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4일~버스 차창가로 서소문청사 부근 적벽돌교회가 운치있게 비추었다.진관사는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력을 수호한 고려 제8대 헌종이 1011년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였다 6.25당시 폭격으로 페허가 된 것을 다시 복구한 사찰이였다. 세종대왕은 (재위 24년)1442년 진관사에 독서당을 지었다.한글 창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학자 신숙주,성삼문등 6인을 그곳에 들어가 독서하게 하였다. 한글창제에 반대하는 무리들의 눈을 피해 한글을 연구했던 비밀연구소로 활용하였다.진관사 칠성각에서 태극기와 독립신문류가 발견되었다. 독립운동가 백초월스님께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후세에 그 뜻을 전하고자 숨겨 놓은것으로 보인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의 음방과 4괘를 먹으로 그려 불굴의 항일정신을 담아낸 유일한 태극기이였다.은평한옥마을,느티나무,금암미술관,태극기 비를 이룬 북한산 둘레길에서 진관사까지 백초월길을 이루고 있었다.진관사계곡은 1968년 1.21사태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기습과 대통령 암살을 위해 침투했던 주요 이동통로였다.진관사계곡의 매우 맑은 물이 굽이치는 중앙 일주문으로 수려한 북한산이 드리우며 매우 아름다웠다. 백초월스님의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이 무소유 삶처럼 비추었다.매우 화려한 단청과 함께 유리창이 달린 문을 이룬 나가원이 근대적 양식 같았다. 진관사 계곡길 따라 은평한옥마을로 매우 수려한 북한산이 드리우며 환상적이였다. 굳게 닫혀진 명인박물관과 함께 곳곳에 전시관을 이루며 문화예술의 향기로 빛났다.













성북동 북정마을 한양도성이 드리운 좁은 골몰길로 심우장이 버티고 있었다.심우장은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였다.한용운은 1933년 벽산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방응모,박광 등 지인들의 도움으로 성북동 깊은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심우장이라 이름을 지었다.심우는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10단계의 과정을 잃어 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한용운은 소 즉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심우 단계로 돌아가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였다.한용운이 심우장에서 기거하던 1930년대 중반 이후는 일본 제국주의의 극성기로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최린,최남선등이 친일로 변절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한용운은 끝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그가 기거하던 심우장도 민족 자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한용운은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6월 심우장에서 입적하였다.일송 김동삼(1878~1937)은 이회영,이시영,이동녕과 함께 서간도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동삼이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하였으나 일본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자 한용운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승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조지훈(1920~1968)은 어렸을 적 김동삼의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조문했던 사람은 약 20명 안팍이었다고 언급 하였다.동쪽의 흰색 기둥의 철대문이 일제시대 귀족의 집 같았다.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으로 만해가 심었던 거대한 소나무가 드리우며 매혹적이였다. 5칸규모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과 오른쪽에 부엌을 두었다. 부엌에 뒤쪽에는 식사를 준비하는 찬마루방이 매우 인상적이였다.양반집 품격을 드러냈다. 뒷마당 광옆 계단위로 장독대가 정겨웠다.부엌과 동선이 편리하게 조성되었다. 원목마루,유리창문,목재 천정장식양식이 일제시대 근대한옥양식으로 품격이 있었다.그의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만해 한용운은 조산 불교를 개혁하고자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운동가,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였다.앞 마당으로 수선화와 보호수인 팽나무가 드리우며 성북구 마을경치가 펼쳐졌다.
























복정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한성대입구에 내려 나폴레옹제과점에서 쑷쫀득을 사먹었다. 쑥향기가 가득한 매우 찰진 식감의 힐링 맛이였다.계피,호두,팥이 조화를 이룬 팥소가 고급진 풍미로 가득했다.명인의 반죽기법을 담고 있는 맛이였다.봉은사로 가기위해 지하철을 환승하는데 9900원의 옷 세일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일제 청자켓을 9900원에 샀다. 천도 좋고 바느질도 꼼꼼하고 디자인도 나에게 잘 어울려 득뎀한 기분이였다.

강남구 거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봉은사가 매우 활기찼다.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때 창건된 사찰이였다. 주차장부근 정원과 운하당의 홍매화가 시들어지고 있었다.잠시 머물다가는 이 생의 흔적 같았다. 백매화와 홍매화가 생명을 피운 선불당이 평화의 기도처 같았다.비가부근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학이 날개치듯 뻗어나간 소나무가 판전을 드리우며 매우 고혹적이였다.사찰의 전각을 드리운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하였다. 봉은사의 산책길과 템플스테이체험관의 홍매화가 화한 미소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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