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아침 일찍 이주옥님과 같이 숙소에서 1층 호텔로 내려왔다. 1980년대 헝겊소파장식을 한 커피숍에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추상파그림들이 대부분이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임정기의 "사랑가"로 지상낙원 찬가 같았다. 전체적으로우리민족 고유미가 넘쳐 흘럿다.이름모르는 작가의 "정원에서 "1 세련된 빨간원피스를 입은 소녀 가 무언가 응시하며 사색과 그리움에 젖은 작품이였다. 화사로운 봄날의 다채로운 색채를 배경으로 고독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소녀머리위 붕어를 장식한 이름 모를 작가와 제목으로 소녀의 동심어린 꿈을 그린 작품으로 매우 정겨웠다.수석들이 장식되었다. 변성작용을 한 암석들로 신비롭게 비추었다.1층 식당에서 정식을 먹었다. 조미료맛이 나지 않은 시원한 황태국 참외의 단향기가 가득한 참외절임으로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짭쪼름한 맛으로 매우 감칠맛 있었다.조청이 들어간 견과멸치볶음은 견과와 멸치의 조화로 고소하고 달큰했다.열무의 싱싱한 맛과 젓갈이 벤 열무김치,고소한 야채계란말이,고소한 참기름향이 나는 숙주나물무침,정겨운 맛의 오이무침,조미료맛이 나지 않은 시원한 황태국으로 고추장,된장을 포함한 모든 조미료를 천연재료로 간한 반찬들 같았다.해가 수채화 그리는 백양산 입구로 단풍이 손짓하고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매우 우거진 단풍나무가로수길로 초록물결의 생명력을 발산하였다. 단풍나무터널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백암산 백양사 표지석이 있는 성보박물관에서 부터 백학봉이 비추며 아름다웠다.언덕위로 황토기와담장과 기와대문의 부도전으로 고즈녁했다.부도전 부근 아치형 목재다리의 연못으로 물에 반사되는 초목들이 운치가 있었다. 징검다리가 있는 연못 중앙 소나무섬으로 사색의 정취를 자아냈다. 징검다리가 있는 계곡으 쌍계루로 백학봉이 비추며 매우 고풍스러웠다.단풍이 드리운 계곡으로 쌍계루와 백학봉이 반영되며 운치가 있었다.초입부터 연못을 이루며 백양사 쌍계루까지 애기단풍터널이 계속 펼쳐져 매우 청정했다.마음의 평안과 안식,고요함을 주는 산처럼 느껴졌다.매우 환상적인 단풍터널길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극락교에서 백학봉이 신비롭게 드리우며 천진암과 백학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두갈래로 펼쳐졌다. 안식과 평안을 주는 등산로 같았다. 백양사 백학봉은 백암산 아래 자리한 일대의 암벽과 식생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로 지정되었다.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전남과 전북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암산은 내장산국립공원에 포함된 산이다. 백양사는 원오국사(1215~1286),각진국사(1270~1355)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깊은 사찰 이였다. 기와 돌담장의 종무소로 백학봉이 드리우며 매우 정겨운 정취로 가득했다.벽안당으로 드리운 백학봉으로 그 산세에 취하며 넋을 놓았다. 소나무가 용솟음치는 가지로 뻗은 벽안당의 담장으로 백학봉이 드리우며 고요한 그림자로 가득했다. 대웅전옆 설선당과 적적요 담장길 사이로 백학봉이 웅장한 자태로 드리우며 매우 환상적이였다. 매우 수려한 자태의 기암괴석으로 단아한 자태의 부처님진신사리탑이 고즈녁하게 비추었다. 매우 힘찬 기상으로 대웅전을 드리운 백학봉이 법종각을 중심의 해운각과 접견실 사이 마당으로 더 더욱 웅장하게 비추었다.청운당으로 작은 연못에 드리운 나무가 추억을 향기로 가득했다.즉 담장 아래로 계곡이 흐르는 사찰로 백학봉이 각기 다른 감성으로 비추어 매우 아름다웠다.일주문으로 가는 숲길로 비자향에 취할수 있는 비자나무 푯말로 향기를 맡았다. 매우 향긋한 향기로 힐링 되었다. 숲의 공기는 피톤치드와 테르펜이라는 살균물질을 뿜어내어 자율신경을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카타르시스가 넘친 백양사의 단풍터널이였다.버스정류장으로 형형색채로 물든 단풍의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게곡이 펼쳐졌다.뱀사골가는 차창가로 백양사 입구의 단풍가로수 물결을 이루고 담양에 이르니 대나무가로수가 펼쳐졌다.백장암가는길로 남원도채의 메타세콰이어길이 펼쳐지고 돌들이 쌓인 계곡으로 단풍이 들어가며 지리산 능선이 비추었다.뱀사골입구에서 오애경님이 옥수수뻥튀기를 주었는데 옥수수의 고소함으로 가득한 맛이였다. 뱀사골은 지리산 반야봉과 토끼봉사이 반선마을까지 길게 뻗어 내린 골짜기이다. 9.2km달하는계곡 곳곳에 기암괴석과 소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였다. 초입부터 산아래 단풍이 드리우며 매우 아름다웠다.기암괴석과 함께 굽이치는 계곡으로 웅장한 물소리가 요동치며 매우 신선했다.얕은곳의 물은 투명하게 보이고 계곡과 바다등 깊은곳은 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계곡물이 파랑과 녹색빛만 반사하고 나머지 색깔은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였다. 반사되는 빛만 볼수 있는데 깊은곳은 파랑색으로 보이고 덜 깊은 곳은 녹색으로 보이는데 깊이에 따라 빛의 반사량이 다르기 때문이였다.숲속은 큰나무와 작은나무가 일정한 높이로 층을 이루는 이유는 서로 다른 높이로 살기 때문에 햇빛을 고루 나누어 양분을 만들고 여러 동물의 서식처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였다.계곡의 형성은 비나 눈이오면 계곡주변의 숲을 통하여 계곡으로 물이 모여들고 계곡을 따라 힘차게 아래로 흘러간다. 이때 돌들이 굴러 내려가면서 커다란 바위가 작은돌이 되고 결국은 모래로 변한다. 그래서 계곡위로 갈수록 큰바위가 많고 계곡 아래로 갈수록 둥글고 작은 자갈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였다.바위로 만들어진 방 석실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큰바위가 겹쳐지면서 아래로 작은 공간을 형성하여 석실이라 하였다.1948년 여순사건시작으로 1955년 빨치산 토벌 종료선언전까지 빨치산과 토벌대의 격전지였다.그때 석실은 빨치산들의 소식지 및 사상교육자료를 인쇄하는 곳으로 이용하였던 곳이였다.40분정도 계곡길을 산책하다 보니 오룡대였다.오룡대는 와운골과 뱀사골이 합수되는 곳에 위치한 이 바위는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요룡대라 불리였다.지리산 뱀사골계곡의 백미처럼 매우 장엄한 바위계곡의 물줄기로 신선길 같았다.바로 그곳에서 조금 올라간 후 다시 내려와 오룡대에서 휴식하였다.휴식을 한 후 내려오던 중 스카프를 잊어버린것을 발견하고 헐레벌떡 땀을 흘리며 다시 오룡대로 갔다. 마침 스카프가 바위에 그대로 있어 찾을수 있었다.굽이치는 드넓은 계곡에 드리우는 단풍과 청량감 넘치는 물줄기로 매우 아름다웠다.즉 비,눈,물,나무,바위들의 자연의 질서로 조화를 이루며 창조된 자연 걸작품이였다. 뱀사골에서 내려와 지리산뱀사골탐방안내소에 갔다. 2층까지 통유리창을 이루는 실내와 함께 나무장식 계단으로 도서관처럼 서재장식 인테리어가 2층복도까지 연결되어 매우 산뜻했다.복도에 걸린 나비장식이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지리산뱀사골탐방안내소
1층 제1전시관은 국립공원과 지리산 생태문화 2층 제2전시실은 빨치산과 토벌대 전투를 그린 전시공간이였다.
제1전시관은 지리산속으로 주제로 전시되었다.
1950전쟁으로 경제성장과 전쟁복구로 자연환경 지킬수 없었던 가난한 나라가 1967년 3월 국립공원제도를 도입하여 공원법 제정으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보전되게 되었다. 박정희대통령의 나라사랑으로 오늘날 자연을 만끽할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오래된 지질역사와 함께 지리산 주요암석들이 전시되었다.암석은 생성원리에 따라 퇴적암,변성암,화성암으로 나뉜다. 뜨거운 마그마가 식어 만들어진 암석을 화성암이라 한다.화강암은 매우 단단하여 건축재료로 쓰이고 변성암은 퇴적암이나 화성암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생성되는 암석을 반성암이라 한다.변성암에는 편마암,규암,편암, 대리암 등이 있다.화성암에는 화강암,반려암, 현무암이 있다.반상 화강암은 흑운모와 석영이 반정과 주상으로 나누어져 있는 화강암이고 흑운모 화강암은 흑운모가 주성분인 화강암이였다.반려암은 어두운 색을 띠는 조립질 심성암이고 화강 편마암은 화강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이였다. 흑운모 편마암은 흑운모가 주성분인 화강암이였고 반상변정질 편마암은 반상변정이 함유된 편마암이였다.각기 다른 성분과 형태로 매우 신비로웠다.
달의궁전은 마한의 왕 효왕이 세운 달의 궁전으로 그때 효왕처럼 지리산 밤하늘 느끼라고 빛을 연출하였다.화려한 빛이 사방으로 비추며 매우 신기한 우주세계에 온 기분 같았다.빛의 예술을 즐감하는 매우 환상적인 공간이였다.
기획전시실은 테마전시 공간으로 "애벌레,날다" 주제로 수채화 임해영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푸른큰수리팔랑나비 애벌레등 그림으로 애벌레를 관찰하며 그린 관찰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제2전시관
지리산에 숨은 빨치산과 토벌대가 벌인 혈전 과정을 그린 군인이야기가 전시되었다. 뱀사골은 빨치산의 안식처였다.
뱀사골에서 내려와 옥수수뻥튀기를 시식하며 주위를 산책했다. 끝도 없는 계곡의 경치로 쉼없는 자연의 질서를 느낄수 있었다.모두 모여 점심먹기전 김선미가 조영호에게 준 곶감을 반 나누어 먹고 이주옥이 회원에게 받은 곶감1개를 먹었는데 너무 달콤했다.신한국관에서 더덕구이정식을 먹었다.더덕구이,표고버섯탕,김치찜을 빼고 반찬이 무려 30가지 나와 귀빈대접을 받는 기분으로 카타르시스가 넘쳤다.반찬 하나 하나 환상적인 맛으로 저절로 힐링이 솟구쳤다.주인장이 직접 캐서 나물을 제공하고 재료의 본연 향기를 담은 깊은 손맛이 어우러져 탄생한 음식들이였다.그중 특히 산나물종류 무침은 진한 산나물 향기로 가득했다. 멸치 묵은지지짐은 감칠맛의 묵은지와 고소한 멸치가 조화를 이루며 매우 환상적인 맛이였다.요리하기 싫은 나에게 집에서도 요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염영현님이 사과 1조각을 주어 먹었다.지리산허브밸리로 가는 차창가로 계곡경치가 9분정도 펼쳐져 매우 싱그러웠다.계곡중간에 소나무군락을 이루며 여러가지 초목들이 더불어 공생하는 자연이 신비롭게 다가왔다.지리산허브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관람하였다.열대식물원과 복합토피아관의 둥그런 건축과 함께 커다란 남녀 조형물을 중심으로 국화물결을 이루어 화사했다.시간이 조금밖에 주어지지가 않아 허브에 대한 지식을 얻기위해 재빠르게 허브복합토피아관에 갔다.
허브복합토피아관
허브에 대한 역사와 자료들이 자세히 전시되었다.
(1)허브의 어원~ 고대부터 치료목적으로 이용된 허브는 푸른(초록색)풀이라는 라틴어 허바에서 유래되었다. 처음에는 향과 약초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후에 라틴어 허바가 파생되어 프랑스 거쳐 영어권으로 건너가 허브라고 불리게 되었다. 허브는 향이나고 식용,미용,약용,방향재,방충제,방우제,식품첨가물 등 재료로 이용하는 초본식물이다.
(2)허브란 무엇인가~향료나 약용,채소,양념,살균,식품보존제 및 첨가물 등으로 사용되는 식물이라는 넓은 의미를 뜻한다. 허브를 잎이나 줄기가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과 향미로 이용되는 식물이라고 정의한다. 민트,라벤더,로즈마리,레몬밤 등 외국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쑥,미나리,깻잎,마늘등도 허브라고 할수 있다. 허브의 기능은 약용,채소용,방향용,향신료등이 있다.
(3)약으로 다가온 허브~그리스에서 허브에 대한 약리연구가 시작 되면서 병이나 상처에 효과가 있는 성분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기술과 합성하려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로인해 17세기 유럽 후반 유럽 곳곳에 허브를 약용으로 사용하기 시작 하였다.그후 산업혁명으로 멀어졌다가 자연을 통해 치유하고자 다시 다가왔다.허브의 향신료는 식물의 씨앗,뿌리,껍질,잎, 열매를 건조시켜 사용한것으로 향신료는 허브에 포함 된다. 월계수잎,검은 후추,정향,고추,겨자,고추냉이,산초등이 향신료에 속한다.
(4)허브의 역사~고대시대 이집트허브는 미라를 만들때 커민,마조람,시나온 등의 향유를 발랐고 부패 방지위해 방부제를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와 미용에도 이용하였다. 람세스 2세의 미라에 로만카모마일을 방부제로 사용되었다고 밝혀졌다.
그리스허브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식물을 허브나 향신료에 사용하였다. 피로해소와 전갈에 물렸을때 해독제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허브를 가지고 아로마 오일과 연고로 사용하였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도 의학적인 효능을 가진 약초로서 허브를 수록했고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을 남겼다.
로마의허브로 디오스코리데스(로마시대 물리학자 약초학자)는 약 580종의 약초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17세기 유럽 의학의 중심이 된 책인 약물지(65년경)을 저술하였으며 지금의 향기요법의 기초를 만들었다. 로마시대는 사람들은 목욕을할 때 아로마 오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4C중세 게르만족은 중부 유럽의 한랭 다습한 높은 삼림지대에서 농사를 짓기 어려워 수렵생활을 한 민족으로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허브를 방부제로 이용하였다 게르만족이 유럽의 각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부터 허브또는 향신료가 유럽 곳곳에 퍼지게 되었다.
10~13세기로 10세기 아립인이 수증기 증류법을 발명 하였고 에센셜오일이 부활되었다. 10C~12C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인들이 증류법을 배웠으며 허브와 다양한 식물을 가지고 갔다. 13C 영국에서 라벤더를 재배하여 라벤더워터를 사용하였다.
14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허브와 허브를 이용한 치료는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14세기초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허브를 태우기도 하였다.
16세기는 허브를 이용한 방향 기술이 발달하였다.이탈리아에서는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허브를 이용한 방향유를 개발하였다.이로 인해 소공업자들은 방향유를 사용하여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수도원 등에서 허브를 약초로 재배되다가 일반인들도 허브를 가꾸게 되어 일상생활에 많이 이용 하였다.대중들의 허브로 등장됬다.당시 유럽이나 지중해 연안 서남아시아등의 허브가 식용으로 재배되었다. 후추는 인도에서 실크로드를 거쳐 전해졌으며 유럽에서는 은항아리에 후추를 넣어 소중하게 보관한 귀중한 향신료였다.후추와 스파이스는 귀한 허브였다.
17세기는 허브가 가지고 있는 살균,소독 등 효과를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허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허브에 대한 지식정보를 얻고 열대식물원에 갔다. 회원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찍기에 분주했다.군데 군데 카페와 같은 매우 아늑한 실내장식으로 화사했다.자생식물 압화관은 시간이 모자라 가지 못해 아쉬웠다. 버스정류장부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로 사색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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