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8일~테마캠프여행사에서 함안으로 여행을 갔다. 맨 앞좌석으로 배치되어 마음이 상쾌했다.함안 강주해바라기마을은 작은 농촌마을을 살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2013년부터 마을 주변 밭에 해바라기를 심어 꽃밭을 조성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해바라기축제장 입구로 적벽돌에 둘러싸인 비석과 함께 돌을 쌓아 등대를 장식한 마당으로 교회가 비추며 전통을 이어가는 평화로운 마을 같았다. 골목 언덕으로 올라가니 산자락 아래 해바라기가 펼쳐졌다.사람 키만큼 해바라기들이 식재된 강주가 자랑하는 해바라기축제장으로 더운 날씨 탓에 말라죽어가고 있어 너무 아쉬웠다.무덤이 버티고 있는 해바라기 밭으로 햇살이 좋은 명당터 같았다.해바라기밭으로 주변 마을경치와 산봉우리들이 펼쳐졌다.해바라기밭에서 내려와 땅콩,말린대추,콩을 시식하며 힐링되었다. 가야시장에서 내려 고봉민김밥집에서 점심을 순두부찌게를 먹었다.표고버섯,호박,소고기가 듬뿍들어간 소고기육수로 끓여낸 순두부찌게였다.소고기육수,고추기름,계란,후추가루 양념이 조화를 이루어 매우 감칠맛 있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순두부찌게 중 제일 맛있었다.달큰한 김치,견과류가 듬뿍 들어간 멸치볶음,비트가 들어간 무우절임으로 주인장의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였다.재료를 아끼지 않고 매우 감칠맛 있게 요리하는 식당이였다.착한가격으로 힐링할수 있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가야시장을 둘러보니 시골시장처럼 매우 한적해 안타까워 보였다.가야시장에서 함안 말이산고분군에 갔다. 말이산고분군 입구에는 함안시립박물관과 말이산 고분군 고분전시관이 버티고 있었다.아라가야의 대표적인 토기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함께 함안시립박물관의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이 연결되고 함안의 토기,고인돌등이 장식된 연못을 지나 고분군 고분전시관으로 함안의 문화를 빛내고 있었다.특히 수레바퀴모양토기는 말이산4호분에서 출토된 토기로 아라가야의 뛰어난 토기 제작기술과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토기로 경이로웠다.
함안시립박물관
함안은 경상남도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내륙과 해안으로 이동이 편리하여 예로부터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이자 요충지였다. 풍요로움과 외부로부터 우수한 접근성은 함안의 전통문화의 원동력이 되었다.함안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함안층은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백악기 후기의 퇴적층이다. 함안층에서 새와 공룡의 발자국 화석 등이 발견되는데 호수 주변의 부드러운 땅에 남겨진 여러 흔적들이 굳어진 뒤 융기되고 침식되어 현재의 지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돌을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기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대로 후기에가 석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교적 정교하게 만들었다. 신석기시대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한 시기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흙 반죽을 불에 구우면 단단해지는 것을 터득하고부터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토기는 물에 녹지도 불에 타지 않는 음식을 저장하고 조리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바위에 성혈을 새기는 행위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하고 있는 문화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 중앙아시아,시베리아 등의 넓은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혈은 주로 고인돌 상석이나 선돌,자연 암반에서 확인된다.청동기시대에 들어 와 본격적인 농경과 정착생활이 이루어지면서 작은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다. 농경이 보편화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였고 빈부격차와 계급분화를 불러와 지배자가 등장되었다.한반도는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중국 내몽고,동북지방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했다. 빗살무늬토기대신 민무늬토기를 사용했고 청동기가 출현하였지만 석기를 주로 사용했다.기원전 약900~800년 무렵 청동기시대 후기인 송국리 문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역적 특징를 가진 붉은간토기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라가야 중심지인 가야읍에는 말이산고분군을 비롯해 도성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아라가야가 쌓은 산성들은 낙동강과 동쪽에서 아라가야 중심부로 들어오는 교통로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신라세력에 차단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었다. 말이산의 중심과 가지 능선에 분포된 말이산고분군은 국내 최대급 규모의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아라가야의 6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대 유적이다.함안은 아라가야의 옛 도읍지로 변한의 작은 나라였을 때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6세기 중엽까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아라가야는 삼한시대 변한 12국 중 하나인 변진안야국이 3~4세기 대에 성장하여 형성된 정치체이다.아라가야는 주변의 작은 나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고대국가로 상당한 수준의 정치저,문화적 발전을 이루어 냈다. 가야 전기에는 금관가야,후기에는 대가야와 함께 전기와 후기를 통틀어 여러 가야국들을 이끌었다. 아라가야는 북쪽에는 남강과 낙동강 남쪽에는 진동만이 있어 내륙과 해상으로 진출하기 유리하여 고대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4세기 전후 더욱 성장한 아라가야는 5세기 무렵에 말이산의 고총고분을 조성할 정도로 정치적 발전을 이루었고 이후 여러 가야국들을 대표하여 백제,신라,일본 등과 외교 활동을 주도했다.아라가야는 토기의 나라라 할 정도로 토기문화가 특히 발달하였다.기원전후부터 기와 질감의 와질토기를 생산해왔던 아라가야의 도공들은 4세기에 접어들면서 토기 생산에 대변혁을 맞이했다. 오랜 세월 남강의 범람으로 마련된 고운 바탕흙을 소재로 아름다운 조형미를 지닌 토기를 빚어냈다. 이 토기들은 강과 바다를 따라 주변 가야,신라,백제,남조,왜,삼연,일본 등 먼나라까지 확산되었다.고대사람들은 특별한 생물이나 사물에 신성함을 부여하여 구성원들 간의 결속을 다졌다. 종교적 신념속에 제사와 의례를 치렀는데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이나 상징성이 담긴 사물의 모습을 본떠 토기에 담았다.강력한 중장기병의 존재를 드러내는 아라가야 말갖춤은 철기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장신구,갑옷과 마갑총,투구의 장식성이 매우 정교한 예술성을 지닌다. 아라가야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유물은 새모양장식 마늘쇠와 오리모양토기 등 새와 관련된 유물들이다.죽은 사람이 새처럼 날아다니라는 뜻에서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여 장사를 지냈다. 5세기 후반 아라가야의 최전성기를 짐작 하는 별자리가 새겨진 뚜껑돌인 아라가야별자리로 아라가야의 과학 우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라가야는 5세기 후반 삼국시대의 여러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전성기를 누렸다.하지만 6세기 초반에 이르면서 가야,백제,신라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가야는 백제와 신라의 압박을 동시에 감내해야 했다. 아라가야는 외교를 통해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라 진흥왕이 백제 한강 하류지역을 점령하고 신주를 설치함으로써 백 년 넘게 지속되었던 나제 동맹이 와해되었고 554년 백제와의 관산성전투에서 승리한 뒤 큰 장애물 없이 가야로 진출하였다. 결국 6세기 중반 아라가야는 대병에 의해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다. 삼국.통일신라시대 함안은 해안과 내륙을 잇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조선시대 회화는 안견과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여러 화원과 사대부 문인화가들에 의해 발전해오다 명.청.의 영향을 받아 조선 후기가 되면 회화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특히 남종화풍을 우리 정서에 맞는 민족적으로 발전시킨 진경산수화와 당시 사람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풍속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는데 이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서민문화 의식이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에는 3원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과 공재 윤두서,겸재 정선,관아재 조영석을 꼽는다. 본관이 함안인 조영석(1686~1761)은 시서화와 풍속화에 능한 조선후기 문인화가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1735년 고사관수도이다.
전시실에서 아라가야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함안은 아라가야의 고도로 가야시대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토기들이 매우 놀라울 정도로 경이롭게 다가왔다.불꽃모양,상형토기,붉은간토기등 둥글고 독특한 모양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연꽃무늬 청자그릇은 고려시대 청자를 보는것 같았다.연꽃무늬 청자그릇은 가야문화권 최초로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제작된 최상품 청자그릇으로 아라가야의 권위와 국제성을 보여주는 유물이였다.말갖춤새,허리띠장식, 장식구등...이 통일신라에 못지않은 철기문화 우수성을 보여주는 철의 왕국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수준 높은 문화와 활발했던 대외 교류를 볼수 있었던 유물들로 매우 놀라웠다.
3층 고분전망대 제1전시실에서 제2전시실로 가는 통유리창 복도로 매우 산뜻했다.제2전시실 3층 아라홍련카페에서 연잎냉차를 무료로 재공해 주셨다.계단씩 목재바닥과 함께 통유리창문을 이룬 카페로 청량감을 주었다. 카페의 통유리창문을 통해 고분전망대로 연결되었다.바다로 향해 토기로 문화의 융성을 이룩한 아라가야의 햇불로 타올랐다.
말이산고분군 고분전시관
사적 제515호인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된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이다.말이산은 함안의 가야분지에 위치한 나지막한 구릉이다.말이산고분군 동구릉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중심능선과 이로부터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갈래의 가지능선으로 되어 있다.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최고 지배자를 모셨다. 말이산고분군은 널무덤에서 대형의 덧널무덤으로 교체되고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6세기에는 돌덧널무덤과 굴식돌방 무덤을 중심구조로 하는 대형 봉분이 밀집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밝혀졌다.죽음 뒤에도 삶이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순장의 출현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중엽에 들어 정치 권력구조의 확립과 사회적 수용을 통해 매장의례로서 시행하였다. 최고 지배자만 향유할 수 있는 장송의례였다.말이산고분군 4호분에 출토된 녹각장식 철검의 장식에 새겨진 직호문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일본 고분시대를 대표하는 문양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5세기 접어들어 구덩식돌넛무덤의 무덤방을 가진 대형봉토분들이 조영되기 시작한다.13호분에서는 가야 최초의 별자리 덮개돌이 확인되었다. 고구려 고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가야인들의 내세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고분에서 국내 최초로 말갑옷이 출토되었다.상형토기,사슴모양뿔잔, 소모양 뿔잔,연꽃무늬청자그릇이 출토되어 국제교류와 수준높은 문화를 이룩한 아라가야를 증명하였다.대가야계는 긴 원통을 세운 그릇받침,신라계는 뚜껑이 있는 굽다리 항아리, 백제계는 네발 달린 토기로 구분된다.능은 임금님 묘, 원은 고위급 묘, 묘는 그밖에 묘, 총은 알수없는 유물이 나온곳을 말한다.말이산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고분군,고령 지산동고분군,합천 옥저고분군,창녕 교동 송현동고분국,고성 송학동고분군,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과 함께 2023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함안시립박물관과 말이산고분군 고분전시관을 관람한 후 말이산고분군을 산책했다.고분길 따라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아라가야의 위엄이 우주로 약동치듯 매우 경이로웠다. 고분길에서 사방으로 함안의 경치들이 펼쳐지며 매우 환상적이였다.지금까지 본 고분 중 제일 위엄있는 고분으로 아라가야가 주변 가야국 중 최고의 대가야국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말이산고분군에서 무진정으로 향했다. 무진정부근으로 기암괴석의 산봉우리가 드리운 하천이 펼쳐졌다.유형문화재 제158호인 무진정은 조선 중종 37년(1542년)에 무진 조삼선생이 후진을 양성하며 이생을 보내기 위해 직접 지은 정자였다.조삼은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생육신 어계 조려선생의 손자이다. 연산군 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을 처벌하자는 상소를 올려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무진정은 함안의 민속놀이인 낙화놀이 전수관 언덕위로 성산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었다.정자와 다리가 있는 연못이 비추며 싱그러웠다. 신비한 바위자락아래 장대하게 우뚝솟은 초목이 드리운 효자담이 있었다. 조삼의 7대손 조경송(1678~1747)은 열살에 어머니를 잃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마져 중풍으로 거둥이 불편해지자 아버지를 지극한 효심을 봉양했던 사연이 서려있는 곳이였다. 조경송이 물고기를 잡던 냇가인 이수지 옆에 효자담을 세운것이였다.무진정 출입문인 동정문으로 가는 길 부터 웅장한 바위와 함께 거대한 초목이 무진정의 기와지붕이 내밀고 있는 황토기와담장에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각기 다른 모양새의 커다란 바위로 산속에 온 기분 같았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위위에 자리한 무진정으로 중국 한나라의 숨은 선비 장후의 정원과 같은 길을 내어 꽃나무들을 심어 나는 듯한 기와가 높이 치솟게 집을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바닥을 지면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형식이다.기둥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전기의 정자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정자 규모는 2칸인데 서쪽은 온돌방이고 동북은 모두 창으로 되어있고 창밖에는 단이 있어 구슬 문빗장과 같으며 그 아래는 푸른 암벽이였다. 큰 냇물이 남쪽에서 굽이쳐 흘러 내려오고 암벽을 돌아 풍탄으로 흘러갔다. 남쪽은 산이 우뚝 솟아 하늘을 떠받치듯 하는데 정자와 마주하는 산은 파산이다.겨울에는 문을 닫고 햇볕을 쪼일 수 있고 여름에 창문을 열면 더위가 가까이 하지 못하니 신선이 사는 곳의 경치와 통하고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고 밝은 달이 먼저 이르니 발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온갖 경치가 모두 모여 조물주의 무진정이였다.무진정의 담장으로 장대한 가지의 초목들이 드리우며 고혹적이였다. 정자의 편액들로 고결하게 빛났다.무진정의 바위 아래로 괴산재가 버티고 있었다. 무진정을 떠받치고 있는 신비한 기암괴석이 괴산재를 드리우며 고즈녁했다. 괴산재는 무진정 조삼 선생을 기리는 집의공파 종중의 재실로 조삼 선생의 후손과 인근 청소년 교육의 전당으로 이용된 곳이였다. 초석위에 유리창문양식의 단아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무진정의 동정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의 경치가 매우 운치가 있었다. 무진정을 둘러싸고 있는 기와담장으로 거대한 초목이 드리우고 바위아래 괴산재가 비추며 고즈녁했다. 바위 아래.위로 무진정을 드리우는 거대한 초목들이 고혹적으로 빛났다.무진정을 떠 받치고 있는 기암괴석들이 매우 신비로웠다. 한폭의 무릉도원 비경으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무진정에서 연못으로 가는 중 둘도모밴드 대장님이신 핫쭈대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 뜻밖의 일로 너무 반가웠다. 같은 여행사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왔는데 무진정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첫 여행지부터 보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동정문에서 부터 같이 동행하며 사진을 찍어 주셨다. 무진정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으로 중앙 정자를 중심으로 석교다리가 연결되고 초목이 드리우며 매우 싱그러웠다.연못의 석교다리가 고유미를 간직한 단아한 자태로 연못의 운치를 더하였다.연못에는 중앙의 섬과 함께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무진정으로 이어주는 다리를 지나 섬으로 장대한 초목이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지나 정자와 다리로 연결되어 매우 아름다웠다.연못의 섬에서 무진정이 매우 아름답게 비추었다.무진정 앞 연못옆에는 부자쌍절각이 버티고 있었다. 부자쌍절각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의 5대손이자 이곳에 정자를 세운 조삼의 증손자인 조준남의 효행과 그 아들인 조계선의 충절을 함께 기리기 위해 숙종 32년 (1706년) 임명으로 세워진 정려각이다.무진정앞 연못길로 내려가니 연못,다리,섬,바위,초목,무진정의 기세가 더욱 웅장하게 압도되었다.즉 아라가야의 중심지 말이산고분부터 아라가야의 산성인 성산산성 자락 아래 조선시대 무진정으로 함안의 역사 순례길 같았다.서울로 가는 휴게소에서 핫쭈대장님께 호두과자를 사드릴려고 카드를 갖고 나왔는데 핫쭈대장님을 마주치게 되었다. 핫쭈대장님이 먼저 커피를 산다고 해 네가 커피를 대접했다.나를 보게되어 반갑고 처음부터 알아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마음씨 좋은 대장이셨다. 잠깐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나를 처음부터 알아봤으면 사진도 많이 찍어줬을 텐데 하시면서 많이 아쉬워하셨다.포토여행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더 친숙해질수 있었다.서울로 가는 차창가로 노랑해를 중심으로 붉게 물든 일몰이 빨갛게 열정을 태우고 있어 카타르시스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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