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성주 성밖숲,성산동고분군 ,청천서원 청담1942다류체험,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가야산야생화식물원,합천영상테마파크,정양늪생태공원,해인사,홍류동계곡 농산정(2025년6월14~6월15일)

백재은 2025. 6. 16. 10:11

 

성주 성밖숲
성산동고분군
청천서원
가야산야생화식물원

6월14일~테마캠프여행사에서 지자체지원으로 성주와 합천 1박2일 여행을 갔다.괴산휴게소에서 얼린 크림빵을 시식하였다. 시원한 생크림으로 신선한 맛으로 다가왔다.주인장의 자부심이 담겨진 고급 생크림빵 같았다. 성주로 가는 차창가로 신비한 기암괴석과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산봉우리들로 매우 아름다웠다.천연기념물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천연기념물로 성주읍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마을숲이다.천연기념물인  약 300~500년정도로 추정되는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이다.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이 옛 읍지인 "경산지"와 "성산지"에 수록되어 있다.조선시대 성주읍성의 서문 밖에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보림수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조성된 수해방비림이기도 하다. 주민들을 위한  전통도시의 마을공원으로  마을 아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밤나무 조성하였는데  우환이 사라지고 재앙이 그쳤다. 밤나무숲으로 이루어졌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왕버들로 숲을 다시 조성하였다.성주의 역사와 생활사가 담겨진 성밖숲은 토착적인 정신문화를 동시에 가진 곳이였다.성밖에 조성된 숲이라는 이름 뒤에는 성주의 역사.문화,풍수지리,신앙이 담겨진  전통 마을숲으로 가치 높은 공간이였다.최근에 이르러 왕버들과 맥문동을 조화시켜 아름다운 숲을 볼수 있는 곳이 되었다.매우 늠름하고 수려한  가지로 뻗어 나간 왕버들나무가 고혹적인 향기로 가득했다.노거수가 현재의 나무들보다 더욱 늠름한 자태를 지니고 있어  옛 것들이 더욱 강건했던  자연 생태계를 엿 볼수 있었다. 정보센터에  성박숲에 대한 역사,가치,버드나무 다양한 쓰임 ,역사속 버드나무 문화와 생활, 왕버들의 특징,와버들의 친구들, 자연생태계에 대해 자세히 전시되었다.후계목 서식지로 활성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점심을 감골식당에서석쇠돼지불고기정식을 먹었다.내부는 각종 연예인이 다녀간 사진과 신문보도로 전통 맛을 이어가는 일류식당임을 보여주고 있었다.진하지 않은 고추장소스와 연탄불맛이 조화를 이루며 매우 감칠맛 있었다. 석쇠돼지불고기와 함께 11첩 반상이 나왔다.깔금하게 차려진 밥상으로 손님을 귀빈으로 대우받는 기분 같았다.  들깨가 들어간 미역국은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이 솟구치는 맛이였다. 된장은 직접 담은 맛으로 좀 짜고 진한 맛을 담고 있었다.누룽지탕수육은  누룽지의 바싹한 식감과 함께 새콤달콤한 소스가 어우러졌다.식초가 아주 조금 들어간 오이무침으로  오이향기가 베어나 시원한맛을 지녔다.상추,부드러운 식감의 가지찜,들깨와 참기름의 고소한 맛의 고추잎 무침,양념장 맛의 우엉조림,취나물 향기로 가득한 취나물무침,조청의 단맛과 함께 바싹한 멸치볶음,숙주나물 향기로 가득한 숙주나물무침,카레가루가 들어간  야채전,새우젖이 들어간 호박볶음,양념간장과 조청으로 버무린 감자조림으로  짜고 시고 달지않는 주인장의 비법 양념 비율로 탄생한 양념소스를 담고 있었다.먹으면 먹을수록  정성이 매우 깃든 맛이 느껴졌다.창고 담장의 화분에서 피어난 남아프리카 꽃인 복랑이 신비로웠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성주전통시장에 갔다. 예천전통시장처럼 시골마을 시장 분위기 같았다.성산동고분군은 사적 제86호로 성주읍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성산에 위치한 총129기의 고대 가야 고분군이다. 성산의 북쪽 경사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성주지역 최대의 고분군으로 5~6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은 321기이다. 성주의 고대 역사를 보여주는  성주군 성산일대에 있는 성산 가야지배층의 무덤이다. 성산의 정상에는 성산산성이 있고 주변에 70여기의 가야무덤들이 분포하고 있다.고분군은 크게 막돌이나 깬돌을 이용하여 석실의 네 벽을 축조한 할석식석실분과 석실의 네 벽을 넓적하고 길쭉한 판석을 세워 만든 판석식석실분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매장주체가 묻히는 주곽과 부장품을 묻는 부곽을 갖춘 다곽묘로 되어 있다.1호 무덤은 높이 3.6m  지름 13.6m로 내부구조는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로 보인다.돌방(석실)에는 은제관장식과 고리자루큰칼(환두대두),각종 토기류등이 발견되었다. 2호무덤은  구덩실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으로 창,도끼,손칼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토기가 발견되었다.성주 성산고분군은 고분군,야외전시장,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전시관 복도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신도비가 전시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신도비는 왕이나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화강암에 비신을 중앙으로 이수와 귀부에 새겨진 조각들이 용솟음 치듯 생동감이 있어 감탄하였다. 이시웅 기증자의 유물이 전시되었다.성주이씨 집성촌에서 출생한 이시웅선생은 성주의 향토사 연구자로서 향토역사문화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애써왔다. 성주문화원장을 역임하면서 성주마을지,경산지 증보판 발간 등  성주지역 역사 문화발전에 공헌하였다.  2021년 고서 1점,38점 토기를 기탁했다. 굽다리 접시,항아리,토기등이 매우 신비롭게 빛났다. 한쪽 벽면에 전시된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로 고대 예술의 문화 절정을 보는 듯한 고혹미로 가득했다.5세기 경 성주양식토기는 흑회색과 청회색의 물결무늬로 다른 지역과 토기와는구별되는 성주 특유의 토기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금 장신구와 금허리띠는 통일신라문화와  못지 않는 정교함과 화려함을 갖추고 있었다.성산동 고분군이 위치한 성산의 정상부에는 산정식 석축산성인 성산성이 있다. 고분군과 조합으로  성산가야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이였다.가야국은 김수로왕의 창녕 금관가야,함안의 아라가야,함녕의 고령가야,고령의 대가야,고성의 소가야,경산의 성산가야의 6개 가야국  중 삼국유사는 금관가야를 빼고 5개로 나누어서 진술하고 있다.성주지역에서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상언리 등  유적을 통해 강성한 소국의 존재를 확인하였다.4세기경 추정되는 금동관으로 성산가야의 존재를 짐작하였다. 400년 고구려남정으로 433년 나제동맹이 이루어졌다.532년 금관가야와 562년 대가야가 멸망하였다. 신라에 의해 본피현 설치되었다. 660년 백제멸망,668년 고구려 멸망,676년 신라 삼국통일한 후 698년 발해가 건국되었다.926년 발해가 멸망, 935년 신라가 멸망한 후  918년 고려가 건국되었다. 고려시대 1308년 성주목으로 승격되면서 성주는 고려말 성주이씨가 살았던 고장이였다. 고려시대 우왕은 최영장군과 함께 이인임 부패세력을 몰아냈는데  이인임의 증조부인 이장경은 성주에 거주하면서 성주이씨 중심 인물이였다.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성주는 현재 광역시 수준이였다. 1398년 성주향교 건립되었다.조선은 성주를 최고 명당으로 인식하고 이씨나라로 생각하며 1438~1442년 세종대왕태실을 조성하고 대장경옆으로 1439년 성주사고를 설치하였다.전시관 옥상으로 산봉우리가 비추는 고분들의 전경이 펼쳐졌다. 성주의 고대 역사를 보여주는 성산경사면일대 능선에 따라 분포된 고분길로 개울의 다리를 지나 높은 경사면의 고분이 위용으로 비추었다.경사면  위 아래로 늘어진 고분들로 위계 질서 같았다.고분길로 저! 멀리 성산주변 마을경치와 산봉우리들이 비추며 가야의 영광이 휘날리는것 같았다. 고분옆으로 양귀비와  수레국화를 이루며 가야의 찬란했던 역사의 얼을 달래주고 있었다.야외전시관은 포석정처럼 굽이치는 연못길 따라 고인돌이 전시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돌들이였다. 선사시대 지배자들은 자신의 무덤을 거대한 돌로 만들어 권력을 자랑하였다. 한편으로는 마을의 위치를 표시하는 표지석이나 의식을 치르는 제단의 역할을 했을것으로도 추정하고 있었다.모양이 각기 다른 고인돌로 위용으로 빛났다. 성산동 고분군의 하위 무덤에 속하는 장학리 별티3호분과 차동골을 이전하여 복원되어 있었다.무덤을 권력의 위계질서로 상징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청천서원에서  지역주민 관광사업체 관광두레 청담1942체험 (프리미엄6대다류체험)을 하러 갔다.청전서원주변으로 돌담위에 기와 목재담장을 이룬 독립유공 직산 김창열 선생 기념비옆  언덕으로 청천서원이 버티고 있었다. 청천서당과 심산 김창숙생가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였다.유형문화재인 청천서원1729년 영조(5년)사림들이 동강 김우옹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고종때 서원 철페령으로 훼철되었으며 이후 김우옹의 후손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청천서당으로 중건하였다.  지금 청천서윈은 그 자손이 한옥카페를 열어서 다도수업과 다도체험을 할수 있도록 개발하였다.매우 고풍스러운 아치형 석교다리로 연못이 펼쳐졌다.돌다리와 섬을 이룬 연꽃연못으로 동물형상의 바위가 버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연못의 다리를 지나 계단위의 황토기와담장을 이룬 수정문의 서원으로 위용으로 비추었다.석교다리,연못,서원이 조화를 이루며 매우 고혹적이였다.지금까지 봤던 서원 중 제일 환상적이였다.높은 지대 위치인 수정문으로 웅장한 산세와 마을의 경치가 펼쳐지며 가슴이 확 트인 기분 같았다.서원 뒷마당을 드리운 대나무숲으로 매우 싱그러웠다. 주변의 자연의 경치와 잘  어우러진 자연과 합일할수 있는 명당이였다. 수정문옆 경정각이  굳게 잠겨있는 채 경북문화유산인 속자치통감강목판목  이라는 책을 새긴 판목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책은 1589년 기축옥사로 유배를 떠난 김우옹선생이 중국 송나라 태조 원년 960년에서 명나라 태조 원년 1368년 까지 480년 간의 중국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36권 20책의 분량을 673매의 배나무 목판에 새겨 보관중이였다.강당격인 일중당은 서까래,목재기둥,천정,익공양식,창호 양식들이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되었다.마루로 목재  현판이 걸려 있었다. 국보급 글씨체로 서원의 품격을 더하였다. 일중당에 마루에 앉아 다류체험을 하였다. 다류종과 다과3종을 제공 받았다.나무쟁반에 차려진 다과세트가 눈으로 만 봐도 미각을 자극하였다.일본풍 도자기 그릇에 참외떡,쑥떡,젤리,견과화과자가 올려지고 나무젓가락 받침,도자기 잔,유리컵의 황차로 고 품격으로 차려진 예술적인 다식세트였다.옆에서 남겨진  견과류를 먹으면서 황차를 마셨다. 녹차와 같은 맛으로 뒤끝은 개운한 맛이였다. 일중당으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졌다.서원과 함께 저! 멀리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마을의 경치가 비추고  마루 창가로 뒷마당의 정원과 위풍당당한 사당이 비추며 매혹적이였다. 고급진  차와 다식을 음미하면서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수 있는 힐링이 넘치는 곳이였다. 서원 마당으로 자갈마당을 이루며 박석이 깔렸다.하얀 새끼닭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겨웠다. 일중당옆 꽃정원을 따라 뒷마당의 돌계단위 사당이 위풍당당하게 버티며 종가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즉 청천서원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매우 환상적인 곳으로 고품격의 다과를 체험하며 평안을 누릴수 있는 곳이였다.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가는 차창가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가야산국립공원 입구로 매우 우거진 숲길이 펼쳐졌다.가야산국립공원안에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과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 버티고 있었다.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은 가야국 창건신화의 모태인 정견모주 이야기와 가야산의 생태를 테마로한 곳이였다. 테마관에서  가야산의 사계절을 영상으로 만났다.매우 신비로운 만물상과 뻐꾹나리,사양노루등  희귀보호종자생하고 있는 산이였다. 영상으로 만 봐도 매우 수려한 가야산을 자랑하고 있었다.가야를 품은 신화의 산  가야산의 주능선은 날카로운 암봉인 석화성으로 가야산의 불꽃을 이룬다. 가야산 태자바위와 우비정은 영험한 기운을 가진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가야산 중턱에 통일신라 후기의 마애불이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66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 칠불봉에는 일곱 왕자의 전설이 깃들여 있었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후는 열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일곱 아들이 외삼촌인 장유보옥 화상을 따라 불도에 입문하여 산속에서 정진하였다. 가야산에는 고대사회 지역 방어에 중요한 역할인 포곡식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것으로 전해지는  대가야의 이궁으로 추정되는 가야산산성과 가야때 축조된것으로 보이는 독용산성이 있다. 포천계곡에 만귀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 이원조가 포천구곡시를 지었다.포천계곡은 가야산과 어우러져 선비들의 심신과 학문을 닦는 곳이였다.성주의 설화와 전설이야기등이 전시되었다. 조선시대 성주는 광역시였다. 고려말 성주이씨가 살았던 고장으로  조선은 성주이씨나라로 생각하였다.성주는 최고 명당으로  태실과  성주사고를 조성하였다.신화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매우 산뜻했다.신화관은 가야 건국신화가 서려있는 가야국의 천신의 자손 신화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신성한 가야산 일대를 다스렸고 백성들도 산신을 믿고 따랐다.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하여 가야산 정상에서  혼례하였다.  첫째 아들은 천신 이비가지를 닮아 머리가 해와 같이 빛난다하여 뇌질주일이라 하고 둘째 아들은 가야산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하늘색과 같이 푸르다 하여 뇌질청예라 하였다.후에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고 뇌질청예는 낙동강 하류 김해로 내려가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가야국은 철기문화를 이룩한 대국이였다.대가야국의 월광태자는 정견모주의 10세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이뇌왕이며 신라에 혼처를 구하여 이찬비지배의 딸을 맞이하여  태자를 낳았다. 이뇌왕은 곧 뇌질주일의 8세손이다. 복도 카페시우입구로 지상낙원 같은 자연을 표현한 그림들이 매우 화사하게 진열되었다.복도 벽면으로 거대한 일본풍 도자기와 함께 가야산을 그린 그림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생동하는 가야산의 봄, 철쭉의 가야산, 만물상의 경치를 표현한 작품들로 생명력으로 충만한 매우 환상적인 작품이였다.  2층 옥상정원으로 가는 길을 밝게 인도해 주었다.옥상정원2층의  상아덤마당에 정견모주의 신화의 발원지인 상아덤을 기념하여 생명탄생의 신비로운  어미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다.가야를 잉태한 여신처럼 매우 신비로웠다.만물상과 상아덤의 고운 자태를 간직한 해동명산인 가야산을 품고 있는 성주가 가야의 태동 신화와 함께 매우 신비롭게 다가왔다.가야산테마정원 주위로 여러갈래의 숲길을 이루고 있었다.싱그러운 벌개미취 꽃밭을 이룬 가야숲길 따라 660여종의 나무와 야생화를 전시한 가야산야생화식물원으로 이어졌다. 회색 콘크리트  장식과 함께 덩쿨벽체를 이룬 출입구로 매우 정겨웠다. 실내전시관에 성주역사에 대해 나열 되었다. 성주는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소국이 등장하였으며 이것이 모체가 되어 6가야의 하나인 성산가야가 되었다. 성산가야는 성주성산고분군을 위시한 대규모의 고분유적을 남기기도 하였으나 적어도 6세기 중엽 신라에 복속되어 일리군에 속한 본피현이되었다. 고려시대 이총언을 위시한 호족들이 고려의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운것으로 인하여 940년 (태조23) 경산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는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곳으로 인재도 많이 배출한 영남 거읍 중 하나였다.시생대는 꽃이피는 속씨식물이 크게 번성하고 포유류가 발달하였다. 속씨식물은 씨앗이 열매속에 들어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중생대는 겉씨식물이 발달하고  공룡이 매우 번성하였다. 겉씨식물은 씨앗이 바늘잎 위로 드러나 있으며 꽃과 열매가 없다. 은행나무 침엽수가 여기에 속한다. 고생대는 식물들이 육지에서 자라기 시작하였으며 양치식물과 양서류가 번성하였다.홀씨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은 3억년 전에 가장 번성하여 석탄을 형성하였다.화석은 지질시대에 살았던 생물의 유해와 흔적에 적용되는 말이다.지질시대의 퇴적암 안에 퇴적물과 함께 퇴적된 동식물의 모습이 나타난 경우 체화석, 발자국과 같이 생활 모습이 나타난 경우를 흔적화석이라 한다. 지층이 만들어진 환경을 알려주는 화석을 시상회석,지층의 생성시대를 알려주는 화석을 표준화석이라 한다.여러 종류의 화석들과 함께 여러가지 나비종류들이 표본으로 전시되었다.자연생태계가 매우 신비로웠다.곤충은 무척추동물로 등뼈가 없으며 절지동물이므로 보호 작용을 하는 단단한 겉뼈대와 관절로 된 다리를 가졌으나 다리가 6개 이므로 절지동물과 구분된다. 대부분 곤충은 날개가 있어 먹이를 찾고 위험으로 부터 벗어 날수 있다.절지동물은 4쌍의 다리를 가졌고  머리와 가슴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또한 곤충보다 더 많은 다리가 있어 다족류라고 하며 많은 마디로 이루어진 지렁이는 다리가 없고 머리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밖에 성주의 문학인 무흘구곡,가야산 생태계,나무나이테,씨를 바람에 날려 번식하는 야생화 생존방법,숲의변화,숲이주는 혜택,나비의 비밀,사슴벌레의 종류 생김새 성장과정에 대해 나열되었다.식물원을 거닐면서 천연계가 약동치는 기분 같았다.새빨강 열매들이 송글송글 맺힌 서향이 열정을 발하고 맑은 연못으로 뛰노는 어류들의 온실로  매우 싱그러웠다. 온실을 지나 야외 전시원로 가는 길로 덩쿨담장과 검은 현무암으로 식물들이 서식하며 매우 싱그러웠다. 초가집과 우물을 장식한 정원과 숲길로 웅장한 자태의 가야산이 비추었다. 야외 전망대로 가야산의 만물상이 재현되어 장식되었다. 매우 수려한 가야산의 발해봉,대구경치들이 펼쳐져 매우 아름다웠다.매우 수려한 가야산과 굽이치는 산세로 구름이 장관을 이루어  가슴안에 가야산을 모두 품은것 처럼 힐링이 솟구쳤다.즉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과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은 성주를 품고있는 가야산의 가야국의 시조 정견모주의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신비로운 정감이 깃든 곳이였다. 가야산야생화식물원에서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차창가로 산봉우리가 드리운 잔디로 단아한 석탑이 비추었다.성주의 불교 도래지처럼  국보급 같았다.농가맛집 밀에서 연잎밥정식을 먹었다. 산봉우리가 드리운 마을에 장독뚜겅에 자라난 거미 바위솔이 생명의 신비를 품고 리틀장미가 매혹으로 손짓하는 식당으로 정겨운 별장 같았다.경북기술원과 성주군에서 선정한 맛집으로 KBS 생생정보에도 방영된 명품 맛집이였다. 가야산자락에서 자생하는 꿀벌, 솔향을 가득 품은 소금, 직접 담는 장과 황태를 박아 3년 이상 숙성시켜 뼈째 녹아낸 된장,성주참외청과 참외식초,남새밭에서 직접 생산하는 식재료를 사용하는 힐링식당이였다.금사발과 도자기 그릇에 담겨진 음식들이 고급 한정식 차림으로 주인장 지극한 정성으로 빛났다. 좀 질었던 연잎밥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이 솟구쳤다.매우 진한 된장찌게는 구수했다. 양념간장에 군 가자미는 좀 짰지만 고급진 요리처럼 보였다.생황태절임은 새콤한 맛으로 과일청이 듬뿍 들어간 맛이였다.머위나물무침은 들깨의 고소함과 함께 머위향기가 가득했다. 상추된장무침은 나물맛으로 상추인줄 전혀 몰랐다.간장양념으로 볶은 제육볶음,새콤하고 신맛의 꼬시래기,오징어초무침,진한 간장맛의 잡채,새콤한 상추무침,간장과 식초맛의 참외절임,유자청이 들어간 목이버섯으로  간장과 식초,과일청을 주로 사용하여 맛을 낸 반찬들이였다.자연밥상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되었다.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한 회원이 연잎밥을 안먹어 내가 싸가지고 왔다. 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고 식당 뒷마당에 갔다. 주변 산봉우리들이 펼쳐지며 싱그러웠다. 쉼터옆으로 뻗어나간 오디를 따 먹으며 카타르시스가 넘쳤다.식당 마을로 수려한 가야산 산봉우리들이 드리우며 매우 아름다운 전원마을의 정취를 자아냈다.가야호텔로 가는 차창가로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들이 펼쳐졌다.카페옆 계곡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꽐꽐 쏟아졌다.이윽고 휴게소를 지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가야호텔로 가는 길로  매우 울창한 가로수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매우 신비로운  바위들이 장식된 잔디를 지나니 쪽문으로  별관1 뒷마당의 무릉도원 같은 바위산이 비추었다. 가야산의 만물상을 비롯해 굽이치는 산봉우리들이 수려하게 호텔을 드리우며 매우 환상적이였다.별관2옆 206호에서 묶게 되었다. 가야호텔 주변의 경치에 매혹되어  짐을 내려 놓자마자 산책을 하러 나갔다. 거북이탑과 바위로 물줄기가 흐르는 연못을 이룬 호텔 광장으로 가야산 산봉우리들이 펼쳐지며 신비롭게 빛났다.별관1 뒷마당으로 다시 가 보니 수목원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한 기암괴석으로 신비로웠다. 저! 멀리 산봉우리들이 비추는 언덕 아래로 작은 사각연못을 이루며  매우 싱그러웠다. 잔디정원에 도로공사로 땅에 묻히게 된것을 이곳으로 이전한 부처바위(학바위)와 함께  매혹적인 수석과 바위가 장식되며 산의 중턱에 오른 기분 같았다. 별관2옆길로 웅장한 가야산 봉우리가 비추며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 버티고 있었다. 바위정원과 덩쿨에 드리운 가야산야생화 식물원으로 아치형 입구 장식을 이루며 싱그러웠다. 웅장한 가야산 봉우리가 드리운 언덕을 올라가니  가야산 용기골 탐방로 연결되며 시원하고 웅장한 계곡의 물소리로 매우 청정했다. 시원한 게곡 물소리를 따라 용기골 등산로가 연결되고  백운동 야영장을 이루고 있었다.즉 가야호텔을 드리운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매우 환상적인  곳이였다.산책을 한 후 호텔로 들어와 지하 620m 가야산 암반층에서 자연 여과 과정을 거쳐 솟아나는 천연 알칼리 암반수로 족욕을 하였다. 물이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워 힐링이 솟구쳤다.운이 좋게 침실과 안방을 이룬 호텔방이였다. 호텔 내부는 흰대리석벽면과 바닥을 이루며 금색을 장식한 소파와  흰색의 클래식한 가구들로 가야국의 영광인 성주가 자랑하는 고급 호텔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밖숲 정보센터

 

감골식당부근
감골식당
성산동고분군
독립유공 직산 김창열 선생 기념비
청천서원
가야역사테마관
가야산야생화식물원
식당가는 길
농가맛집 밀
가야호텔
가야호텔부근 용기골 탐방로가는 길
가야호텔 숙실

 

 

6월15일

합천영상테마파크
농산정

 6월15일~아침에 일어나 가야호텔 주위를 산책했다. 별관1동 뒷마당으로 가야산  산봉우리가 매우 아름답게  드리우며 계곡의 물소리로 웅장했다. 솔향기의 매우 좋은 공기와 함께  매우 환상적인 경치로 넋을 잃었다.호텔 조식으로 황태해장국백반을 먹었다.무우, 콩나물의 시원한 맛과 황태의 고소한 맛이 교차되는 맛으로 매우 담백했다.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이 솟구치는 맛으로 지금까지 먹었던 황태 해장국 중 제일 환상적인 맛이였다. 깔끔하게 우려낸 육수가 맛의 관건인 것 같았다.브로컬리,정겨운 맛의 깍두기,매우 부드럽게 감기는 구운김,동그랗게 지져낸 달걀후라이,달큰하고 고소한 소고기불고기로 영양을 골고루 분배한 차림이였다.평소에 먹을수 있는 맛이였지만  질리지 않게 다가왔다. 담백한 맛을 추구하는 조식차림이였다.합천으로 가는 차창가로 매우 웅장한 산봉우리가 고개길을 드리우며 펼쳐졌다.고개길을 지나 합천 대장경테마파크와 정인홍선생 유적지옆  하천 석교다리로 이어졌다.성주와 합천이 고개길과 인접해 있었다.야로면에 이르러 바위가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졌다. 산봉우리가 50분이상 펼쳐져 합천의 자연을 모두 품은것 같았다. 합천영상테마파크옆 수려한 산봉우리에 드리운 황강이 매우 환상적으로 비추었다.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지인 합천영상테마파크는  1920년대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국내 최고의 시대물 오픈세트장과 모노레일을 통해  청와대를 갖춘 파크였다. 장난감같은 드라마세트장과는 달리 매우 튼튼하게 실제처럼 지어져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마세트장 같았다.관광서,서울역,적산가옥,주택,영화관,상점등.. 골목과 거리마다 매우 운치가 있었다.특히 마이웨이 세트장으로 서양풍 감성의 분수대가 거리를 휘감고 있는 일본귀족의 기와삼문이  카리스마스 자태로 압도 되었다. 주변의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와 초원이 비추는 정원 중앙 석교다리의 연못으로 무릉도원 같았다.석교다리를 지나 출입문으로 연결되며 매우 운치가 잇었다.초목에 드리운 목재양식,반듯하고 질서정연한 창호양식의 일본 건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발걸음을 옭길때 마다 그 시대 배경과 삶이 그려지는 레트로 감성으로 가득한 매우 환상적인 파크였다.모노레일이 고장이 나 걸어서 청와대로 향했다. 언덕  테크길로 우거진 가로수길과 연못으로 싱그러웠다.저! 멀리 비추는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10분쯤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가니 청와대가 버티고 있었다.깊은 산자락 아래 청와대처럼 위용으로 압도되었다. 실제 청와대르 보는것 같아 감동했다. 세종실과 나무가지가 장식된 충무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 빨간 카페트의 계단으로 우리나라 지도와 함께 고가구장식으로 세계로 향하는 깃발 같았다. 각 대통령의 기원과 싸인이 있는 도자기가 진열 되었다. 훈민정음 병풍, 해,달,소나무,사슴등 모든 천연계가 약동하는 병풍, 21세기 전통가구,빨강 자개문갑 장식으로 고전미가 넘쳤다.무궁화와 2마리 학이 금으로 장식된 대통령 집무실에서 추억의 사진을 찍으면서 힐링되었다.벽에 걸려 있는 매화나무그림,민화,가구에 장식된 소나무 분재까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정양늪으로 가는 차창가로 합천영상테마파크옆 부터  드넓은 황강이 매우 길게 펼쳐졌다. 맑은 강에 산봉우리가 거울처럼 비추며 매우 아름다웠다. 논밭옆 가까이 지나가며 더욱 싱그러웠다. 산봉우리들이 계속 펼쳐지며  장대한 황강의 매우 수려한 산세를 지닌 합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정양늪 생태공원은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경관과 생물학적 다양성을 간직한 경상남도 대표 습지였다.정양늪은 약 1만년 전 후빙기(빙하기 이후~현재)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낙동강 본류가 퇴적되면서 생겨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최대 100헥타르 습지가 지난 1988년 합천댐 준공이후 40여 헥타르로 줄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생태학습관에서 정양늪과 습지에 대해 전시되었다. 습지가 지닌 중요한 생태적 기능은  각종 야생동물 서식지로 제공되고 유수 속의 침전물과 유기물을 제거하며 지표수 및 지하수의 저장 및 충전을 통한 유량을 조절하는 동시에 생물 종의 다양성을 증대시키며 연안과 내수면의 수질을 정화할 수 있으며 각종 수산 및 어족 자원을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는 서식처로 이용할 수 있으며 지하수의 보수 및 홍수조절에 기여한다.우리나라에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잘 발달된 갯벌이 습지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강의 흐름이 변화하거나 강의  유입하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하천 배후습지들과 해안변에 모래가 만을 가로막아 만들어낸 석호가 있다. 오름같은 분화구나 높은 산에 습지가 형성되기도 한다. 강의 하구에는 하구습지가  있고 서해안에는 세계적으로 잘 발달된 해안 갯벌습지가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습지에는 논과 저수지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 수심이 얕고 저수지의 가장자리에 수초대가 잘 발달되어 있다.생태학습관의 복도로 식물을 디자인한  등장식과 함께 노랑어리연꽃,홍련,백련,가시연꽃,마름,물옥잠,꼬마부들,개구리밭의 사진작품들로 매우 청초했다. 생태생태학습관에서 해설사 안내에 따라 테크길로 가니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습지가 태고의 신비로운  모습으로 펼쳐졌다. 매우 광대한  습지로 천연계가 우주를 약동치는 것 같았다. 가시연,속새,왜개연꽃,줄,생이가래,내버들군락 꽃창포,갈대,남개연,자라풀,수련,어리연등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펼쳐지며 매우 싱그러웠다.큰고니등 다양한 철새들의 휴식처로 버드나무와 메타세콰이어,수상테크길이 어우러진 3.4km생태탐방의 광대한 자연습지였다.생명의 텃밭으로 재생되는 지상 낙원이였다.습지의 아름다움을 난생 처음으로 느낀 생태공원이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자연 학습관으로도 손색이 없는 생물학적 가치를 지닌 학자들의 연구지 같았다.식당가는 차창가로 30분동안 황강과 산봉우리들이  펼쳐졌다.청림에서 점심을 한우소고기버섯전골을 먹었다. 한우소고기버섯전골과 함께 16첩 밥상이 차려졌다. 한우소고기버섯전골은 소고기와 버섯이 잘 우려진 맛으로  매우 감칠맛 있었다. 천연 조미료 맛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개운했다.달걀을 입힌 황태튀김은 양념간장을 뿌려 잘 맞는 간과 함께  바싹하고 고소했다.계피가 들어간 우엉조림은 환상적인 맛이였다.새콤한 비트절임은 비트의 천연색으로  미각을 자극했다.시원한 열무향의 열무김치는 정겨운 맛으로  입맛을 돋구었다.깻잎절임은 정겨운 맛으로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져 있었다.유지청이 들어간  연근조림은 유자향과 함께 달큰했다.잘익은 김치,파향기가 가득한 파김치,고소한 콩나물무침,취나물향기가 가득한 취나물무침,고구마의 달큰함이 살아있는 고구마튀김,고소한 견과멸치볶음, 옥수수,건포도,마카로니가 들어간 샐러드, 버섯향기로 가득한 느타리버섯볶음,새우마늘쫑 무침,싱싱한 맛의 고추냉이멸치조림으로 재료의 본연의 향기가 살아있는 맛이였다.천연조미료로 천연의 향기를 담는 일류식당이였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해인사에 갔다.해인사의 홍류문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숲길이 홍류동계곡 물소리와 함께 매우 울창했다.하늘이 내린 천혜의 요새 같았다. 해인사 성보박물관 부근에서 버스로 내려 2km정도 거리인 해인사까지 걸어갔다. 매우 수려한 산세가 비추는 가야산 소리길로 매우 아름다웠다.해인사까지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매우 울창한 숲길과 맑은 계곡의 웅장한  물소리로 청량감으로 가득했다.상왕봉이 비추는 고즈녁한 사찰로 가는 오름길목의 산책길이 힐링으로 가득찼다.세계유산 해인사는 가야산에 자리한 우리나라 3대사찰이자 법보사찰이다.서기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이정 두스님이 창건하였다.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경전의 최고봉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인  세계유산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의 신비한 역사와 70여점의 국보 보물급 문화재 간직하고 있었다.해인사 일주문과 봉황문을 지나 돌계단으로 해탈문,대적광전으로 가는 길까지  돌계단을 이룬 가람 배치도로 노약자도 쉽게 갈수 있게 나무테크길을 놓아 너무 편했다.우리나라 국보의 대장경을 보기 위해 설래임을 감추지 못했다. 장경판전으로 가는 길로 수려한 가야산이 사찰을 품으며 속세를 달래주는 길 같았다.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했던 곳이였다. 최치원 조각이 전나무에 드리우며 버티고 있었다.자연과 벗하며 극락을 누리는 최치원의 모습을 대사처럼 표현하였다. 당시 거꾸로 꽂아둔 전나무 지팡이가 천년고목으로 살아 있어 신비로웠다.바닥을 연꽃모양으로 장식한 대비로전의 뒷마당으로 장경판전으로 가는길이 돌계단으로 이어졌다. 계단씩 돌담장의 정원과 함께 기와 대문이 우직하게 비추었다.고려 팔만대장경과 이를 봉안한 장경판전을 친견하러 가는 여정으로 흥분의 도가니로 불태웠다.대장경은 경,율,논의 삼장을 말하며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불교경전 총서를 가리킨다. 고려팔만대장경판은 글자를 새긴 경판 판면과 경판 양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리로 이루어져 있다.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인류 최대 기록물로 약 240여년 동안 3차례 걸친 고려대장경 판각은 불교를 꽃피우게 하였고 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여 아시아 문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는 정신문화사적으로도 세계적인 자랑거리였다. 대장경판 국보 제32호,장경판전 국보 제52호, 고려각판 국보 제 206호 보물 734호을 모신  법보공간은 대적광전 뒤로 가파른 게단위  현판을 단 문 뒤로 위치한 네 건물을 포함한다. 마당 앞쪽의 동서로 긴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뒤에 있는 긴 건물은 법보전이다. 이 두 건물에 고려대장경판이 모셔져 있다. 그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각판을 모신 동.서 사간판전이다. 4동으로 이루며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었다.서남향으로 지어져 직사광선을 직접 닿지 않게 하고 소금,숯과 횟가루,모래를 차례로 놓은 판전 내부 바닥은 목재경판의 보전유지에 가장 알맞은 평균습도를 유지하게 하며 경판의 변형을 줄일뿐만 아니라 해충의 침입까지 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창문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하여 자연적으로 통풍이 되도록 하였으며 경판의 양 끝에 각목으로 인한 공간으로 공기가 유통할 수 있도록 하여 모든 경판이 공기와 접하게 되어 있다.이런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처리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대장경을 보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건축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갈 수 없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이 담겨져 있었다.굳게 닫혀진 나무창살로 비추는 대장경판이 매우 신비로웠다.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과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몽고족의 침입으로 혼란한 틈에  불교로 민족을 통합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호국정신이 깃든  대장경판이였다. 그 당시 종이기술과 목재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성보박물관으로 해인사 전경과 국보에 대한 사진작품들이 전시되었다.장경판전과 글자의 사진작품이  걸려 있었다.판전에 새겨진 글자가  하늘이 내린 글씨 같았다.불교회화는 석가모니불 등 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설법도라고 일컫는 존상화,부처님 생애를 그린 불전도,전생을 묘사한 본생도,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뜻을 알기 쉽게 표현한 변상도등이 있다.수월관음도를 대표하는 보살도,부처님 제자들을 그린 나한도,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비롯한 선종도, 덕 높은 스님들의 초상화인 진영등이있다. 불화의 채색 방법은 전체가 일반적이나 수묵 또는 선묘로 그린 경우도 있다. 족자나 액자, 벽에 거는 탱화나 병풍 그리고 영산제 등 큰 행사때 바깥에 거는 쾌불 등 용도와 기능에 따라 여러가지로 분류된다.해인사에서  농산정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으로 부터 웅장한 물소리를 뿜어내는 홍류동계곡이 매우 아름답게 펼쳐졌다.홍류동계곡은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과 남산 제이봉 매화산사이를 굽이쳐 흐르면서 주변의 기암괴석 송림등과 어울려 사시사절 절경을 이룬 계곡이였다. 4Km에 이르는 홍류동계곡은 울창한 송림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기암괴석에 부딪치며 신선이 노닐만하는 매우 환상적인 절경을 갖고 있었다.농산정은 신라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은둔하여 수도하던 곳이였다. 원 정자는 창건시기를 알수 없으며 지금의 것은 고운 선생의 후손과 유림에 의헤 1936년에 중건된 것이였다.아치형다리로 신비한 바위들이  산재하는 계곡으로 초목들이 드리우며 매우 환상적이였다. 홍류동계곡의 다리로  신비로운 기암괴석들과  맑은 물이 쏟아지는 계곡의 경치로 무릉도원 같았다. 다리를 건너 농산정 정자가 사각지붕과 함께  겹처마를 이루며 고풍스러웠다. 정면 2칸,측면 2칸 규모의 단아한 정방형 목조기와 건물이였다. 정자 안에는 현판 전시관을 방불케 하는 여러가지 현판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각기 다른 글씨체로 고혹적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김영한이 쓴 농산정기와 찬양사4수가 기록되어 있고 고운 선생의 둔세시를 차운한 시8수가 있다. 시 중에는 점필재,김종직 선생의 차운시도 들어 있다.정자앞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이 고혹적으로 빛났다.정자주변 계곡으로 거대한 기암괴석들 펼쳐지며 대학자의 수도 불꽃으로 얼룩졌다.정자의 건너편에는 치원대 혹은 제시석이라 불리는 석벽이 있고 거기에는 고운의 칠언 절구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농산정옆 계곡으로 내려가니 우거진 수풀림과 함께 기암괴석들로 명산 중턱에 온 기분 같았다. 시원한 게곡물에 발을 담그며 온몸과 정신이 청량해진 기분 같았다.즉 가야산에 자리한 해인사의 주변이 웅장한 산세와 함께 울창한 숲,맑은 계곡으로 매우 환상적인 길이였다.가야산 해인사 일원은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을 중심으로 해인사와 24개 암자가 자리 잡고 산세가 웅장 수려하여 해동 제일의 명산이였다. 늘 푸른  침엽수와 철 따라 색다른 활엽수,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은 선현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해인사를 감싸고 있었다. 가야산은 우리나라 불교 전통이 가꿔온 성지로 이름난 명산이였다. 신라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 자취가 남아있는 논산정,학사대,낙화담 등의 유적을 비롯해 사명대사가 말년을 보냈던 곳으로 옛 선현의 숨결 느낄수 있는 곳이였다.서울로 가는 차창가 웅장한 가야산이 드리우며  홍류동계곡이  펼쳐졌다. 홍류동계곡을 지나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들로 명산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합천을 지나니  매우 아름다운 산세가 펼쳐졌다.

가야호텔
합천영상테마파크
합천영상테마파크
정양늪생태공원
정양늪생태공원 학습관
청림
해인사
해인사 성보박물관
홍류동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