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성북선잠박물관,성북구립미술관,이태준가옥(수연산방),이종석별장,한상수자수박물관,최순우옛집(2026년4월1일)

백재은 2026. 4. 13. 16:22

4월1일~성북선잠박물관을 중심으로 그 주변 문화재를 산책했다.국가적인 선잠제는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는 선잠제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 왕비가 직접 뽕잎을 뽑는 친참의식이 이루어졌다.서잠제는 인간에게 처음으로 누에고치를 가르쳤다고 알려진 서릉씨를 기린 국가제사였다.선잠단은 조선시대 500년동안 성북동에서 자리를 지켜왔다.성북동은 한양도성밖에서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우리나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교류하여 창작활동을 펼친 문화자원의 보고였다.

 

1층 기획특별전~어느 늦봄,마을을 담다

 

3층 기획전시실

성북선잠박물관

선잠박물관을 지나 성북구립미술관으로 가는 길로 성북동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이  적벽돌벽체와 돔장식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의 위상을 드러냈다. 벽체에 김대건신부를 비롯한 12명 한국 순교 성인상을 설치하여 매우 독특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성북구립미술관

(1)성북회화연구소의 시작

성북구립미술관에서 광복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이쾌대(1916~1965)가 돈암동에 설립 운영했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몸 담았던 12명 작가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었다.이쾌대는 광복의 기쁨과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해방공간에서 미술에 대중화에 집중하여 거대한 규모의 군상을 그리려는 열의가 가득했다. 2m가  넘는 대작을 제작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 1946년 자신의 작업실로 돈암동456-1을 빌렸고 이곳이 바로 성북회화연구소가 되었다. 성북회화연구소는  석고상,인체,정물 수업을 갖춘 미술교육시설로 이쾌대를 필두로 남관,이인성,이봉상 등이 수업을 진행하였다.이쾌대는 예술론등 이론 수업을 적극적으로 강의했다.또한 인체 해부학 수업을 진행하며 인물 데생을 지도했다. 특정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 연습을 하게 하였다.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제작했던 대형 군상 작품들은 해방 혹은 폭격사건  등 모두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예술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던 이쾌대의 예술관이였다.1950년 성북회화연구소는 폐소되었고 남산의 시립미술연구원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으로 연구소의 작가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나 자신들이 겪은 전쟁의 침상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 시기 작품에는 연구소에서 습득한 인물묘사,예술론 등이 기저에 깔려있다.작품마다 개성이 살아있어 훗날 만개하게 될 작가들의 독창적인 조형어법을 예고했다. 

 

(2) 현실을 그리다

성북회화연구소 작가들의 행보는 다양했다. 미술대학을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기도 했다. 회화 ,조각,섬유예술을 아우르며  추상과 구상 등 매체와 양식면에서 새로웠다.성북회화연구소의 출발로 이들은 한국 미술계에 상당한 큰 영향을 끼친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북구립미술관

이테준가옥인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그의 대표작 달밤,돌다리,문장론의 고전인 문장강화를 집필했던 한국 문학사 산실이였다.ㄱ억자형 안채의 누마루가 매우 독특했다.앞마당의 정원과 조화를 이루며 매혹적이였다.화장실과 주방을 뒤쪽으로 배치함으로써 공간구성을 집약시켰다.마당으로 정원과 정자로  별장에 온 기분 같았다.작업실같은 공간옆으로 계단을 올라 산장같은 집으로 안채와 정원의 경치가 펼쳐지며 매우 낭만적이였다.산장같은 2층 공간 사랑방에서는 구인회 멤버 작가들이 전시되었다.문학을 서로 교류했던 그 시대 물결을 볼 수 있었다.현재 수연산방은 외손녀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인삼마차를 마셨는데 유과와 프리미엄 야생화 천연벌꿀이 나왔다.매우 정성드린 미적인 차림부터 유교문화가 담겨져 있었다.인삼과 마가 들어간 차로 힐링맛이였다.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빛나는 자손의 모습이였다. 음식을 대하는,손님을 대하는 자세부터 남다른 일류카페였다.

 

수연산방 이태준가옥

성북동 이종석 별장인  일관정은  민속문화유산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덕소교회가 영성수련원으로 이용하고 있어 너무 아쉬웠다.마포에서 새우젖장사를 한 이종석 별장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옥에서 볼수 있는 누마루 사용으로 위용이 있었다.일각문 대문 앞에 우물이 있고 행랑채가 일반적인 가옥 구성으로  대문옆에 돌출되어 이색적이였다.앞마당에  봄꽃이 생명을 피우고 개나리가 드리운 높은 언덕지대로 기와가 고개를 내밀며 재벌의 위상을 드러냈다.   

이종석 별장

이종석 별장을 지나 조비스 그릴 건축이 1층 중앙 계단으로 연결된 2층 중앙 테라스가 매우이색적이였다.성북역사문화센터에서 조선시대 한양도성으로 부터 항일운동,문학과 문인들 사랑방,미술인 창작동네로 가치잇는 근현대문화유산이 존재하는 곳임을 알수 있었다.  

성북역사문화센터

성북역사문화공원은 한양도성의 백악구간을 이루는 곳이였다.도성길을 통해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 고즈녁한 곳이였다.

성북역사문화공원~한양도성

한상수자수박물관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한상수(1932~2016) 선생의 예술 혼을 계승하고 한국자수예술사를 알리고자 설립된 박물관이였다.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초대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한상수 선생은 옛 자수의 원형 기술을 복원하여 전통자수의 체계를 확립하고 한국 자수 변천사의 학문적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였다.1963년 한국수공예학원을 설립하여 자수 교육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특히 고조선의 사슬수,삼국의 이음메꿈수,고려의 고리수,조선의 자리수 등 자수침법을 체계화하여 한국 자수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통의 복우너을 넘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사의자수와 부조자수같은 독창적인 형식을 창시하여 해외 언론으로부터 조각같은 입체적 미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벌과 비파(1969),삼재의 환상(1975),천수국수장(1980),자수 쾌불(1984),자수 고려수월관음도(1997)등이 있다. 

한상수자수박물관

최순우 가옥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혜곡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곳이였다.1930년대 지은 근대한옥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며 모서리가 트여있는 튼ㅁ자형 구조였다. ㅁ자형 한옥 주앙 마당으로 우물과 정원 꽃밭으로 매우 고풍스러웠다. 우물옆 장대한 초목이 하늘위로 쏟고 하늘햇살이 한옥 중앙으로 모여져 사게절 다른 감성을 즐길수 있는 매우 환상적인 정원이였다. 안채 뒤뜰에는 향로석,동자석과 함께 여러가지 나무들과 꽃밭으로 안채문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한옥 내부는 조선시대 선비방처럼 정갈한 목가구와 백자만 놓여진  문지방과 창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창의 미학을 지닌 매우 고혹적인 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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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