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울미술관(2022년11월11일)

백재은 2022. 11. 15. 21:54

LE MAUVE카페
부암아트
서울미술관

11월11일~북악산 자락아래 적벽돌 바닥과 적벽돌 아치형 벽체로 하늘색 조각기둥과 장식문 테라스를 이룬 " LE MAUVE카페"와 돔양식 기둥과 화강석벽체의 "부암아트"가 거리를 빛내며 자연과 호흡하는 정겨운 전원마을로 한층 빛을 발하였다.북악산과 마주보며 인왕산 자락 아래 석파정 서울미술관으로 황토색 장식기둥들이 줄줄이 나열된 벽체 사이로 계단 출입문 중앙을 이루며 예술문화 공간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천경자 여인상과 함께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주제로 못다한 이야기 서울미술관 개관10주년 기념전 포스터가 전시회를 자극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줄지은 사람들의 관객들로 예전과 많이 달라진 젊은층들의 문화시민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였다.우리와 함께하는 두가지 감정 두려움과 사랑은 예술가들이 감정사이 깊은 예술혼 끌어내며 작품을 빚어냈다.31명 예술가가 시대의 고난과 개인적 어려움속에 괴로워하며 자신 예술세계를 이룩하였다. 본 전시는 두려움과 사랑 경계에 서 있던 고뇌 결정체이자 역경의 산물이다.귀한 작품을 통해  예술가가 주는 위로와 희망을 갖기를 바라며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서울미술관 컬렉션이자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관 회장은 미술 애호가로 그가 40년동안 수집한 애장품이 전시되었다.시간,두려움,희망,사랑으로 축약될수 있는 파란만장한 순간으로 가득찬  한국 미술사 대표하는 근현대 걸작과 한 애호가 알려지지 않는 수집 이야기를 소개하였다.작품해설과 수집가의 문장도 첨부하여 전시하여 작품을 보는 데 이해도를 높였다. 1층 전시실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사 대표하는 대가들 작품들이 전시 되었다.김환기는 새가 지저귀는 메아리 처럼 공간속에 음악적인 운율을 통해 퍼져가는 새벽 별빛과 아침의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하여  청각적 성격을 창출하였다. 한국의 정체성 담은 달,강,산,구름,백자항아리,목가구등 우리나라 자연을 도입하였고 후기에는 점화작업으로 우주세계의 운행을 시각적 생명력과 리듬감을 주었다. 우주에서 또 만나고자 하는 욕망의 신세계 이상을 그렸다.도상봉은 조선백자에서 우러 나오는 신비로운 깊은 울림을 정물에 전달하였다.살기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했던 박수근은 우리나라 엣 석탑과 석불을 연상시키는 화강암 표면을 착안하며 소박한 사람들 모습과 일상풍경을 그렸다.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김기창은 섬세한 필법이 돋보이는 풍속화와 인물화를 다수 그렸다. 6.25전쟁때 예수의 생애를 우리나라 전통과 맞게 예수와 복음 30점을 그렸다. 독일에서 전시되는 영광으로 기독교 복음과 함께 한국을 빛냈다.천경자는 인생의 역경을 딛고 피어난 여인을 표현하였고 임직순은 강렬한 색채의 생동감과 대상의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과감한 붓터치로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다.새로운 산들이 다가오는 듯한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기반으로 추상적 표현한 유영국은 산은 내안에 있는것이라고 말하였다.이대원은  무수한 점과 선은 동양화 기운으로 리듬감과 생동감이 넘쳤다. 생동감 넘치는 화면에 응축된 표현으로 풍요로운 행복을 내포하였다.원근법과 투시법 무시하고 신인상주의 점묘법을 연상시켰다.달착륙 영감을 받아 시공간 결합된 우주4차원 공간 구성을 한 한묵은 기하학적인 면,지그재그선과 색채가 리듬감 있고 울림이 있어 광활한 우주공간에 속도감을 느껴졌다. 한국 기하학적 추상지평을 열었던 화가였다.한국인으로 한국 모든것을 세계속에 올바르게 표현 하려고 한 이중섭은 황토 정취로 야수파 대가였다.이응노는 자연의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반추상,자연형태 추상을 하였고 한자음과 뜻을 조형적 형태로 표현하였다.전통적 한지지를 서구의 콜라주기법으로 응용하였다. 한자가 자연과 인간의 생각을 기호화하여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한글과 한자가 내포하는 추상적 패턴 주목하여 미를 다양하게 조합하였다.제주풍경 담아내는 작품에 친착한 이왈종은 세상만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불교중도철학 사상을 가진 화가였다. 인간중심의 시작에서 벗어나 모든 생활이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상세계를 작가 생활중도라고 말하였다. 중도에서 현대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낸 현대판 풍속화를 그렸다.오치균은 붓이 아닌 손으로 그린 핑거페인팅기법으로 두꺼운 물감층 생성하여 살아있는 특징을 지녔다. 신체와 물질의 만남으로 생명의 힘을 전달하였다. 가까이는 치밀하게 쌓아올린 안료형태로  보이고 거리를 들수록 사물의 형상 드러나는 그의 작품은 실존하는 모든 대상이 시간의 퇴적물이라는 메세지를 주었다.모더니즘 1세대 대표주자인 문학진은 카톨릭 명동성당 성인화와 조르주 브라크(1882년~1963년)입체주의 화풍 순수추상을 주로 하다가 1970년 후반부터 기록화에 힘써 1978년 행주산성대첩도 공식 기록화를 남겼다. 정물과 인물이 주요 소재로 색채의 통일과 조화에 중점을 두어 안정된 구도와 정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인물과 정물이 주요 소재로 형태를 간략하게 변형시키고 사물과 사물관계 화면에 재배치함으로써 반추상 화면을 구성하였다. 질감과 색에 대비되는 색을 첨가하여 장식적 효과를 지녔다.인물과 정물의 형상은 대상을 사실적 아닌 작가 머리속에 재해석된 상상의 실체였다.최영림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이중섭과 비슷하며 피난민의 작가 향수와 그리움이 내포된 한국 정서가 짙게 깔려 있었다.황토색에 흙모래 도입하여 고구려 벽화같은 색감과 마티에르 구현하였다.고분벽화 토벽 연상하는 향토적 민족적 정감을 구현하였다.추상과 반추상을 하다가 민담과 설화 기반으로 구상적 작업을 하였다.우리나라 최초 동판화가로 명성을 올린 김상유는 전국의 고건축을 순례하여 한옥과 법당의 공간미에 느낀 산사와 암자,정자,누각등 전통적 건축물 즐겨 그렸다.공간속에 부처연상하는 인물이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세상 관조하듯 명상의 자세는 모든것을 비우려고 고요히 앉는 작가의 자화상이였다. 소박한 삶과 정서,명상의 세계를 단순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구현하였다. 눈에 보이는 대상보다 작가의 내면을 담는것을 중시하는 문인화 정신을 가진 화가였다.김흥수는 프랑스 야수파와 입체파의 서구 추상미술 수용하였다.1977년 그가 창시한 "하모니즘회화"를 발표하였다. 하모니즘은 조형주의라 불리며 한 화면에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여체 누드를 다수 제작하였다. 음과양,주관과 객관,추상 우연적요소와 사실주의 필연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특징을 이루었다.누드는 영감과 생명력 근원으로 생명력 상징하는 여성누드 이미지와 기하학적 도형의 추상 이미지 결합하여 이상적 아름다움인 하모니즘 절정을 구현하였다.즉 1층전시실에서  근현대 미술은 사실주의,추상주의,야수파,입체파,기하학,모더니즘을 이루며 핑가페인팅기법을 착안하고 불교중도철학,동양의 기운,향토정취, 한국의 정서를 표현하며 우리민족을 노래하였다. 2층 전시실에서는 고려시대 불화와 함께 생존해 계시는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들  작품들이 전시되었다.13~14세기 추정되는 불화로 아마타팔대보상도의 도상과 유사한것으로 추정된 작품이였다. 균형잡힌 구도,섬세한 표현,선명한 채색의 고도 예술적 완성으로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부처인 아미타신앙을 보여주는 불화였다.불교미술은 기원전 2세기 불교발생한 인도에서 출발하여 동양 여러나라까지 전파되었다. 불교미술은 건축,조각,회화,공예 분야로 나누어 진다.우리나라 고구려 소수림왕 2년 372년 전진으로 처음 불교를 수용 불교미술 역사가 시작되었다.그후 역사적으로 변화 거듭하여 우리나라 고미술 주류를 형성하였다. 특히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대중화되고 불교미술이 성행하였다.서민들에게 쉽게 이해 시키는 그림경전 활발히 제작하고 황실과 귀족 후원아래 고려불화는 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화려하고 비단 뒷면에 안료를 두껍게 칠해 앞으로 베어 나오게 하는 배치법으로 깊이 있는 표현을 완성하였다. 화려하고 정교함의 우수성이 전 세계적 가치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불화의 주제는 아미타불,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과 같은 부처 그린 여래도와 관음보살,지장 보살을 그린 보살도, 부처님 메자를 그린 나한도와 독성도 이외에 감로도,심장도 같은 명부게 불화,우리 토속 신앙과 연결된 신선도,칠성도로 분류된다.뉴욕5대 미술관 하나인 브루클린미술관에서 한국 최초 개인전으로 전 세계미술관과 컬렉터들의 사랑받고 있는 전광형은 추상표현주의 실험했던 초기 회화위주를  벗어나 한지를 활용한 집합연작을 선보였다.서로 다른 크기와 명암을 지닌 삼각형 조각들이 밀도있게 집합되면서 사각평면안에 불규칙적인 리듬감 형성하여 회화이면서 부조와 같은 작품이였다.어릴때 한의사였던 큰아버지 천장에 매달린 삼각형 한지약 봉투를 기억하며 제작한 것으로 가까이 볼때는 조각들이 서로 충돌하듯 보이고 멀리서 볼때 달표면 분화구를 연상하여 한정된 사각형 프레임에서 벗어나 은하계와 같은 무한 공간을 확장하고 있었다.강익중은 194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함께 멀티플 다이얼로그전 개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독일의 루드비히 미술관이 선정하는 20세기 미술작가 120명에 선정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그릴시간이 없어 주머니 속에 작은 캔버스를 만들고 지하철안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오늘날 3인치 작품의 시작을 하였다. 일과에서 영감받은 것들 문자와 기호,그림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하나로 융합되어 작가 자신을 표현하였다.동양과 서양,선함과 악함,기쁨과 슬픔등 대립적인것 들이 조화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융합과 포용을 상징하였다."달항아리"는 상반부와 하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는 기법으로 제작되는데 이처럼 불안전한것들이 하나를 이루는 달항아리 접합기법에서 모티브를 얻어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로 통합하는 평화의 염원을 노래하였다.달항아리는 연결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민족통일과 인류화합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손석은 소나무 껍질과 같이 두껍고 거친 표면위에 전통적인 도자나 사발 이미지를 올려 놓은 작업을 선보였다.캔버스에 반원형의 공면을 만들어 블록 튀어 나오는 효과를 통해 입체적 캔버스로 전환하여 도자기의 이미지를 채색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며 홀로그램 같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였다.도공이 도자기를 빚듯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제작한 오랜 기다림 과정끝에 완성되는 작품이였다.한국 극사실주의 대표화가 고영훈은 1970년대 "이것은 돌이다" 시리즈로 국내외 미술계 주목을 받았다.극사실주의는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사진 보는 듯 사실적 화면을 추구하는 형식이지만 그의 회화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달항아리" 도자기는 실제와 가깝지만 백색의 배경에 대상과 그림자만 그려 넣어 마치 빈공간에 도자기가 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도자기 자체를 사실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그안에 도자기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본질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것에 중점을 두었다.달항아리 여백의 미는 내면 비우고  끝까지 인내하는 우리민족의 숨결이였다.그의 작품 "자연법"은 목련을 그린것으로 우리민족의 어머니상 같았고 "스톤북"은 우리 고전미를 담고 있었다. 한국2세 단색화가인 김태호는 1세대 단색화가 박서보에게 그림을 배웠다. 서양기법과 기술안에 한국정서를 담고자 한지와 아크릴 물감 강조하는 작업을 전개하였다. 치열한 수행적 행위 작업을 통해 거듭하며 고유한 조형언어로 자리를 잡았다.수평과 수직의 그리드를 수없이 그리고 겹겹히 쌓인 물감층 쌓고 칼로 깍아내어 완성하여 단면은 바다,우주,벌집 다양한 형상을 연상시킨다.쌓기와 긁어내는 작업은 지워냄으로써 오히려 드러내는 구조를 형성하였다.그의 그림은 3시기로 분류되는데  1970년~1980년대까지 제1시기 형상시리즈, 1980년대 후반부터 한지작업 및 전면화 작업, 2000년대 이후부터 그리드구조 기반으로 내재적 리듬을 추구하였다.한국 추상미술 교두보인 박서보는 김환기에게 그림을 배우고 국제에 입선하였다.기성세대 강한 저항감으로 1956년 반국전 선언하며 전위미술을 이끌었다. 1970년부터는 선을 긁어내고 긋는 묘법 시리즈로 한국화단 주류형성했던 단색화를 주도하였다.작가의 쉼없는 반복적 행위 통해 화면전체 균질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1967년~1989년  낙서와 같이 연필로 끓임없이 선을 긋는 전기묘법시대로 반복적 행위 통해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였고 1989년 이후 후기묘법시대는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것을 화폭에 올린 뒤 긋거나 밀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색채묘법으로 형태만들고 풍부한 색감을 강조하여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으로서 그리기 강조하는 예술철학을 지녔다.김창열은 어려서부터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에게  붓글씨를 배우며 회화를 접했고 광성보고 시절에는 외삼촌에게 뎃생을 배워 미술의 길을 갔다. 월남후 서울대 진학했지만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57년 한국현대미술가협회 결성하여 서구 전위적인 미술을 수용하는데 앞장섰다. 물방울작가로 유명한 그는 극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낸 물방울 이미지를 통해 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진 환영을 보여주었다.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당시 우연히 캔버스 뒷면에 맺힌 물방울에서 모티브를 얻어 마대에 물방울이 몰려있는 물방울 연작과 천자문위에 물방울을 그린 회귀를 선보였다.화면에서 물방울은 거친 표면위에 알알이 놓이거나 스민 모습으로  사실적 묘사로 인해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연상과 본질의 신비를 동시에 체험하게 하였다.거친표면을 가진 지지체의 즉물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이러한 표면에 맺힐수 없는 영롱한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그려 바탕과 이질감을 형성하였다. 그는 물방울을 무색무취 뜻이 없다고 일컬었지만 삼라만상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으로 통한다.이건용은 1969년 공간과 시간의 결성과 아방가드의 핵심적인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신체와 세계를 상호관계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며 한국 실험미술을 이끌었다. 자신의 신체를 에술의 주요 매체를 활용하며 신체와 장소,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행위예술로 선보였다. 그는 1976년부터 행위의 결과를 강조하는 신체 드로잉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캔버스 뒤에 서서 앞으로 손을 뻗어 붓질하였다. 손이 닿는곳 까지 최대한 붓질을 한 뒤 칠한 부분을  접어 같은 방식으로 붓질을 하는 그의 "바디 스케이프"연작은 캔버스 밖에서 그림을 바라보고자 하는 현상학에 대한 작가의 관심 발현하였다.빈 화면에 자신의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의 신체,장소,관계에 대한 그만의 독창적인 미학과 사유의 정수가 담아 있었다. 이배는 1989년부터 프랑스 파리 유학하여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그림의 주요 재료는 숯이다. 최초 숯 작업은 1990년에 시작됬는데 파리에서 우연히 숯 하포대를 발견하고 그는 숯에서 서예의 먹을 비롯해 아이가 태어나면 숯을 문에 매다는 관습,전통 한옥 짓기전 땅에 숯가루 묻는 행위 등 숯 관련된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떠올랐다.이후부터 인간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숯의 강한 질감을 살리며 드롱잉 ,설치,부조화된 화면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였다."불로부터"는 불에 타고 남은 사용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작품이였다.작업과정은 먼저 섭씨 1000도이상 고온가마에서 15일동안 나무를 굽고 이를 다시 15일동안 식혀 순수한 탄소만 남긴다. 그런 후 숯을 톱으로 썰어  단면을 드러내고 아라비아고무를 사용해 캔버스 위에 붙인다. 불규칙한 숯들이 캔버스를 메우고 나면 아주 앏은 종이로 표면을 깎아 광을 내어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숯이 지닌 물질성을 생생히 재현하고 단일한 검은색이 아닌 보는 각도에 따라 수백가지의 다른 빛을 뿜어내는 역도적인 작품이 되었다.숯은 사물의 마지막 모습이자 불을 붙이면 불이 붙는다. 이렇듯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숯은 무화를 함축하고 회화적인 언어를 초월하여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곽인식은 일본에서 나혼미술학교 수학하고 일본에 정착한 재일 한국인 화가이다. 이우환과 함께 모노하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입체와 오브제,공간에 관한 실험을 통해 물질의 존재자체로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1980년대 들어서 그는 철사,돌,석고 등 다양한 물질을 화면에 부착했던 이전 시기 작품성향에서 벗어나 일본의 전통종이인 화지위에 작은 타원형의 형태를 연속적으로 중첩한 채묵작업을 선보였다. "Work88-Lw"은 흰종이위에 원형 또는 계란형의 점들이 나열되고 중복됨으로써 공간에 깊이감이 부여되고 흡습성이 좋은 화지를 사용하여 물감이 번지는 효과가 극대화된  반투명의 색점들은 농담의 변화에 따라 투시되기도 하고 바탕이 되는 백색 종이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신비로운 화면을 연출하였다. 화지를 이용한 채묵작품에는 "작업" 혹은 "무제"라는 명제가 붙어있다. 이는 작업에 있어 불필요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의 선택을 피하고 회화 자체에 집중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다. 권영우는 함경남도 이원에서 출생,해방 직후 박노수,서세옥과 함께 서울대미대1기 입학하였다.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서구의 추상미술을 수용하는 화단의 맥락속에서 초기에는 수묵으로 필선을 강조하며 구상적인 추상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하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는 붓과 먹의 사용에서 벗어나 한지를 활용한 작업을 전개하였다.한지를 붙이고 구멍을 내는 작업을 통해 한지라는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는 그의 "무제" 연작은 자연 그 자체로서의 추상을 드러내는 작업이였다. 자신의 작품제목을 줄곧 무제라고 칭하는 그는 조물주는 만물을 만들었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서 자연 그자체가 추상이다라고 말하며 특정한 대상을 상기시키기 보다는 그저 자연에서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동양적 재료인 한지를 활용하여 제시하였다.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 대신 자신의 손과 직접 제작한 도구를 이용하여 종이를 찢고 붙이고 구멍을 내는 그의 물리적인 작업방식은 신체적 행위와 종이가 지닌 고유한 물질성이 결합되며 그만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구성하였다.일본의 획기적 미술운동인 모노파의 창시자인 이우환은 동양사상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받고 있다.그는 1956년 서울대 미대 입학 3개월만에 중퇴,이후 일본의 나혼대학에서 철학공부를 하였다.그의 작품에는 동서양의 철학이 공존한다.그의 화면에는 안료가 돌가루와 혼합된 최소한의 점과 그 점에서 이어지는 선만이 존재한다. 이는 최소한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의 관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이론적 입장과 일맥상통 한다.작가는 여백과 형상간의 긴장관계를 통해 철학적인 메세지를 던진다.그는 크게 선,점,바람,조용시리즈로 나눌수 있다. "선으로부터"는 흰캔버스 바탕에 파랑색 선들을 위에서 아래로 길게 그어가면서 그 흔적을 담고 있다.굵기와 형태가 거의 동일한 선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선명한 푸른색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그 자취가 희미해진다. 이러한 선은 완성된 결과보다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내재된 본질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단순한 선 긋기의 행위를 넘어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민의 결실이자 마음을 비우고 선을 긋는 일회적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무위자연의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시도인 것이였다.1980년대이후 "바람과 함께"연작을 발표하며 기존 시리즈 보다 더 자유롭고 역동적인 화폭을 보여주었다. 일정한 방향이 없는 붓질을 통해 무작위로 불어대는 바람의 속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인간이 예측할수 없는 바람의 에너지와 생명력이 그의 철학적 해석으로 재탄생 했다."선으로 부터"작품은 우리 삶의 본질을 말해 주는 완전한 비움에 이르러  참된 고요를 마주해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으로 바로 이것이 그의 예술의 핵심이자 본질임을 보여 주었다.개화파 독립운동가 서장환의 아들이자 1950년대 파격적인 수묵 추상작업으로 한국 현대미술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서세옥은 해방후 친일화가들이 장악한 미술계를 보며  왜색풍과 국전의 보수성에을 반대하며 수묵에서  청년정신을 기치로 내건 "묵림회"결성하였다.현대미술가 서도호와 건축가 서울호의 아버지이기도 한 서세옥은 수묵의 특징인 풍부한 번짐과 농도를 담백하게 드러내며 새로운  수묵 추상을 구축하였다.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하여 추상성과 단순성을 토대로 현대적인 동양화를 실험한 그는 1970년대부터는 자연의 일부로써 자연에 귀의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는 작업을 전개하였다.일생에 걸쳐 그리는 주제는 사람이였다. 사람,두사람,춤추는 사람,거꾸로 보는 사람등이 제목이 붙여진 그의 작품들은 반복되는 형상이 간결해보이지만 형상 안에는 사람 간의 유대와 역동성이 담겨있다."사람들"은 어깨동무를 한듯 이어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얽히고 설켜 서로 떨러질수 없는 인간의 공동체적 운명을 표상하고 있다.한국 단색화의 거장인 정상화는 1956년 서울대 미대 졸업후 파리 비엔날레와 상파울로 비엔날레 등 국제 전시에 한국 작가로 출품하여 이름을 알렸다.초기에는 대상을 재현하는 구상회화를 주로 그렸으나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앵포르멜 경향의 표현주의적인 추상화를 시도했다. 이후 1969년  일본 고베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단색조 추상으로 작업을 전환하였다.시각적인 요소를 최대한 축소하고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며 작품에 철학적인 성찰을 담아내는 그의 예술은 그리는 것 대신 뜯어내기와 메우기로 창조된다. 약3~4mm 두께로 고령토와 접착제를 섞은 징크 물감을 캔버스에 초벌로 칠한 후 완전히 마르면  캔버스를 가로 세로로 접어가면서 바둑판 무늬의 균열을 만든다. 이후 선택한 부분의 물감을 하나씩 떼어내고 그 자리에서 다시 아크릴 물감을 몇겹으로 채워 넣어 스며들거나 뭉치게 한다.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는 단색화는 색채가 가진 단순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단색이 가질수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었다.즉 제2전시실에서 우리나라 현대미술은 수묵 추상주의,추상주의,표현주의,구상회화,단색화,모노파,전위예술,행위미술,극사실주의,미니멀리즘을 이루며 우리문화의 고유 재료인 숯과 한지등 ... 여러가지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고 실험하여 동양사상과 우리 민족,한국정서를 표현하였다. 도공이 도자를 빚듯이 마음 비우고 치열한 수행적 반복적인 행위로 자신을 완전히 비우는 무위자연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끓임없는 자아성찰을 하였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한공간과 여백의 미를 표출하였다는것을 깨달을수 있었다.이번 전시회를 통해 시대의 고난과 개인의 역경속에 끓임없는 실험으로 빚어낸 두려움,집착,애증,그리움,희망,사랑등..고뇌의 결정체 산물로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1층 전시실)

김환기~아침의 메아리 04-8-65(1965년)
김환기
김환기~십만개의 점
국화
정물
정물
도상봉~비진도의 여름
젖 먹이는 아내(모자)
여인과 소녀들
박수근~노상
김기창~예수의 생애
자화상
여인
청혼
청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조락
천경자~개구리
소녀
화실
소녀
임직순~정물
유영국~움직이는 산
이대원
무제
원색의 비상
황색의 핵
한묵~푸른나선
길 떠나는 가족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1
이중섭
구성
문자추상
수탉
제주생활의 중도
제주생활의 중도
오치균~감
소녀와 바이올린
문학진~두 개의 의자가 있는 정물
봄동산
최영림~하동
김상유
하모니즘(1977년)
김흥수~여인들(1986년)

2층전시실)

고려시대 불화
전광영~집합연작(1995년)
강익중~달항아리 E30A-2006
강익중~달항아리 E16A-2006
손석~기다림
손석~기다림
고영훈~달항아리
고영훈~용이 놀다
고영훈~자연법 봄1
고영훈~스톤북
김태호~내재율2019-67
김태호~내재율2012-10
김태호~내재율2014-14
이우환~선으로 부터
정상화~무제 13-5-13
정상화~무제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