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5일~둘도모밴드모임에서 뮬란대장님 리딩하에 파주시로 여행을 갔다. 한 회원이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요거트를 준비해 백석역까지 나와 뮬란대장님께 전해주어 감동했다.뮬란대장님을 처음 뵈었는데 애교스러운 말씨가 편하게 귓가로 전달되었다.회원님들 입장에서 편의와 배려를 생각해 주시는 대장님으로 신뢰하는 마음을 들게 하였다.아침 휴게소에서 서성거리는데 아차산님이 간식을 먹으라고 손짓하여 갔다. 팥떡과 집에서 직접 튀긴 고구마튀김을 준비해 오셨다. 찰진 팥떡과 달큰한 고구마튀김으로 매우 감사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임진각 평화 곤돌라는 국내 최초로 민통선 국간을 연결하는 곤돌라였다. 자유와 평화 그 염원을 담아 남과 북을 연결하는 하늘길이였다.곤돌라 창가로 자유의 다리와 통일대교가 펼쳐졌다. 얼어붙은 얼음으로 수를 놓은 임진강의 빙하가 율동감으로 신비롭게 비추었다.굳게 닫혀진 캠프 그리브스 미8군의 언덕길을 통해 제1전망대로 임진각,북한간,자유의다리,독개다리,황희유적지,경의중앙선이 비추었다.임진강의 평화등대로 소망리본존과 DMZ 비무장지대 경치들이 펼쳐졌다.임진강 평화등대는 4.27 남북공동성명,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군사분야 협의를 통한 DMZ와 민통선 지역을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약속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조형물이였다.임진강 전망대에서 다시 평화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창가로 얼음 물살이 맑은 햇살에 물살치며 아름다웠다.우주의 운행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현상으로 신비로웠다. 임진각 평화 곤돌라에서 황희선생 유적지에 갔다.매표소부터 소명재가 버티고 있었다. 임진강변 기암절벽위에 조선초 명재상 이신 익공 공반촌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만년을 즐긴 반구정과 영정을 모신 영당, 선생 현손이신 소양공월헌황맹헌의 부조묘가 안치된 곳이였다. 이곳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일대에는 많은 후손들이 거주하며 조상님들의 숭고를 받들며 장수황씨사목종중운영위원회가 착공한 것이였다. 방촌기념관으로 황희선생의 업적과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이였다.기념관 내부에는 이보영의 개성 송악 전경 그림으로 황희선생이 태어난 곳을 그린것이였다. 매우 수려한 산세와 녹음이 짙은 송림의 마을로 매우 아름다웠다. 자연의 경치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동양화 작품이였다.황희는 1363년(공민왕12)~1452년(문종2)까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390년 공양왕(2년) 성균관 학록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1394년 (태조3년)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나가게 되었다. 세자의 스승인 세자우정자를 겸임하였고 조정의 두루 관직을 두루 거쳐 6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침착했다. 사려가 깊고 청렴하며 충효가 지극하였다.사리가 밟고 성격이 치밀하여 공무 처리의 귀재로 불렸다. 인권을 존중하여 노비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인정 많고 사람 좋은 선비였다. 높은 학덕을 쌓아 태종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태종의 신뢰를 받았으나 1418년 세자 양녕대군 폐출의 불가함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태종의 진노를 사서 폐서인이 되어 교하와 남원에 5년간 유배되었다가 태종의 건의로 세종에 의해 다시 복직되었다. 굶주림으로 장기화된 강원도 관찰사로 나가백성의 어려움을 잘 살피고 민심을 얻었으며 동시에 세종의 신뢰를 얻게되어 이조판서와 우의정,좌의정 겸 세자사등을 지냈으며 1431년 (세종13년)에 69세 나이로 영의정이 되었다. 농사개량에 힘써 곡식 종자를 배급하고 각 도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백성들의 의생활을 풍족하게 하였다. 경제육전을 펴내고 국방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북방 야인과 남방 왜에 대한 방비책을 강구하였다. 고려의 예법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고치고 바로 잡았다. 인권에도 관심을 가져 천첩 소생의 천역을 면제하는 등 태종대의 국가기반을 확립하는데 공헌하였다.중앙과 지방의 여러세력들을 하나로 묶는데 노력하였으며 4군6진의 개척,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 등을 지휘,감독하였다. 세종 말기에 궁중 안에 설치된 내불당을 두고 일어난 세종과 유학자 중신 간의 마찰을 중화시키는데 힘썼다. 이처럼 그는 세종을 보좌해 나라의 기운과 문화가 번성한 시대를 이룩하는데 기여하였다. 24년간 내각에 있으면서 이조판서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18년 동안 영의정으로 세종을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87세까지 영의정 자리를 지키다가 스스로 물러났다. 은퇴한 뒤에도 국가 중대사의 경우 세종의 자문에 응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선생은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문종2년 1452년 9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익성이다. 조선왕조를 통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시문에도 뛰어나 몇 수의 시조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1452년(문종2년) 세종대에 가장 공이 많은 신하로 선왕과 같이 배향되었다. 저서로 방촌집이 있다.평생을 관리로 지내며 원칙과 소신, 관용과 배려를 온몸으로 실천한 황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청빈한 삶을 몸소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기념관에는 세종에게 하사받은 옥으로 만든 벼루인 옥연이 전시되었다. 중국에서 수입된 조각이 새긴 벼루로 매우 고귀했 다. 청정문으로 고직사와 언덕위 월헌사,방촌영당,경모재가 비추며 고즈녁했다.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세조1년 1455년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황희선생 영당은 6.25전쟁때 전부 불탄 영당은 1962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졌는데 초익공양식의 맞배지붕에 단청이 있고 솟을 삼문으로 이루어졌다. 영당 내부 중앙에 별도의 감실을 두고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영당 벽체로 매우 수려한 산수화벽화로 선생의 선비의 정신을 드높이고 있었다.황희선생 동상으로 그가 직접 쓰신 시조가 적혀 있었다.그의 서체를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였다.매우 인상적인 서체로 품격 높은 선비의 정신을 엿 볼수 있었다.황희선생동상을 바라보며 기암절벽위에 앙지대와 반구정으로 반구정은 예로부터 갈매기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였다.앙지대와 반구정아래로 임진강이 확트이게 펼쳐지며 매우 아름다웠다. 황희유적지에서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차창가로 드넓은 평야와 낮은 산이 펼쳐지며 파주의 자연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철책선을 이룬 임진강을 따라 푸른 한강이 펼쳐졌다.수도 서울에서 파주까지 이어지는 한강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강줄기 같았다.한정식 전문집인 해울에서 코다리 정식을 먹었다. 코다리찜은 녹말가루를 입혀 튀긴 후 비법양념으로 조린 코다리로 입안에서 매우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매우 고소했다. 강냉이가 들어간 돌솥밥과 함께 야채두부김치말이와 수수부꾸미로 명품 한정식 차림 같았다. 야채두부김치말이와 수수부꾸미는 호텔에서 먹는듯한 맛으로 고급진 풍미를 담고 있었다.가지조림과 버섯샐러드는 매우 값진 특이한 소스로 버무린 맛으로 환상적인 맛이였다.매우 달큰한 백김치로 환상적인 맛이였다.된장찌게,잡채,고추된장무침,감자조림,연근조림,김치,도라지무침,고사리볶음,시금치무침,마른나물볶음,우렁이강된장,양념고추장,상추,치커리,케일, 깻잎으로 다른 식당과는 차별화 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엄마와 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매우 고급진 맛을 담고 있었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뮤지엄 헤이로 갔다.미디어 아트 전시로 평균10m에 달하는 층고와 바닥, 넓은 벽면으로 활용한 매핑 거기어 70m의 광장은 거울을 통한 착시까지 일으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시시각각 변화하는 영상과 각 방마다 다른 주제로 전시되었다."핑크비치"는 거울안쪽으로 철썩거리는 파도와 핑크바다를 연상하는 곳이였고 "헤이파크"는 동심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동물들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였다. 시계조형물이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우유니사막"은 사막의 그림과 일몰의 경치가 펼쳐졌고 "빛의 여신"은 바닥까지 거울로 되어 있어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 반사되며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숲"은 광활한 대지의 숲으로 우주의 빛이 전달되는 기분 같았다. "헤이씨어터"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 작품 미디어아트로 30분마다 상영되었다.색채화가답게 아름다운 색채들을 빛의 세계를 덧 입혀 대자연에 온 듯한 기분 같았다.대형스크린과 함께 3D로 공간속에 빨려 움직이면서 들어가는 기분 같았다. 모든 공간은 거울을 통해 보다 넓고 크게 보였다. 층고까지 높아 몇배가 확장된 끝없이 펼쳐지는 매우 환상적인 빛의 세계로 인도되었다.모두들 하나가 되어 빛의 세계를 담으며 카타르시스가 넘쳤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부터 뮤지엄 헤이까지 정다운,아다지오작가님과 버스를 운전하시는 한성규님이 사진을 매우 정성껏 찍어 주셨다.아다지오작가님은 핸드폰으로 사진 포인트를 정확하게 선택해 안정된 구도로 깔끔하게 찍어주시는 순발력이 넘친 작가였다.정다운작가님은 인물을 잘 포착하여 배경을 인상주의 색채로 담는 작가였다.한성규사장님은 비싼 카메라 장비로 안정된 구도와 인물을 잘 포착하시려고 노력하시는 사장님이셨다. 둘도모여행은 모두가 연합하여 즐기는 것으로 둘도모는 행복이라는 명제를 인식할 수 있었다.서울로 가는 차창가로 드넓은 한강이 계속 펼쳐졌다.살얼음판 같은 강이 매우 아름답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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