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포국립항공박물관(2025년9월2일)

백재은 2025. 9. 10. 15:13

김포공항역
김포 국립항공박물관

9월2일~재미로밴드모임에서 홍두깨대장님 리딩으로  김포 국립항공박물관에 갔다. 김포공항역에서 실비아님이 쌀과자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수란님이 자두,귤,삶은 달걀을 챙겨주며 진실로 대해주어 감동했다.친절한 회원들의 손길로 재미로밴드 모임이 더욱 즐겁게 다가왔다.지하철에서 연결된 김포공항을 통해 이어지는 박물관으로 무더위에 너무 좋았다.  통유리창을 이룬 둥그런 장식의 국립항공박물관이  우주의 모형처럼 빛났다. 전시실 항공역사관에서는 세계의 항공역사가 전시되었다.

김포국립항공박물관

(1)인간, 새들의 자유에 도전하다~태초부터 인간은 하늘에 관해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졌다.신이 사는 하늘은 경배와 염원의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이용과 도전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간이 최초로 하늘에 띄운 것은 연이었다.연은  바람을 이용하여 물체를 하늘 높이 띄우는 것으로 비행의 기본적인 원리를 알게 해 주었다. 하늘을 날아 보겠다는 도전 정신은 동서양 모두 15~16세기를 지나면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양에서는 15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많은 새를 직접 해부하여 날개짓 운동 구조를 파악하였고 사람도 날개짓을 하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그의 연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새의 비행 원리를 관찰한 과학적인 분석으로 큰 의의가 있었다. 한편 16세기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방이 포위된 진주성의 소식을 외부로 전달하기 위해 정평구가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를 만들었다. 비거는 큰 날개를 바탕으로 바람을 이용했고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였다. 이처럼 15~16세기가 되면서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의 꿈은 공상의 세계에서 기술의 세계로 진화하였다.  

(2)인간,중력 극복에 성공하다~처음으로 사람을 하늘 높이 실어 보낸 것은 공기였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공기보다 더 가벼운 기체를 넣은 기구라면 하늘을 떠다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기체를 찾는 것이였는데 그 해답은 더운 공기였다.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는 종이로 큰 기구를 만들고 그 속에 더운 공기를 가득 채운 후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떠올랐다. 이것은 인간을 태운 물체가 하늘로 날아오른  최초의 기록으로 몽골피에는 인류 최초 유인 비행을 성공시켰다. 이후 샤를과 로베르는 비단에 고무를 입혀 만든 기구를 비행을 실험하였다. 이 기구에 더운 공기가 아닌 수소를 채워  이것이 더 실용적임을 입증하였다. 기구의 문제점은 바람이 부는 대로 아무데나 떠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기구 발명 이래 약70년 후 증기 기관이 발명되자  이를 이용한 새로운 비행 장치인 비행선이 등장하였다. 1852년 앙리 지파르는 이것을 조종할 수 있도록 시가 모양의 기구를 만들어 증기 기관으로 동력을 공급하였다.그후 최초의 대형 항공기는 가솔린 기관과 단단한 공기 주머니를 갖춘 비행선이었다. 1920년대까지  대형 비행선들이 대서양을 횡단하며 여객을 실어 날랐다.이 비행선은 근대에 비행기가 개발되기 전 유일한 장거리 유인 비행 수단이었다.

(3)항공의 발전~영국 조지 케일리는 항공의 아버지로 1808년 날개를 갖고 바람을 이용하였다.새가 하늘을 날 때 날개에서 발생하는 양력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밝혔다.독일 오토 릴리엔탈은 체계적인 양력 이론을 바탕으로 날개를 만든 뒤 방향 유지를 위해 수직 꼬리날개를 달았다. 공기보다 더 무거운 비행기를 개발하여 동력 비행기 개발의 기초를 닦았다.조지 케일리의 양력이론에 오토 릴리엔탈 같은 모험가들의 도전이 더해지면서 1903년 미국 라이트 형제가  엔진을 단 동력 비행인 인류 최초 유인동력비행 성공하였다.세계 최초 안정적 제어가  가능한 비행기를 내놓아 이 비행기는 미국을 항공기술 분야의 선두 주자로 만들어 놓았다.  

(4)제1,2차세계전쟁과 냉전시기~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인간의 도전정신과 함께 비행기가 무기가 되었다.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행기 가치와 필요성을 깨닫고 항공기술 발전이 가속화 되었다. 우편물 수송을 시작하였다.항공수송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하여 비행기의 황금시대를 열었다.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은 제트 엔진의 개발과 레이더 발명, 비행기의 대형화로  항공력이 승패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39년 독일이 최초 제트기를 개발하였다.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은 미국의 레이더로 인해 참패 당했다.항공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동서 냉전 시기 양 진영 공군력 경쟁은 항공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였다.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출현하였다.미국과 소련의 군사경쟁으로  제트기 시대를 열었다. 

(4)우리나라 항공역사~ 항공역사의 시작은 미국 이민1세대인 김광명이 비행기 연구를 하였고 이응호가 미 항공대 조종사로 입대하였다는 기사 2건이 전부이다. 한반도 하늘에서 1913년 일본 해군 소속 나라하라 산지가 일본의 조선 합병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용산의 일본군 연병장에서 시험 비행을 하였는데 이것이 한반도 하늘에서 날았던 최초의 기록이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비행기에 크게 주목하였다. 비행대를 창설하였다. 미국에 도착한 군무총장 노백린은 조종술을 배우고 있는 한인 청년들이 있음에 놀랐고 임시정부와 연락해 미국에 비행학교를 설립하는 것으로 방문 목적을 변경하였다. 한인 청년인 김종림은  쌀을 재배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량미로 유럽에 수출해 큰 부자가되어 비행학교 설립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후원했다.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독립운동과 함께 한인비행학교를 창설하였다.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 정부가 설립한 원난 육군항공학교에 귄기옥,이영무,장지일,이춘을 보냈다.이들은 중국 국민당군의 비행대에 들어가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들 중 권기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이름을 남겼고 이영무는 해방 후 공군 창군의 주역이 되었다.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독립운동과 함께 한인비행학교를 창설하였다.비행학교에서 대한민국 1호 비행장교가 탄생되었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열었다.해방 직후 항공단체의 결성과 통합이 되었다.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공군을 설계하였다. 광복후 대한민국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에 뿌리를 두고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주국방의 가치를 걸고 창군하였다.6.25전쟁 휴전 이후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공군력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첫 제트기전투기에 이어 첫 초음속기를 도입하였고 마침내  자체적으로 조립 생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주국방의 노력은 많은 항공기술자의 양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이들이 민간으로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민간항공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공군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대한민국 공군은 체계적인 전문 인력 양성에 집중하였다. 공군의 성장이 민간항공발전의 토대가 되었다.즉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공군의 성장과 함께 양성된 인력들은 전역 후 항공사나 항공산업계로 유입되어 대한민국 초기 민항시대를 이끌었으며 이들의 기술력과 헌신이 오늘날 항공강국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다.인력과 기술력은 자연스럽게 민간항공으로 유입되면서 항공운송산업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동.서 냉전시기를 거치는 동안 군사 무기로서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은 우리 생활의 엄청난 변화와 우리의 미래 생활을 바꾸어 줄 연구를 하고 있다. 더 높이 더멀리의 고고도의 영역은 군사와 정찰 등 목적외에 최근에는 과학,통신,재난 감시등 보다 일반적인 목적을 위한 비행체들이 연구되고 있다.한국형 무인 우주비행기를 개발하여 지구 정찰 및  우주 실험 등의 임무를 수행한 후 지상으로 돌아오는 재사용 무인 우주비행기 개발이 최종 목표이다.더 빠르게 비행하는 초음속 여객기와  친환경  항공 연료로서 전기와 수소를 활용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변화대응에 노력하고 있다.도심항공교통으로 도심의 지상교통 혼잡을 해결해 줄 미래 교통수단과 교통체제를 구상하고 있다.이와같이 하늘은 신성한 신들의 공간, 인간에게는 간절한 염원의 공간의 관념에서 비행기가  탄생되어 전쟁을 통해 급속히 항공기술이 도약된것을 알 수 있었다. 

 

휴게실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수란님의 자두,귤,삶은달걀  해피맘님의 메론으로 너무 감사했다.김포국립항공박물관을 관람하면서 홍두깨대장님을 비롯하여 아츄,이학진작가님이 사진을 찍어 주셨다.홍두깨 대장님은  항공전시관을 위용있게 담아 주셨고 아츄작가님은 매우 귀중한 박물관처럼 운치있게 담아 주셨다.이학진작가님은 애띤 모습의 인물을 담아주셨다.저녁을 김포공항  식당 북창동순두부 코너에서 순두부찌게를 먹었다. 게의 향기가 가득한 얼큰한  맛이였다. 함안의 고봉민김밥집에서  먹었던 순두부찌게의 매우 감칠맛이  자꾸 생각났다.콩자반,김치,무우말림무침으로 집밥과 같은 맛이였다.누룽지를 먹을수 있는 흑미돌솥밥으로 밥이 찰져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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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국립항공박물관
김포공항식당 북창동 순두부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