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담계곡 백담사 (2024년10월20일)

백재은 2024. 11. 16. 15:37

 

백담사 수렴동계곡

10월20일~우리함께 걸어요 밴드모임에서 백담사로 여행을 갔다.차창가로  자갈이 깔린 하천으로  단풍이 들어 가는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펼쳐졌다.백담사 셔틀버스 정류장앞에서 지자체에서 준비하신 섬물을 받았다.템블러,면스카프,과자,방울토마토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1시간30분 정도 줄을서서 셔틀버스에 올랐다. 백담분소부터 백담사입구까지 백담계곡경치가 10분이상 펼쳐졌다. 웅장한 기암괴석이 단풍과 조화를 이루는  굽이치는 오르막 계곡의  맑은 물과 우렁찬 물소리로 매우 환상적이였다.투명하게 보이는 버스길로 버스가 바위의 계곡을 지나가며 더욱 스릴이 넘쳤다. 계곡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더 웅장하게 펼쳐졌다.신비로운 계곡의 경치로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백담사로 가는 다리부터 산봉우리들이 비추는 돌자갈들이 깔린 수렴동계곡으로 단풍이 드리우며 매우 아름다웠다.매우 폭이 넓은 계곡으로 더욱 장대하게 비추었다.백담사 무문관으로 장대하게 단풍이 드리우고  사찰마당으로 산봉우리가 더욱 웅장하게 비추었다. 부처님이  서있는 약수터로 용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약수물로 축복의 샘 같았다.단아한 자태의 석탑과 맞배지붕의 목재양식이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범종루와 나란한 카페로 학의  날개같은 나무가지가  매우 운치가 있었다. 사찰에  만해기념관이 있었다.

만해기념관

기념관 목재문으로 백담사 사찰이 비추며 만해 한용운을 기리고 있었다.

한용운(1879~1944)은 독립운동가,사랑의 증도가를 노래한 시인,불교의 대강백 대선사,대 사상가로 단과 상을 여윈  무변의 자리에서 다시 우뚝 솟아 중정의 도를 가르쳤다. 선사의 철학,예술에 나라사랑의 큰 정신이 깃들여 있었다. 

(1)사상형성~부친 한응준의 엄격한 가정교육 고향에서 한학에 정진하였다. 신동 한용운은 근대사 격량의 소용돌이 앞에서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고 설악산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스승 김연고 스님 도움으로 철저한 수련과 피나는 정진을 거듭하며 불교경전을 공부하였다.그후 백담사에서 양게초의 음빙실문집과 영환지략을 읽고 세계정세와 서양 철학에 괸심을 갖게되어 세계일주 여행게획을 세우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갔다. 이때 일진회 회원으로 오인받아 나라 잃은 설움의 통한을 안고 고국땅으로 돌아온다. 그후 일본의 신문물을 견학하고 돌아온다. 

(2)사회활동~선사는 1918년 유정이라는 종합잡지를 창건하여 3.1운동 전위적 역할을 하였다. 민족자주운동을 전개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후 물산장려운동을펴서 국산품 애용운동을 전개하였다. 민립대학 설립하자고 주장하였고 그후 애국 계몽운동과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만당을 통하여 대 사회적 활동을 가일층 노력하였다.

농민의 고통을 실감  옥중투쟁원칙) 보석을 요구하지 말것   사식을 취하지 말것 변호사를 대지 말것 

(3)독립선언서~자유,평등,평화의 대강령을 밝혔다.

(4)조선불교의 정립~한일 불교동맹조약을 분쇄하는 일에 몰두하던 한용운은 인간정신의 유신을 위하여 조선불교 유신론(1913년)을 탈고한다. 만주일대 독립군을 방문하여 격려하고 한문독본(1912년),불교대전(1914년),정선강의채근담(1917년)을 출판하면서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다.1917년 오세암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체험하고 오도송을 짓고 역사의식 시대정신을 눈떠갔다. 법보회를 조직하여 불교 대중화하고  불교청년회를 조직하여  불교청년총동맹으로 확대 개편하여 불타정신의 체험,합리종정의 확립,대중불교실현3대 강령을 실천하였다. 민족종교로서 불교의 자주적 역량을  위해 일제의 조선사찰령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점심 공양으로 비빕밥을 대접 받았다. 식당내부는  목재마루와 방이 있는 실내장식으로 매우 아늑하고 청결해 보였다. 오관계로 음식이 어디서 왔나 내 덕행으로 받기는 부끄럽고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는다 마음으로 먹어야 되는 것이였다.시원한 콩나물향이 가득한 맑은 콩나물국과 함께 호박,상추,표고버섯,당근,산나물이 들어간 비빕밥으로 너무 맛있었다.매우 맛깔스러운 맛의 참기름과 고추장,산나물향기로 가득한 비빕밥으로 더욱 고소했다.재료 하나 하나 부처님 자비의 정성이 담겨져 있었다. 한 그릇 더 먹고 싶을 정도로 산나물로 인해 더욱 감칠맛있는 비빕밥이였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영시암으로 향했다.

 

백담사 매점에서 내려가는 등산로부터  매우 폭넓은 수렴동계곡으로 웅장한 물소리와 함께 시원한 물줄기로 가슴이 확트인 기분 같았다.수많은 돌들과 돌탑이 깔린 계곡의 경치로 매우 아름다웠다.설악산은 희귀한 자연분포지역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에서 우리나라 최초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도 국제적 수준의 보호지역으로 인증한 세계적인 국립공원이였다.영시암으로 가는 등산길로 시원하고 힘찬 물소리와 함께 맑은 계곡으로 단풍이 드리우며 매우 사색적이였다.등산길로 백담계곡과 설악의 경치를 노래한 이경석(1595~1671) 백헌집에 설악산 시,이재(1680~1746)도암집에 설악을 바라보며 시, 김수증(1624~1701)곡운집에 유곡연기와 곡연기,김창협(1651~1708)농암집의  설악산을 바라보며,안석경(1718~1774)후설악기 가 붙어 있었다. 영시암으로 가는 설악산의 경치가 매우 신비한 곳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신비한 기암괴석이 군데 군데  분포하며 흰포말을 일으키고 단풍과  빽빽히 줄지은 초목이 맑은 녹색물빛의 계곡을 드리우며 매우 청정했다. 계곡 안으로 들어갈수록 신비한 적막으로 가득찼다.등산길 내내 웅장한 물소리와 매우 아름다운 계곡의 경치로 저절로 힐링이 솟구쳤다. 40분정도 걷다가  계곡을 바라보며 휴식하고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즉 영시암으로 가는 등산길은 아주 많은 돌자갈과 맑은 물,웅장한 물소라,폭이 아주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렴동 계곡으로  기이한 곳이였다.백담사  매점에서 부터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어 줄을 섰다. 마침 우리회원이 앞에 줄을 서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2시간 동안 추위에 덜덜 떨며 줄을 서다가 셔틀버스를 타게 되었다.셔틀버스창가로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7Km에 이르는 백담계곡의 경치가 펼쳐졌다. 바위절벽과 함께 굽이치는 계곡으로  시원하고 활기찬 물소리와  맑은 물을 담으며 매우 환상적이였다.갑자기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눈물이 와르르 흘렀다.식당가는 길 버스 창가로 계곡에 드리운 바위 웅장했다.백담계곡 부근부터 매우 수려한 경치를 담고 있었다.예당막국수 식당에서 회비빕막국수를 먹었다. 출입문앞 베란다로 의자와 화분장식으로 카페 같앗다.내부는 따뜻한 온돌바닥으로 추위를 녹일수 있어 매우 좋았다. 명태회무침,오이,삶은 달걀,김가루,깨소금이 들어간 회비빕막국수로 매우 환상적인 맛이엿다.특히 명태회가 매우 감칠맛으로 막국수의 맛을 좌우하고 있었다.여러번의 실험을 거쳐 실패와 반복으로 거듭난 비법양념으로  매우 정성이 깃든  매우 환상적인 맛이였다.입안에서 부드럽게 말리는 메밀이 들어간 면발과 함께 명태회무침,김가루,깨소금과 조화를 이루어 더욱 고소했다.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감칠맛으로 환상의 묘미를 자랑하고 잇었다.얼갈이열무김치는 김치의 싱싱한 맛이 살아 있었고 고추가루와 식초들어간 양배추절임은 양배추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맛이였다.새콤하지 않은 무우절임은 무우맛이 살아있었다. 비빕국수와 조화되게 반찬들이 맴고 짜지 않도록 양념이 되어 잇었다.육수가 한방차 같은 맛으로 저절로 힐링이 솟구쳤다. 이 집의 모든 메뉴들을 모두 먹고 싶을 정도로  일품으로 다가오는 일류맛집이였다. 

백담사 식당에 걸려 있는 그림
백담사 공양
수렴동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