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덕수궁돌담길(2022년11월11일)

백재은 2022. 11. 15. 11:43

덕수궁 돌담길

11월11일~서양식 석조전이 비추는 덕수궁 돌담길 따라 "돈덕전"이 이국적인 동남아풍 모습으로 비추고 있었다.일제 강점기 훼철된 "돈덕전"이 재건공사로 진행하는 안내판이 붙으며 뽀족한 기둥양식과 함께 벽돌장식을 이룬 벽체와 아치형 유리창의 장식 띠,벽체와 두드러진 유리창틀을 이루며 매우 아름다운 근대양식을 이루고 있었다."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 통해 대한제국  외국 주요  귀빈을 맞기위해 연회를 베풀고 자주외교를 통한 주권회복을 이루기 위해 세운 곳으로 주요 귀빈은  개최되지 못하였다. 그후 외국 귀빈숙소로 활용되다가 1920년 일제에 의헤 훼철되었다.바로 그 길따라  겹겹히 쌓인 맞배지붕양식과 함께  둥근기둥의 테라스로 적벽돌 벽체와 검은색 창틀을 이룬 "구세군역사박물관"으로 귀중한 보고로 가득한 길이 길이 남을 만한 건축을 이루고 있었다. "구세군역사박물관" 맞은 편으로 문화재구역인 고종의 길이 연결 되었다. 기와돌담길로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등 일제시대 주요기관 건물들의 사진이 장식되며 정동근린공원까지  연결되었다. 조선후기와 대한제국의 역사와 발자취,일제시대 나라의 주권을 찾기위한 고군분투했던 고종의  역사를 회상하게 되는 매우 값진 길이였다. 정동상림원이 미색벽체를 이루며 매우 산뜻하게 비추는 정동근린공원길따라 덕수궁 방향으로 갔다. 솟을대문의 황토담장으로 노랑단풍나무가 드리운 "이화아트센타"가  매우 고즈녁하게 발하며 이화외국어고등학교와 함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의 위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노랑단풍나무 가로길 따라 조화로운 황토돌담장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다.바로 그 담장길 따라  보구여관터 푯말이 붙어 있었다. 보구여관은 1887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설립한 우리나라 여성 전용병원으로 여성 간호사를 양성했던 곳으로 이화여자의료원 전신이 되었던 곳이였다. "증명전'을 감상하기 위해 정동길  골목으로 갔다.정동길 41-5  지하 "Varison select shop"을 이룬 자주색 벽체와 흰색 베란다의 정겨운 양옥으로 "증명전"을 안내하고 있었다. "증명전" 본래 이름은 수옥헌으로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전각이다. 처음에는 1층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불탄 후 지금과 같은 2층양식 건물로 되었다. 1904년 덕수궁에 큰불이 나 고종은 증명전을 임시 거쳐로 사용하였고 1907년 강제로 황제자리 물러나게 될때까지 머물었던 곳이였다.1905년 일본이 강압속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 빼앗기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였다. 증명전외에 10여채 전각이 있었으나 1920년 이후 없어졌다.돌출된 출입문 테라스를 중심으로 기둥장식 난간과 함께 전면의 아치형장식을 이룬  서양식 근대건축으로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만한  문화재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담장으로 예원학교가 비추벼 역사의 그림자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덕수궁돌담길을 걸은 후 집으로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버스 차창가로 기업은행 파이낸스타워 앞 사람들이 둥근원을 그리며 조각된 조각이 눈에 들어 왔다. 서로 협동하며 단결을 이루는 사회를 표상한 것 같았다.

돈덕전
구세군 역사박물관
고종의 길
정동근린공원
정동상림원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백주년기념관
정동길 41-5
덕수궁 돌담길~증명전
기업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