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음악학원 원장님과 수원의 문화 공연장인 수원SK아트리움에 갔다. 유리창을 흰색 사선과 직선의 조합의 기둥들로 장식한 "수원SK아트리움"이 장식이 없는 간결한 양식으로 우뚝솟은 "수원 SK스카이뷰 아파트"를 바라 보며 조화를 이루어 거리를 빛내고 있었다. 공연장 앞은 "정자문화공원"으로 황토색 돌들이 아치형 형태로 장식하여 옛 고을 유적향기가 퍼지는것 같았다. 공원 정원길 따라 빨간벽돌 계통의 여러가지 색깔벽돌들을 조합하여 장식한 "다솔초등학교"가 마주하고 있었다. 다솔초등학교와 함께 돌담을 쌓은 소나무 잔디와 유리천정과 유려한 사선장식을 이룬 정자가 조화를 이루어 사색적인 가을정취를 자아냈다. 따쓰한 온정이 샘솟듯 매우 아늑한 보금자리처럼 지금까지 본 초등학교 중 제일 인상적인 건축양식이였다. 즉 "수원SK아트리움"을 중심으로 문화산책길 같았다. 공연장 주위를 감상한 후 파장동 "효행공원"에 갔다. "효행공원"은 지지대고개 정상인 경수대로 따라 5Km로 이어진 파장동,이목동,송죽동 일대 경기도 기념물 제19호인 "노송지대" 시작 부근이다. 노송지대는 1790년 정조가 화성시에 있는 현륭원(현재 융릉)으로 아버지 사도세자 능행차길에 아버지를 회상하며 자신의 내탕금으로 소나무 500그루와 능수버들40주를 심었던 길이다. 1794년부터 1797년까지 수원읍 내외에 매년 봄과 가을 2차례 자두,단풍,솔씨등...갖가지 나무들을 심어 산림녹화에 힘써 짙은 녹음을 이룬 길이였다. 일제 식민지시대때 거의 황페화 되었고 노송으로 말라 죽어 현재는 일부의 노송만 남아있다. 아버지를 참배하며 하늘에 사무치는 가슴의 통곡을 했던 길로 아버지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극락을 염원하며 낙락장송이 울창했던 지극한 효심과 비극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길이다. 현재는 지지대고개 정상인 경수대로 따라 5Km 노송지대를 재정비하고 정조가 아버지를 참배하기 위해 능행차 했던 길인 지지대고개(효행공원)부터 수원경계 장다리천2교까지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효행길"로 조성하였다. 광교산을 바라 보며 "효행공원" 가로수길에 노송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듯 애달픈 곡조가 흐르고 정조 능행차때 건넜던 다리인 "괴목정교" 표석이 긴 역사세월에 녹아 내리듯 침묵의 그림자만 비추고 있었다.
역사의 침묵의 그림자 따라 "효행공원"을 마주보며 경수대로변에 소나무 가로수길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지지대비"로 정조가 생부의 무덤인 현륭원(융릉)의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 만 넘어서면 언제나 멀리서나마 무덤을 볼수가 없어 떠나기를 아쉬워하며 갈길을 멈추고 막힌 가슴을 달랬던 곳으로 노송지대의 황페화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효행길의 파장시장 가기전 노송지대까지 걷고자 향했지만 지지대교차로에서 길을 못 찾고 다시 돌아 와 노송지대의 효행길을 이루고 있는 "만석공원"에 갔다. 수원시 향토유적 제14호인 만석공원은 1794년 정조때 화성공사중 극심한 가뭄으로 공사를 중지하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안정된 농업경영을 위한 관개시설로 경제를 발전 시키고자 1795년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인 저수지를 축초해 만석가마 쌀농사의 농업발전에 이바지 했던 곳으로 2017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에서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인 가치로 인정 받은 호수공원이다. 정원 시냇가 돌틈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호수와 영화천으로 끓임없이 샘솟고 꽁꽁 얼어 붙은 호수의 중앙 섬에 나무가지들이 수를 놓으며 까마귀와 천둥오리가 다정하게 안식하는 아름다운 겨울 호수경치를 자아냈다. 위용한 자태로 버티고 있는 2층 누각인 영화루를 지나 1795년 신구관 부사와 유사들이 저수지의 업무들을 봤던 영화당은 매우 화사하게 초록마을 벽화로 장식한 "성모 카센타"와 매우 정감있는 울퉁불퉁한 돌계단이 있는 벽돌상가 "옥반정"의 현대건축과 이웃하며 기와담장에 둘러싸여 고풍스러운 자태로 역사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조의 효심과 비통한 역사가 함축된 노송길이 만석공원의 전망대 입구부터 청솔노인복지관에 이르기까지 펼쳐졌다. 하늘을 향해 장대하게 우뚝솟은 소나무가 굳은 청렴을 표상하듯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진실과 정조 통곡의 한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것 같았다. 바로 옆 숲길은 정조의 노송의 슬픈역사를 빛내고자 한 듯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언덕에 정자가 검은빛 돌담장에 에워싸며 우리고유 문양 기와장식으로 사각지붕을 이루며 밝은 황토색으로 숲길을 밝게 비추었다. "만석공원"을 산책한 후 "농업혁명의 길"을 이룬 서호천 주변 "경기상상캠퍼스"로 향했다. "농업혁명의 길"은 여기산 아래 정조가 자신의 내탕금으로 1799년 축조한 저수지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와 2016년 국제관개배수위원회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축만제인 "서호공원" 호수 물줄기가 흐르는 서호천의 화서동,서둔동,탑동일대로 시골길과 같은 전원의 향기로 가득한 수원의 명소이다. 서둔동의 장대한 푸른지대에 경기도 기숙사와 수원유스호스텔이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1906년 일제시대 농업경제 수탈 표상인 "수원권업모법장"으로 출발했던 1962년 "농촌진흥청"이 우리나라 농업 중심지 역할을 하며 "농업유전자센터"와 "탑동시민농장"이 농업연구에 공헌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1907년 "농립학교"로 출발하여 1946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 농업 생명과학 대학"이었던 곳으로 바로 그 자리에 "경기상상캠퍼스"가 2015년 대학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경기도와 경기도 문화 재단이 경기생활문화센터로 개관하였다. 세월의 흔적을 표상하는 건축양식과 함께 드넓은 황금잔디를 이룬 탑동 시민농장을 바라 보며 옛 서울대 농대 캠퍼스였던 "경기상상캠퍼스"에 도착했다. 역사의 깊이를 말해주듯 매우 장대한 고목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농업연구 연구원들의 발자취 그림자만 녹아 내렸다. 즉 "농업혁명의 길"은 1799년 정조때 여기산아래 저수지로 농업경제 부흥을 일으켰던 수원 축만제인 화서동 서호공원 물줄기 따라 1907년 농립학교와 서울대 농대,1906년 권업모법장,1962년 농촌진흥청,농업 유전자센터,탑동시민농장등...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 농업연구에 지대한 공헌과 농업발전 연구를 이루고 있는 본거지로 4계절 운치있는 낭만을 자아내는 수원의 명소이다. 이와같이 수원의 문화의 장인 "수원SK아트리움"의 문화공원과 정조의 비극적 역사가 함축된 "효행길",정조때 부터 수원의 농업본거지를 이루어 농업혁명을 일구어 낸 "농업혁명의 길"의 수원의 명소를 산책했던 매우 감동적인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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