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7일~서울시립 서소문관미술관에서 천경자 탄생100주년 기념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 주제로 전시되었다.
1층 전시실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인간을 넘은 존재를 찬양하는 비디오가 전시되었다. 노바어쓰 빛속에 찬양은 인간과 하나님 보다 드높이며 찬양하고 있었다.
2층 전시실
일제강점기(1910~1945),8.15광복,대한민국정부수립(1948),한국전쟁(1950~53),정전협정(1953),4.19혁명(1960),5.16군사정변(1961),베트남전쟁(1960~1975),군사독재(1961~1979),12.12군사반란(1979),5.18광주민주화운동(1980),6월 민주항쟁(1987),신군부정권(1980~1993)격변의 시대 본 전시는 일제시대부터 1990년대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적 흐름속에 미술의 흐름을 한데 묶고 그 연관성을 찾아 당시 동양화단 전체를 조망하고자 전시되었다.대표작가 정찬영(1906~1988), 이현옥(1909~2000),정용희(1914~1950년경),배정레(1916~2006),박래현(1920~1976),천경자(1924~2015),박인경(1926),금동원(1927),문은희(1931~2023),이인실(1934),이경자(1938),장상의(1940),류민자(1942),이숙자(1942),오낭자(1943),윤애근(1943~2010),이화자(1943),심경자(1944),원문자(1944),송수련(1945),주민숙(1946~2017),김춘옥(1946),차명희(1947)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격변의 시대
일제강점기(1910~1945),8.15광복,대한민국정부수립(1948),한국전쟁(1950~53),정전협정(1953),4.19혁명(1960),5.16군사정변(1961),베트남전쟁(1960~1975),군사독재(1961~1979),12.12군사반란(1979),5.18광주민주화운동(1980),6월 민주항쟁(1987),신군부정권(1980~1993) 통해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어떻게 사회와 자신의 삶을 작품에 반영해왔는지 살펴보는 전시회였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들은 천경자의 초기작 1951년 "생태"로 한국전쟁때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담았다.1972년 "꽃과 병사와 포성"은 인상주의 색채로 조선미전 1943년 "조부상"과는 화풍이 다른 채색화로 면모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즉 천경자는 채색화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전개하였다. 이숙자의 1982년 "캠퍼스 훈련생"은 고등학교 시절 교련시간이 생각나는 시대의 정겨움을 담고 있었다.여성의 자유를 외치는 이숙자의 다른 면모를 갖게되는작품이였다. 이숙자의 1991년 "얼쑤!얼싸!" 는 우리 고전과 현대가 잘 조화된 추상파 실험 작품 같았다.이화자는 1981년"염"의 사실주의에서 1997년 "무제"의 추상파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우주에 약동치는 율동감이 전해졌다. 작가들의 추상파 실험에 정진하는 화가들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었다.
사회와 미술제도1. 일제강점기1909~1945 미술교육과 조선미술전람회
이현옥과 정용희 작가가 문하생으로 동양화를 배웠던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청전화숙,유일한 여성 문하생으로 이당 김은호(1892~1979)의 낙청헌,박래현과 천경자가 유학간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조시비 여자미술학교) 연혁과 수업 내용을 통해 당시 동양화 경향을 알아보는 전시회였다.조선미전은 1922부터 1944년까지 총23회 미술공모전이였다. 실은 3.1운동과 1921년 개최된 제1회 서화협회전에 자극을 받아 만들어진 전람회로 일제는 1910년 헌병경찰제도창설 무단통치와 한국 민족말살정책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문화정치로 전환을 표방하고 회유와 유화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배경하에 조선미전이 시작되었다. 정찬영의 지반,연못가로 입선한 1929년 제8회부터 정용희,배정례,박래현,천경자가 입선한 1944년 이르기까지 전개과정,심사위원,수상작을 체게적으로 정리해 당시 동양화 경향을 살펴보고자 전시되었다.
천경자의 1943년 "조부상"은 한국화의 고유미로 채색화로 들어가기 전 작품이였다.정찬영의 1931년 "공작"은 동양화로 매우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가 돋보였다.박래현의 1942년 "여인"과 "소녀"는 근대 신여성의 모습으로 고풍스러웠다. 이 시기는 전통을 완벽하게 해석하고 근대기 모습을 잘 반영한 작품들이였다.
사회와 미술제도2 광복이후, 미술교육과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교육기관)
금동원 작가가 문하생으로 그림을 배웠던 고암 이응노(1904~1989)의 고암화숙 1949년을 살펴보고 광복이후 미술대학 설립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수학한 이화여자,홍익대,서울대,서라벌예술대,수도여자사범대 연혁과 교수진을 정리하고 당시 미술교육 작품경향 국전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전시회였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1981)
가장 권위있는 전람회로 인식되고 국전의 경력이 작가의 중요한 이력으로 평가되면서 파벌과 권력다툼으로 1981년 제30회로 막을 내렸다. 국전의 제도변화,심사위원,수상작가 작품을 정리하여 당시 동양화 경향을 알아보고자 전시되었다.
창경궁과 예술)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체결후 고종폐위와 함께 순종의 거쳐를 창덕궁으로 옮겼다. 창경궁에 1911년 박물관을 짓고 1909~1983년까지 창경원으로 개칭되어 1983년까지 유원지로 기능하였다. 작가들의 창작 장소로 시대적 아픔과 예술의 기묘한 관계를 파악하였다.
기사로 보는 동양화의 흐름)
4개 시기별로 정리해 동양화의 정의,인식,제약,명칭,변화를 이해하도록 전시되었다.
박래현의 1957년 "회고"는 고전적인 추상파 작품이였고 이인실의 1965년 "추교"는 동양화 작품으로 산과 논의 거칠고 매우 세밀한 표현으로 양감과 질감이 잘 나타냈다.1980년 차명희의 "가변"은 실험적인 작품 같았고 1988년 송수련의 "관조"는 관조하는 세계를 추상적으로 그린것 같았다.이숙자의 1979년 "고찰" 은 섬세한 필치로 사실주의 경향을 볼 수 있었다.즉 1950년 후반 박래현의 고전적이고 추상적인 시대 앞선 작품을 중요시 했고 1970년까지 한국화가 주를 이루었다.1970년이후 추상파가 주를 이루다가 1979년 이숙자의 "고찰"과 1981년 이화자 "염"은 매우 섬세한 필치와 내면의 감수성이 반영된 사실주의였다.2024년 차명희의 "가변"은 추상파로 시대에 앞선 실험주의였다.
동양화단체
천경자가 각별한 애정을 가진 모던아트 1957년부터 비상1986년 등 이들의 창립목적,활동,업적,회원들이 어떻게 동양화에서 시작해 작품세계를 확장했는지 살펴볼수 있는 전시회였다.
여성 삶 예술
천경자작품 9점과 홍익대 제자들의 대표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천경자의 1950년대 초 "옷감집 나들이"가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흰선들고 윤곽선으로 입체감과 원금감이 있었다. .천경자화가가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할 정도로 고풍스러운 그림으로 1943년 이후 채색화의 시도작품 같았다.1973년 "노천명"은 수채화로 천경자 자신의 모습을 그린것 같았다. 이숙자의 1988년 "이브"는 천경자 영향으로 자유 분방한 여성의 자유를 외차는 것 같았다.전통 한국화에서 다채로운 채색,추상파까지이어지는 고군분투하는 화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1993년 "금동원의 정릉의 봄"은 천경자 영향으로 다채로운 채색이 특징이였다.즉 보수적이고 정형화된 동양화 양식에서 벗어나 결국 각기 다른 조형언어로 자기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했음을 알수 있었다.
복도 작가연보와 자료 전시
2층 전시실 천경자 컬렉션 상설전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주제로 전시되었다.
천경자(1924~2015)는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를 전공하고 1941년,1944년 조선미전 노부로 입선하였다.이형식과 속아서 결혼하여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김남중 만나 오랫동란 일방적이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게 되었다.영양부족으로 여동생 옥희가 페병으로 사망하고 이형식 남편은 6.25전쟁중 소식이 끓겼다.1954년 윤효중의 권유로 홍익대 전임강사에 이어 1955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과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제4회 특선으로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당시 동양화단은 한국고유 특성을 반영한 한국화 형성이 당면과제였다. 조선시대 이래로 동양화는 남화 양식의 산수화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일본의 문화정치 일환으로 시행하면서 조선 미전에서 사실적인 사생을 강조 이는 일본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광복이후 왜색을 탈피하고 한국 고유의 회화 한국화 수립이라는 정답없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한구적인 재료,소재,기법등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틀에 얽매여야 했다.그러나 천경자는 동양화 한국화 틀에 두지 않았다. 채색화는 곧 일본화라는 편견으로 성향과 작업 방식을 존중하고 강조하였다. 그의 제자 이숙자,오낭자,이화자는 스승을 따르며 각기 다른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밑받침 되었다. 1961년 이상범,고희동,박노수와는 달리 동양화에 대해 자유로운 창작과 개성을 강조하여 한국의 미를 느끼고 표현하면 한국의 독특한 미가 생기는 것이다라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밝혔다.김남중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1971년 5월 라일락꽃이 필 무렵 작업에 매진하였다.
천경자는 사물의 세부묘사가 색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색의 중첩에 의해 깊이감을 주었다. 채색방식 변화는 대상의 선명한 형태감 강조와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상작업을 예고하였다.사실적풍경과 자신만의 색채를 사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발산한 작가였다.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1986년 "발리섬의 무희"였다.날렵한 몸매의 화려한 의상을 한 무희가 외로운 천경자의 내면의 모습 같았다. 기존의 천경자실에서 볼수 없었던 작품 5개정도가 새로 전시한 것 같았다.
2층 전시실 김인순
"일어서는 삶" 주제로 전시되었다.
김인순(1941)은 이화여대 졸업하고 주부로 지내다가 1984년 첫번째 개인전 한국전쟁과 민족 주제로 전시하였다. 1985년 시월모임을 구성하여 여성주제에 주목하였다. 민족미술협의회 1985년 발기인으로 참여한 작가는 민족주의 여성미술가이기도 한다. 1986년 가부장적 사회적 모순을 들여다 본 한국 최초 페미니즘 전시로 주목되었다. 1986년 여성해방 주제로 본격화하여 1988년 여성미술연구회 이끌었다.1994년까지 개최된 여성과 현실은 여성이 겪는 다양한 현실문제를 계급적 관점에서 보여 주려했다. 1987년부터 여성해방과 여성노동 주제로 공동작업을 추진하였다. 1991년 민미협공동대표로 선출되어 민미협은 분단 현실을 주제로 다룬 통일과 한반도의 역사,사회 현장을 돌아보는 조국의 산하 등 역사 기념전을 개최하였다.1995년 한국 여성의 해방 역사를 나무로 재현한 생명을 생산하는 우리는 여자거늘을 출품하였고 1997년 뿌리 시리즈, 2008년 무렵 태몽시리즈로 한평생 여성미술을 추구하였다.한국 여성주의 미술가로 사회를 반영하는 리얼리즘 미학과 현실주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 한국 여성의 사회적 현실을 예술로 표현하였다. 여성해방운동을 실천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여성의 시대적 가치를 탐색하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현실을 작품으로 그렸다. 여성의 고유한 가치를 고민하며 모성을 중요하게 여겼다.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여성의 존재를 뿌리에 비유하였고 여성민중의 계급 현실을 비롯한 노동과 육아에 관심을 뒀고 노동미술위원회를 구성해 노동자의 삶을 공감하는 회화를 제작했다. 성의 관점에서 역사,통일 산하 등의 주제를 그렸다.김인순의 그림은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1)1번째 섹션 여성이란 이름으로~현실과 역사에서 소외되고 희생된 여성들의 서사를 작가가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전시회였다.여성의 말없는 희생을 보듬으며 역경에서도 그들이 갖는 힘과 생명력 역할에 주목한다.한국 여성주의 미술은 엄격한 가부장저제와 급속한 산업화에서 주변적 존재로 인식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시작됐다. 작가는 여성의 말없는 희생을 보듬으며 역경에서도 그들이 갖는 힘과 생명력 역할에 주목한다 . 뿌리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이고 여성의 역사이 작픔의 주요소재로 등장하는 가정과 노동 여성의 건강한 아름다움,나무와 땅, 생명과 생산 개념에서 볼수있는 초기작이 1987년 "일어서는 여자"이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인 2005년 "긴 이야기"는 생명창조 여성의 능력을 나무,뿌리,대지에 비유하였다. 초기에는 생명과 상처로 뿌리와 여성의 존재적 일체감에 집중했다면 2000년대는 메마른 환경에서도 영양분을 찾아내는 실뿌리를 강조하며 황토빛과 초록빛이 채워지 물기 가득한 숲 풍경을 제시하였다. 생명의 굴곡진 긴 이야기를 제시하여 땅을 꽃이 숨쉴수 있게 하는 생명의 어머니로 인식했고 여성을 자연의 리듬과 질서를 몸에 담아 생명을 기르는 존재로 보았다.1992년"엄마! 어마!"는 빈민층의 여성과 가정의 불안한 환경조건을 이야기한 것으로 모성애로 고단한 삶을 극복하는 여성을 제시하였다. 민중정신에 입각한 극사실주의 작품 같았다.2004년"하늘을 향한 뿌리"는 극사실주의로 뿌리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이고 여성의 역사이다. 뿌리의 참혹한 상태로 위기 상황에서만 부각되는 여성의 삶을 땅이 파헤쳐졌을 때만 드러나는 뿌리의 존재와 닮았다고 보앗다.실뿌리가 뻗어 나오는 처 입었음에도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이어나가는 뿌리 본연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강인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2)2번째 섹션 움켜쥐는 아름다움~역경에 맞서며 결실을 이룬 여성들의 굳건한 모습과 척박한 환경에서 생명을 피우는 자연의 근원적 여성성을 살폈다.생명을 돌보는 여성의 가치와 척박한 환경을 회복하는 땅에서 순환하는 생명 질서를 발견한다. 생산과 땅 이미지는 1993년 이후 여성 고유의 생명성과 대지의 생명력을 연결하는 작업 흐름에서 중요하게 자리 잡앗다. 민중게열작가들은 당대 농촌현실문제에 주제로 작업했다.1980년대 후반 농축사물 수입개방 정책을 반대하는 농성을 보며 여성농민의 삶에 주목하였다.
인상적인 작품은 1993년"울릉도아줌마"로 어촌의 삶에서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현실사회에 주목하였다.여성과 민중운동 작가임을 보여주는 작품이였다.대지는 조용히 숨을 쉬며 생명을 창조하고 호흡하며 약동하는 2007년"숨소리"는 생명 아름다움을 예찬하였다. 대지는 자연의 어머니로서 여성과 같이 역동적인 생명과 창조의 힘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3)3번째 섹션 생명 빛의 여정으로~인류의 축복인 잉태의 기쁨을 민족미술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에서 여성의 우주,창조적 가치에 대한 작가의 메세지를 살펴본다. 연을 품은 대지의 생명력은 인류를 창조하는 잉태와 환희로 연결된다.우주적 결합을 이뤄내는 여성의 몸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 생명을 생산하는 모체이다. "태몽"은 밝은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아 민족적 색채와 이미지로 재현되고 자유로운 해방 에너지를 발산하였다.여성만 할수 있는 생산은 인류를 지속할수 있는 힘과 여성의 힘이다. 여성은 우주와 결합이 몸안에서 이뤄어 진다. 인류의 최초로 만들어진 설화와 통하는게 태몽이고 미래로 통해있다. 태몽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풍부한 상상력을 모두 표현할수 있다고 하였다.
2층 전시실2
김아영의 "다공성계곡 이동식 구멍들" 작품에서 인간 데이터는 종이에 불과하다는 메세지를 전햇다.
서울시립 서소문관을 나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갔다. 배재학당은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8월에 세운 학교 외장및 치장쌓기 벽돌구조가 뛰어나며 한국 근대건축의 중요한 자료로 근대교육 발상지이다.이 건물은 1916년 준공하여 배재중고등학교가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까지 동교사로 사용하던 곳으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울특별시 기념물이다. 배재학당 동관은 적벽돌벽체와 함께 창문양식,화강석기둥이 근대양식으로 고풍스러웠다. 출입문으로 가는 계단 테라스의 조형미가 매우 운치가 있었다. 아펜젤러 동상따라 아펠젤러기념공원의 작은 숲길이 이어졌고 동관 앞 잔디마당을 중심으로 현대식 건물인 통창양식의 배재중고등학교와 AIA 건축이 "ㄱ억자형"으로 매우 산뜻했다. 배재어린이공원 등잔에서 부엌일을 돌보는 소녀조각으로 우리 전통의 효녀상 같았다.적벽돌양식으로 덩쿨이 드리운 신아건축이 1970년대 양식으로 역사 길이 남을 만한 정겨움을 담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의 돌담장으로 단풍이 드리우고 시청으로 북악산이 비추며 사색적인 길이였다.시청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안구역3번 출구로 향했다.차창가로 적벽돌벽체와 함께 흰색띠 장식을한 우리은행이 20세기 근대양식 장식으로 고풍스럽게 비추었다.안국역3번출구로 가니 노랑 은행나무가 정열에 타오르는 창덕궁이였다. 창덕궁 부근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열린송현에 갔다.열린송현은 해방후 40년간 미국대사관 직구언숙소로 활용된 곳으로 열린 송현녹지광장의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2027년 이건희기증관을 품을 예정인 곳으로 덕성여자고등학교와 서울공에박물관이 마주보고 있었다.과꽃,댑싸리,천인국 ,코스모스등 가을색채로 물든 광장으로 북학산과 장식문양으로 통유리창을 장식한 빌딩,유려한 곡선미의 통유리창 양식의 주변 빌딩이 우뚝솟으며 세계로 향한 대한민국 위상의 깃발로 나붓거렸다.광장 중앙에 능산리 고분같은 모형 장식으로 오래됨과 새로움의 변화를 모색하는 주제 같았다. 생명의 나무의 입구 조각부터 광장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작품이 진열되었다.열린송현을 지나 길을 건너니 드넓은 잔디마당과 함께 통유리창 양식을 중심으로 "ㄱ억자형" 건축의 질서 정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인상적인 건축양식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서울공예박물관이였다.조상의 문화의 얼을 연구하는 귀중한 문화보고창 같았다.잔디마당으로 가는 길 부터 여러가지 공예 전시로 눈길을 사로잡았다.안국빌딩옆에 안동별궁 터라는 비석이 붙어 있었다. 안동별궁 터는 서울 공예박물관과 안국빌딩이 자리한 곳에 위치한 곳이였다.세종대왕 아들 영응대군의 저택을 건축한 이후 왕자와 공주 저택으로 이용되었다. 조선초 왕실의 거쳐였다가 순종의 가레처로 사용된 곳인 정화당,경연당,현광루가 있었던 안동별궁터였다.1910년후 궁중 나인들의 거처로 사용되다가 민간인에 매각되어 1937년경성휘문소학교와 1945년 풍문여학교가 개교 하였고 서울시가 2017년 해당 부지를 매입하여 풍문여중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서울 공에박물관을 건립하였다.즉 덕수궁 돌담길부터 안국역의 창덕궁부근,열린송현과 서울 공예박물관까지 매우 고풍스러운 역사가 숨쉬는 길로 카타르시스가 넘쳤다.
1층 전시실~"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
2층 전시실 천경자 컬렉션 상설전~천경자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주제로 전시
2층 전시실~김인순 "일어서는 삶" 주제로 전시
2층 전시실2
2층전시실
격변의 시대
사회와 미술제도1.(일제강점기 1909~1945 미술교육과 조선미술전람회)
미술교육)
조선미술전람회)
사회와 미술제도2.(광복이후,미술교육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금동원)
광복이후 미술교육기관)
여성 삶 예술
2층복도 작가연보와 자료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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