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드워드 호퍼 전시회(2023년8월16일)

백재은 2023. 8. 17. 14:48

서울시립미술관

8월16일~조각이 장식된 정원의 언덕길 따라 중앙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버티고 있어 매우 고풍스러웟다. 근현대로 도약하는 그림자로 녹아내리는 아치형 장식 베란다로  등록문화재로 손색없는  건축을 뽐내고 있었다. 천정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비추는 흰벽체의 실내로 청정한 향기로 가득했다.백남준(1932년~2006년)의 서울 랩소디 작품(2002년)이 벽면을  드리우며 세계속에 예술문화 강국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울 랩소디 작품은 백남준의 창의성이 집약된 실험적 소프트웨어와 서울 관련 도상 및 미술관 상징이 결합된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진 작품이였다.서울시립미술관은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협력하여 공동 기획한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길위에서"주제로 전시하였다.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초 현대인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성 지닌 작품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위대한 에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호퍼의 말처럼 그에게 그림은 세상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작가만의 화법을 창출하였다. 그의 시선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흐려 버리는 평범한것에 머물고 대상과 공간을 세심히 관찰하여 포착된 현실은 호퍼 특유의 빛과 그림자,대담한 구도,시공간의 재구성등을 통해 자기화 하였다.창문 너머 누군가의 뒷모습뿐만 아니라 마천루와 대비되는 낮은 건물의 지붕,철로 위를 비추는 석양일지라도 호퍼의 그림은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이라 할수 있다.에드워드 호퍼 "길위에서"는 파리,뉴욕,뉴잉글랜드 일대,케이프코드 등 작품속에 작가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에 따라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혀간 호퍼 65년 화업을 돌아보고 있었다. 호퍼의 일련의 작품들은 크게 3시기로 나뉘지만 ?8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 조망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장소에 대한 특유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섬세한 관찰에 자신만의 기억과 상상력을 더한 화풍을 평생에 걸쳐 발전시켰다.1882년 뉴욕주에서 태어난 호퍼는 5살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10살떄 본인 작품에 서명을 시작하였다.1895년~1898년 잉크,구아슈,수채화 물감을 사용하여 잡지 그림을 모사하며 정밀묘사를 터득하였다.그림과 문학을 즐기며 성장하였다.1899년~1900년 실용미술 위주의 뉴욕 일러스트레이팅학교에 입학하여 수년간 매일 기차와 배를 타고 나이액과 뉴욕을 통학하였다.1900년 뉴욕에술학교 편입하여 삽화를 공부하였고 1902년 사실주의 대표화가 로버트 헤나이 수업 들으며 예술가 꿈 이어갔다. 1903년 인체드로잉으로 장학금을 받고 회화로 교내 수상을 받았다.1904년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 뉴욕에술학교 입학하여 그림수업을 시작하였다.1906년 뉴욕 광고회사 C.C필립스 소속 삽화가로 활동시작하였고 190년6~1907년 파리 10개월간 체류하여 인상주의 화풍익혔다. 1908~1912년까지 뉴욕 광고회사 셔먼 앤 브라이언의 삽화가 고용되어 일하였고 이후  1925년까지 프리랜서 삽화가로 일하였다.첫째 섹션은 습작과 인물화, 문명과 자연의 대비라는 주제적 관심을 형성했던 작품이였다.1900년초 학생시절에 얼굴과 상반신,특히 손동작 연구를 통해 손을 수차례 그렸는데 예술적 표현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으로 성공에 대한 열망을 느낄수 있었다. 1903~6년대 자화상은 어두운 흑색의 배경과 함께 무언가 응시하는 눈빛으로 현대풍 자화상을 그려 냈고 상업화가에서 전업화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인 1910년대~1920년대의 자화상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자아 성찰적 측면이 부각되었다. 극장을 가거나 야외 작업을 다니며 애용하던 중절모와 에칭프레스기가 본인의 상징물로 등장하며 직업적 자의식이 안팎으로 영감을 얻으며 성장하는 면모 드러내고 있었다.1925~30년대  자화상에 와서는 한층 밝은 모습의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예전 작품보다 색채가 밝아지고 섬세한 명암처리,안정적인 구도로 중후한 신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화상을 습득하며 더 진보해 가는 모습과 끓임없이 예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그의 역량을 엿 볼수 있었다.이후 예술가로서 역량과 명성이 무르익은 1940년대에도 자화상과 손그리기를 반복하여 세밀한 근육의 묘사,명암의 사용등에 있어 끓임없이 자기계발을 시도하였다.허드슨강 인근의 나이액 고향 집은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문명과 자연의 대비라는 주제적 관심을 형성해 나가는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나이액 예술가의 침실"(1905~1906년경)은 침실벽에 본인의 작품이 걸려있는 그림으로 예술가로서 자아를 형성한 공간을 나타내고 있었다.고즈녁한 에술가의 혼이 담겨진 공간 같았다.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계단","파리의 거리","파리의 다리","노트르담 드 파리"였다.나이액의 집을 떠올리며 작업한 후기 작품 "계단"(1949년)은 구도는 문명의 상징적 공간인 집에서 부터 수풀이 우거진 문밖 이미지 풍경으로 시선을 이끌게 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숲은 종종 문명의 대척점으로서 해석되어 왔으며 계단,창문,현관문 등의 모티프는 안과 밖을 경계 짓고 양자 간의 시선 이동을 유도하며 상상을 촉발시킨다.파리의 거리를 보며 그린 작품인 "파리의 거리","파리의 다리","노트르담 드 파리"로 자연 풍경그림은 인상주의 영향을 받으며 인상주의 색채를 띠나가 점진적으로 섬세한 명암처리,빛과 그림자,구도에 심혈을 기울이며 인상주의를 벗어나는 면모를 띄었다. 그가 빛과 명암에 대한 연구에 매우 투철하게 경주했는지 증명하고 있었다.둘째 섹션은 파리였다.호퍼는 여행을 통해 면밀히 관찰한 자연 도시 일상의 풍경을 주관적인 관점과 구도로 묘사하면서 독자적인 화풍 개척하였다.1906년 뉴욕에서 삽화가로 일을 시작한 호퍼는 예술가 꿈을 안고 당대 에술의 수도 파리로 향하였다. 옛 모습 간직한 파리 매력에 빠진 호퍼는 1906년에서 1910년사이 3회에 걸쳐 파리에 체류하였다. 파리 근교로 나가 자연과 건축물,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시간 보내고 주변 유럽 도시 여행하며 거장들의 작품을 관람하였다.새로운 환경에서 소재와 영감을 찾는 시도를 통해 호퍼 작품은 매 방문마다 점진적 변화하였다.첫해인 1906년 여전히 스승 로버트 헨라이의 영향 아래에서 그가 지내던 침례교  교회 건물 내부와 주변 도시 풍경을 고동색과 짙은 회색 등 어두운 색조로 표현하였다. 전위적인 야수파와 큐비즘 대신 빛의 효과를 강조한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그는 1907년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야외 작업에 임하였다. "센강과 강변-건물-하늘"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화폭은 밝은 톤,빠른 붓 터치,부드러운 빛을 머금기 시작하고 수평구도를 시도하며 캔버스 크기도 변화하였다. 1909년 작업에서는 센강변의 강둑,루브르박물관 다리와 같은 건축적 요소와 빛과 그림자 대비가 부각되고 사진 프레임 안에 담은 듯한 구도가 나타나 인상주의 영향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호퍼만의 화풍이 구축되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아침부터 하루종일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풍경은 그에게 흥미로운 소재로 노동자들 매춘부,다양한 직업군과 유행하는 옷을 입은 남녀등  33점 수채화를 캐리커쳐로 기록하였다. 이후 파리 일상에 대한 관찰과 인물묘사는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1909년) "푸른저녁"(1914년)에서 구체화 되었다.뉴욕에서 완성된 두작품은 실제적 관찰에서 기초한 구성에서 출발하여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지며 완성된 리얼리즘 특성을 본격화하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1909년)"푸른저녁"(1914년)으로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는 파리의 맑은 햇살이 비추는 강변옆 와인가게에서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여인의 그림으로 아름다운 풍경안에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 양면성을 담고 있었다.감상자로 하여금 무언가 상상력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였다."푸른저녁"은 아름다운 저녁을 배경으로 단절된 관계속에 각기 다른 표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였다.즉 두작품들은 실제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것이 아닌 풍경관찰에서 환상을 더해진 각 인물들의 삶의 감정들을 담은 우리의 모습과 같았다. 파리 방문 이후 4년이 지나 뉴욕에서 그린 것으로 인물들의 단절적 관계와 심리적 풍경 묘사라는 성숙기 회화 속성을 드러내었지만 1915년 맥도웰클립 뉴욕 출품시 혹평을 받았다. 그 이유는 미국내에서는 독자적인 미술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파리가 아닌 뉴욕의 풍경을 원하는 분위기가 컸기 때문이였다.이로인해 3번의 유럽 방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뉴욕에 정착한 호퍼는 이를 계기로 미국적 풍경 담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였다.세째 섹션은 뉴욕,생계를 위한 삽화가 선택이였다.생계를 위한 삽화가로서 현실속에서 예술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호퍼는 어린 시절부터 즐기던 드로잉처럼  선이 강조되는 판화기법 에칭을 1915년 시도하였고 1916년~1928년까지 뉴욕의 면면을 담은 70점 판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에칭은 뉴욕의 주택가와 고층건물 북적이는 번화가 풍경 생생하게 거친 선으로 표현하고 고가 전철 철도등 교통체계 발달을 포착하며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도시 개발 본격화되던 당시 분위기 전달하였다. 한편 도시를 밝히는 불빛과 텅빈 거리,실내 인물도 에칭의 주된 주제였으며 이러한 작업은 빛과 그림자 효과를 연구하고 이후 회화 작업과 연결되는 주제 선정,구도,표현법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호퍼 판화의 특징은 날렵한 필치와 선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었다.삽화와 연관성을 갖고 건축적 구성 두드러지는 빈공간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빛과 그림자의 극단적 사용과 암시적인 내러티브로 배경세부요소가 모호한 역동적 구성을 이룬다. 흑백 극명한 대비로 관람자로 상상력 자극한다. 판화통해 독자적 화풍을 견고히 하였는데 광고작업 위해 도시의 다양한 거주자들을 묘사한 수채화를 그리며 연구를 지속하였다. 호퍼 에칭은 화단의 호평을 받으며 예술가로 입지를 다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판화작품인 "발코니"는 조명과 프레임 구도에 영화적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거리의 사람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으로 망토를 걸치고 지팡이를 든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친근하고 유머스럽게 다가왔다. 호퍼는 1908년부터 1967년까지 평생 뉴욕에 거쳐했다.그로인해 뉴욕의 풍경과,일상은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뉴욕에 거쳐하기 전까지 그는 나이액과 뉴욕을 잇는 페리와 기차를 타고 통학하였다. 어린 시절 키워 온 항해 기차에 대한 관심은 한적한 교외에서 뉴욕으로 진입하며 변하는 풍경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심화 되었고 이는 "페리 선착장"(1904년~1906년)"검은 굴뚝이 있는 예인선"(1908년)등에 두드러 진다. 마천루 사이로 자리한 공원도 즐겨 찾는 소재로  1913년 이사한 워싱턴 스퀘어 노스3번가에서 일평생 살며 창밖의 워싱턴 스퀘어 파크와 도시 중심부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 관심을 가졌다.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에 센트럴파크의 세익스피어 동상을 중심으로 많은 습작을 남기는데 조명이 드리워지며 생기는 빛과 그림자 어둑함을 만들어 내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등 문학적 영감을 투영한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뉴욕은 오늘날 같은 메트로폴리스로서의  뉴욕으로 변모하던 시기였지만 호퍼의 관심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 풍경의 스펙터클 보다 낡고 사자려 자는 19세기 건축물의 코너나 지붕등을 포착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더불어 마천루의 수직적 스카이라인 대신 블랙웰섬,강변에 늘어선 아파트 옆으로 길게 뻗은 다리의 확장성을 화폭에 담으며 당시 화가들과 차별화되는 감각을 선보였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뉴욕과 뉴잉글랜드를 오가며 시골에 남아있는 다양한 시대 양식의 건축물과 동네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목격하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시점은 기차 혹은 엘이라 불린 고가 전철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기를 즐겼던 호퍼의 시선을 연상케한다. "매컴댐 다리를 위한 습작"은 이중 트러스 구조와 고딕복고 양식 눈길 사로잡는 숙련된 건축적 드로잉 기술과 수평적 구도에 관심두었다.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도시의 지붕들"(1932년)로 뉴욕 옥상에서 바라 본 반복적이고 실용적 기하학적 구조는 시각적 요소가 풍부한 스카이라인 제공하여 상상력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림자와 빛,안정적인 구도로 미국 건축물을 섬세하게 그리고자  건축적 요소들을 매우 철저히 탐구한 모습이 엿보이는 작품이였다.호퍼는 사회적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대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의 삶을 관찰하여 담아내는데 집중하였다.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적 시선은 내외부를 연결하는 장치인 창문 모티프를 통한 도시인의 일상을 묘사한데서 드러났다. "황혼의 집"(1935년)은 원숙기 가장 강렬한 서정적 유화로 도시의 사적인 영역 엿볼수 있게 내포된 긴장감과 내러티브 상상하게 하였다. 바로 드러내지 않은 고독,외로움,후회,슬픔의 그림자를 담은 모호한 암시적인 작품이다.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1,1942년) 과"밤의 창문"(1928년)작품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조명이 켜진 실내공간은 창밖의 어두움과 대비되며 시간이 멈춘듯한 단절적 느낌 주었다.적막한 분위기와 함께 오늘 하루 삶을 돌아보며 고뇌에 젖고 새로운 희망을 갖으며 내일을 맞이하는 상상을 일으키게 하였다. 적막과 희망의 상반되는 작품 같았다. "밤의 창문"은 매우 어두운 흑색의 창문밖의 배경과 창문 너머 실내의 휴식을 위한 일상이 그려졌다. 쉼이 존재하는 하루로 쉼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재즈시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호황기를 시작으로 미국인들은 극장,레스토랑,스포츠등에 열광하였다.호퍼와 그의 부인 조세핀도 연극의 공통 취미를 바탕으로 극장을 자주 찾았다. 그는 무대를 보며 앉아 있는 인물의 뒷모습이나 공연 전후 혹은 막간사이 인물들을 적막하고 고독한 분위기로 묘사하였다. 팰리스,셰리던등 여러극장의 아치와 원형무대,오케스트라석과 같은 내부의 건축적 구조물을 즐겨 그렸고 50여점 스케치를 토대로 각 장소의 구성요소를 기억과 상상에 의해 결합한 그만의 극장으로 새로이 재현하였다.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통로의 두사람"(1927년)작품으로 관객석에 초조해하는 연주자들과 여유있는 관객의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였다.내부 건축물을 통해 상반된 인물묘사로 우리 내면의 심리를 노래하고 있었다.호퍼 풍경화 특징은 도시 건축물과 함께 작가의 상상에 내재된 자연결합하여 새로운 장면을 탄생시켰다. 습작을 많이 연구하고 드로잉하여 미국 건축물에 대한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사실적 풍경이 아닌 작가 내면에서 새롭게 그려졌다.네째 섹션은 길위에서 였다.호퍼 미국 풍경화는 있는 그대로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새롭게 그려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  철길 옆에 우뚝선 신호탑뒤로 녹색언덕과 함께 장관을 이루는 일몰을 묘사한 "철길의 석양"(1929년)은 기차 창문너머로 목격한 장면인것 같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신비로운 석양과 무언가 외로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작품 같았다. 이 작품을 완성한 1929년  호퍼부부는 뉴욕에서부터 찰스턴,사우스캐롤라이나,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까지 함꼐 여행했다. 여정 중 길위에서 얻은 인상은 기억에 남아 이후 작가의 작업에 지속적인 영감이 되었다.다섯째 섹션은 뉴잉글랜드였다.호퍼는 여행을 통해 시선을 환기하고 자연 도시 이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관점과 구도로 묘사하면서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해 나갔다. 호퍼는 미국에서 청교도들의 첫번째 정착지였던 뉴잉글랜드의 북동부 6개 주 중 하나인 메인주에서 몇번의 여름을 보낸다. 1912년 호퍼는  뉴잉글랜드의 해안선을 따라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를 여행하고 야외작업 시작하였다.그 후 버몬트와 뉴햄프셔의 산과 농장을 지나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의 다른 해안 지역으로 돌아온다. 1914년과1915년 호퍼는 3마일에 이르는 모래해안으로 둘러싸인 작은 어촌인 메인주의 오건킷(미국 전통 풍경화가로 잘 알려진 윈슬로우 호머의 반복적인 방문으로 예술가 본거지가 됨)과 1916년부터 1919년사이에 메인주의 해안선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바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몬헤건섬을 4번 방문한다.몬헤건섬에서 그는 작은 크기 패널을 가지고 암석해안을 걸어 다니며 스케치하거나 밑그림없이 즉흥적인 작업을 하였다. 이 시기 작품은 바다와 대지간 극명한 색조대비,반사된 빛과 그림자의 색채 대조,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기법인 임파스토를 통해 강조되는 암석의 덩어리감,가파른 해안 절벽과 주변 부서지는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대담한 구성과 같은 역동성과 표현성이 배가되는 특징이 드러난다. 1923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그는 동문이자 작가인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과 교제 시작하여 1924년 결혼하였다. 조세핀 영향으로 야외 수채화작업을 시작하였고 그녀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 함께 참여하였는데 특히 이 시기에 작업한 호퍼 수채화는 화단에서 좋은 평가 얻고 판매까지 이어지는 전업화가로 진입하는 본격적인 기회가 열렸다. 도시와 다른 환경을 접하여 영감을 얻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 "도로와 집,사우스트루로"(1930~33년) 황토색과 연두색 색체를 주로 사용하여 전원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지붕선과 평야,초원의 뚜렷한 선들로 입체감이 있어  생명력이 약동쳤다."블랙헤드 몬헤건"(1916~19),"석회암 채석장"(1926년)으로  빛과 명암연구로 암석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질감을 표출하고 푸른 바다 색채속에 생명의 빛을 전달하고 있었다.여섯째 섹션은 케이프코드였다.호퍼부부는 1925년 기차로 미국을 횡단하고 1927년 중고 자동차 구입한 뒤 미국 서부 멕시코등을 평생에 걸쳐 여행한다.여행에 대한 호퍼 몰두는 의식적이고 운전을 할때 그림 주제들이 떠올랐다고 호퍼 오랜 지인이자 뉴욕 휘트니미술관 관장이였던 로이드 구드리치가 말하였다.부부여행은 당시 도로확장과 자동차보급으로 용이했고 도시화,대공황,사회적 경제적 문제로부터 일시적 일탈을 가져다 주었다. 뉴잉글랜드 지역 매력에 빠진 부부는 1930년6월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반도 남쪽에 위치한 트루로에 방문하여 우체국장이었던 벌리 콥에게 작은 집을 빌려 여름휴가 보냈다.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고운모래 둔덕,낮은 구릉사이 띄엄 띄엄 자리하는 집,농가의 소박한 헛간,따스한 햇볕을 즐길수 있는 넓고 푸른 자연이 펼쳐지는 이 지역은 주민이 500명 남짓한 작은 마을로 번잡한 뉴욕에서 벗어나 작업에 집중할수 있는 완벽한 고요한 장소였다.1934년 트루로에 스튜디오 집마련한 부부는 매년 여름,초가을 이곳에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였다.1930년대 말 이후 호퍼는 작업에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된 이미지 불어 넣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호퍼는 자전적 경험이 내면화 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실과 환상,자연과 인공물의 대비를 통해 나날이 원숙해졌다. 트루로 부근의 숲과 집 해변가의 별장에 대한 호퍼의 인상은 "케이프코드 일몰"(1934년)"이층 내리는 햇빛"(1960년)을 탄생시켰다.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작품은 모두 여름날 해안 분위기를 포착하고 있지만 빛의 극적인 잠재력과 건축과 주변 환경이 교차하는 빙식에 집중하였다. "이층 내리는 햇빛"은 화면을 거의 차지하는 별장건축의 배경으로 따쓰한 햇살아래 호퍼부부의 행복한 여가모습이 엿보였다."오전7시"(1948년)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실제로 있는 장소로 나이액 소재의 주류 밀매 업소였다. 금주령 해지된지 15년 후인 1948년 케이프코드의 트루로 스튜다오에서 완성된 작품이였다. 시공간을 오가며 완성되는 작가의 독특한 시간대를 특정하는 사실주의적 작품제목에 집중하게 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끓임없이 시선을 끌게 하였다. 호퍼가 공간을 비추는 태양의 움직임과 밝기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주의를 기울였음을 엿볼수 있었다.호퍼 기억과 환상이 뒤섞인 공간으로 재탄생되어 상상력을 유도하였다.일곱번째 섹션은 조세핀 호퍼였다.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년~1968년)는 1905년 뉴욕에술학교에 등록하여 로버트 헨라이의 수업을 수강하고 1914년 스튜어트 데이비스,찰스 데무스,찰스 버치필드등 미국 모더니스트들과 함께 그룹전 가질 정도로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수채화에 두각을 보이던 조세핀의 영향으로 호퍼는 1923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함께 야외작업을 하며 수채화를 시도한다. 그해 가을 그녀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에 출품된 호퍼의 수채화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채택되며 미술계 큰 호응 었다.1924년 부부가 된 둘은 문학,영화, 연극,프랑스에 대한 애정 등 취향을 공유하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 받으며 미국,캐나다,멕시코 등으로 여행을 떠나 야외작업을 즐겼다. 조세핀은 호퍼의 조력자로 예술딜러,컬렉터,큐레이터,기자들과 교류하며 호퍼작품을 홍보하였다. 호퍼의 오랜 뮤즈로 조세핀이 1910년대 극단 워싱턴 스퀘어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한 경력을 살려 다양한 포즈를 남편에게 제안하며 작품에서 흔적 찾을 수 있다. 조세핀은 호퍼의 전시 이력,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지속하는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였다.남편 사망 후 거의 2500여 점에 달하는 호퍼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작품의 세부사항들을 조세핀이 세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장부는 호퍼 작품 생애에 대한 핵심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여덟번째 섹션은 호퍼의 삶과 업이였다.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니 중앙으로 "햇빛 속의 여인"(1961년)이 전시 되었다. 호퍼 후기 작품중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체 여인은 호퍼의 부인인 조세핀의 모습이였다.방안의 묘사는 사실적이지만 나체 여인이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구성은 영화 한 장면처럼 긴장감을 조성하였다. 담배를 손에 끼고 있는 여자의 그늘진 모습이  비극적인 모습으로 관람자로 하여금 서사적인 발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과 고독에 찬 나체여인과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자연치유의 생명 빛인 햇빛을 통해 건강한 내면을 직면하라는 메세지 같았다.뉴욕 휘트니미술관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가 함께 어우러진 전시였다.여정,삽화,호퍼부부,호퍼의 말과 글,다큐멘터리로 나뉘어 작가의 예술과 삶 행적을 세세히 전달하였다.여정에서는 평생 유럽,남미,미국 전역등을 꾸준히 여행하며 길위에 보낸 호퍼 삶에 주목하여 첫 여행지였던 파리에서 남긴 사진과 어머니에게 보낸 서신,지도등의 자료를 살펴볼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편지로 무질서한 뉴욕에 비해 파리는 격식있고 달콤한 도시로 말하였다.1901년까지 3번의 파리여행은 호퍼의 예술적 성취의 첫 자양분이 되었다.여행을 통해 자연,도시,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관점과 구도로 묘사하면서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해 나갔다. 삽화는 호퍼가 본격적 성공을 거두기전까지 20여년 간 1906년~1945년까지 제작해온 각종 광고,삽화,잡지 표지,디자인 출판물과 삽화를 소개하였다.호퍼가 화가로 성공하기 전 1906년부터 1925년까지 생계를 위해 뉴욕광고회사와 잡지,출판사의 프리랜서 삽화가로 일하며 큰 명성 얻었다. 약 20년간 삽화제작 경험은 자연스러운 뉴욕 도시 풍경과 뉴욕 일상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시대상을 특정한 화면에 예리하게 포착하는 훈련이 되어 그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삽화 50점중 도시전역의 출판사및 광고 대행사에 선보일 포트폴리오로 추정되는 수채화 드로잉11점,유수의 광고회사 의뢰로 1910년대를 중심으로 제작한 광고삽화9점으로 다양한 남성의복부터 공사장의 기계까지 아우르는 광고삽화로 화면 구도는 단순하지만 세부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1912년부터 1916년사이 무역 잡지에 글과 함께 수록된 삽화6점,1917년부터 1925년까지 제작한 기업의 출판 잡지 표지24점으로 구성되어 전시 되었다.1900년에 창간되어 1929년까지 발간된 사업가와 전문 직장인을 위한 잡지이자 현재 "비지니스위크"로 발전한 "시스텝:비즈니스매거진"에 50여점 삽화를 기고하였는데 이번 전시에는 6점이 소개 되었다. 마케팅,세일즈,공용전략 주제로 한 글과 함께 수록된 삽화로 사무실의 회사원,신문을 읽는 남.여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들은 이후에 탄생하는 "뉴욕의 방1932년"과 "밤의 사무실"1940년등 그의 걸작을 예시한다.호퍼의 삽화들은 그 당시 일상과 의복등을 알수 있는 귀족적이고 복고스러운 분위기로 대중들에게 쉽게 시선을 끌게하는 묘미가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이 잘 전달된 삽화로 카페,실내공간,어느 공간이나 잘 조화되는 우리일상과 함께 할수 있는 작품이였다. 그리고 호퍼가 자기 아내를 그린 1923년부터 1940년까지 습작이 전시되었는데 연필로 스케치 한 습작임에도 불구하고 집중과 사고,쉼의 열정,평안의 아내 내면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호퍼부부 관련 전시는 부부 사진과 함께 관람 후 모은 극장표 4권의 장부를 선보였다. 호퍼는 평소 아이디어 개진과 작품 구상을 위해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를 남겼다.1913년 최초 작품 판매하면서부터 관련 정보와 판매 내역,대여와 전시 이력등 아내와 함께 장부에 기록했다. 호퍼는 한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그 작품의 작은 스케치를 장부에 그려 넣었고 조세핀은 호퍼가 말한적 없던 작품에 대한 일화나 세부사항등을 상상하면서 생생한 작품설명을 추가했다. 호퍼 부부의 삶과 예술활동은 부부 말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시각예술"(1965년)와 "호퍼:아메리칸 러브스토리"(2022년)에서 살펴 볼수 있다.호퍼의 말과 글은1900년대 초 파리를 주제로 한 회화를 모아 개최한 "초기회화" 전시(1941년)의 브로슈어,추상미술에 편중된 당시 미국 미술의 경향에 저항으로서 동료 예술가들과 발표한 성명서 "리얼리티:에술가의 견해지"(1953년),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의 미국미술 아카이브에 등재된 존 모스와의 대담(1959년)을 소개하였다.존 모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호퍼는 그의 글 중 가장 잘 알려진 "회화에 대한 단상"(1944년)과 "리얼리티:예술가의 견해지"에 발표된 성명서를 직접 낭독했다."리얼리티:예술가의 견해지"(1953년)에서 상상력 본질적 요소를 기술적인 발명으로 대체하려는 추상미술을 비판하며 예술은 자연현상을 더 온전하고 덜 간접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글 "회화에 관한 단상"(1933년)에서 밝힌바 있듯이 자연으로 부터 받은 가장 내밀한 인상을 최대한 정확히 옮겨서 기록함을 그림의 목표로 삼았던 20년전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사실에 기인한 묘사를 지향하면서도 이를 구현하기 위한 토대를 순수한 상상력으로 삼은 호퍼의 예술관은 주요 미술사조로는 완전히 규정할수 없는 예술관을 보여준다.예술에 대한 작가로서 견해를 표명한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되어 전시되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초기회화"(1907년~1914년)"전의 브로슈어는 1900년~1910년대 파리에서 그린 회화를 파리그룹으로 뉴욕으로 돌아와 그린 초기 풍경화와 파리를 회상하며 그린 회화를 미국그룹으로 분류하여 개최한 전시 책자로 표지에는 호퍼가 직접 쓴 간결한 전시 설명이 적혀 있었다.마지막으로 호퍼의 약력과 함께 호퍼 생전의 현대미술의 탄생이 년도별로 제시 되었다.19세기 중반 미국 최초 미술 유파인 허드슨강파 등장,1905년 파리 야수파탄생,1907년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완성,1908년 20세기초 미국 사실주의 학파인 애쉬캔파의 등장,1909년 필리포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 이 르 피가로에 실림,1910년 독일 쾰른 최초 아방가르드 현대미술국제전,1913년 미국 최초 유럽현대미술 소개한 아머리쇼 개최,1924년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출판,1925년 파리 현대장식 및 산업미술국제박람회개최 아르데코양식유행 1926년 마르셀뒤샹 "큰유리" 대중 공개,1928년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와  회화 출간,1936년 미국 추상화가협회 설립,뉴욕 현대미술관 입체주의와 추상미술 개최,1937년 독일 뮌헨 나치주최 퇴페미술전개최 1939 년 제2차 세계대전  평론가 클레맨트 그린버그 에세이 "아방가르드와 키치 출간,1941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호안 미로,살바도르 달리 회고전,1942년 페기 구겐하임이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키네틱 아트 등 유럽 아방가르드 소개 ,뉴욕현대미술관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 피에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그림,1946년 미국에서 윌렘 데 쿠닝,바넷 뉴먼,잭슨 플록,마크로스코등의 추상표현주의 급부상하였고 1952년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가 잭슨 플록,윌렘 데 쿠닝, 프란츠 클라인 작품을 액션 페인팅이라 칭하였다.1957년 오클랜드미술관 베이 지역 구상미술 개최 새프란시스코 학파의 구상미술 운동의 대표사례로 거듭났고 1958년 뉴욕현대미술관 추상표현주의 미술전시 "새로운 미국미술" 개최하였다.1962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미국의 기하학적추상 개최,시드니 재니스 갤러리 신사실주의자 개최하였고 1964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조직적 추상미술 개최하였다.즉 20세기 허드슨강파,야수파,사실주이,미래주의,아방가르드 현대미술, 초현실주의,추상미술,다다이즘,구상미술,액션페인팅,기하학적 추상,신사실주의를 발표하며 아주 다양한 사조가 탄생했음을 알수 있었다.이와같이 에드워드 호퍼 사실에 기인한 묘사를 토대로 순수한 상상력을 예술관으로 삼았다. 명암과 빛의 연구,안정되고 독특한 구도를 통해 대비되는 감정과 암시들이 관람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서사적인 발상으로 자극하였다.전체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장면으로 영화 한장면이나 유머스러운 분위기로 대중들에게 쉽게 시선을 끌게하는 묘미가 있었다. 자연,도시,일상의 풍경이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된 이미지를 불어 넣어 재탄생 되었다. 실제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것이 아닌 풍경관찰에서 더해진 환상이 삶의 감정들을 담은 우리의 모습과 같았다. 내부 건축물을 통해 상반된 인물묘사로 우리 내면의 심리를 노래하고 있었다. 판화는 날렵한 필치와 선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었다. 건축적 구성에서 두드러지는 빈공간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빛과 그림자의 극단적 사용과 배경세부요소가 모호한 흑백 극명한 대비로 관람자로 상상력 자극하였다. 단순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이 잘 전달된 고풍스러운 삽화로 카페,실내공간,어느 공간이나 잘 조화되는 우리일상과 함께 할수 있는 작품이였다.즉 다채로운 풍경,일상등을 통해 바로 드러내지 않은 고독,외로움,후회,슬픔등... 삶의 그림자가 우리 삶과 우리 내면모습이였다.

자화상(1925년~1930년)
나이액 예술가의 침실(1905년~06년)
계단(1949년)
노트르담 드 파리
비스트로 또는 와인가게(1909년)
푸른저녁(1914년)
도시의 지붕들(1932년)
황혼의 집(1935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1,42년)
밤의 창문(1928년)
통로의 두 사람(1927년)
철길의 석양(1929년)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년)
오전7시(1948년)
햇빛속의 여인(1961년)
바다옆 방(1951년)
앉아있는 조 호퍼를 스린 습작(1945~50년경)
잠자는 조 호퍼를 그린 습작(1940~45년)
독서하는 조 호퍼
앉아서 바느질하는 조 호퍼를 그림 습작(1934~40년)
굿하버 해변에서 스케치하는 조 호퍼 (1923~24년)
뉴욕 에디슨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1906~07년)
뉴욕 에디슨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1906~07년)
뉴욕 에디슨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1906~07년)
포플러 나무 근처의 두 사람(1906년)
카페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1906년)
뉴욕의 집들(1906년~10년경)
극장입구(1906~10년)
벽돌공의 휴식(1907~10년)
기차에 올라탐(1906~14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