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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관의 고대 그리스 로마실,일본실,중국실 전시를 관람하였다.고대 그리스 로마실에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주제로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이 전시되었다.고대 그리스 문화, 신화의 세계,인간의 세상,그림자의 제국이라는 세가지로 나누어 전시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1)고대 그리스 문화,신화의 세계~그리스 종교는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화 발생 초기는 서사가 다양하게 각색되어 구전되다가 기원전 8세기 이르러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가 대표이다.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올림포스산에 살았던 12신이다.그리스 로마신화에는 인간의 모습에 짐승의 몸을 부분적으로 결합한 혼종을 탄생시켰다.생물에 감춰진 욕망을 투영하였는데 그리핀이나 켄타우로스가 대표적이다.신과 인간사이에 서 태어난 영웅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위업을 이룩하였다.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이 있었다.그리스 로마인의 생활 속에 신들이 존재하는 다신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해가뜨고,별자리등 세상만사가 모두 활력에 넘치는 신들이 움직이는 결과라 상상했다.신의 예언을 듣고 하늘의 징조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여 미래를 점쳤다.
(2)인간의 세상~ 고대 그리스 초기 인물상의 기본 형태와 비례는 이집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전쟁에서 만난 페르시아와 인도의 미술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기원전2세기에는 로마에 정복당해 로마와 같이 흥망성쇠하였다. 로마 미술 역시 그리스 문화를 밑거름으로 삼아 발전하였다.기원전 2세기경부터 그리스 미술품들이 전리품으로 로마에 집중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청동상,대리석 조각상, 회화작품들이 공공장소와 개인 저택에 진열해 로마 자부심을 북돋었다. 로마 사회에서는 그리스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복제작의 생산과 유통이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기원전 5~4세기에 만들어진 그리스걸작들이 복제되었다. 로마 조가각들은 정교한 복제기술을 구사했다. 이상적 신체비례를 탐구했다. 민간에서 당시 유행하던 통치자 초상의 스타일을 따라 선조들의 초상 전시 공간이나 무덤에 놓을 기념상을 만들었다.로마미술이 이룬 특별한 업적은 사실적인 초상을 발전시킨것이다. 노화를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로마패권이 지중해로 확장되면서 그리스 조각 모델로 한 초상 조각이 만들어졌다.로마제정이 시작되면서 황제들은 정치적 의도를 담은 초상 이미지 제작하였다. 로마제국 모든 도시의 공원,공공건물,거리,빌라에서 로마 황제들의 전신상과 흉상을 볼수 있었다.
(3)그림자의 제국~무덤과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저승을 그림자의 제국이라고 표현하였다.그리스 대리석 조각상의 눈과 입술, 옷의 문양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은 밝고 화려한 색으로 사실적으로 채색한것이 밝혀졌다.
일본
(1)칼~일본 칼의 역사는 야요이시대(기원전5세기~기원후3세기) 한반도로부터 칼날이 직선인 큰 칼이 전해지며 시작되었다.
(2)불교~일본 문화는 6세기 중반에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불교는 역법,천문,지리,의학 새로운 농업생산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으며 건축,조각,회화 장식과 같은 예술분야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서 받아들인 불교는 중국에서 발달한 대승불교,밀교 선종이었다. 아스카시대와(593~710)와 나라시대(710~794)불교 권위를 이용해 율령국가를 세웠다. 헤이안시대(1794~1192)는 귀족계층 지지를 받아 진언종과 천태종이 유행하여 밀교 미술이 발달했다.진언종과 천태종은 모두 주술적 복을 비는 성격을 지녔다. 가마쿠라시대(1192~1333) 신불교라고 불리는 정토종과 선종이 널리 퍼졌다.
(3)다도~차를 마시는것은 헤이안시대부터 왕족과 귀족 등 지배계급이 즐기던 문화로 차츰 무사계금으로 퍼져 나갔다.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값비싼 중국 찻잔 거부하고 흙으로 벽을 바른 소박한 다실에서 검소한 그릇을 사용한 새로운 다도문화를 창조하였다.
(4)무사~평화로운 에도시대(1603~1868)가 되자 무사는 칼과 갑주를 무사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더는 실제로 쓰지 않았다. 무사는 차츰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며 새 시대의 주역이 되어 갔다.
(5)예술의 후원자~ 헤이안시대 (764~1162) 말기 강해진 사워 세력을 누르고 수도 쿄토의 치안을 유지하고자 고용한 무사들이 중앙으로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귀족에 고용된 신분이었으나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중앙조정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토지를 지배 점차 전국으로 세력을 넓혀 결국 막부세력체제를 탄생시켰다. 무사는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 이전 지배계층의 귀족들과는 다른 독특한 미적감각을 지녔다.전통 예능,다도,회화,공예,도자 등에서 자신들만의 예술을 만들어 냈다.에도 막부와 쿄토 궁정은 그림을 도맡아서 그리는 막부화가와 궁정화가 집단을 두었다.이들은 에도성과 전각 안 쪽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공식의례에 쓰는 병풍,외국 사절에게 줄 선물 등을 제작했다. 막부의 화가 집단은 가노파가 활약했다. 도사파는 헤이안시대(794~1192) 세운 전통 회화 양식으로 일본 풍경이나 풍속을 그린 화가 집단이다. 에도시대(1603~1868)에 에도 코로아즈카리를 맡아 세밀하고 정교한 화풍으로 화려하게 색을 칠하는 우아한 궁정취향의 작품을 그렸다.에도 시대(1603~1868) 도쿠가와 쇼군 가문과 다이묘들은 직속 장인을 두었다.직속 장인에는 칼장식,칠공예품,도자기 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었다. 이 장인들은 쇼군 가문과 다이묘 가문에서 필요한 생활 도구들로 만들었다. 에도 막부가 통치권을 교토 조정에 반납하여 무사 시대가 끝난 메이지 시대(1868~1912)에는 공예가 경제발전에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공예품을 적극적으로 국외로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자 했다. 장인들은 공예가로 변신하여 세계 각국에 열리는 만국 박람화에 작품을 내기도 했다. 제실기예원을 두어 고위 관리 대우를 받으며 공예품 만들기에 몰두했다.
(6)일본의 대표수출자기 이마리~ 일본의 대표수출자기 이마리는 백자의 최초 생산지인 규수 아리타지역에서 생산된 자기를 일컫는다. 17세기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공이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자기 제조 기술를 선보이면서 초기 이마리양식이 탄생했다. 이후 이마리 자기는 중국의 자기와 나란히 할 만큼 수준 높은 채색 자기를 생산해서 신흥 다이묘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도자기를 열광하는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출용 이마리 자기는 가키에몬 양식의 자기가 대표적이다.긴란데 양식의 자기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나베시마는 자체 수요품으로 쇼군이나 다이묘에게 바친 최고급 자기였다.
중국
황하에서 꽃핀 예술~중국은 황하 문명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광활한 영토에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를 거듭되면서 다채로운 문화가 전개되었다.하나라(기원전21~기원전16세기)를 시작으로 상나라(기원전16~기원전11세기)와 주나라(기원전11세기~기원전476년)에 이르러 국가의 틀이 마련되었고 정치적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에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 제자백가의 등장으로 사상과 학문이 꽃을 피운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진나라 (기원전221~206년)와 그 뒤를 이은 한나라(기원전 202~기원후220년)는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고 정치사회 제도를 재정비하며 통합을 이루었다. 위진남북조시대(220~589년)에는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가 융성하여 중국 전역에 사찰과 석굴사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불교 사상과 미술 양식은 아시아 전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나라(618~907년)는 외래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국제적인 성격의 문화가 융성하며 금속공예품과 당삼채가 특히 발달하였다. 송나라(960~1279년)는 전국의 가마에서 각기 개성을 살린 도자기들이 다양하게 생산되어 중국 도자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한편 자연의 위대함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산수화와 함께 시서화의 예술이라 부르는 문인화가 태동하여 원나라 (1271~1368년)때는 복고적 문인 화풍으로 이어진다. 명나라(1368~1644년)는 고상한 취향의 문인화가 유행하고 궁정화원 소속 직업화가들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청나라(후금 1616~1912년)는 서양화풍이 유행하면서 더욱 다채롭고 개성있는 회화 세계가 펼쳐졌다.
(1)중국의 고대문화~중국의 고대 문명은 신석기시대의 채도와 옥기,청동기시대의 갑골문과 청동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채도는 정착 생활과 농경이 시작되면서 생산되었으며 도기 표면에 동물무늬나 기하학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옥기는 지배계급의 상징물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장신구 구실을 했다. 청동기는 고대국가 형성과 함께 제작되기 시작하여 주로 상나라와 주나라 때 제기와 시기,무기 등으로 제작되었다. 청동그릇에 사람 이름,관직명,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금문이 새겨져 있어 당시 사회 상황을 알 수 있다.
(2)청동제기~중국은 기원전 21세기 무렵부터 황허를 중심으로 토기를 본떠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원전 16세기 신권 국가였던 상나라는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왕이 직접 청동기로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초기에는 청동기 종류가 한정되었으나 주조 기술이 발전하고 예제가 확립돠면서 후기에는 청동기 종류와 수량이 점차 많아졌다.상나라는 술을 좋아한 나라로 신에게 술을 바치는 의례가 중심이었다. 뒤를 이은 주나라는 술그릇 종류를 줄이고 신분에 맞춰 청동기를 사용하는 열정제도를 확립하였다.
(3)기와~중국은 주나라때부터 왕실을 중심으로 기와를 사용했으며 전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기와에는 시대와 출토지역에 따라 귀신,사슴,나무 등 다양한 무늬를 표현하였고 좋은 글귀를 새겨 놓기도 하였다. 송.당대부터 불교의 영향으로 연꽃무늬 기와가 주류를 이루고 송.원대 이후에는 청색과 황색 유약을 발라 구워 독특한 색깔을 띠는 다양한 기와들이 제작되었다.
(4)도용~한대 이전 무덤에서는 옥기,청동그릇 등의 예기의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무기,마구류들이 주로 출토된 반면 한대 이후 무덤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표현한 인물과 동물 도용이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당대에는 무덤을 지키는 용도로 채색이 화려한 삼채 진묘수,말,낙타 등을 함께 매장하였다.
(5)칠기~칠기공예는 일찍이 7천여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존재했다. 이후 수천 년간 끊임없이 발전하여 채회,전칠,상감,조칠,금칠 등의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며 중국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전국시대 옛 무덤에서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되었다. 당대에 시작된 조칠기법은 송.원대에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척홍 또는 조홍칠이라고도 불리는 조칠은 나무나 동으로 만든 몸체에 붉은색 칠을 수십번 한 후 조각하는 기법을 말한다. 붉은색의 화려한 효과를 내는 조칠은 명.청대에 이르러 일상생활 용기에서 부터 병풍,침상,의자,건축 장식에 이르기까지 제작 범위가 확대되면서 중국의 독보적인 공예예술로 발전하였다.
(6) 불교~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인 불비상이 등장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비에 종교적 숭배대상인 불상이 더해진 형식이다.
(7)자기~중국자기는 한대 회유계통의 시유 도자기에서 시작되었으며 당대 저장성 월요청자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중국 북방지역에서는 백자가 생산되어 남청북백의 시대를 맞이한다. 청자와 백자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송대에는 전국 각 지역의 가마에서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생사산되어 자기문화의 황금기를 이룬다. 이후 원대에는 청화백자를 주로 생산한 장시성 경덕진요가 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어 명대에는 화려한 채색 자기가 등장하였고 청대에는 자기 생산의 모든 기술과 예술성이 집약되어 중국 자기 제작 발전의 정점에 이른다.
(8)당나라 근은제그릇~당나라의 금은제그릇은 당대 수준 높은 금속 제조 기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금은제 그릇을 생산하였으며 궁정과 귀족 계층에서 널리 사용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아시아 문화가 유입되어 당나라 사람들사이에서 이국풍 인기를 끌면서 더욱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손잡이가 있는 잔 ,금다리 은잔 등은 서아시아 그릇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9)청화백자~세계를 매혹시킨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원나라 때부터 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무역의 경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수입된 코발트,경덕진의 질 좋은 백자 원료와 유약의 생산으로 아름다운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명.청대의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무늬를 그린 후 투명한 유약을 바른 것으로 흰 바탕에 푸른색의 무늬가 강렬한 색상대비를 이룬다.
(10)회화~명.청대에는 송.원대의 전통회화를 계승하면서 다양한 화파와 화법이 새롭게 등장했다.또한 서양화법이 소개되어 전통적인 중국화 재료에 서양화의 투시법,명암법을 구사하는 동서 융합의 화풍이 출현하였다.
전시실을 감상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에워싸고 있는 거울못길 따라 산책했다. 하늘과 주변의 경치들이 호수에 맑게 투영되었다. 삼국시대 정감의 아치교를 지나 호수 섬의 청자정으로 아름다웠다. 청자정에서 휴식을 하였다.백동백,주란,라벤더,실비아님의 사과,포,귤,오렌지,샤인머스켓,초코렛,양파과자,옥수수,토마,밤으로 간식하면서 힐링되었다.청자정에서 용산가족공원에 갔다. 베롱나무에 드리운 단아한 자태의 3층,5층,7층,석탑과 석등이 신비의 적막으로 가득찼다.폭포수에서 흐르는 하천돌다리를 지나 미르폭포가 몽환적이고 신비로웠다. 소담한 연못의 바위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할 것만 같은 신령스러운 분위기로 비추었다.공원이 숲같은 분위기로 매우 청정했다.미르폭포를 지나 자연 친화적인 연꽃연못과 생태습지가 장대하게 펼쳐져 매우 싱그러웠다. 에드워드 소테의 손으로 만든 손 조각이 있는 장미원을 지나 황토길과 텃밭을 이루며 정겨웠다. 퓨전한식주점인 솜씨 동부이촌동 본점에서 저녁을 묵은지김치찌게를 먹었다.찰지고 고슬하게 지어진 밥이 예술같은 맛이였다. 묵은지김치찌게는 묵은지의 효소맛이 가득했다.미역냉국, 마늘절임,김치,오뎅볶음,묵무침으로 담백했다.특히 오뎅볶음은 매우 감칠맛으로 지금까지 먹었던 오뎅복음 중 제일 맛있었다. 오뎅의 선택이 맛의 관건이였다.박물관 전시실에서 부터 용산가족공원까지 홍두깨 대장님을 비롯하여 그루터기와 이학진 작가님이 사진을 찍어 주셨다.홍두깨 대장님은 아름다운 배경을 포착하여 인물을 잘 담아주셨다.그루터기 작가님은 일정을 스케치하듯 채색하여 주셨다.인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고자 경주하셨다.





고대 그리스 로마실)











































일본실)

















































중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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