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우리함께 걸어요 밴드모임에서 단양으로 여행을 갔다.차창가로 산봉우리 아래 하천이 사색을 담고 잇었다.휴게소에서 처음 보게된 홍순천님 친척분과 앉게되어 아침을 같이 먹게 되었다. 네가 가져온 떡을 나누어 먹으면서 집에서 만든 쑥떡을 주었다.밤과 각종 콩이 들어간 웰빙 떡으로 힐링이 솟구쳤다. 후식으로 사과를 주어 너무 감사했다.홍순천님 친척분의 친구가 향기로운 1837 TWG 차를 주어 마셨는데 허브향기로 매우 향기로웠다.차창가로 단양시에 이르니 초록빛 물결의 저수지와 유려한 산세의 산봉우리를 자랑하고 있었다.웅장하고 수려한 산세와 저수지로 지질 자연환경을 지닌 단양임을 보여주고 있었다.계곡의 정겨움과 함께 단풍이 빨갛게 물들이는 고개길로 가을철에는 매우 아름다운 색채로 발현되는 고개길 같았다. 보발재로 가는 부근 웅장한 산봉우리가 차창가를 가득 메우며 단양여행의 설래임을 자극했다. 보발재로 가는 굽이치는 고개길로 계곡과 단풍나무물결로 아름다웠다.보발재 연풍세재는 조선시대 교통로였던 연풍새재의 일부가 보발재이다. 괴산과 문경시를 연결하는 고개로 가곡면 보발리와 영춘면 백자리를 잇는 고갯길에 위치한 단풍명소이였다. 소백산 자락길인 보발재는 봄에는 형형색색의 야생화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으로 1967년 천태종 구인사의 나무심기 정성으로 시작되었다. 웅장한 산봉우리가 드리우는 중앙 굽이치는 고개길로 단풍이 화사한 색채로 물결쳤다. 매우 단아한 고개길 경치였다.보발재를 지나 구인사가 자리잡고 있었다.소백산의 구인사는 천태종의 창시자인 상월원각대조사에 의해 1945년에 설립되었다. 대웅전 5층석탑,명상의 저당등 주요 건축물이 고풍스러운 천태종의 총본산이였다. 구인사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로 단풍나무 가로수길을 지나니 금색을 칠한 일주문양식으로 다른 종파의 불교 사찰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좌우로 돌계단과 아치형 3개의 문,누각의 천왕문으로 중국의 정감을 자아냈다.사찰에서 볼수 없는 이색적인 건축양식이였다.팔작지붕의 복층양식,벽화장식,화사한 누각이 단풍과 조화를 이루었다.언덕길로 삼보당과 설법보전을 잇는 복도 양식이 중국풍 고전미로 빛났다.즉 천왕문과 복충양식,복도양식이 이색적인 사찰이였다. 관음전까지 걷다가 마루에서 휴식한 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정류장부근에서 마른 묵을 시식하며 힐링되었다.구인사에서 온달관광지에 갔다.
온달관광지는 고구려 장군 온달이 성을 지키던 곳이였다.온달산성과 천연기념물 온달동굴명소로 이루어진 곳으로 삼국시대 온달장군과 관련된 전설과 역사를 체험할수 있는 곳이였다. 드라마 연인,촌추태후,태왕사신기등 많은 역사물의 세트장으로 활용되었다. 매표소부근 향토음식점 거리부터 장대한 산봉우리가 드리우며 온달의 그림자로 빛났다. 사적 제264호인 온달산성은 석축산성으로 고구려 평원왕때 온달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투 중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산성이였다. 남한강을 굽어보는 성산 정상부에 반월형 퇴뫼식 내외협축으로 축초된 산성으로 처음에는 고구려에 의해 축조되었지만 6세기 중엽 신라에 의해 다시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였다. 신중동국여지승람과 신여지도서에 산성의 기록과 삼국사기에서 온달이 아단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유시에 맞아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온달산성에 둘러싸인 온달관광지로 온달 전시관이 있었다.온달전시관은 온달장군 동상의 늠름한 기상과 함께 삼국시대 고분같은 건축양식으로 레트로 감성을 담고 있었다.
온달전시관
(1) 역사적인 배경~온달은 삼국사기 열전 5권 온달전에 수록되어 있으며 고구려 평원왕(559~590)과 영양왕(590~618)대의 사람으로 평원왕의 딸인 평강공주와 결혼하였으니 약 550년 경에 태어나 590년을 전후해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온달이 활동하던 시기 고구려 역사의 전성기로 화북의 북위,화남의 송 제 양 진 유목세계의 유연 돌궐과 함께 국제 정치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구려는 평화와 경제적 번영,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발전하였다.해외무역도 활발하게 하여 고구려 힘은 멀리 중앙 아시아까지도 전해졌다.고구려는 농업을 장려하여 평양주변과 황해도 일대,랴오둥 지방을 중심으로 벼농사를 지었고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 귀족의 집에서는 입식 부엌과 마구간, 외양간을 설치하였다. 운송수단으로 수레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왕과 귀족도 외출할때는 가마가 아닌 수레를 사용하였다. 수레가 다니려면 도로의 발달이 필수적으로 고대국가 발전상을 짐작할수 있으며 수레를 통한 물자 수송을 통해 시장의 발달과 활발한 무역도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뛰어난 철기문화는 커다란 쇠바퀴살을 만들고 활과 긴 창,칼,말까지 갑옷과 투구로 완전 무장시킨 철기기병위용을 선보였다. 매년 10월 동맹의 계절이 오면 시조신에 대한 제사와 사냥대회를 지내고 다함께 어울려 음주가무와 유희를 즐기는 축제를 통해 정서적인 사회통합을 이루었다. 고구려 생활상은 고인의 생활모습과 세계관이 반영된 완벽한 소우주인 고분벽화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 벽화속 문화 전시로 고구려사냥벽화,운송문화,농경문화,놀이문화가 전시되었다.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사회상을 볼수 있는 생활풍속,장식무늬,신앙세계가 진열되어 고구려에 온 기분 같았다.고구려장례는 관을 3년간 집에 보관했다가 좋은날을 받아 땅에 묻었다. 무덤은 돌로 만들었고 무덤앞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많이 심었다.
(2)온달과 평강공주이야기~온달은 고구려시대 제25대 평원왕~제26대 영양왕의 인물로 평강공주가 부왕 뜻을 어기며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게 되면서 사랑이야기가 아름다운 설화로 전해진다. 바보 온달은 지혜로운 평강공주 내조를 받아 문무의 수련과정을 거쳐 늠름한 장수로 변모해 5세기 후반 북주 무제의 용동침략을 맞아 전쟁에 나가 앞장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평원왕으로 부터 사위로 인정되어 대형지위에 오른다.AD 590년에 신라에 빼앗긴 죽령 서쪽의 고구려땅(현재 영춘지역)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며 출정하였다. 온달산성 중심으로 신라와 전쟁중 아단성(온달산성) 아래에서 신라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삼국사기열전에 전하고 있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때 사람으로 어머니를 봉양하는 거지행세로 바보온달로 불렀다. 평강왕은 울기를 잘하는 평강에게 놀리며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야겠다고 놀렸다. 16세가 되어 상부,동부 고씨에게 시집을 보내고자 하니 공주가 왕에게 온달에게 시집가라 했는데 따를수 없다하여 너는 네 갈데로 가라왕이 하셨다.바보가 사냥대회에서 우승하고 왕에게 사위로 인정한 평원왕은 대형이라는 관직을 주었는데 대형이상인 사람만 장군이 될수 있었다.
(3)온달산성전투~590년 제26대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왕을 찾아가 고구려는 예전에 한강 북쪽 땅을 신라에게 빼앗겼으니 군사를 이끌고 한강북쪽땅을 찾겠다고 하였다. 신라군과 맞써 싸우며 이단성까지 치고 내려갔다.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날아오는 화살에 맞고 죽었다.
그 밖에 온달장군에 대한 벽화,온달설화와 전승지가 분포된곳,고구려 벽화속 문화 전시(고구려사냥벽화 운송문화,농경문화,놀이문화가 전시되었다.
온달전시관을 나오니 웅장한 산봉우리와 온달산성이 드리운 드라마세트장이 펼쳐졌다.
드라마세트장
낙양성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과 장식,대문양식이 삼국시대 온 기분 같앗다. 매우 고풍스러운 정감으로 환상적으로 압도되었다. 수.당황궁은 연못이 있는 성벽으로 궁궐의 위엄을 위시하였다.양현감저택은 자연친화적인 마당의 연못으로 매우 고풍스러운 삼국시대 정감으로 압도되었다.둥그런 문장식과 창호장식으로 중국풍 정감을 자아냈다.정치가 단채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를 근거로 고구려말기 연개소문(603~666)의 장군을 2006년 SBS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으로 제작한 세트장이였다.수양제의 2차 고구려 원정에서 예부상서 양현감은 여양에서 보급물자 운송의 최고 책임자로 있다가 이밀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양제의 폭정 타도를 선언하며 반란을 일으키나 실패하는 줄거리를 가진 드라마였다.홍불화의 처소는 연개소문 첫째부인 처소로 중앙잔디정원을 중심으로 복도 테라스와 처소로 연결되는 집이였다 . 마당에 정자가 있는 양반집으로 풍류소리로 가득했다.자잣거리는 삼국시대 정감으로 초목과 조화를 이루며 매우 운치가 있었다.황토적인 초가집의 자잣거리로 매우 평온했다. 드라마세트장을 한걸음씩 걸을때 마다 그림작품으로 다가오며 사색적이고 낭만적인 정취로 가득했다.
온달동굴
단양군에 200개 이상 천연동굴이 있다.천연기념물 제261호인 단양지질공원 온달동굴은 다양한 생물종이 30종 이상 서식하여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가장 높은 등급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의 지하 석회암지대에 4억 5000만년전에 형성된것으로 추정되는 천연동굴로 온달장군이 수련했다고 전설이 전해져 온달굴,지산굴,남굴이라고도 한다.동굴은 주굴과 다섯갈래 가지굴로 이중에서 3분에 1만 공개되었다. 6군데 광장이 있으며 종유관,종유석,석순,석주,유석,휴석,동굴방패,동굴산호와 일부 구간에 소규모로 동굴진주,석화,곡석등이 분포하고 동굴호수나 동굴유수가 있는 지점에는 큰 규모의 종유석,커튼,유석등을 볼수 있고 동굴바닥에서는 석순과 동굴진주등이 관찰 된다. 대부분 구간에 수심이 깊은 동굴호수가 존재하며 지하수가 흐르고 비공개구간에서는 온달동굴의 학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모암이 용해된 형태의 박스윅이 나타나고 있는 천연 지하동굴이다.온달동굴은 수직에 가까운 단층대에서 만들어졌다.이로 인해 단층대 틈을 따라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볼수 있다. 하천가에 있어서 동굴내부의 물은 수위 변화가 자주 생긴다. 이 때문에 다른 석회동굴에서는 거의 없는 상자구조라는 매우 특이한 모양을 볼 수 있는 동굴이였다.동굴을 감상하면서 매우 신비로웠다.
온달동굴에서 나와 남한강 에워싸는 산봉우리 경치가 펼쳐졌다.매우 화사한 2층누각과 돌담장으로 비추는 산봉우리로 매우 아름다웠다.삼족오 공원,드라마 세트장 광장의 가을색채 향연으로 매우 아름다웠다.즉 온달관광지는 온달산성이 드리우며 남한강이 펼쳐지는 관광지로 온달전시장,온달동굴,드라마세트장으로 매우 환상적인 곳이였다. 온달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매우 귀중한 문화 관광지였다.온달관광지 부근 복천가든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향토음식지정점으로 산채정식,더덕구이,버섯전골,산채도토리묵밥,곱창전골전문점으로 민박집과 함께 운영하는식당이였다.더덕구이정식을 먹었는데 팽이버섯,당근,더덕,파,양배추,돼지고기가 들어간 비법소스의 더덕구이로 매우 감칠맛 있었다.달고 맵지않은 간으로 입맛을 자극하였다.메밀전은 새우가 들어가 고소함을 더욱 자극하였다.새콤한 맛의 궁채절임은 고급진 풍미로 힐링되었다.천연재료가 들어간 무절임은 새콤하면서 시원한 맛을 담고 있었다.고급진 풍미로 힐링이 솟구쳤다.매우 짙은 된장국은 직접 담은 된장으로 매우 구수했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의 콩나물무침,채소 싱싱한 맛이 살아있는 열무김치,매우 감칠맛의 알배기된장무침으로 힐링을 목표로 깔끔하고 환상적인 맛을 추구하는 일품 맛집이였다.식당 마당으로 호두가 말려있어 전성한,이주옥,전혜영님과 함께 호도를 까 먹었다. 잘 까지지 않은 호두를 전한성님의 친절로 베부르게 먹을수 있었다.호두를 맛있게 먹고 즐비한 상점길로 갔다.백년초엿,특허받은 오미자와 사과들어간 뻥튀기,호박엿을 시식하고 영춘 농특산물판매장에서 더덕을 5000원에 값싸게 구입하였다. 시식과 식재료 구매로 힐링이 넘쳤다.서울로 가는 차창가로 30분이상 한강에 둘러싸인 매우 수려한 산봉우리들이 펼쳐져 매우 아름다웠다.기암괴석의 웅장한 경치로 지질공원의 명소인 단양을 보여주고 있었다.덕천터널을 지나 한강이 펼쳐지며 도담산봉이 비추었다.매우 사색적인 한강의 드라브길 명소길 같았다.해가 수채화를 붉으스레 그리며 안식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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