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2022년12월15일)

백재은 2022. 12. 14. 10:01

거울 못
청자정
국립중앙박물관
분식집

12월15일~혜주언니와  문화의 만남으로 중앙박물관에 갔다.국립중앙박물관정원은 팔각지붕과 함께 화려한 익공의 겹처마를 이룬 청자정과 박물관 거울못으로 연못길 따라 아치형 목재시냇가 다리를 이루며 숲길로 산과 숲이 어우러지는 전통정원을 형성하고 있었다.광장계단으로 야외 테라스를 이루며 주변의 경치들이 펼쳐지며 상쾌했다. 중앙  복도를 내다 볼수 있는 층 양식의 박물관 내부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위용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만경천사십층석탑이 복도로 드리운 1층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들이 전시되었다.신석기시대는 잡곡위주 밭농사를 하였고 청동기시대는 중국동북지역 한반도를 주무대로 기원전15세기 무렵 시작되었다.간석기,목기사용,무늬가 거의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고 수렵으로 화살촉과 나무활을 사용했다. 벼농사 발달로 마을과 농경탄생하고 잉여생산물증가로 농경도구발달을 초래하였고 노동력 수확관리와 분배로 계층이 생겼다.청동기 수준이 최고조 이르러 정교한 잔무늬거울을 제작하였고 철기가 등장하였다.고조선은 전국시대 나라중 하나인 한나라와 대립관계를 하면서 대규모 침략전쟁으로 승리하였지만 내부분열로 기원전108년 멸망하였다.중계무역으로 성장하며 동검문화와 나무곽무덤이 유행하였다.고조선 멸망후 중국동부지역 부여고구려는 일찌기 문화역량을 강화하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러시아 연해주와 함경도일대 존재했던 옥저와 한반도 동북부 강원도일대에 존재했던 동예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다.  중남부지역은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으로 마한,진한,변한은 후에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하였다. 이시기 철기생산이 본격화하여 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가 널리 쓰여졌다. 한반도 서북한지역에 낙랑은 동북아시아교역과 교류창구였다.고구려는 삼국중 가장 먼저 고대국가체제를 완비했다.평양지역의 낙랑군을 몰아내고 한반도 중부지역까지 넓혀 동아시아의 강자가 되었다. 중국과 북방외래문화를 수용하여 국제성과 선진성을 지녔는데 한문,지리,문화,음악,춤,공예등...에서 발견할수 있다.고구려문화는 백제와 신라,일본,통일신라,발해까지 영향을 끼쳤다.강서대묘는 고구려무덤벽화로 사신을 중심주제로 한 사신묘사기법을 이룬다.기운 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로운 천장그림으로 신선사상과 불교적 내세를 지니고 있다.백제는 고대국가 성장과정에서 사상적 기반이 필요하여 시조가 되는 조상신,하늘에 천신,땅에 지신을 제사하였고 점차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여서 왕권강화기반으로 삼았다. 국가주도로 사찰과 의식용구를 만들고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는 불로장생추구와 신선사상과 결합하여 귀족사회에서 환영을 받았다.가야는 금관가야,아라가야,대가야의 여러나라를 이루는 말이다.낙동강유역 변한 작은나라에서 출발하여 철기생산능력으로 주변지역과 교역하면서 성장하였다. 바닷길 이용해 낙랑,왜 사이 먼거리 교역에 이어주는 중간교역지대로 큰역할을 하였다.금관가야가 중심이 되어 북방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운 토기,금속공예,구슬장신구가 남아있다.신라는 서기57년 건국 한반도 동남쪽에 있던 진한 12개 작은나라 가운데 하나인 사로국을 모태로 주변을 통합하여 4세기중엽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철생산 바탕으로 고대나라들이 세워지고 커질수 있었다. 철은 모든 연모과 물건을 만들수 있고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드는데 뛰어난 재료로 쇠로 만든 무기를 장악한 세력에게 엄청난 힘이 작용하였다.오늘날 경주는 신라 모태였던 사로국 터전으로 사로국은 달천에서 철광산 개발로 고대왕국 성장 동력을 얻었다. 4세기 신라 지배자들은 무덤에다 덩이쇠를 가득 묻어 재력을 과시하였다. 356년 내물왕은 왕에 올라 마립간 왕호를 사용하여 황금에 주목하였다.나라위계를 금으로 만들어 황금나라의 신라를 이루었다.각종 금장식품들은 마립간시기에 만들어졌다. 6세기 국왕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이루고 불교를 국교로 채택하였다.진흥왕때 북쪽 함경도와 서쪽 한강유역까지 영토확장하여 통일전쟁주도권을 잡았다.신라사 중고기(514년~654년)는 최초통일을 이룬 시기를 말한다. 고려918년 건국되었다. 왕건이 지방호족세력과 규합하여 성립한 고려는 중세국가적 면모를 갖추었다. 백성에 대한 과도한 수탈를 억제하기 위해 전시과제도와 유교적 소양갖춘 관료층 확보를 위해 과거제도입,각지역 지방관 지속적 파견하여 성장하였다.불교,유교,도교,도참사상을 기반으로 이 민족에게 개방적이였다.개경의 문벌귀족문화와 각 지역 독특한 지방문화 병존하였다.환구단에서 하늘제사 올리는 천자국이 있었다.고려는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는 동시에 발해유민을 흡수하며 북진정책을 추진하였다.14세기말 고려는 내적으로 왕권이 흔들리고 외적으로  원에서 명으로 교체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 하기 위해 사대부와 이성계를 대표되는 무인세력이 1392년7월18일 조선을 세웠다.승유척불,존명사대,중농주의가 국가경영 원칙으로 삼고 성리학 기반으로 왕도정치를 구현하였다.조선의 문제 직면할때 마다 제도의 변화를 모색하여 유교질서체제 견고하게 만들었다. 15세기 성리학이념을 반영하고 통치체제를 정비하였고 16세기 사림이 정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고 성리학이론이 정교해 졌다.1592년 일본과 1636년 청과 전쟁을 치른 후 17세기 전쟁피해 복구에 노력하였다.17세기후반 개혁적인 조세제도인 대동법을 전국적 시행하고 화폐를 본격적 사용하여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다.18세기 탕평책 정책과 문예가 부흥하였고 19세기 동서문명충돌 전환기로 서양개방의 요구에 직면하여 개항과 변화의길을 선택하였다.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때 대부분 없어지고 전주사고에 보관된것 만 남아 있었다. 2층 전시실은 서화관과 사유의 방,기증관으로 구성 되었다. 각시기 특징을 이룬 서예,회화,금석문,탐본,문자의 미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수 있는 서화관으로 찬란한 우리 문화예술을 볼수 있었다. 서화는  인간과 사회,자연에 대한 선조들의 생각과 마음을 획과 면,색채,문자등으로 표현한 고도의 예술이다. 옛사람들은 글씨와 그림을 같은 뿌리에서 자란것으로 보고 함께 쓰고 그리고 감상하였다. 필묵 즉 종이를 바탕으로 붓,먹등의 재료도구 사용한것이 같고 필묵이 일치 한점이 많다. 이러한 서화는 일찍이 문인의 예술로 애호되어 시,서예,회화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초상화 제작과정은 종이에 밑그림을 하고 밑그림에 먹선 그린 후  뒷면에 채색을 하고 앞면에 음영과 색을 입혀 초본을 완성한다.3층 전시실세계문화관과 조각 공예관으로 구성 되었다.세계문화관은 메소포타미 "이시기 기록의 땅" 제목으로 전시 되었고 부가적으로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 특별공개전인 일본 불교 조각의 세계가 전시 되었다.세계문화관에서 일본 불교 조각은 동양과 비슷한 정감으로 표현 되었고 메소포타미문명으로 강줄기의 상업과 무역으로 교류하면서 문화가 성장했던 고대 사회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조각 공예관에서 백자들을 감상할수 있었다.조선백자의 대중화의 여정을 살펴 보면 19세기 조선사회는 내부적으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신분제가 동요되고 외부적으로 서양의 학문과 과학기술이 유입되는 등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사회변동은 관요의 백자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도시와 상업이 번성하면서 부를 축적한 새로운 계층의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을 통해 조선에 유입된 외국문물에 이끌려 이국적이고 화려한 백자를 선호했다. 독특한 형태 요기법에 조선의 미감이 더해진 다양한 그릇과 호사스러운 문방구가 제작되었다. 화려한 색채기법과 고급 장식기법도 개발되었다. 또한 행복,장수,재물 같은 세속적 소망을 담은 무늬가 청화백자에 등장했다. 이른바 분원리양식이라고 하는 독특하고 개성있는 분원관요 백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난 19세기 조선왕실의 재정이 약화되고 외국산 도자기가 물밀듯이 들어 오면서 관요운영은 점점 어려워져 결국 1883년  고종20 사옹원분원의 경영권이 민간에 넘겨졌다. 왕실과 관청용 그릇의 시장 판매가 법적으로 공식화되면서 관용의 역사는 400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박물관  전시실을 모두 감상한 후 이촌역 근처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돌솥비빕밥과  순두부찌게를 먹었다. 고기육수가 진하게 벤 순두부찌게와 함께 콩나물,김치,우엉,양배추 들어간 비빕밥으로 야채의 양념이 잘벤 비빕밥으로 색다른 맛을 즐길수 있었다.저녁을 맛있게 먹고 혜주언니 대접으로 빵집에서 자몽청을 먹었다. 자몽향기가 가득한 달지 않는 자모청으로 상큼했다. 서로 신앙고민을 나누면서 믿음을 다질수 있는 시간이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내부
경천사십층석탑

1층 전시관)

청동기시대~민무늬토기
옥장신구
선사시대
1
고구려~금동관
글자가 새겨진 평양성 성돌
강서대묘
가야
금 새날개모양 관꾸미개,고깔모양 관
신라~금 동장식 신발
고려시대
조선시대~청화백자
조선시대~청화백자
태조어진~조중묵(1872년 원본의 복제품)
영조어진

 

채용신~고종황제 어진~전통 초상화 바탕을 두면서 서양화법괴 근대 사진술 영향 받아 사실적 입체적
사로승구도권~통신사 여정을 그린 그림(이성린,1748년)
천상열차분야지도~천명사상을 담은 별자리 지도
조선시대

사유의 방)

서화관)

산수
?
가을산수
가을산수
단풍 숲에서수레를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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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수(눈 내린 산속 마을)
화각 화조.서수무늬 사층 장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
홀로 수행해 깨달은 독성존자
세싱의 존중을 받는 나한
중국에 선종의 가르침을 전한 달마대사
해산정도
포도
태조어진~조중묵(1872년 원본의 복제품)
영조어진
고종황제어진

 

이성원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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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와 기러기
오동나무
산수
산수
산수
축응봉에서 취한 채 내려오다
장승업~산수
조선시대 서화

대한제국 첫 궁중 연회)

대한제국 첫 궁중 연회~효정왕후 71세 경축하는 궁중 연회 진찬 "신축진찬도"
고려시대~청자 참외모양 병
19세기~백자 청화 연꽃 물고기 새무늬 접시,백자 청화 물고기 파도무늬 병
조선시대~왕실용 다각형 청화백자 접시
고려시대~청자 참외모양 병

세계문화관)

1
테라스에 앉아 있는 왕자
파룩시야르 환제와 관료
잔을 든 무굴 여인
인도의 회화
접시
산수
가을 숲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대나무 숲속의 굴방
책읽는 여인,벼루 씻는 시둥과 선비
꽃과 새
산수
가을 풀
연꽃과 백로
도카이도의 53개 역참:하코네
겐지모노가타리 화첩
국화와 물결무늬 접시,푸른 파도와 모란무늬 접시,다쓰타강의 낙엽무늬 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