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2일~죽정밴드를 가입 후 첫 여행을 갔다.여행스케치 밴드에서 뵙던 덕이대장님을 보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긴현주리더님이 처음 왔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고려궁지로 가는 길로 강화문학관과 진무영순교성지,강화에 대한 시와 벽화가 진귀하게 빛났다.





고려궁지는 고려 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였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최우의 권유로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다.그러나 몽골과 화친하여 원종 11년(1270)때 몽골의 환도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시대 행궁 등을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외규장각(2003년 복원)등이 남아 있었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승평문의 고려궁지가 위엄으로 다가왔다.장대한 초목과 보호수,정원이 고려궁지와 조화를 이루며 매우 고즈녁했다.고려궁지 주위로 장대한 초목들이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행정을 담당했던 수령이 집무를 보던 관아 건물이였다. 동헌이 장대한 초목에 드리우며 운치가 있었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왕실 과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이다. 한성에 있는 규장각을 내규장각,강화에 잇는 규장각을 외규장각이라 하였다. 주로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왕실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 천주교 탄압의 구실로 프랑스가 병인양요때 외규장각의 의궤와 도서등을 약탈하고 여러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리더님의 안내로 고려궁지를 드리우고 있는 북산 벚꽃길을 갔다.매우 울창한 벚꽃나무가로수길로 매우 아름다웠다. 벚꽃길 따라 학의 날개를 치듯 뻗은 700년된 은행나무 보호수가 수호하는 주변의 마을의 경치가 펼쳐졌다.산자락 아래 북산역사공원이 있었다. 강화산성 북문과 고려궁지와 인접하여 강화군의 역사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공원이였다.역사공원을 통해 강화산성과 산성옛길로 이어지는 것으로 사색적인 정감을 지녔다.

북산역사공원을 지나니 강화산성 북문으로 매우 고풍스러웠다.강화산성은 고려시대(1232년)때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쌓은 석성으로 39년간 몽골의 침략에 대항한 강화의 상징이엿다. 북문을 통과하여 산성안을 산책했다. 장대하게 우뚝솟은 산책길로 매우 싱그러웠다.사계절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는 환상적인 곳이였다. 즉 고려궁지옆 언덕길의 벚꽃 가로수길따라 강화산성 북문으로 이어지는 역사길이였다.리더님이 알지도 못했던 길을 안내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강화 성공회성당은 고요한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 중층 구조로 한국정통양식이였다. 예배당은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써까래,목조기둥,창호등 한옥 양식을 이루는 토착정신을 드러내고 있었다.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과 근대화에 참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136년된 보리수 나무가 장대하게 출입문을 드리우며 고풍스러웠다.






성당 출입문 앞 동종이 신비롭게 빛났다.


한국양식의 강화 성공회성당 출입문이 카리스마스 자태로 비추었다.강화 성공회성당이 고귀한 우리나라 문화재처럼 빛났다. 기와돌담과 성벽과 같은 담장에 둘러쌓인 강화성당이 언덕길을 위용으로 휘감으며 용흥궁을 비추었다.용흥궁은 조선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했던 곳이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초가였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4년)때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살림집같은 형식으로 단아했다.장대한 초목이 용흥궁을 드리우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








도로길로 강화성당전경이 펼쳐지며 고즈녁했다.이와같이 고려궁지,벚꽃가로수길,강화산성 북문,강화성당,용흥궁이 원도심을 이룬 역사의 길로 매우 가슴 벅찬 곳이였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차창가로 강화산성의 북문이 비추며 역사의 얼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 전등사 입구 산골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었다. 찰지고 쫀득거리는 밥이 예술이였다. 야채와 황태의 육수와 참기름의 조화로운 맛으로 매우 고소했다. 먹으면 먹을수록 힐링되었다. 강화도순무우김치는 시원하고 달큰한 환상적인 맛이였다.시원한 맛의 얼갈이김치,싱싱한 맛의 고추,단 견과젖걸무침,감칠맛의 가리비젖갈무침으로 입맛을 돋구었다.착한 가격과 간단한 상차림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감칠맛있는 부페상차림 맛 같았다.


전등사 동문 방면으로 올라갔다.오르막 언덕길의 숲길이 매우 싱그러웠다. 강화산 삼랑성 (동문 방면)인 정족산성이 버티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임시로 지은 궁궐인 가궐이 있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었다.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에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160여 명의 프랑스군이 무찌른 곳으로 유명한 곳이였다. 삼랑성이 매우 운치가 있었다. 성안에는 삼국시대 창건한 전등사가 자리잡고 있어 겨울의 전등사 분위기와는 다른 설래임으로 인도되었다.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창건한 사찰이였다. 창건 당시 진종사라 불리다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 궁주가 송나라에서 대장경을 인쇄해 오고 옥으로 만든 등잔을 시주,부처님 말씀 법의 등불이 전해 왔다는 의미로 전등사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정족사고,병인양요의 흔적 등 역사와 함께한 호국의 근본도량이였다.


사찰안 은행나무 보호수,겹왕벚꽃,청벚꽃,복숭아꽃,수선화,박태기나무 등이 손짓하였다.







죽림다원의 단청이 매우 단아했다. 한옥양식의 인테리어와 함께 벽에 걸려 있는 동양화 작품들이 대가의 작품처럼 기품이 있었다.




무설전에서 연은정의 안전한 땅 숨을 고르는 숲 제목으로 전시회가 있었다. 유채와 연필 목탄으로 작업한 그림으로 황망한 지상의 삶을 묘사하였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월승요와 돌계단위 극락암,명부전,약사전 마당으로 310년 소나무 보호수가 드리우며 매우 고결하게 빛났다. 각 전각마다 장대하고 수려한 자태의 초목이 드리우며 매우 아름다웠다.


인천 월미공원부근 청벚꽃이 고결하게 비추었다.

월미공원은 한국전통정원을 이룬 곳으로 봄의 생명력으로 충만했다. 안식하는 사슴이 정겹게 다가왔다.

종합어시장으로 가는 차창가로 자동차를 싣고 가는 트럭이 지나갔다. 여러가지 디자인들의 자동차 모델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종합어시장에서 고구마와 국화빵을 샀다.매우 달큰한 고구마맛으로 좋은 옥토에서 자란 고구마 같았다. 알맹이가 큰 국화빵은 매우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달지 않는 팥소로 소문난 맛집 같았다.인공 조미료가 아닌 힐링 맛이였다. 종합어시장을 갔다와서 허현주님이 방울토마토를 주었는데 명품종 같았다.인천 차이나타운에 도착하여 직접 지하철로 갈 사람은 자유롭게 여행을 하라고 해 덕이대장님과 같이 동행했다.제2패루 인화문을 지나 한중문화관 중국풍 분위기로 인도되었다. 2~3층 상설전시실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경제,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와 중국 내 우호협력 도시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었다.전시회를 관람하면서 회원들 따라 계획하지도 않던 중국 전통의상 체험을 하게 되었다. 3벌의 중국전통의상을 입고 추억의 사진을 담으며 힐링이 솟구쳤다.덕이 대장님이 안정된 구도로 잘 담아주어 너무 감사했다.


3층 상설전시실)





















2층 상설전시실)







































제물진두 순교성지가 유려한 곡선의 벽체로 거리를 위시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래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 이용하는 경인지역의 최고급 요리점으로 70여 년간 그 명성을 이어왔고 6.25전쟁 이후에는 짜장면 등 대중 음식을 보급하였다.1983년 영업을 중단하였고 현재는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벽돌조 건물로 화교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였다. 벽체의 띠장식과 옥색 창문이 조화로워 고즈녁했다.

짜장면에 대한 전시와 차이나타운의 역사적인 형성을 알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곳이였다. 나무가방으로 시작된 짜장면 철가방이 귀중하게 빛났다.벽에 걸린 달밤의 경치그림이 매우 신비로운 정감으로 가득찼다.














짜장면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짜장면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똑같은 공간에서 두작가마다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 한 전시회가 있었다.성낙인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도시와 사람을 따뜻하고 담담한 사진으로 담아냈다.김참삼은 세계의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땅을 바라보왔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장소,그리고 도시의 풍광을 탐색자이자 기록자의 눈으로 바라봤다.






중화요리의 거리로 화교사회의 정감으로 가득찼다. 삼국지벽화거리의 수채화풍 벽화들이 매우 환상적이였다.인천차이나타운이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자유공원으로 가는 길로 1960년대 담장과 함께 시멘트벽체의 일본식 건축이 매우 정겨웠다.응봉산 자락에 위치한 자유공원의 계단길옆으로 철쭉향연과 학의 날개치듯 뻗은 가로수가 수를 놓아 매우 아름다웠다.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응봉산 자락에 건축된 것으로 동북아시아와 러시아 건축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근대문화유산이였다. 제물포 구락부는 도로길에 위치한 정문과 함께 초목이 드리운 계단길의 옆문을 이루며 매우 고풍스러웠다.굳게 닫혀진 문으로 내부는 들어갈수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자유공원 석정루에서 인천 항구가 사색적으로 펼쳐졌다. 자유공원은 인천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도시였음을 상징하는 공원 같았다.청의 조계지위에 위치한 곳으로 다른 개항장과 달리 서양 각국의 외교력과 경제활동이 청.일을 압도적으로 견제하면서 자주적 개항장으로써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해준 도시였음을 보여 주었다.맥아더장군의 동상과 함께 겹왕벚꽃이 매우 화사하게 마중하는 숲길이 펼쳐져 매우 환상적이였다.겹왕벚꽃가로수길로 석정루가 매우 아름답게 비추었다. 석정루의 중앙 굽이치는 계단양식이 지붕과 조화를 이루며 고전미를 담고 있었다.



초한지 벽화거리가 매우 환상적이였다.



제3패루 선린문을 지나 계단아래로 짜장면 집,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덕이대장님과 같이 산책하면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그 감사함을 보답하기 위해 제일 가까운 만사성 옛날짜장면집에 들어갔다.옛날짜장면을 먹었다.좀 짰지만 매우 탄력있고 부드러운 식감의 면발로 입맛을 돋구었다.옛 추억을 회상하는 정겨운 맛을 담고 있었다.저녁 등불아레 비추어진 제1패루(중화가)가 근대역사의 등불로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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