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배회하는 가을 정취의 하늘을 바라보며 향교가기전 골동품점 전시유리에 비친 동양화를 감상할수 있었다. 중앙에 곧게 서있는 대나무 가지를 통해 가느다란 잎들이 뻗어난 작품으로 매우 섬세한 붓 터치의 대나무 줄기 매듭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즉 강직한 마음의 심지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굳은 신념을 표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나무 밑에 걸린 산수화는 눈 덮인 산과 벌거벚은 나무,꽁꽁 얼어 붙은 시냇가,눈 덮인 지붕과 눈길이 평화로운 시골 겨울경치 같았다.즉 굽이치는 산의 능선들과 나무 가지들의 생동감있는 표현이 먹물의 붓질을 통한 고난도 기교가 요구되는 것으로 매우 감탄스러울 정도로 원근법,명암들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산수화의 높은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 다른 산수화로 산등성어리 아래 원두막과 함께 나무판을 질서 정연하게 깔아 놓은 굽이치는 오솔길옆 원두막과 함께 과수로 과수원 경치 같았다. 장대하게 뻗은 뽀쪽한 산과 대비되어 산등성이가 원만한 산봉우리들을 원근법에 의한 명암조절로 양감을 살려 산의 특징들을 잘 살려 내고 있었다. 그리고 산 밑에 평지의 나무판 오솔길의 풀과 가시뿔처럼 쏫는 나무가지들이 붓의 터치에 의한 질감의 표현으로 생명력이 있었다. 즉 2점의 산수화는 평면구도가 아닌 원근법,질감,양감등 서양화풍 영향으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작품 같았다. 작품들을 감상 후 팔달보건소쪽으로 가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니 홍살문이 지키고 있는 "향교"로 태극문양의 외삼문과 함께 장대한 나무의 그늘인 정각이 도심과 향유하는 안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1호인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교육기관으로 화성시에 있었던 수원향교를 1789년 정조가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팔달산 남쪽 기슭으로 이전하였다. 1795년 정조가 친히 행차했던 유서 깊은 장소로 경기도 남부 유교 본산이었다. 건축양식은 전형적인 전학후묘 형식으로 앞에는 명륜당과 뒤에는 대성전으로 지형에 맞게 건물마다 장대석을 쌓아 계단식 기와담장을 이루고 있었다. 외삼문안에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유생들이 기숙하던 동재,서재인 건물이 배치되고 있었고 200년이상된 아주 거대한 수령나무가 돌계단위 태극문양의 문을 지키는 내삼문안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서무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인과 우리나라 현인등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즉 체계적이고 질서 정연한 학풍의 면모를 보여주는 양식 같았다. 돌담 사이로 내삼문안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간직한채 향교를 나와 돌담옆 계단위로 올라갔다. 팔달산의 남쪽 매우 경사진곳으로 우뚝솟은 십자가위로 구름이 장대하게 평화의 빛으로 반사되는 장대한 나무가 교동일대 도심을 지켜주는 수령처럼 우뚝솟아 있었다. 그 수령 아래는 일본식 기와의 고풍스러운 빨간벽돌 양옥집으로 근대적인 건축을 자랑하고 있었다. 팔달산의 교동도심을 내려오면서 2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정조대왕 꿈이 담긴 거리인 향교로 테마거리로 갔다. 1904년에 세워진 대한 성공회 수원교회가 오랜 역사를 가진 옛 그림자 처럼 비추었고 1946년 일제시대 세워진 수원 최초 장로교회인 한국 기독교 장로회 교회가 "대한 성공회 수원교회"가 오랜 역사를 가진 옛 그림자 처럼 비추었고 1946년 일제시대 세워진 수원 최초 장로교회인 "한국 기독교 장로회 교회"가 회색빛 벽돌의 지붕양식과 아치형 창문과 창살,스테인글라스의 근대건축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1956년에 건립된 관공서 건물인 구 수원시청사,권선구청사(1956년~2007년)로 현재는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문화관"으로 이용하고 있는 등록문화재 제598호 건축양식으로 회색빛 벽돌로 지어진 2층 건축이 일본풍의 아담한 정원과 함께 매우 조화로워 고풍스러웠다. 그리고 1923년 일제 식민지 농업 수탈 역사를 간직한 종자와 종묘회사인 수원 "구 부국원"으로 해방후 수원법원 검찰청사(1952년~1956년)였던 곳으로 목제 쌍여닫이문과 동판의 캐노피로 구성된 출입문,하늘색 아치형 창틀의 창문,목제 오르내리창,건물외부의 ㄱ자형 모서리 타일,목재계단,좌우로 경사진 지붕,밝은 베이지색의 타일로 이루어진 근대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즉 팔달산 남쪽 교동과 향교로 테마거리는 조선시대 교육 중심지로 양반마을과 장터를 이루고 20세기초 근대문화를 이룬 옛수원의 중심지로 근대문화유산을 간직한 매우 소중한 거리임을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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