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일~우리함께 걸어요 밴드모임에서 단풍을 보라 안동에 갔다. 안동시에 이르니 고개를 넘고 넘어 끝도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질주하는 길로 단풍이 깃든 산봉우리들에 드리운 초록물결의 강으로 생명력이 넘쳤다. 버스정류장 입구부터 아름다운 단풍색채를 발하는 깊은 산속같은 안동 골짜기의 도산서원으로 양반도시 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안동 도산서원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대학자 이황 퇴계(1501~1570년)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건축물은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건축물 구성은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유림의 발의로 1574년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세우기 시작하여 1575년 낙성이 되자 선조(1567~1608년 재위)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792년 정조(1776~1800재위)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향사에 필요한 물품을 친히 내리고 특별 과거인 별시를 도산서원에서 열기도 하였다.그후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도 영남 유학 중심 역할을 해온 중요성을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았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비롯하여 퇴계 사후에 만든 전교당,상덕사,전사청이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박약재와 홍의재,서원에서 만든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서원 관리인의 숙소 등 여러 부속 건물들이 있다. 2019년7월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산서원 소유의 고서1300여종 5000여 책과 퇴계문집을 비롯한 목판 총37종2790판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청에 위탁하여 보관하고 있다.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부터 매우 아름다운 단풍의 색채향연으로 저절로 도산서원으로 향하는 설래임과 힐링으로 가득찼다. 저! 멀리서 안동호를 에워싼 산봉우리들과 함께 호수 중앙 시사단으로 매우 신성한 제단처럼 빛을 발하였다.시사단은 경북유형문화재 제33호로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강건너편 비각으로 안동댐 수몰로 현재 송림은 없어진 상태였다.영지산을 뒤로하고 동취병,서취병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안에 노랑 단풍나무 가로수로 둘러싸인 안동호를 바라보고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으로 매우 운치있고 낭만적인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도산서원 광장으로 우뚝솟은 장대한 나무가 서원 입구를 드리우고 매우 수려한 자태의 기념송 왕버들로 유서깊은 역사를 간직한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처럼 빛났다. 퇴계 선생이 도산잡영에서 무궁한 조화의 봄 바로 풍류의 나무라 과찬하고 아득히 사모하는 마음 일으킨다고 노래하였던 시냇가의 왕버들이 버티고 있었다. 매우 신비로운 자태로 물결치는 왕버들로 도산서원이 더욱 더 고혹적인 향기로 다가왔다. 질서 정연한 서원의 전경이 과학적이고 학구적인 규범의 전당으로 빛났다. 주변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영남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던 선비정신이 깃든 곳이였다. 옥진각과 역락서재의 ㄱ억자형 대문과 담장으로 매우 고풍스러웠다.정문에서 도산서원으로 가는 계단길로 일본풍 정감으로 가득찼다. 정문 입구 바로 옆 농운정사의 마당으로 옥진각을 드리우는 단풍으로 화사했다. 농운정사는 퇴계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기숙사 건물로 공자모양을 이루며 학생들 공부가 성취되는 마음으로 퇴계가 설계한 곳이였다. 역락서재는 농운정사와 같이 도산서당 기숙사로 1561년 정사성이 퇴계의 제자가 될 때 정사성 아버지 정두가 제자들과 협력하여 지은 곳이였다.역락서재,단청,기와돌담,대문과 매우 조화로운 단풍물결로 고즈녁했다.1969년과 1970년에 신축된 단아한 옥진각으로 퇴계 이황의 유물들이 전시된 곳이였다.가을단풍에 물든 도산서원과 주변 경관을 그린 그림이 전시관 입구 중앙에 걸려 있었다.2001년도 그린 도산서원 작품으로 섬세한 필선의 과학적인 배치도로 사진을 보는것 같은 그림이였다.서원은 산수가 좋은곳에 위치하여 심신의 건강과 지식 수양의 근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퇴계는 강당이 사당앞에 위치하는 전학후묘 형식의 규범적인 강학공간을 제시하였다. 퇴계 선생이 교육용으로 제작한 혼천의와 신기옥형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도산서원에 최고의 천문기기로 매우 귀중한 자료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기로 혼의, 혼상,선기옥형이라고도 한다.심경주부는 심경에 주석을 붙인 것으로 근사록과 함께 성리학 해설서의 쌍벽이다. 심경을 가장 중요시한 퇴계는 새벽마다 소리내어 한차례씩 읽었다고 전해진다. 퇴계선생유묵은 퇴계가 쓴 지필글씨였고 삼경사서석의는 퇴계가 유학의 핵심 경전인 주역,서경,시경의 삼경과 논어,맹자,중용,대학의 사서에 대한 선헌의 주석과 함께 제자들과 연구 강론한 것을 기록한 책이였다.경서 이해에 귀중한것으로 퇴계 선생 입장을 가장 정확히 파악할수 있는 책으로 국어사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었다.도산의 산수를 소요하며 읊은 시조의 친필 목판본인 도산십이곡이 전시 되었다. 목활자본 제작과정은 나무준비 다듬질,자본 붙이기,판각,활자 배자의 과정을 거친다. 고경중마방은 옛 거울을 거듭 닦아 맑게 하는 방법 이라는 뜻으로 퇴계가 성현의 잠,명중에서 학문하는 태도와 수양이 될 만한 내용을 뽑아 책으로 엮은 책이였다.이 책은 1744년 영조(20년)세자 시강원에서도 간행하여 교재로 사용하였다.그 밖에 주요저서로 1556년 주자서절요,1557년 계몽전의 저술,1559년 송계원명리학통록,1566년 심경후론을 편찬하였다.퇴계 이황 사후에 편찬된 퇴계선생언행록은 퇴계 선생 평소 언행의 기록을 분류 편찬하여 1613년 도산서원에서 간행한 것이였다. 그 당시 일본에 퇴계 선생을 연구하는 학파가 형성될 정도로 많은 학자들이 퇴계 사상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일본학자 스구리 교쿠스이가 퇴계 선생의 글을 가려 뽑아 18세기 중반에 전권으로 퇴계서초를 출판하였다.1570년 선조(3년) 말년에 퇴계는 역학계몽을 강의하고 12월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학문의 업적과 유교적인 도덕규범의 실천은 건강한 신체단련과 함께 끓임없이 정진했던 것을 알수 있었다.
퇴계선생의 사상)
주리론은 이기이원론을 바탕으로 하는 성리학에서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이로 보는 퇴계 학설을 게승한 영남학파의 철학이다. 이와 기가 어디까지나 두 가지이지 한 가지가 아니며 기는 결코 항상 존재하지 않고 생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이는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기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법칙이며 능동성을 가진 이가 발동하여 기를 주재한다는 주장하였다. 따라서 심성론의 주요 논제인 사단칠정을 설명함에 있어 심성 내부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선한 본성인 사단은 이가 발동한 것이고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칠정은 기가 발동한것이라는 이기호발설을 주장하였다.사단칠정론은 퇴계 선생이 주장한 인생관의 논리적 학설이다.사단이란 맹자가 실천 도덕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을 말하며 칠정이란 예기와 중용에 나오는 희,노,애,라,구,애,오,욕을 말한다.4단이란 이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칠정이란 기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하였다.인간의 마음은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작용은 이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과 기의 발동으로 생기는 두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선과 악이 섞이지 않는 마음의 작용인 4단은 이의 발동에 속한 것으로 이것은 인성에 있어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이 다른 것과 같다는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다.
도의 철학과 실천)
진리는 이론에서 찾는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속에 있다는 지와 행의 일치 주장하였다. 또한 그 기본이 되는 것이 성이요 그에 대한 노력으로서 경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실제로 퇴계의 학문과 인생관의 최후 결정은 경에서 찾아 볼수 있는것으로 이를 70년 생애를 통하여 실천하였다. 마음을 산만하게 하지 말고 항상 정신 통일 집중된 상태로 지니고 모든 기거동작을 가볍게 가지지 말고 조심하고 삼가는 도를 지녀야 한다. 따라서 말할때도 경해야 하고 움직일때도 경해야 할 것이며 앉아 있을때도 경해야한다. 저절로 심신이 숙연해지고 표리가 하나로 되는 경지가 경이다. 경의 태도를 취하면 천리가 무엇인지 마음속으로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성학십도와 성학집요)
퇴계 선생의 주리론과 율곡선생의 주기론 볼수 있는 문헌이다. 성학십도는 군주 스스로가 성학을 따를 것을 제시한 반면 성학집요는 현명한 신하가 군주에게 성학을 가르키쳐 그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퇴계선생의 교육관)
정통적인 유학교육의 목적은 최고의 인격실현에 있고 천인합인론에 입각한 우주적 인간론을 기반으로 맹자의 인간 성서론의 소극적인 의지에서라기 보다 중용에서의 적극적인 인간의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경의협지,지행병진의 원리는 자아성숙을 위한 통합과정이다. 이때 자아는 보편적 자아이면서 특수적 자아로써 스스로 자각할 수 있어야 자아를 주체할수 있다. 지성스럽게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을 거듭하여 하늘의 인애를 받을것이라고 주장했다.
퇴계와 활인심방)
활인심방은 중국 명나라때 지은 책으로 평생동안 퇴계가 애용했던 것 책이였다.그 책을 퇴계가 직접 옮겨 쓴 것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호흡법,앙생법을 터득하여 건강유지 했던것 알수 있다.
퇴계와 심신단련)
중화탕은 마음을 다스리는 30가지 마음 치료법으로 정신이 맑아져 꾸준히 실천하면 병도 고친다. 30가지 마음은 생각을 간사갖지 말것인 사무사,행호사,속임이 없는 막기심,필요한 방법을 잘 선택하는 행방편, 자신의 직분에 맞게 할것인 수본분,시기하지 않는 막질투, 간사하거나 교활하지 않는 제교사,무성실,하늘의 이치 따를것 순천도, 고난 명의 한계 알것 지명한,청심,과욕,인내,유순,겸화,지족,염근,존인 절검,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조화 처중,살샐,경계, 계 살,계 노,계 폭,계 탐,신독,사물의 기틀을 알것 지기,보애,물러서야 할때 담담히 물러날 것 염퇴,고요함 지닐것 수정,은연중에 덕이나 은혜를 쌓을 것 음즐을 말한다. 양생지법은 비장은 소화와 관계로 주례에 의하면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는것이 소화에 좋다. 술은 과하면 몸에 풍을 일으키고 신장 상하고 장기능 나빠진다. 차는 언제든지 많이 마셔도 안되며 하초는 허하고 냉하게 한다. 공복의 차는 아주 좋지 않으며 배부를때 한두잔 마시는것이 좋다.신맛이 지나치면 비장을 상하고 매운맛 지나치면 간 상하고 짠맛 지나치면 심장을 상하고 쓴맛이 지나치면 페가 상하고 단맛이 지나치면 신장을 상하게 한다.머리를 많이 빗으면 풍을 예방할수 있고 눈이 맑아진다. 목욕 자주하면 심복을 손상해서 권태로움을 느끼게 한다.몸가짐에 대한 수신십훈도는 최고의 도덕의 가르침으로 입지,경신,치심,독서,발언,제행,거가,접인,처사,응거를 말하였다.병을 없애는 장수비결도 실천했던 것을 알수 있었다.
외국의 퇴게학)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퇴계 선생의 저술을 일본각판으로 발행하였으며 일본의 유학자들로 부터 숭상을 받아왔다. 일본, 대만,미국,독일 등 각국에는 퇴계학연구회가 조직되어 있다. 최근 일본의 큐슈지역에서는 퇴계 선생의 현장비를 세웠다. 일본학자 야마자키 안사이는 주자의 직제자와 다름 없다고 하였고 사토 나오카타는 이루신 학덕은 원명제유의 유가 아니다. 중국학자 양계초는 퇴계의 성학십도는 성리학의 요점으로 퇴계 선생을 이부자라고 존칭하였고 미국학자 마이클 칼튼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깨닫게 해준 나의 스승이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도산서원은 심신의 건강과 지식 수양을 높이도록 안동호와 함께 매우아름다운 자연경치를 이룬 곳으로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지성스럽게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을 거듭하여 하늘의 인애를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퇴계 이황의 혼이 깃든 곳이였다.
도산서원 둘러보고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던 김희숙님이 술떡과 귤을 주어 꿀맛 같았다.다같이 모이는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예끼마을로 갔다. 예끼마을은 벽화로 꾸며진 골목길, 지역작가의 작품 감상 갤러리,한옥체험관,옛 한옥 카페,인포메이션 센터를 꾸미고 마을 곳곳에 예술적 손길 더해진 마을이였다.호수위를 걷는 선성수상길로 가을색채로 물든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초록빛 물결의 맑은 안동호로 매우 싱그러웠다. 호수 중심 수상길을 걷는 길로 가슴 확 트이는 상쾌함으로 가득찼다. 풍금이 장식된 선성수상길로 어릴적 정감을 담고 안동호를 중심으로 물위로 늘어진 선성수상길을 지나 고택,향교,문화재,한국문화테마파크까지 선성현길에서 수많은 선인들이 우리 앞을 걸어가며 안내하는 곳이였다.특히 오천유적지~보광사~선성현문화단지~호반자연휴양림~월천서당길 코스는 선성현길로 도산구곡 중 첫번째 물굽이인 운암곡 주변을 둘러 보는 길로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이였다.장대한 길을 다 걷지 못하고 선성수상길을 반쯤 걷고 선성현문화단지로 갔다.안동호의 선성수상길을 바라 볼수 있는 언덕으로 민속촌 정감의 정문과 함께 입구부터 시들이 전시 되었다. 권종수의 "바닷가에서"는 장대한 바다를 바라 보며 좁은 시야에서 허우적 거리며 작아지는 나를 생각하는 시였고 김민녀의 "가족"은 늘 그립고 보고 또 보고 싶고 언제까지 품어주는 숨은 빛 목숨같은 가족의 사랑을 낱낱히 표현하였다. 안쓰럽고 서럽고 울컥하고 희열을 느끼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수 잇는 가족의 사랑을 정의한 제일 감동적인 시였다. 김분랑의 "안동향교"는 안동향교에서 학업의 마음을 표현하였고 김해경의 "애상"은 이별노래의 가슴아픈 추억 되새기며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였다.박경희의 "인큐애호박"은 비닐옷으로 숨쉴수 없는 호박은 억압을 주는것으로 억압은 모두에게 절망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자연애찬하는 작가처럼 무너져가는 자연질서를 억압으로 표현했다. 박경래의 "눈물의 사부곡"은 꿈속에 아버지를 보고 깨어 아침 붉은 노을 속으로 아버지가 계시는 가 시선을 멈추는 매우 가슴 아픈 시였고 김경은의 "빗소리에, 동전을 줍다"는 비어 있는 주머니에 빗소리에 터진 눈물의 슬픈 사연이 단만극 처럼 봄날은 내 삶에 동전 하나 줍기였다고 고백하는 시였다. 마음을 비어 놓았지만 아직도 슬픈 사연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동전 하나로 표현했다. 김운기의 "봄길"은 맨발로 달려오고 아직도 30년 누워계신 아버지를 봄길로 비유하였다. 신향순의 "문병"은 아픔으로 돋아나고 있는 마음을 자연에 비유하여 쓴 내용이 슬프고 매우 심연한 내면을 담고 있는 시였다.선성현문화단지는 산성현 관아 옛 모습을 재현한 곳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수 있게 문화체험하는 곳이였다. 자주빛 단풍이 황토기와담장과 단청으로 드리우는 군관청길 따라 매우 화사한 선성현아문이 버티고 있었다. 문루 또는 일반문 형식으로 되어있는 아문은 공간 분활역할을 하였다. 선성현아문은 지방관이 문루에 올라 백성들의 생활 실태와 경제상황등 직접 점검하였던 곳이다. 선성현아문 2층애서는 산성현문화단지 전체와 안동호 시원한 경관 조망할수 이있는 곳이였다. 역사관 맞은편으로 정지가 있었다. 정지는 관아에서 소요되는 음식을 만들던 곳으로 퇴계 이황이 권철(1503년~1578년)대감에게 대접한 3첩반상과 함께 5첩반상 관람할수 있는 곳이였다.정지에서 언덕아래로 쌍벽루와 안동호의 경치가 펼쳐지며 산성공원으로 가는 사색의 길을 이루고 있었다. 예끼마을 입구 주변은 민가촌으로 1970년대 골목길로 벽화마을을 이루고 있었다.냇가와 강의 돛단배등 싱그러운 자연묘사의 벽화로 입체감과 생동감이 있었다. 흰벽체 홑처마의 흰벽체와 함께 현대풍 유리창양식의 고이카페로 매우 아담한 앞마당을 이루며 정겨웠고 한옥집으로 신영균의 어머니 시가 걸려 있었다. 매우 가난한 삶의 모진 고난을 감래하며 자식을 키웠던 어머니 사랑을 생각하며 지은 가슴아픈 시였다.예끼마을에서 월영교에 갔다.월영교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주위를 산책했다.차창가로 드넓은 낙동강이 펼쳐지며 수변 산책로로 가을꽃밭과 공원을 이루며 시골향기로 가득했다.단풍에 물든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초록물결의 아주 맑은 호수로 매우 싱그러웠다. 호수 중앙 테크길 따라 정자와 호수옆 산책로 따라 노랑 단풍나무가로수 길로 사색적인 가을의 아름다움에 매료 되었다.월영교를 산책한 후 저녁을 맞은편 헛제사밥에서 먹었다. 안동간고등어를 취급하는 50년 전통의 전통음식문화를 추구하는 맛집이였다. 제사상 그릇위에 간고등어찜,호박전,다시마전,배추전,두부전,상어고기,소고기,삶은계란,고기조림의 세트로 저절로 정신을 가다듬고 숙연해지게 하였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기를 맑게 하는 기운을 시각적으로 자극시켜 주었다. 알맞은 간이 베어있는 담백한 맛을 지닌 세트로 밥상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음식을 통한 힐링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놋그릇에 고추가루 없이 양념한 콩나물,무우,고사리,얼갈이,도라지 마른나물 6가지 나물의 비빕밥으로 간장에 비벼 먹는 비빕밥이였다.간장에 여러가지 재료로 고아서 만든 비법 간장으로 달자지근 했다. 생배추 향이 가득한 양념이 잘벤 김치로 비빕밥의 맛깔스러운 맛을 더할수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아주 촉촉한 속살의 고등어구이로 지금까지 먹었던 고등어구이 중 최고의 맛이였다.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맑은 무우국으로 두부 담백함과 조화를 이루며 무우의 시원한 맛으로 가득했다. 무우와 고추가루 들어간 안동식혜로 매콤하고 톡 쏘는 알싸한 맛과 감칠맛으로 입맛을 돋구었다.즉 요리사의 혼연일체로 반찬 하나 하나 정신을 가다듬으며 음식을 대하는 수련을 담고 있었다.안동의 전통음식을 문화의 예술로 승화시킨 내공을 담은 양반의 도시 문화도시 안동을 대표하는 최고의 맛집이였다.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고 서울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차창가로 빨갛게 하늘을 온통 타오르듯이 불타는 일몰이 20분정도 펼쳐져 카타르시스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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