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안동 화천서원,영호루,임청각 (2024년12월10일)

백재은 2024. 12. 27. 12:05

화천서원
영호루
법흥사지 칠층석탑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임청각

12월10일~우리함께 걸어요 밴드모임에서 안동으로 여행을 갔다. 아침에 버스에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인사하였는데 몰라 보았다. 안동으로 가는 차창가로 윤진님이 왜 안오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천서원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침에 버스에서 나에게 인사했던 분이 바로 윤진님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게되어 너무 반가웠다.화천서원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3호로 겸암 류운룡(1539~1600) 선생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 유림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 양성하기 위해 정조(10년)1786년에 건립되었다. 1871년 흥선대원군 서원 찰페령으로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됬는데 후손들이 기금을 모아 유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에 복설되었다. 입구의 카페를 지나 지산루와 함께 "ㄷ자형" 서원으로 질서 정연했다. 문루인 지산루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였다. 사당을 바라보며  카페 마당으로 감나무가 주렁 주렁 매달리며 정겨웠다. 돌계단의 강당이  한문의 연구소처럼 위엄있게 빛났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대문과 누각이 청렴한 선비의 숨결로 빛났다. 화천서원을 두르고 있는 두시산으로 돌들이 깔린 소나무숲길이 펼쳐졌다. 전망대인 부용대에 올라 굽이치는 낙동강과 함께 모래사장,만송정숲,안동하회마을이 펼쳐져 아름다웠다. 안동의 제일 가는 천혜의 지형으로 조상의 지혜가 놀라웠다.부용대에서 숲길로 내려가면  왼쪽 유성룡의 옥연정사와 오른쪽 유운룡의 겸암정사로   부용대 절벽의 허리 부분애 두 정사를 잇는 좁은 벼랑길로 이어지는 곳이였다. 산봉우리에 드리운 굽이치는 낙동강의 모래사장과  질서 정연한 마을로 조선시대마을 같았다.즉  굽이치는 낙동강을 이룬 안동하회마을과 부용대,부용대아래 화천서원들로 주변 일대가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천혜의 명당이였다.영호루가는 길의 차창가로 감나무물결의 마을을 이루었다. 영호루부근에 이르니 낙동강 물색이 파란색의 맑음 물을 자랑하여 아름다웠다. 공민왕 친필의 영호루정자로 붉은 단풍이 열정의 화신으로 드리우고 영호대교로 낙동강물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언덕위에 위치한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안동구시장으로 향하는 중 차창가로  산봉우리들이 펼쳐지며 매우 아름다웠다.휴양할수 있는 최적의 자연을 갖춘 휴양림 같았다.안동구시장의 길로 서양풍 정감의 빈폴대리점부터 옷 대리점들이 즐비했다. 창가로 진열된 옷들이 값어치 있게 빛났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시장길을 밝게 해 주었다.치즈빵으로 유명한 맘모스베이커리에서 회원들이 빵을 사느냐 분주했다.안동구시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안동간고등어 직영식당인 예미정에 갔다.안동 고등어구이를 먹었다.바싹하고 고소한 간고등어구이로 상추에 싸 먹으니 고등어의 짠맛이 사라지며 맛의 조화를 이루었다.두부,호박,팽이버섯이 들어간 된장찌게는 매우 구수한 된장과 소고기맛의 조화로 매우 환상적인 맛이였다.짜지않은  깻잎절임은 잘 숙성된 맛으로 매우 감칠맛 있었다. 무우절임은 새콤하면서 시원한 맛으로 비법이 담겨진 맛이였다.절임반찬의 솜씨가 탁월한 식당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감칠맛의 김치전,달지않는 견과 콩자반,참기름맛이 거의 없는 짜지않는 콩나물무침,싱싱한 맛의 김치,오뎅볶음,겨자,쌈장,고추로 간고등어구이에 맞게 반찬들을 싱겁게 간하여 조화를 이루었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낙동강이 펼쳐지는 임청각에 갔다.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앞으로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다.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아 올린 탑이 전탑이였다. 8세기경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법흥사에 있던 탑으로 추정되며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였다.법흥사는 18세기 초반 이후 문을 닫았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 1487년 탑을 고쳐 지었고 본래 있던  상륜부의 금동장식을 없앴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탑을 보수하면서 기단의 윗면에 시멘트를 발라 원래 모습이 훼손되었다. 7층의 거대한 탑으로 매우 안정된 모습을 지녔다. 기단의 각 면에는 팔부중과 사천왕등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신들이 새겨져있었다. 이 탑은 일반적인 전탑과 달리 지붕에 기와를 올려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목탑을 모방한것으로 추정되는 전탑이였다. 흙과 벽돌로 만든 탑으로 매우 이색적이였다. 카리스마스 자태로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과 임청각을 빛내주는 전탑으로 보면 볼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왔다.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은 국가민속문화재이였다. 고성이씨의 시조는 고려시대 문신인 이황이며 안동에 처음 정착한 고성 이씨는 12세 이증(1419~1480)이다. 이증의 3째 아들 이명이 임청각을 지었고 그 뒤 고성 이씨 후손들이 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이명의 증손자의 아들인 이적부터 탑동파가 시작되었다. 이곳에 통일신라시대 절인 법흥사가 있었으며 그 절에 있던 전탑이 종택  앞에 남아 있어 이 가문을 탑동파라 불렀다. 이 고택은 주변 자연 환경과 전통 건물이 잘 조화시킨 저택, 안채,사랑채,별당,사당등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구조와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전통 주택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었다.낙동강을 바라보며 산이 두르는 종택이였다.종택에서 왼쪽 언덕으로 가니  임청각으로 초대국무령 이상룡생가였다.언덕에서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의 대문이 비추며 위용으로 압도되었다.임청각은 언덕과 넓은 마당과 함께 담장과 문으로 안채,사랑채 군자정,사당의 세부분으로 나누어 졌다.돌계단 위로 "ㄱ억자형" 군자정으로 선비의 풍류와  강론의 장 같았다. 지금까지 본 정자 중 제일 운치가 있었다.군자정 넓은 마당의 돌계단위 사당이 문이 잠긴채 기와담장에 두르고 있었다.산자락에 위치한 행랑채,안채,사랑채,사당으로  지금까지 본 종택 중 제일 운치있는 거대한 조선시대 재벌가옥 같았다.행랑채에 임청각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500년 역사인 임청각은 사당과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 안채와 주위의 집들이 영남산과 낙동강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롭게 배치되는  조선시대 민가 가옥 중 가장 큰 규모의 반가 주택이였다. 임청각 가문은 구국운동에 힘썼다. 많은 사람들이 주로 망명하거나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임청각 가문이 만주 독립군 기지건설과 만주에 정착하여 1911년 경학사 설립하여 이상룡이 초대 사장으로 부임하였다.이상룡은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서간도 독립전쟁의  지도자였다.임청각 앞마당으로 중앙선 철도가 1940년 일제 강점기때 개설되어 2020년 80년만에 종단되었던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였다.

화천서원
부용대전망대

 

영호루
예미정
법흥사지칠층석탑

 

임청각 작은 전시관
임청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