등 타날문양이 사용되었고 마연기법과 연유(전온도)도기도 제작되었다. 한편 영산강유역의 마한지역은 백제 건국 이후에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지역으로 옹관묘는 두 개의 큰 도기 항아리를 입구를 맞대어 부장용으로 활용하였다.가야도기는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여 도기를 더 단단하게 구울수 있는 소성기술이 발달하였고 굽다리 접시,상형도기 등 회청색의 장식적 특성이 강한 도기를 제작하였다.신라 및 통일신라도기는 지배층의 무덤에 다량의 도기유물을 부장하는 것이 특징으로 전문집단에 의한 많은 양의 도기공급을 위하여 와기전을 두었고 와기전은 후에 도등국으로 개칭되었다.고려도기는 시유되지 않은 도기에서 부터 시유된 도기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다. 녹갈유도기는 고려후기에 증가한 도기로 청자 기술이 도기에 적극적으로 적용된 현상으로 보인다.
동강 하정웅 컬렉션 기념실
제일교포인 동강 하정웅은 평화와 사랑 상호이해를 실현한 소장가로 하정웅이 창조한 새로운 예술 표현이다. 그의 인류애와 메세나 정신을 기리며 기념실이 있었다. 하정웅컬렉션은 개인 소장가가 수집한 예술품 가운데에서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규모와 수준을 자랑하는 컬렉션이다. 영암도기박물관에서는 이 방대한 컬렉션 중 도기작품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다. 공사로 전시를 보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도기박물관 광장으로 거대한 초목이 운치가 있었다. 구림 3.1독립만세 기념탑이 위시하며 삼한시대 도기가마터부터 역사전통과 충효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명품마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가찬묏길로 가는 길로 천황산과 상대포공원이 비추며 사색적이였다. 월출산이 드리우는 월출산기찬랜드에는 영암 곤충박물관을 비롯해 가야금산조기념관,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 있었다. 월출산의 정기를 받아 산책하는 기찬묏길이 영암을 대표하는 둘레길이였다. 영암 곤충박물관은 입장료가 있어 들어가지 않고 국수교를 중심으로 산책하다가 가야금산조기념관에 갔다. 한옥과 양옥의 매우 조화로운 건축양식으로 운치가 있었다. 불타는 예술혼으로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 자손만대에 한국문화유산으로 남기신 가야금산조 창시자 악성 김창조 선생을 추모하고 있었다.그가 태어난 영암의 기념관으로 그를 추앙하고 있었다. 전시실로 가는 벽장식이 현대 예술작품 같았다.전시실의 목재기둥 장식이 일렬로 산조의 선율처럼 물결쳤다. 산조의 효시이자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선생(1856~1919)을 중심으로 가야금과 산조에 대해 전시되었다.악성 김창조선생의 자취,명인의 길,명인,가야금 산조의 계보,구한말 명인들,구전심수,농현의 4가지 기법,조선후기의 움악,산조의 탄생,산조의 장단,산조의 가락, 대금산조,해금산조,거문고산조,아쟁산조,피리산조에 대해 나열되었다.가야금은 6세기 경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우륵은 490년 무렵에 태어나 가실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악사가 되었다.가실왕이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짓도록 한 것이 최초의 가야금 곡이다.가야국의 내분이 극심해진 551년(진흥왕12년)에 우륵이 신라로 망명하자 진흥왕은 우륵에게 집과 땅을 내주고 계고,법지,만덕 등 제자를 보내 가야금을 배우게 했다. 이후 경덕왕 때 우륵에게 전수받은 12곡을 5곡으로 줄인 것이 신라의 대악(궁정악)으로 정착되었다.신라시대 삼국사기에는 백결선생이 가야금 음악을 작곡했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일본으로도 전해졌는데 일본 정창원에 본존되어 있는 신라고가 그것이다. 고려시대에 가야금은 거문고,비파와 함께 궁중 향악과 제례악 연주에 사용되었다. 많은 문인이 가야금을 직접 연주하거나 가야금 연주자를 집에 두고 그 풍류를 즐겼다.동국이상국집을 쓴 이규보는 손톱이 빠질 정도로 가야금을 탔다.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악서 "악학궤범"(성종24년)에는 가야금이 소개되어 있으며 "국조오례의서례"(성종5년)에는 오늘날의 산조 가야금과 똑같은 모양의 악기 그림이 실려 있다. 구한말에 이르러 김창조(1856~1919)에 의해 즉흥성과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가야금산조가 탄생하였다. 이후 김창조의 가락을 이어받은 12개 유파가 형성되었으며 기존 풍류 가야금을 개량한 다양한 가야금이 만들어졌다. 오늘날은 17현,21현,22현,25혀 등 현의 수와 재료,가야금의 크기 등에 변화를 준 다양한 현대 가야금들이 연주되고 있다.산조의 형성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 시대 음악의 발전은 궁중음악인 아악과 민간의 민요가 양축을 이루었다. 조선 전기에는 아악이 발달하였고 지배층은 민요에 담긴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였다.후기에 이르러서 경제적 변동으로 서민문화가 새로이 형성되며 판소리와 사설시조 등 민간음악이 흥성하고 아악은 크게 위축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란을 거치며 부유한 농공상인이 등장하고 신분사회가 해체되기 시작했다.서민도 문화를 즐길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특히 한글이 보급되고 서당이 생겨나고 한글소설이 크게 유행함에 따라 문화와 문자는 양반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사회적 병폐에 맞서 변화의 열망도 거세졌다. 산조는 이러한 시기에 서민의 희노애락을 담아 형성되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음악을 즐길수 있게 되어 부유한 농공상인과 지방 선비들이 새로운 음악 수용층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의 사랑방에서 연주되는 실내악들이 개발되었다. 김창조(1856~1919)는 산조의 효시이자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였다.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가 산조 핵심 장단으로 정형화하였다.농현은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을 말한다.
지하에는 공연연습으로 우리의 전통음악을 전수해 가고 있었다. 가야금산조기념관옆 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 있었다.
한국 대중음악 뿌리인 트로트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겪던 한국에서 엔키품의 트로트가 들리기 시작했다. 광복을 맞이한 후에 점차 왜색은 옅어지지기 시작했고 팝송과 재즈 기법이 도입되면서 트로트는 대중음악 장르로 발전하였다.1930년대는 트로트의 형성시기로 노래의 의미에 힘을 주었고 서정성을 드러내며 심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1940년대 지평의 확장으로 장조의 부상이 두드러지며 낭만을 노래하기 시작했다.1950년대는 대중음악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시기였다.1950년대 중.후반에는 맘보,탱고,블루스 등의 리듬이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1960년대는 여타 장르의 도전 및 트로트 변화의 시기였다.1960년대 LP 시대가 접어들면서 록이 등장했다.1970.80년대는 트로트 고고,트로트 정체성의 변곡점이 되었다. 2박자 계열의 리듬에서 벗어나 강약의 편차가 훨씬 크고 음표를 잘게 나누어 빠르게 연주하는 4박자 형태를 띠었다. 신나는 리듬속에서 위로를 건내고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취향으로 바뀌었다.1990년대 트로트 소비의 다양화와 저변 확대시기로 트로트와 다른 음악적 요소를 접미시키며 새로운 트로트를 선보였다. 세미트로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시실에 트로트 스타들의 인물사진들이 진열되었다.그 영광의 순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1층 전시실 복도로 근대시기의 음악다방거리가 장식되었다. 트로트 선율이 울려 퍼지는것 같았다.2층 적벽돌 벽체를 이룬 전시실로 영암을 대표하는 영원한 디바 하춘하가 걸어온 가요인생을 담고 있었다.1960년 부산 제5 육군병원에서 열린 위문 공연에서 만 5살 하춘하 노래광경을 보고 부산일보 기자는 재롱둥이 천재 꼬마 탄생을 알렸다.이후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1961년 효녀심청 되오리다를 포함한 LP를 선보였다.하춘하는 17세에 1971년 정규 1집 음반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가수에 데뷔하였다.그밖에 월출산기찬랜드에는 영암을 대표하는 명인들의 김창조선생생가터,김창조사당,조훈현바둑기념관,하춘하노래비를 비롯해 동산,풀장,공연장,놀이장등으로 숲길과 함께 문화와 놀이를 즐길수 있는 곳이였다.
월출산온천관광호텔에서 온천을 하였다.온천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수 있어 힐링이 솟구쳤다. 온천을 하고 나오니 붉으스레한 일몰과 구름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웠다.띠를 이룬 구름이 하늘을 수놓아 매우 아름다웠다.저녁을 먹으러 금호관에 갔다. 영암군청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거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한정식을 먹었다.오래간만에 먹어 본 옥수수차가 구수하게 느껴졌다.고등어 양념이 잘 벤 무우조림과 함께 고등어조림은 비린내 나지 않아 환상적인 맛이였다.달지 않는 양념으로 비법소스가 담겨져 있었다.얼갈이된장국은 맑은 된장으로 구수했다. 조기구이는 짜지 않고 담백했다. 안동 간고등어구이보다 더 감칠맛 있었다.육회,편육,홍어회,왕조개찜으로 장인의 손길이 담겨져 있었다.임금님 수라상 같았다.톳무침과 매생이무침은 바다향기로 가득했다.김치는 양념을 아끼지 않은 재료와 정성이 담겨져 있었다.젓갈사용이 맛의 관건 같았다. 달자지근함과 무우 시원한 맛이 조화로운 섞박이 김치는 입맛 돋구는 맛이였다.다른 지방에서는 맛 볼수 없는 맛이였다.양념이 진한 더덕무침은 비법 양념소스의 배합을 지니고 있었다.다른 식당에서 맛보지 못한 맛의 풍미를 갖고 있었다.오이무침은 오이의 시원한 맛이 살아있어 매우 감칠맛 있었다.고추멸치볶음,도라지무침,젓갈무침,새우볶음,연근조림,호박볶음으로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 떡은 매우 찰지고 달지 않은 명품떡으로 입맛을 돋구었다.강진 5성급 호텔에서 이해경언니와 함께 묶었다.























왕인박사유적지 영월관~전시관)

































왕인박사유적지 영월관~정명자 궁중자수회화전)







































영월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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