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예천 회룡포전망대,용궁역,초간정,금당실마을,용문사(2025년5월24일)

백재은 2025. 5. 28. 09:51

초간정
금당실마을

 

5월24일~테마캠프여행사에서 예천으로 여행을 갔다.차창가로  문경터널부근에 이르니 기암괴석과 함께 산마을이 매우 아름다웠다. 옛 새재길의 명소처럼 문경의 매우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장안사 일주문에서 버스를 내렸다 회룡포전망대로 가는 길이 매우 가파른 언덕길로  잠시 쉬었다. 회룡포전망대는  명승 제16호로 비룡산아래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 줄기가 마을 주위를 휘감아 돌아나가서 마을 주위에 고운 모래밭이 펼쳐지는 육지속의 섬의 경치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다.예천 용궁마을에서 내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기 전 용궁역테마공원으로 갔다.용궁마을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인  용궁척화비와 만파루가 용궁마을을 수비하듯 드리우는 마을길로 양귀비가 미소짓고 적벽돌담장으로 장미꽃이 열정을 태우며 시골마을 같았다. 분홍색 띠장식의 흰벽체와 함께 주황색 기와를 이룬 역으로 정겨웠다. 열차가 달리는 기찻길 바로 앞   빨강의자와 빨강 공중전화박스와 함께  맞배지붕에서 뻗어나온 테라피양식의 용궁카페로 추억의 감성공간처럼 비추었다.직접 개발한 수제 토끼빵과 눈꽃모찌의 디저트 전문점으로 예천을 대표하는 일류카페 같았다. 고래가 바다로 뛰어 들어가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조형물이 적벽돌벽체의 미디아아트 영상관을 드리우고 동화감성의 용궁행벽화가 펼쳐지며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1970년대  담장양식으로 장대하게 우뚝솟은 초목과 다양한 색깔의 의자가 드리우며 정겨운 삶의 그림자로 얼룩졌다.잔디중앙으로 12해신의 용궁상으로 섬세하고 입체감이 있었다.별주부전에 등장하는 용왕님과 토끼의 간이라는 스토리를 입힌 용궁상으로 별주부전을 테마로 한  간이역이였다.예천은 순대가 유명한  곳으로 순대를 먹지 못해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식당을 모색하는 중 황태전문점 간판이 보여  들어갔다.황태촌식당으로 식당 내부는 현대식 약장,도자기,가을 단풍그림이 장식되며 살림집 같았다. 황태해장국을 먹었는데 황태의 고소함과 콩나물의 시원한 맛이 조화된 국물로 매우 담백했다.깔깔한 고추맛과 고소한 달걀,구수한 황태,시원한 콩나물맛이 모두 느껴지는 힐링 맛이였다.회룡포 아게쌀로 밥을 지어주는 식당으로 밥이 고슬고슬했다.회룡포 아게쌀은 곤충의 도시 예천군에서 생산된 아연과 게르마늄이 함유된 쌀이였다.마늘쫑절임,멸치볶음,어묵볶음,김치,새우젖으로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집밥과 같은 반찬으로 좀 실망스러웠지만 매우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으로 식당에 대해 신뢰를 갖게 하였다.점심을 맛있게 먹고 예천시장으로 가니  1955년부터 개업한 경북대표 맛집인 단골식당이 버티고 있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방영된 예천을 대표하는 순대요리 전문점이였다.예천시장에서 초간정으로 향했다.초간정 가는 길로 드넓은 강과 섬,산,계곡이 매우 아름답게 펼쳐졌다.예천의 자연을 흠뻑 향유할수 있는 힐링이 넘치는 경치였다.예천을 대표하는 드라이브 명소길 같았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5호인  초간정은 조선 선조 15년(1582년)에  초간 권문해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을 저술한 인물이다. 선조 15년 1582년 처음 세워진 초간정은 1592년 화재로 불탔으며 권문해의 아들 권별이 인조4년 1626년에 다시 지었으나 인조14년 1636년에 다시 불탔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영조16년 1740년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을 고종7년 1879년에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었다.정자는 암반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축대 위에 정면3칸 측면2칸의 규모로 세워졌다.정면의 왼쪽 두칸은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사면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이다.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초간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주목을 받은 곳이였다.초간정으로 가는 계곡의 다리에서 매혹의 향기를 뿜어내는 소나무숲과 신비한 기암괴석위에 정자가 비추며 매우 고즈녁했다.계곡이 굽이치는 신비한 바위위 초간정으로 운치있는 초목들이 드리우며 매우 고풍스러웠다.계곡의 다리로 소나무가로수가 매혹의 자태로 물결쳤다.편액과 함께 창살무늬가 돋보이는 온돌방,대청마루의 난간이 돋보이는 양식으로 매우 품격높은 조선시대 별장 같았다.대청마루로  신비한 기암괴석이 펼쳐지는 굽이치는 계곡의 경치와 소나무숲이 비추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정자의 맞은편  소나무숲을 이룬 언덕위로 기암괴석과 함께 계곡이 펼쳐지는 출렁다리로 안식과 평화의 샘으로 가득찼다.계곡을 마주보며 산봉우리가 감싸는 마을의 평야가 비추었다. 초간정으로 가는 돌계단 입구에서 더욱 웅장하게 초간정이 위용으로 비추었다. 비석이 있는 소나무숲에서 신비한 바위위에 세워진 초간정이 굽이치는 게곡과  운치있는 초목에 드리우며 매우 환상적이였다.  각기 사방으로 어디에서나 발길을 옮길때마다 매우 환상적인 경치를 자아내는 초간정원림이였다.즉 초간정 원림은 경치가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유산으로  용문면 원로마을 앞 계곡가의 암반 위에 세워진 초간정과 주변의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전통원림이였다. 소나무,신비한 기암괴석,계곡으로 둘러싸인 고즈녁한 경치인 초간정은 이곳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름답게 여겼던 옛 선조들의 무위자연사상을 보여주고 있었다.초간정에서 금당실전통마을로 향했다.차창가로 소나무숲이 펼쳐졌다.금당실마을은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은 땅이 기운이 좋은 마을로 천연기념물 제469호인 송림이 있는 마을이였다.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과 고즈녁한 돌담길을 간직한 금당실마을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애도 안심할수 있는 마을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 중 하나이다. 이곳에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99칸 저택터, 금곡서원, 민속자료 제82호인 추원재 및 사당,문화재자료  제262호인 반송재 고택,문화재자료 제 337호인 사거당 고택  등 고가옥과 문화재가 있어 마을 전체가 전통미가 가득한 마을이였다.마을 입구 장대하게 뻗은 약 6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를 중심으로 슬래트지붕과 함께 베이지색벽체와 목재 미닫이문을 이룬 1960년대 양식의 담배가게와  용문정미소의 쓰러져간 페허가 매우 운치있게 비추었다.용문정미소는 녹쓴 슬래트지붕과 함께  허물어진 황토벽체의 1960년대 양식으로 담쟁이 덩쿨을 이룬 벽으로 장대한 초목이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용문정미소와 마주보며 돌담장으로 시멘트벽체와 함께 슬래트지붕을 이룬 집이 페허가 된 채 고개를 내밀고 그옆은 대나무숲과 들꽃을 이룬 마당으로 방치된 집터 같았다. 바로 그 길 따라 상금곡리 사괴당 고택으로  사괴당 고택은 원주 변씨와 함양 박씨가 모여 사는 상금곡리에 있는 가옥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사괴당 변응녕(1518~1586)이 이 곳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 고택은 벽장을 둔 공간이 구성이 뛰어나며 나무를 얽고 창과 문을 만든 기법에서 세련미가 돋보인다. 세대별 공간의  구분이 명확해서 조선 후기 주택의 변천사를 볼 수 있어 가치가 큰 고택이였다.마당 동쪽 담장 경계에 일제시대 강점기때 세워진 초가로 된 중층 건물인 대문채가 인상적이였다.마을 안길은 매우 아름다운 돌담길로 정겨운 정취로 가득했다. 마을 안길은 아름다운 돌담길로 이어지며 한옥과 고택으로 이루어졌다.머문하녹은 돌담장과 자갈정원을 이루며자  흰벽체의 맞배지붕과 함께 흰벽체의 창살무늬문의  현대식 한옥이였다. 기와돌담장으로 캐노피가  비추며 정겨웠다. 조선 숙종 39년 17134년 금당실에서 출생한 남야선생 사당이 있었다.남야선생은  강직한 선비정신의 성품으로 영남지방 유림들의 추앙을 받은 덕망이 높은 유학자였다.경상북도 문화유산인 반송재 고택은 조선 숙종때 김빈이 낙향하여 1680년경에 세운 집이다. 각방의 여러 종류의  창호는 개폐 형식,창문틀의 구조  수법 등이 섬세하고 짜임새가 있다.이 고택은 영남 북부 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베치와 평면 구성법을 지니고 있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이 돋보인 고택이였다.초가지붕 대문과 함께 초가지붕과 기와집이 함께 공존하여 운치가 있었다.우천재는 수차례  개수를 거쳐 1870년경 현재의 건물이 건축된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와 사랑채가 서로 연결되어 조선시대 전형적인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대문과 연결된 창살과 중앙 마당의 장독대가 정겨웠다.광서당은 1850년경 지은 고택이였다.담장에 드리운 초목이 매우 신비로운 자태로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덕용재는  금보의 14대 손인 금성락이 종택을 건립한 고택이다.춘향  금보는 이황의 제자로 글씨가 매우 뛰어났으며 스승의 묘지의 비문을 썼다. 춘향목을 사용하여 견고한 고택이였다.시골농가같은 정취를 자아냈다. 진사당은 시골 서당같았다.김대기가옥은 독립운동가 김형식선생의 1920년대 고가옥을 2008년 개축하였다. 일자형 본체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아래채 좌측에는 헛간채가 각각 독립채로 구성되었다. 협문과 우물 담장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초가였다.각가 독립된 초가집이 매우 운치있게 다가왔다. 유천초옥은  1900년대 고가옥을 2008년도에 개축하였다.  황토벽체를 이룬 매우 아름다운 초가로  생명의 기운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월당화옥은 원래 이  터에는 예천지역 의병장 박주상의 출생지인 큰 기와집이 있었으나 한말 의병활동으로 피신 중에 일본군의 소행으로 집이 소실되고 그후 1930년대에 지은 초가집을 2008년 개축하였다.돌담에 꽃이 드리우고 넓은 잔디마당을 이루며 생명의 샘이 솟구치는 매우 아름다운 초가집이였다.오미서소는 1871년 건축하여 1920년 중수하였다. 오미봉 산 아래 글 읽는 보금자리라는 의미이다. 소백당은 "ㄱ억자형" 팔작지붕  마루에  목재난간이 있는 한옥으로 문화재 안내소 같았다.소금당  마을 체험관으로 매우 아담한  마당과 함께  일자형 집으로 운치가 있었다.한옥과 고택이 모두 돌담장을 이루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ㄱ억자형" 팔작지붕 한옥집이 수려한 자태의 소나무를 중심으로 넓은 잔디정원을 이루며 싱그러웠다. 돌담의 목재대문과 함께 미색벽체의 단층 양옥이 매우 산뜻하게 비추었다.슬래트지붕과 함께 황토벽체로 농가의 정감을 담고 있었다. 화사한 봄꽃이 수를 놓은 돌담장위에 돌벽체의 슬래트지붕이 고개를 내밀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봄꽃과 함께 한폭의 유화작품 같았다. 돌담장과 함께 시멘트벽체의 슬래트집이  정겨운  정취를 자아냈다.즉 마을 고택과 집들이 돌담장과  조화를 이루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돌담길로 초목,이팝나무,장미꽃,작약 등 ... 꽃밭이 드리우며 매우 낭만적이였다. 하늘높이 우뚝솟은 장대한 가지의 은행나무와 초목등이 돌담길로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 돌담길 사이 사이 꽃밭과 함께 의자가 장식되며 사색적이였다.즉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돌담길로 매우 낭만적이였다.마을의  대문들이 모두 초가지붕 대문을 이루고 황토벽체를 이루며 매우 정겨웠다.황토벽체를 이룬 초가집과 기와집이 한 공간에 같이 공존하고 있어 운치가 있었다.앞마당의 정원에 나무들이 운치있게 드리우며 생명의 쉼 공간 같았다.산봉우리가 비추는 마을로 벼밭과 비닐로 씌어진 논밭이 펼쳐지며 생명 샘이 넘쳤다.초가집과 논밭,보리밭이 조화를 이루며 매우 아름다웠다.난생 처음 초가집의 아름다움을 느낀 마을이였다.이와같이 

금당실마을은 자연의 아름다운 산물인 돌담과 초가,황토가 전해지는 생명력의 기운으로 충만한 매우 낭만적인 힐링마을이였다.용문사로 가는 차창가로 금곡서원이 비추며 드넓은 금당실마을이 평화로웠다. 계곡길이 펼쳐지며 매우 싱그러웠다. 용문사의  일주문을 지나 언덕으로 매우 울창한 숲길이 펼쳐지며 피톤치드 향기로 가득찼다.차창가로 성벽과 같은 돌담장과 함께 전각들이 비추었다.  소백산 기슭에 자리잡은 용문사는   870년 신라 경문왕(10년) 두운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이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천하를 평정하며 이곳에 큰절을 일으키겠다고 했던 왕의 기운이 서려있는 사찰이였다. 버스정류장부근  언덕으로  템플스테이를 이루며 소백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개울이 펼쳐졌다. 사천왕문을 지나 성을 쌓은  담장으로 이루어진 돌계단으로 해운루를 이루며  마당으로 석탑이 단아한 자태로 불심의 등불을 밝히고 있었다. 성보박물관으로 가는 길부터  주위 소백산의 경치가 펼쳐졌다. 석탑을 지나 돌계단위 음향각의 불상이 360도로 춤추듯 율동감이 있었다.천불전의 금불상이 목판에 새겨지며  금빛이 번쩍거리듯 율동감이 있었다.국보 문화재를 지닌 대장전의 운장대로  운장대는 대장전 좌우에 위치한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으로서 송나라 전륜장 형식을 받아 들여 제작된 것이였다.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건축이라는 데서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대장전부근  돌계단위로 진영당, 전각 맨위는 문효세자태실을 이루고 있었다.즉 용문사는 성벽과 같은 담장의 돌계단을 따라 가람이 배치된 사찰이였다. 운장대의 국보급 문화재와 함께 조각수법이 매우 수준높은 불상을 간직한 사찰이였다.서울로 가는 차창가로 예천의 산봉우리에 드리운 섬의 강이 드넓게 펼쳐지며 매우 싱그러웠다.하늘이 광대하게 비추며 안식의 종이 울려 퍼졌다.

용궁역테마공원
만파루
황태촌식당
초간정
금당실마을
용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