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남 대흥사,명량해상케이블카,진도타워,해남우수영관광지,진도상설전통시장,진도 운림산방(2026년4월26일)

백재은 2026. 5. 5. 12:40

4월26일~호텔 복도로 사진작품이 걸려 있었다. 강에 반영된 도시다리의 전경이 환상적이였다.아침 식당가는 길로 완도의 철쭉이 매우 곱고 진한향기를 발하였다.  다른 지방의 철쭉보다 더욱 더 고운 색채를 발산하고 있는 철쭉이였다.도로 가로수길로 하늘을 가리는 메세타콰이어길이 펼쳐져 환상적이였다. 

HOTEL INN 복도

 

한오백년집에서 오백세밥상을 먹었다. 보리비빕밥 재료들의 반찬으로 저절로 힐링되는 맛이였다.비벼서 먹을수 있도록 반찬들이 짜지 않고 매우 담백했다. 좁쌀 찹쌀밥은 달큰한 맛으로 환상적인 맛이였다.진한 향기의 당귀가 힐링을 솟구쳤다. 봄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밥상이였다.   

 

한옥백년집

기사님을 잘 만나 버스가 매우 천천히 가는 기분으로 승착감이 좋았다.대흥사로 가는 부근의 울창한 숲과 일주문으로 가는 숲길이 매우 환상적이였다. 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7~9세기 걸쳐 창건된 법주사,부석사,마곡사,통도사,봉정사,선암사와 더불어 한국의 산지승원이였다. 두륜산 산봉우리들과 초목이 사찰을 웅장하게 드리우며  환상적으로 비추었다.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사찰을 돌아보니 힐링이 솟구쳤다. 사찰내 매우 탐스러운 꽃들이 화사했다.

   

 

 

운장대

주차장1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주차장까지 매우 울창한 숲길이 환상적으로 펼쳐졌다.해남문학회 시들이 전시되었다. 두륜산 대흥사의 첫글자를 띄워 지은 시들이였다.  

 

 

대흥사

명량해상케이블카가는 길로 계곡과 메타세콰이어길,산과 집이 반영된 물가가 비추었다. 명량해상케이블카 탑승장 복도로 사진 수상작이 전시되었다.아름다운 우리강산을 노래하고 있었다. 명량해상케이블카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전승지인  울돌목을 가로질러 오가는 해상케이블카로 해전시 상징공간이였다.울돌목은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사이를 잇는 가장 협소한 해협으로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치며 소용돌이 치는 소리가 20리밖에서까지 들린다고 해서 명량이라 불렀다.울돌목은 해협의 폭이 좁고 해구는 깊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물살이 이에 부딪쳤다가 솟아오르기 때문에 해협을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품이 일고 물이 용솟음치며 희오리가 생기는 신비로운 장관이였다.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던 배 12척과 백성들의 배1척,군사12여 명으로 3만 대군을 태운 300척의 배를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온 왜군에 맞섰다.울돌목의 물살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왜군을 대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의 그 날 벅찬 감동을 느껴보는 역사현장이였다.해남과 진도사이 조수간만 차이로 물길 속도 회전이 빠른 울돌목을 실제로 보니 매우 경이로웠다. 구국의 혼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승리대첩을 환영하는 조형물과 함께 진도타워가 위풍당당한 기세로 압도되었다.승리의 대첩이 우주로 약동치듯 솟구쳤다.진도타워의 2층 옛 사진관,진도군역사관,명량대첩승전관과 7층의 진도타워 전망대에 갔다. 진도의 역사를 알리는 공간으로 매우 뜻 깊었다.

 

진도타워 명량대첩 승전관)



진도타워 진도역사관)

진도타워 7층전망대)

다도해의 양도,임하도,현도,녹도가 비추는 위풍당당한 역사의 현장이였다. 

진도타워 전망대

진도타워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탑승하였다. 울돌목의 용솟음치는 광경이 매우 경이로웠다.

케이블카에서

케이블카에서 내려 해남의 명량대첩해전사 기념전시관에 갔다. 명량대첩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 공간이였다. 하늘의 도우심과 이순신의 해전술로 승리한 대첩이 우주로 약동쳤다.

 

명량대첩해전사 기념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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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해전사 기념전시관

 

명량대첩공원을 산책했다.거북선 모형의 중앙 무대  중심으로 명량대첩탑이 마주보고 있었다.해전술에 사용한 쇠사슬감기틀과 이색대첩비가 우뚝서 있었다.이색대첩비는 4면에 이순신 장군 형상을 비롯해 판옥선,명량대첩비 비문,필사즉생 필생즉사 문구 등이 새겨져 있다.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상이 바다를 드리우며 매우 고결하게 빛났다. 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상은 갑옷 차림도 아니고 칼대신 지도를 들고 있었다.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동상으로  고뇌하는 모습이 가장 인간적인 이순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고뇌가 계속되는 한 우리의 조국은 영원할 것이며 5천 년 역사는 더욱 찬란히 빛을 발할 것이다. 울돌목 판옥선은 13대 133 명량대첩 전승의 신화를 이끈 조선 수군의 전투선인 판옥선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였다. 울돌목스카이워크는 회오리 바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 위를 직접 걷는 스릴감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였다. 강강술래를 형상화하여 곡선으로 표현했다. 울돌목은 1597년 정유재란때 이순신 장군의 대 전승 명량대첩이 펼쳐진 곳이였다.울돌목을 자세히 보게 되니 매우 경이로웠다.명량 율돌목 회오리 바다 촬영지에서 울돌목으로 향하는 바다물살이 재빠르게 흘러 청량감으로 가득했다.

명량해상케이블카 명량대첩공원

진도상설시장을 가는 길로 우수영관광지 테크길과 진도대교가 펼쳐졌다.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 같았다. 진도상설전통시장에서 점심을 어제 진도항 배에서 산  맛나 떡방아간 쑥떡을 먹었다. 해남 전통 맛이 살아있는 떡이였다. 메가커피숍에서 바나나딸기쥬스를 먹었다.과일 그대로의 맛으로 힐링되었다.진도운림산방으로 가는 길로 저수지와 하늘을 덮는  우거진 가로수 도로길이  아름다웠다.

진도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 선생에 말년에 그림을 그렸던 화실이였다.첨찰산 주위의 봉우리들과 어우러져 있는 산골이였다.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종화의 대가를 이룬 남종화의 산실이였다.북종화는 전문적 화가가 그린것이고 남종화는 선비가 그리는 것으로 묵화가 대표적으로 정신과 기운이 담겨져 있다.허련을 계승하여 5대가 화가산실을 이룬것이 매우 경탄에 그지 없었다.1982년 소치 허련의 손자인 남농 허건이 운림산방을 복원하여 세상에 알려졌다.운림산방이 매우 웅장한 첨찰산에 드리워져 압도 되었다. 초목과 조화를 이루며 발걸음 옮길때마다 매우 아름다웠다.소치고택은 초가집으로 수리중에 있었다. 소치고택앞 소치화실이 ㄷ억자 형으로 연지(운림지)와 매우 조화를 이루며 고즈녁했다.운림사(소치 영정실)를 드리운 초목과 꽃들로 아름다웠다. 운림사에서 정원길로  운치가 있었다.즉  운림산방과 정원이 잘 조화를 이루어 사방 어디를 바라 보아도 한폭의 그림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베롱나무 160년 보호수
진도 운림산방

 

 

소치 2관 소치 후손 작품관)

소치 2관 복도로 허문의 강무가 묵직한 선으로 매우 신비로운 적막으로 가득했다.대나무가 드리운 창가로 산뜻했다.

소치 2관

(1) 2대 미산 허형(1862~1938)~소치 허련에게 그림을 지도를 받았다. 두아들 허건과 허림형제를 통하여 자신의 예술혼을 꽃피우게 하였다. 의재 허백련을 지도하여 화업에 입문하게 했다. 조선말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남도화단의 주요한 화가로 호남지방 전통 회화사의 교량적 역할을 했다. 

 

(2) 3대 남농 허건(1908~1987)~허련의 손자로 아버지 허형의 4남으로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연마하였다.고답적인 표현양식과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주제를 끓임없이 추구한 결과 향토적 정취와 한국의 실경을 현실감 넘치는 신남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일궈어 냈다. 한국의 기상과 정신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생동감있는 거친 필선과 독특한 구성으로 표현했다. 

(3) 3대 임인 허림(1917~1942)~허형의 막내아들로  허건의 친동생이다. 일본과 광주,목포 등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면서 전통적인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완성시켰다.부친이 타계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가와바다 화학교에 다니면서 모든 물상을 점으로 표현하는 토점화라는 독창적인 화법을 일구어 냈다. 독학으로 일구어진 일본 유학생활의 과로로 26세에 요절하였다. 그러나 그의 에술혼은 아들 허문에게 피어나고 있다. 

(4)4대 임전 허문(1941~)~허련선생의 증손이며 요절한 천재화가 허림의 독자이다. 가문의 갈필법을 연구하면서 임전 특유의 이론을 접목시켜 숨구의 농담을 이용하여 화면 전체를 동적으로  전개시키는 운문산수화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일구어 냈다.이로써 허림의 예술혼을 받들고 운림산방의 화맥을 계승하였다.

 

(5)5대 오당 허진(1962~)~허진은  허건의 손자로 허경의 첫째 아들이다. 운림산방 5대손으로 소치의 화맥을 잇고 있으나 그의 그림은 고즈녁한 산수화가 아니다.세상의 모습을 고민하는 현실 비판적 그림을 그린다. 인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구상적 형상과 개인의 관심을 조화시켰고  환경친화적인 생태론을 담아 인간성 회복이라는  담론을 모색하고 있다.  

(6)5대 소정 허청규(1962~)허형의 증손자이다. 허형의 둘째아들 허용대의  손자이고 허용대의 둘째아들인 허원의의 아들이다.실경에 대한 애착으로 전국을 돌며 사생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후 경향 작가들의 다양한 그림과 대칭시킬 수  있는 향토 짙은 스타일의 풍경화를  그리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7) 5대 허재((1973~)~허재는 허형의 증손자이며 허건의 손자이다. 허건의 둘째아들 허범의 둘째아들이다. 

(8) 5대 허준(1976~)~허준은 허형의증손자이다. 허형의 네째아들  허건의 손자이며 허건의 세째아들 허연의 아들이다.  

(9)5대 동원 허은(1946~)~허은은 허형의 증손자이다. 허형의 첫째아들 허윤대의 손자이다. 허윤대의 첫째아들 허원민의 아들이다. 

소치 2관 상설전시관

 

 

소치 2관 실감영상실

ㄷ자형의 소치 1관의 출입문 복도가 한옥식으로 매우 고풍스러웠다.

소치 1관(소치기념관)



운림산방~소치 1관(소치기념관)

 

소치 1관 영상실에서는 허련의 5대손까지의 화가의 일생이  담겨져 있었다.운림산방 부근 벽화그림이 입체감이 있어 사실적이고 정겨웠다.

진도 운림산방 주차장부근

서울로 가는 길 진도거리에 패랭이 잔디와 수국벽화가 비추었다. 목포에 이르니 바다가 펼쳐졌다. 금강호가 파란색채로 바다 같았다. 붉게 물든 노을이 매우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