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충남여고 재경 동창회(문신 조각전시회)~(2022년10월15일)

백재은 2022. 10. 20. 09:37

문신 조각 전시회

10월15일~문신은 1922년 일본 규수탄광지대에서 한국인 이주 노동자와 일본인 여성사이 태어났다. 이방인으로 삶을 시작한 그는 5살때 아버지 고향인 마산에서 조모 슬하에 유년기를 보내고 16세때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마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화가 활동을 하던 중 1961년 40세무렵  도불하여 화려한 경력과 전시회를 하며 1994년 프랑스 정부로 부터 "레종 도뇌르 오피시기 "훈장을 받을 정도로  조각가의 문신으로 명성을 떨쳤다. 1980년  다시 20년만에 고향으로 영구 귀국하였다.이방인으로 그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과 편협한 당파와 민족주의를 넘어 진정한 창작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고 다양하게 주변을 면밀히 탐색하여 민족적 경계개념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혼중성을 지니게 되었다. 회화에서 조각,공예,실내디자인,건축에 이르기 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기성의 장르개념을 벗어났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동양과 서양,전통과 현대,구상과 추상,유기체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깍아 들어감과 붙여나감,형식과 내용,원본과 복제,물질과 전신등 여러 이분법적 경계를 횡단했고 이를 대립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찾았다. 자유,고독,열정,긴장의 삶인 잠재적인 유랑자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이질적인 존재인 문신의 자신 여러 조각에 붙였던 제목을 인용하여 전시회를 "우주를 향하여"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었다.문신에게 우주는 그가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래의 세계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고향가도 같았다.우주를 향하여는 생명의 근원과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가 함축되어 있었다.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최소한 조형단위인 구와 반구형식을 결합하였고  1970년 프랑스 시장미술관에서 열린 국제조각 심포지엄 출품한 "태양의 인간 작품"으로 조각가로 이름이 알려지며 석고,나무,브론즈조각으로 프랑스에서 독창적인 인정을 받았다.그는 조각을 제작하기 위해 무수한 드로잉그림을 그렸는데 원과 선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만물이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깨닫고 반복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지닌 다양한 형태가 창조되는 것에 매료되었다.다양한 대칭과 점,선,면으로 구성된 조형의 세계로 사물들 사이 관계와 변화무쌍한 흐름으로 이루어진 열린세계를 보여 주었다.시간과 공간,정신,물질과 다양한 관계로 변화하는 구체적인 존재로 대칭,정면성,수직성등..특징은 창조적 진화하는 생명으로 약동하는 생명력 자체를 나타내었다. "생명의 리듬"은 구와 반구가 구축적  배열되어 무한한 확산치는 듯한 기하학적 형태와 생명주의적 유기체적 형태인  두가지 방법으로 나타내었다. 그의 "조각상 형태"는 두가지 방법으로 나타나는데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 대칭적인 구조와 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 듯한 유기적인 추상형태와 구 또는 반구가 반복적으로 구축되는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 진다.우주의 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자각하여 구는 반구에 2개 합쳐져 만들어진 세상 즉 다른 두 기운이 아울러 균형을 이룬 세상을 의미하였다.생명체가 정확한 대칭이 아니듯 미세한 차이를 지니며 그 조각의 대칭은 하나의 과정이나 변화,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어 단순한 형태적 구조적 좌우대칭을 뛰어 넘고 있었다. 생김새 그 너머를 볼줄아는법을 배워야 한다고 작가가 말한것 처럼 조화와 화합,결실,곤충을 연상시키는 생명의 근원 찾고자 탐구하고 수직적 상승기운과 수평적 확장기운이 공존하여 역동적이고 안정적이였다.발아와 성장을 동시에 담고 천지를 있는 질서,깍거나 쪼아가며 생명체가 도약하는 듯한 생명체를 생성하였다.배아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을 다양하게 분화되는 생명체처럼 엄격하면서 유머스럽고 환상적이였다.또한 프랑스 체류시절 그는 "도시와 환경"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조각을 바라보고 공원광장까지 전시하였다. 1956년 잠시 귀국하여 1967년 2차 도불전에 발표한 "인간이 살수있는 조각"은 환경으로 부터 분리적 자주적인 오브제로 모더니즘 조각의 경계를 뛰어 넘고자 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1980년 그가 영구 귀국할 무렵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미관에 고조되어 1950년~1960년은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기념동상과 다른 야외 조형물을 활발히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국내 브론즈 주조 기술이 떨어져 야외 조형의 재료를 스테인리스 스틸을 발견하여 브론즈조각과는 다른 현대적 감각을 발산하였다.완성된 조각의 광택나는 표면은 빛을 흡수하기도 하고 반사하면서 보는 이를 포함한 주변 풍경을 반영하여 거울과 유사한 효과를 지녔다.볼록한 곡면에 의해 왜곡된 대칭은 감상자로 하여금 특별한 시공간을 체험케 하는 주변환경을 변화하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영구 귀국후 그는조각,건축,공원,도시등 보다 확장된 맥락에서 모더니즘양식 건축이지만  "풍경과 건축사이  인간이 살수 있는 조각"을 하였다. "우공이산"의 열정으로 14년간 직접 산을 깍고 돌을 쌓아 웅벽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건물을 설계 시공했다.즉 조각의 개념을 매우 넓게 확장시킨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부단한 노동의 흔적으로 예술가와 장인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하는 조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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