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성 대한다원,강골마을,열화정,태백산맥문학관,현부자네집,소화의 집(2026년5월9일)

백재은 2026. 5. 11. 20:51

5월9일~여행스케치 밴드모임에서 1박2일 보성과 고흥으로 여행을 갔다. 윤혜경님이  팔찌를 손수 만들어 모두에게 나누어 주어 너무 감사했다.미소님의 송편 찬조와 더불어 하얀자작님이 모두에게 호두과자를 나누어 주었다.노을님의 쑥떡,초롱님의 히타마와 오이로 아침을 버스안에서 배부르게 먹을수가 있어 너무 감사했다.보성에 도착하여 보성녹차떡갈비집에서 점심을 먹었다.전체적으로 짜고 달고 시고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그중 김치는 묵은지맛으로 입맛을 돋구었다.콩나물이 들어간 선지국은 감칠맛이 있었다. 

 

보성녹차떡갈비집

2번째 방문한 보성녹차밭이 설래임으로 다가오지 않아  포토하기에 분주했다. 보성녹차밭으로 매우 탐스러운 불두화가 향기를 발하였다.

대한다원 불두화

강골마을로 가는 차창가로 사찰나무의 황금물결을 이룬 도로가로수길이 비추어 아름다웠다.아침에 김선희님이 준 하루견과로 간식하였다.팽나무 물결과 덩쿨을 이룬 담장의 강골마을 집이 아늑하게 비추었다.이정래 고택은 문이 잠겨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강골마을
이정래고택

 

이정래 고택과 이진래고택사이 기와 돌담장 아래 우물이  불두화에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환상적인 강골마을로 대한다원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수 있었다.

이진래 고택앞 연못이   돌담을 이룬 섬과 연잎으로 가득메운 연못이 거대한 초목에 드리우며 매우 고혹적인 향기를 발산하였다.연못으로 솟을대문과 팔작지붕의 이진래 고택이 비추며 가문의 위엄을 드러내었다.

연못

이진래 고택은 건물 마당과 담장을 이루는 바닥,건물의 높이가 달라 보는 이를 하여금 마당의 모습이 다양하게 다가와 이색적이였다.

이진래 고택

이진래 고택옆으로 이름모를 기와집이 정겨웠다.

이진래 고택부근

 이정래 고택 앞 사각의 연못이 조선시대 연못을 재현한 것 같았다.

이정래 고택 앞 연못

열화정으로 가는 골목길은 돌담위 초목의 숲길과 목향장미가 늘어진 돌담으로 고즈녁했다.

열화정가는 길

입구부터 돌계단을 이룬 높은 언덕의 열화정이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 되었다.

 

 거대한 초목이 드리운 ㄱ억자형의 연못이  대문과 조화를 이루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누마루 양식인 ㄱ억자형 정자가 연못과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이였다.

 

장대하고 거대한 정원이 드리운 개방된 담장을 통해 주변의 숲길과 골몰길로 이어졌다. 정원의 나무들과 담장으로 비추는 정자가 주변의 숲과 잘 어우러지며 매우 낭만적이였다.

 

득량 바다와 오봉산을 조망하기 위해 누마루 기둥을 높게 올려 돌계단을 이룬 양식이 매우 고즈녁했다.

정자로 주변의 대나무숲이 장대하게 드리우며 매혹적이였다.

 

 

계단씩을 이룬 정원으로 거대한 초목이 드리우며 청량감이 넘쳤다.

정자의 현판,창호,기둥등이 선비의 숨결로 빛났다.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문으로  무릉도원 삼매경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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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차창가로 보성 벌교읍 마을이 운치있게 비추었다. 1910년대 식민지 포구로의 개발로 상업,교통으로 매우 번창했던 역사의 그림자를 담아냈다. 등록문화재인 보성여관과 벌교금융조합이 일제양식으로 고풍스러웠다.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된 마을이였다. 태백산맥문학관 정원은  갈대가 휘날리는  언덕길로 가을 정취를 담아냈다.백두대간의 염원을 그린 원형상이 통일의 염원을 담은 벽화 같았다.태백산문학관은 김원 건축가가 설게한 것으로 소설 태백산맥이 어둠에 묻혔던 우리의 현대사를 들춰냈다는 의미를 자연스럽고 절제된 건축양식으로 시각화 하였다.해방 후 민족분단으로부터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착까지 소위 민족사의 매몰시대를 기둥이 없이 공중에 매달린 2층 전시실에 반영하였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북향으로 배치하고 옥상에 새 역사의 희망을 상징하는 18m유리탑을 세웠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제시한 민족의 허리잇기의 염원이 언젠가 성취될 것으로 믿음을 건물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였다. 



태백산맥문학관

1층 전시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우리 민족 분단의 염원과 분단의 고착을 살피고 그 안에 내재된 모순의 반성을 통해 분단을 극복하는 곧 통일의 방향성을 제시했다.한국전쟁의 비극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해 이념의 금기지대를 깊숙히 파헤쳐 이적성의 논란을 극복하며 분단의 지평을 열었다.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민족분단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영원한 한국문학의 고전으로 우뚝섰다.해방 정국의 문제 핵심은 농민문제였다는 글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청산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척결했던 업적이 회상되었다.

2층 필사본 전시실)

혼신을 다한 조정래의 필사본이 매우 경이로웠다.

1,2층 전시실을 드리운 백두대간의 염원 원형상이 드리웠다.벽화 원형상 백두대간의 염원은 이종상의 오방색 자연석 벽화로 우리 민족이 겪은 질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의 아픔을 종식하는 통일의 간구를 고구려 고분 벽화의 모자이크 기법으로 표현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문학성을 높이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건축적 언어로 담아낸 것으로 문학과 건축과 미술이 조화를 이룬 최초.최대의 옹석벽화였다. 우리 민족의 조정래 작가가 얼마나 분단의 아픔을 피끓는 애국심으로 절규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3층 옥외광장)

따쓰한 햇살이 들어오는 옥외광장과 전망대로  심혈을 기울였던 태백산맥문학관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었다.

4층 전망대)

태백산맥문학관

 

태백산맥에 나오는 무당 소화의 집이 현부자 집과 대조되며 지주와 큰 빈부격차를 보여 주었다. 대나무숲에 드리운 돌담의 장독대로 사색적이였다.

소화의 집

현부자네집은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집으로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대문과 안채가 한옥이 기본 틀로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한 시대를 반영한 집이였다.  태백산맥 소설에서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 되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 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부자네집 바로 옆무당집 딸  소화는 정하섭과 사랑하는 사이로  소화는 정화섭의 할아버지의 딸 사생아로 서로 모르고 만난 사이지만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설 이야기가 펼쳐진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2층으로 된 대문이 매우 독특했다.2층에서 중도방죽이 보이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시대에 소작인들을 감시하는 곳이였다.20세기 초 지주와 소작인의 계급관계를 위시하는 역사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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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 들어서면 앞 마당 한 가운데 작은 정원이 매우 아담했다.안채와 잘 조화를 이룬 일본식 정원이였다. 안채 마당이나 툇마루,어디에서나 바라 봐도 매우 운치가 있었다.

담장옆 소나무와 꽃밭을 이루며 청정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앙 일본식 돌기둥위 주심포양식의 지붕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지주의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위풍당당했다. 2층의 대문과 마주하며 더욱 기세가 커 보였다.소작인의 상징인 2층 대문과 지주를 상징하는 안채로 비추었다.

안채 미닫이문과 복도 기둥을 받치는 목재 조각이 정교했다.

안채의 잔디마당에서 2층 대문이 카리스마스 자태로 비추었다.돌담위 황토담장이 일본식 절충 담장 같았다.뒷마당의 높은 담장으로 팔작지붕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뒷마당에서 안채 마루와 출입문,대문이 겹겹히 쌓이듯 비추어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안채 마당으로 옆문이 연결 되었다.안채의 툇마루에서 앞마당의 정원과 대문을 바라보며 휴식할 수 있는 귀족 저택이였다.

현부자네 집

소화의 집에서 현부자네집으로 가는 언덕 연못으로 주위 건물이 반영되며 싱그러웠다. 연못으로 소화의 집과 현부자네 집이 비추었다.

연못으로 지나니  징검다리로 연결된 섬과 함께 연꽃 수련지가 펼쳐져 매우 싱그러웠다.아름다운 연못에 동화되어 모두들 포토하기에 분주했다.

돈까스집 연못

원조 수라상 꼬막정식집에서  저녁을 수라상 정식을 먹었다.꼬막으로 차려진 정식차림이였다.짜고 달고 시지않는 담백한 맛으로 일류 맛집을 자랑하였다. 

원조 수라상 꼬막 정식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