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작년부터 소원했던 화순의 제1경인 화순적벽을 아너드여행사로 가게 되었다.여행비서의 친절과 함께 매우 쾌척한 버스분위기가 비행기에 탑승한 기분 같았다. 아주 편한 의자와 함께 천천히 가는 듯한 승차감으로 기분 좋은 여행길을 마주한것 같았다.뒷좌석의 차창가로 경치들이 더욱 눈에 확 들어왔다. 이팝,조팝나무 물결로 5월의 싱그러움을 발산하였다. 샌드위치 조식으로 호텔에서 맛보는 명품맛이였다. 카모마일차가 허브향기로 가득했다. 잠시 휴게소나 휴식시간에 방송에 울려 퍼지는 음악과 경치들이 격조있는 버스 분위기를 자아냈다.유명한 담양의 떡갈비맛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의 수림갈비집에서 한우떡갈비정식을 먹었다.양파가 깔린 떡갈비구이는 불맛의 훈제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었다. 과일청이 들어간 연근조림은 달았고 액젖과 게맛의 조화를 이룬 게장무침은 좀 짰다.양파무침은 샐러드의 풍미로 달큰했다.깍두기와 김치는 정겨운 향수를 담은 맛이였다.백김치는 시원한 효소맛으로 환상적인 맛이였다.김치류에 매우 정성을 다하는 맛집 같았다. 액젖맛이 살아있는 멸치볶음,표고의 고소한 맛이 살아있는 표고버섯볶음,힐링맛의 두부 브로컬리무침,간맞는 콩나물무침으로 명품 한정식 풍미를 담았다.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에 여행비서가 승차권을 구입하기 위해 이서한옥마을에서 잠시 승차하였다.이서한옥마을은 쌍렬문 정려와 동국지도와 만국전도를 제작한 실학자 하백원의 규남박물관으로 옛 선비들의 고결한 향기로 가득했다.굳게 잠겨진 규남박물관으로 관람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화순적벽으로 가는 길의 저수지가 싱그러웠다.





아너드여행사의 특권으로 투어버스로 탐승 안하고 아너드리무진으로 갔다.화순적벽의 안내원도 탑승해 길을 인도해 주셨다.화순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로 동복에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가 중국 적벽에 못지않다하여 붙여지 이름이다. 화순적벽은 동복댐 상류에서 부터 약 7km 구간에 형성된 절벽 경관을 말하며 화순적벽은 보산적벽,장항적벽(노루목적벽),물염적벽,창랑적벽 총 4개의 적벽으로 이루어져 있다.그중 보산적벽과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버스로만 가능했다.광주시의 식수공급을 위해 동복댐의 건설로 적벽 주변 마을의 15마을이 물속에 잠기었다.상수원 보호구역과 매우 좁은 산길로 예약제의 투어버스로만 갈수 있는 곳이였다. 적벽은 동복댐의 중류에 위치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조금 올라 우측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 거북섬은 투어버스로만 관람이 가능했다.동복댐 이서적벽을 향해 헤엄쳐가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제1전망대에서 백아산 정상이 보이는 산세와 옹성산 정상 아래 적벽동천과 장항적벽(노루목적벽),망향정이 우뚝서있는 보산적벽이 펼쳐지며 아름다웠다.보산적벽은 노루목적벽 앞에서 망향정을 품고있는 작은 적벽이였다. 장항적벽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파에 깍이고 파인 모양새가 신비로웠다.동복댐의 건설로 1/3쯤 물에 잠기어 웅장하지 못해 중국 삼국지의 조조 유비 제갈량의 중국적벽과 유사하다는 기대감에 미치지 못했다.




제1전망대에서 다시 아너드리무진을 타고 통천문 앞에 내렸다. 통천문은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적벽동천의 세상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녔다.망미정으로 가는 언덕길 아래로 대나무숲길과 울창한 숲길이 펼쳐졌다.숲길 사이로 고려시대 석탑(백제계 석탑)으로 추정되는 보안사지 석탑이 있었다.훼손된 석탑이 삼국시대 정감으로 가득했다.



망미정에 도착하니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이 펼쳐졌다.장항적벽(노루목적벽)은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의 절경으로 수몰된 장항마을의 이름을 취하야 장항적벽이라 하였다. 높이 80m 직각으로 깍이지는 듯 솟아있는 화순적벽은 예로부터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던 곳으로 김삿갓이 3번이나 다녀갈 정도로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하였다.예로부터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은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수많은 시인들이 영감을 얻을 정도로 경치가 수려한 곳이였다. 동복댐건설로 인해 물에 잠기어 적벽이 2/3정도 밖에 드러내지 않아 웅장하지 않았지만 깍아지는듯한 적벽의 형태가 신비로웠다.신비한 절벽과 그 절벽을 감싸는 물빛의 자태가 무념무상했다. 망미정은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을 바라다보며 서 있었다.망미정을 세운 정지준 (1592~1663)은 병자호란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분(1592~1663)으로 당시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끓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개한 나머지 고향에 내려와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며 생을 마감했다. 정지준은 망미정에서 학문에 전념하다가 계묘년1663년 12월 숨을 거뒀다. 정자는 1646년 인조24 적벽 강가에 지어졌다.








망향정에 오르니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이 더욱 웅장하게 드러냈다.보산적벽위 망향정은 동복댐의 완성(1985년)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 실향민들의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1999년에 세워진 정자였다.정자가 옛 양식을 담고있어 고풍스러웠다.망향정은 보산적벽위에 있는 정자로 보산적벽은 장항적벽의 인근의 적벽으로 수몰된 마을인 보암과 난산을 취하여 보산적벽이라 하였다.













홍보관에서 물에 잠기기 전 화순적벽의 전경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중국의 적벽과 유사한 웅장하고 신비로운 자태로 무념무상의 경치 같았다.
홍보관)






















광주호호수생태원앞 충효동 왕버들 군이 매우 고혹적이였다. 왕버들 군락은 지형적 결합을 보완하고자 비보림으로 충효마을 어귀에 조성된 것으로 1500년대 후반에 이곳에 소나무 한 그루,매화나무 한 그루,왕버들 다섯 그루를 심어 일송,일매,오류라 하였는데 지금은 왕버들 세 그루만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왕버들 군락지였다. 왕버들 세그루가 고혹적인 자태로 저절로 힐링이 솟구쳤다.











충효동 왕버들 군과 함께 하마비,정려비각으로 운치가 있었다.




광주호 호수생태원의 메타세쿼이아길과 호수전망대길을 산책했다.매우 잘 정비된 테크길따라 장대하게 우뚝솟은 가로수물결이 호수 전망대까지 펼쳐졌다.매우 울창한 가로수물결로 시원한 바람이 불며 매우 청량했다. 테크길 중간 중간 호수가 비추며 싱그러움을 발산하였다.즉 광주호 호수생태원의 매력은 테크길을 드리운 매우 울창한 가로수물결로 매우 낭만적이였다. 여행지 명소로 손색이 없는 생태원이였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갔다와서 마켓에 들어가 밤을 사먹었다. 버스안에서 한 여행객이 다이제스스트를 주어 먹었는데 고소했다.서울로 가는 차창가로 환벽당의 일원과 공주호가 장대하게 펼쳐지며 매우 싱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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