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회영기념관,딜쿠샤,홍난파가옥,세화미술관(2026년2월28일)

백재은 2026. 3. 22. 10:04

2월28일~둘도모밴드모임에서 필립대장님 리딩으로 천사걷기를 했다. 오래간만에 추미자 언니를 만나 반가웠다. 

독립문역과 근접한 서대문형무소는 서대문구 통일로에 위치한 곳으로 1908년부터 1987년까지 억압과 공포의 상징인 일제강점기와 공복이후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뤘던 곳이였다.

조선시대 현저동101번지(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광복이후 서대문형무소(1945년~1987년)

서대문형무소 공간)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조선후기 북쪽 의주로 가는 큰길인 의주로가 위치하여 사대문 안과 밖을 동서남북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이에 주변은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영은문과 모화관 (현 독립관)있었다.1897년 영은문은 사라지고 독립문이 세워졌다.사진으로만 봤던 독립문을 처음으로 보게되어 감개가 무량했다.서재필선생이 위시하는 독립문이 근대 서양양식의 절충을 이루었다.사진으로만 봤던 독립문을 실제로 보개되니 감개무량했다.독립의 불꽃이 우주로 약동쳤다. 

독립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앞 도보를 건너 종로구 마을 언덕길로 향했다. 한양도성이 드리우며 역사의 길로 녹아 내렸다.

한양도성

이회영 기념관은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곳으로 20세기 초 미국 선교사가 건축한 집으로 운치가 있었다.원래 이집은 외국인 선교사 집이였다. 이회영 선생(1867~1932)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인물이였다.1910년 나라가 망하자 선생은 6형제를 모아 즉시 전 재산을 급매해 현재 가치로 수조 원에 달하는 군자금을 마련 60명의 일가족과 함께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이회영이 만주벌판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의 본거지이자 엘리트 양성소를 이루었다.여기서 배출된 전사들은 훗날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되었다. 그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직접 총을 들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서 일제의 심장을 겨눈 행동파였다.명동 도령에서 끼니를 걱정하는 망명객으로 그는 평생을 풍찬노숙했다. 65세 새로운 독립 거점 확보를 위해 움직이던 중 다렌에서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했다.생전에 이회영은 자유,평등 세상을 추구한 세계관을 가진 독립운동가였다.이회영은 독립 투쟁 중 자금 모금을 위해 목란을 그려 생사를 오가는 독립투쟁 과정 중에도 예술가로서 재능을 아끼지 않았다. 만주로 간 이회영의 6형제 중 해방 후까지 생존한 분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5남 이시영(1869~1953)이 유일하다. 나머지 형제들은 독립운동 중  돌아가셨다. 

이회영기념관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이였다.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AP 통신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선언서와 3.1운동,고종의 국장과 제암리 학살을 취재하여 전세계에 알렸다.그러나 1942년 조선총독부 강제추방에 의해 미국으로 떠났던 앨버트 테일러는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던 중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1948년 양화진 외구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서양건축에 기초한 딜쿠샤가 매우 고풍스러웠다.

딜쿠샤

홍난파가옥은 종로구 송월1길 홍파동에 있는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 1930년 독일인 선교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1936년부터 1941년까지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살았던 서양풍 벽돌조 건물이였다.1930년 이래 계단과 경사지를 사용한 서양풍 주택의 공간 활용이 그 이후에 지어지는 도시 단독주택의 선례가 되었다.홍난파 가옥이 있는 일대는 사울 성곽이 서대문에서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선상에 놓이며 동쪽으로는 경희궁이 접하고 잇는 위치였다. 인근 송월동에 독일 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근에 독일인 주거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이러한 근대배경이 그림자로 녹아 내리는 고귀한 문화유산 길이였다.

홍난파가옥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가 비추고 한양도성길이 드리우는 홍난파가옥에서 언덕으로 내려가니 아파트 상가로 갤러리가 있었다. 떼아트에서 권영하의 초대전과 HELEN. A에서 개인 전시회가 있었다. 권영하는 다른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경계를 허무는 공간 이미지를 창출했다. HELEN. A 에서 전시회는 민화풍 동양화 그림 같았다.다채로운 채색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떼아트 권영하 초대전
갤러리 HELEN. A

갤러리를 품고 있는 아파트 상가앞 조형물이 예술작품 같았다.

아파트 상가앞

종로구 신문로 세화미술관으로 가는 길로 벽돌벽체의 건물이 근대유산 건축처럼 고풍스러웠다.종로구 새문안로의 경희궁이 거리를 위시하였다.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로비에 세계적인 조형물이 장식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정신으로 일구어낸 재벌가의 영혼이 담겨져 있었다. 

흥국생명빌딩 로비

태광그룹 흥국생명빌딩안에 세화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미술관 소장품인 야요이  쿠사마 설치작업 전시회였다. 하나 하나 물방울 조각은 서로 모아지면서 미지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무한의 확장성이였다.이러한 확장성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테광그룹의 랜드마크와 맞물려 있었다. 

흥국생명빌딩 세화마술관

종로구 신문로 거리에 주한 오만대사관이 이국적인 감성으로 환상적이였다. 신문로 거리의 조형물로 운치가 있었다.

주한 오만대사관
종로구 신문로거리

광화문 뚝감식당 좌석이 적어 회원들이 갈라졌다.추미자언니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황태콩나물해장국을 먹었는데 황태의 고소한 맛과 콩나물의 시원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 매우 감칠맛이 있었다. 싱싱한 맛의 김치,깍두기,생파,고추와 함께 입맛을 돋구었다. 

광화문 뚝감

식당과 마주보며 주시경 마당이 있었다. 주시경 마당은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선생이 돌아가실때까지 살던 집터 새문안로 3길 36옆에 있었다. 

주시경 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